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이 하면 원조교제, 내가 하면 로맨스

 

※좀 더 오글거림+감정이입을 원한다면 이 유툽을 재생하시면 된답니다. 당시 필자가 씨디 튕기게 듣던 노래 중 하나.

 

열여섯 여고생과 스물둘 공대생과의 연애

1헬스장 2연애. 그 중 첫남자(?)가 바로 그 사람, 이었다. 얼굴은 정말정말 남고딩이었는데 알고 보니 스물둘이었던 엄청난 동안의 그 분. 새하얀 얼굴에 ‘찰랑’하고 새까만 머릿결, 쌍커풀 없는 눈매와 살짝 삐뚜름한 코, 혈색 좋은 붉은 입술의 그 분은 말 그대로 딱, 나의 이상형이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동안인 데 있었다. 사랑에 빠지고 보니, 여섯 살 연상이었다. 지금 내 나이(스물 넷)에서야 여섯 살 연상은 ‘뭐 그럴 수도 있지!’ 지만, 10대 때의 여섯 살 연상은, 아니 3살 이상 연상만 되도 그건 정말 뒷담화 감이었다. 그치만 뭐 어쩌겠어, 내가 왜 얘기를 꺼냈겠어. 초장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사귀었던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뭐, 어떻게 시작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그닥 필요가 없을 듯 하다. 헬스장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200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그날을 계기로 2007년 어느 겨울을 시작으로 연인이 됐다.

 

몸도 마음도 조숙했던 17세의 오리너구리씨.

몸도 마음도 조숙했던 17세의 오리너구리씨.

 

우린 ‘건전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변명부터 하자. 우리끼리는 술집 한 번 간 적이 없었고, 우리 둘 중 누구 하나 담배 핀 사람도 없었다. 우리의 데이트 장소 1순위는 ‘도서관’이었고, 서울 근방으로도 떠나본 적 한 번 없었다. 편입을 준비하던 그와, 그저 그런 고등학생처럼 대입을 준비하던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집 근처인 도서관에서 만나 공부(데이트)만 했었다. 우린 정말 ‘건전했다.’

그렇지만 물론, 피해갈 수 없었다. 여섯 살의 나이 차이는, 그것도 열 일고-여덟살과 스물 셋-네살의 나이 차이는 좀 달랐다. 문제는 ‘우리’가 피해갈 수 없었다는 게 아니라 ‘남들’이 피하길 원치 않았다는 데 있었다. ‘어떻게 만났어?’라는 물음에 우리는 ‘해명’을 해야했고, 내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범죄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은 오빠가 자신의 친구에게 나를 소개시켜 준 날이 있었다. (그것도 요즘 친구 소개시켜주듯이 술집이나 밥집도 아니고 영어특성화공원이었다ㅋ)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는 나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는 “야 XX 어리잖아”라고 거의 들으라는 듯이 얘기하는 친구분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면서, 그냥 쓴 웃음을 삼키기도 했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남자친구에 대해 얘기했던 날, 어머니는 내게 다른 말 없이 “콘돔 챙겨다녀라”라고 하셨다. 고등학교 조차 입학하지 않았던, 남자친구와 첫키스 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나름’ 순진했던 나는,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고 아버지도 그에 발끈하신 나머지 한바탕 부부싸움이 일기도 했다.

 

그래, 하긴 했다.

아하하, 그래서 챙겼냐고? 그래요, 챙겼습니다. 내가 챙긴 건 아니지만, 여튼. 또래 친구들 중에서는 거의 제일 빠르게-17살 겨울- 난 첫경험을 했다. 매일매일 만나던 남자친구과 사귄지 1년 만에, 한 세네 번째 방문해 본 그 사람의 집에서 경험한 일이니 지금 내 기준에서는 정말 ‘엄청나게’ 숙고해서 선택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죄책감은 어마어마했다. 나름 밖에서는 공부도 잘한다- 나가 놀지도 않는다- 칭찬만 받으면서 17년을 살아온 ‘바른 청소년’이었던 내가, 여섯 살 연상의 남자를 헬스장에서 만나서 첫경험을 해버린거다. 그 부분은 사랑이 커버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점점 더 속이기 시작했다. “세 살 차이야”라며.

3년을 그와 만나왔지만, 그에 대한 거짓말을 해온 건 3년 그 이상이었다.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 친구도, 대학 친구도, 재수 친구도 모두 속였다. 나중에는 내가 만든 시나리오에 내가 속아 넘어가는 듯도 했다. 진즉 대학을 다니고 있던 사람을 두고 이제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라 말하고, 편입을 준비하는 사람을 두고 다시 대입을 준비하는 거라 말하기도 했다. 임기응변식으로 만들었던 시나리오는 엉성하기 그지없었고, 들키기도 다반사였다. 그리고 그걸 빌미로 거의 ‘따’를 당하기도 했다.

