그간 취업기를 읽으며 ‘이 사람 배가 불렀네’라는 생각을 하신 분이 있었다면, 이번 글이 꽤나 만족스러울 것이다.

두번째 취업 준비. 그 끔찍한 기간동안 나는 우울증 초기증상과 탈모증상이 왔고 구립 상담센터에 들락거렸으며 서류탈락은 백자리에 근접했다. 하루를 시작해야하는 아침이 싫었고 바뀐 것 없이 끝나는 밤이 싫었다. 그냥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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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퇴사를 선택하고, 한 달쯤은 좋았다. 퇴사라기보다는 ‘휴가 한 달’의 느낌이었다. 적절한 늦잠과 남들이 일할 때 쏘다니는 재미와 아직은 남은 월급이 다행스러웠다. 일하는 친구 찾아가서 점심 얻어먹고 읽고 싶었던 책도 몰아 읽고 하고 싶었던 것은 웬만큼 다 해봤던 그 어느 날.

그렇게 즐거웠던 시간은 딱 한 달 갔다

슬슬 취업준비를 시작하려고 소위 ‘대기업 취업’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와중에 쏘다닐 정신은 싹 사라졌다. ‘반드시’ 있어야 했던 것 중에 내가 없는 게 너무 많았다. 당시의 내 상황은

  1. 토익 낮음. 스피킹 점수 없음
  2. 대기업에 이력서 써본 적 없음. 레퍼런스 없음
  3. 인턴경험 없음. 스펙 없음. 자격증 없음. 중도 퇴사 빨간 줄 그어져있음.

처음에는 안이하게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했던 장점들이 몇 개 있었다. 당시 한창 뉴스에서 인문학 열풍 어쩌고 하던 시기였고, CEO들이 기업 채용에 인문학을 중시하고 싶다, 라는 말들이 나왔다. 인문학 전형이라는 것도 생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써먹을 거리 하나는 있다고 생각했었다.

경험도 많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니면서 여러가지 일을 꽤 많이 했던 편이다. 강연회라던가, 출판 작업이라던가, 행사기획 같은것도 많이 했었다. 한 학기에 평균 두 개씩은 기획서를 써야했고 방학 때에는 외부 단체에 일을 도와주러 다녔었다. 그래서 스스로  ‘실무경험’이 꽤나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모든 자신감은 첫 번째 이력서 앞에서 작살났다

내가 스펙이라 생각했던 것은 사실 스펙이 아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생생하게 재현할 방법이 없었다. 써먹을 수가 없었다. 내 경험은 나의 맥락을 알고 있는 사람, 즉 친구에게만 통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려니 이야기를 단순화시키고,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단어를 바꿔야했다. 다 알아듣게 바꿔놓고 나니,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기획을 해본 적이 있다’ 정도로. 이 정도 이야기는 누구나 이력서에 한 줄 집어넣을 수 있는 말이었다. 스펙이란, 상대방이 한 눈에 알아볼 만한 특이한 것이어야 했다. 예를 들어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인턴’ 같은 것들 말이다. 인사팀이 못 알아볼만한 스펙은 아무리 많이 해도 소용없었다.

인문학과 관련된 믿음도 사라졌다. 인문학을 중시한다는 몇 군데 회사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 인문학의 종류가 좀 이상해서 그렇지. 동아 비지니스 리뷰, SERI CEO, 기타 몇가지 책을 읽어본 결과 기업에서 좋아하는 인문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 번째는 CEO에게 재밌는 옛날이야기 해주는 인문학. 두 번째는 창의성을 발휘하여 뭔가를 ‘엄청 잘 해내는’ 인문학. 아쉽게도 둘 다 배운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저게 인문학인가 의심스러운 적이 더 많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3월을 맞게 되었다. 간신히 서류를 넣을 만한 토익점수와 스피킹 점수만 겨우 마련했다. 그리고 공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이력서라는 것이 하루에 하나 쓰기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력서 다 비슷비슷하다고 누가 그랬나.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이력서 주제와 글자수에 따라 문장과 내용을 고쳐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력서만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시간이 지나고, 서류탈락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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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은 사람들의 조언은 결과적으로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신들도 정확히 어떤 이유로 취업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스스로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좀 나았다. 자신이 정말 어떤 이유로 취직했는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골치 아팠다. 자신의 방식이 직업을 획득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머리부터 발 끝까지 행동을 코디해주려는 사람 앞에서 그것이 친절에서 나오는 행동임을 알기에 더 무기력했다. 저항할 틈도 없이 친절에 두드려 맞곤 했다.

‘남들과는 다른 이력서’를 쓰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그 어떤 친구도 모험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일년에 많아야 두 번 있는 기회였다. 운 좋으면 인생을 구제할 수 있는 기회를 어느 누구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이력서가 비슷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모험을 하기엔 기회가 너무 무거웠다. 적어도 이력서 안의 나는 가장 예쁘게 차려입은 바비인형이어야 했다. 적어도, 팔리기 전까지는.

자존감은 하루하루 떨어져 갔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 중에 하나는 당최 사람을 만나 기분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끊임없이 나와 비교하게 되었다. 취업한 사람? 취업했으니 나보단 낫다. 취업 준비 하는 사람? 준비를 나보다 더 했으니 역시 나보단 낫다. 아직 학생? 참 좋겠다. 등등. 힘드니 어디 기대고 싶은데 사람에 기댈 수가 없으니 점점 물질에 기대게 되었다. 당시에 커피를 엄청나게 마셨다. 하루에 드립커피로 한 1L 정도. 카페인으로 따지면 핫식스 네다섯 개쯤 된다. 잠을 못자고 신경이 곤두섰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무서움도 커졌다. 취업준비는 길어질수록 손해다. 취업활동은 ‘스펙’으로 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력서에 (뭔가 핑계를 대지 않는다면) 텅 빈 공간으로 남는다. 그것이 다음 지원에서 탈락의 이유가 될까봐 두려웠다. 회사에 따라서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취업에 실패했었으니, 이번에도 취직시켜줄수 없다.’ 는 얼핏 듣기에 이상해 보이는 검열이 있기도 했다. 나는 하루하루를 사는 느낌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써버리는’ 느낌이었다. 쓰면 쓸수록 절대 더 나아지지 않는, 그런 종류의 자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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