‘오빠 88년 생이야’라고 해야되는데 그게 계산이 안되서 ‘오빠 85년 생이야’라고 아주 그냥 진실을 말해버리는 바람에, 또 그렇게 내뱉은 뒤에 제대로 대처로 못 하고 어버버 하는 바람에 제대로 걸려서 덜미를 잡혀버던거다. 완전한 거짓말은 없지만 어줍잖게 들킨 거짓말은, 것도 딱~ 뒷담화하기 좋은 템의 거짓말은 삽시간에 퍼져나간다는걸, 그 때 알았다. 친구가 후두둑 떨어져나간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그 날의 충격 이후로 더더욱 ‘여섯 살 차이’를 처음으로 고백하는 건, 정말로X3 쉽지 않았다. 최-고로 믿는 친구에게, 그것도 술의 힘을 빌려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얘기를 꺼내는 와중에도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ㅋ존나ㅋ 울 일도 아니고 자책할 일도 아니지만, 그 땐 그랬다.

여하튼 우리는 그렇게 3년 좀 넘게 만났다. 내가 고등학교 1, 2학년을 다니는 동안에 그는 대학을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편입 준비-실패를 했었고, 내가 고3이 됐을 쯤에는 군입대를 해서 때 아닌 나이에 날 잠시동안 고무신 신게 하기도 했었다. 친구들이 동갑내기, 아님 많아봤자 한 두살 연상 오빠들을 만나고 다닐 때 난 무려, 대입-재수-편입 실패-군입까지 경험한 남자를 만나고 있었던거다.

입대 당일 전화통화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는 교실로 돌아와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친구들은 날 위로해주면서도 내가 왜 우는지 몰랐다 한다. 고무신 신은 여고생, 군대 안에서도 나름대로 유명ㅋ했다더라. 뭐 그래봤자 난 수능공부하느라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지만. 결국 내가 재수를 하는 바람에 (+그가 군인인 바람에) 우리는 1000일 이상 만나온 관계를 흐지부지 끝내고야 말았다.

 

나이 차이를 떠나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는 데에는 정말 후회가 없다.

나이 차이를 떠나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 사람이 처음이었다는 데에는 정말 후회가 없다.

지금 내 나이가 그 때 그 사람의 나이다.

지금 내 나이 스물 넷. 그 사람과 나의 연애가, (도서관 안에서) 나름의 절정(!)을 찍었을 때다. 지금 열여서-일곱살 짜리 아가들과 내 또래 남자애들과의 연애를 상상해보면 어떻냐고? 음. 아무리 그런 연애를 겪어봤던 나더라도, 그 이쁜 꼬맹이들을 만나는 스물셋-넷 내 또래 친구들의 인중을 한 대 쳐주고 싶긴 하다. 결코 순수한 사랑 같아 뵈지가 않고, 아무리 생각해도 필시 어떤 로리콤이 작용했을 수밖에 없다고…해석돼버리는, 그런 생각이 든다.

휴, 근데 또 몰라. 당사자가 돼보면 또 모른다. 콤플렉스- 그건, 밖에서 붙여주는 병명이고 당사자한테 그건 그냥 사랑이다. 콤플렉스도 사랑이고 콩깍지도 사랑이다. 당사자는 사랑을 해석할 필요가 없고, 그럴 여유도 없는 것 같다. 우리도,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얀 셔츠에 쥐색 치마. 교복이 두 벌 씩 있으면서도 매일 도서관에 사복을 한 벌씩 챙겨다니던 것, 그 사람한테 더 어른스러워보이고 싶었다거나 해서가 아녔다. 다소 오글거리지만, ‘우리’ 사이에 나이 차이는 없었다. 그저 교복을 입은 나와 사복(!)을 입은 그가 손을 잡고 걷는 걸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게 싫었을 뿐이었다. 괜히 이상한 구도로 보여졌다가 우리 관계가 욕을 먹고 이 사람이 손가락질 받는 게 싫어서 교복을 벗어던진 것일 뿐이었다.

그랬던 관계도 역시 끝나긴 했다.

고무신 신은 여고생이던 시절, 1주일 만에 온 전화를 받지 못하고는 혼자 독서실에서 끅끅대며 울면서 생각했다. ‘이 사람을 다 기다렸다가는 결혼을 해야되는게 아닐까. ‘

당연히 그건 아니었고, 우리는 ‘그렇게 끝났다.’ 그 분께는 죄송하지만 그 후로도 숱하게 이별을 거치면서, 당시 그 분과는 어떻게 이별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게됐다. 글을 쓰다 생각이 나서 집에 사진이라도 한 장 있나 한 번 찾아봤다. 나름 편지도 많이 주고받고, 사진도 많이 찍어보고, 포토북이라는 것도 만들어봤는데 죄다 어디갔는가 모르겠다. 너무나 숨기고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드러내고 싶었던 깊고 깊었던 사랑이, 어떻게 잊혀졌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