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 넘는 사람들한테 ‘귀엽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로 귀여워질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귀엽다고 하길래 실제 귀여워졌다는, 일명 ‘세라복 할배’ 고바야시 히데야키(52)를 만났다.
세라복을 입고 욕을 들을까 걱정했지만, 정작 스타가 됐다는 할배.
그는 일본의 한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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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지만, 충격적인 비주얼 하나로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존재가 된 할배. 그는 흔히 ‘희화화될 것을’ 요청받는다. ‘귀엽다길래 귀여워졌다는’ 할배는 흔쾌히 ‘웃긴 사람이 되라고 하면 웃긴 사람이 된다.’

그렇지만 그것만이 그의 모습은 아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말이면 세라복할배로 변신해왔지만, 그에게는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았던 50년이 있었고, 여전히 주중이면 그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듣고 싶었다. 그의 삶을.

그가 사는 세상

와세다 대학교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그는 엔지니어가 됐고, 전공을 활용해 컴퓨터 알고리즘을 연구하며 살고 있다. 그는 행복하다 말한다.

“난 정말 이 직업을 좋아해. 정말 나한테 딱 맞는 직업이야.
회사에서 이미지 프로세싱에 관련된 일을 해. 컴퓨터 알고리즘도 만들고 소프트웨어도 만들지. 말없이 일만 해. 마치 기계처럼 나는 전혀 돋보이지 않는 평범하고, 조용하고, 진지한 엔지니어야.”

“얼마나 일하냐고? 음, 그건 때에 따라 다른데… 원래는 오전 10시에 출근해야 해. 하지만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 (웃음) 우리는 보통 각자 일해.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지. 그래서 나는 가끔 낮 12시가 돼서야 출근하곤 하지.

퇴근 시간? 그것도 항상 다른데… 늦게까지 있기도 하지만, 가끔은 집에 일찍 오고 어떤 때는 회식이 있기도 하니까. 그럴 때는 7시 쯤 일을 끝내. 그러면 한 6시간 정도 일하는 거지.”

그의 일주일 중 5일. 그러니까 엔지니어로서의 고바야시씨는 ‘정적인 인간’이다. 혼자 해야 하는 일을 조용히 한다. 일이 끝난 뒤에도 그는 혼자다. 그는 홀로 퇴근길을 걷고 집 주변의 단골 바에서 홀로 술을 마신다.

핸드폰을 키우지(?) 않는 그에게서도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핸드폰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는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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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갖고 싶어지는 건 아니야. 별로 불편하지도 않아. 급한 약속이라고 해봤자 다들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고바야시 부르자!’ 해서 부르는 걸텐데, 난 그렇게 불려나가는 걸 좋아하지도 않거든.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

기억해, 토요일 0시, 그가 여고생이 되는 시간.

그런 그는,

주말이 되면 세라복을 입는다. 길게 자란 회색빛깔 수염을 곱게 땋고 리본으로 묶는다. 여고생이라면 응당 들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스포츠가방도 맨다.
그리고 집을 나선다.

“인터뷰나 이벤트가 없어도 나는 이렇게 (우리는 세라복을 입은 고바야시씨를 만났다) 입어. 주말엔 보통 집을 나가. 책을 읽더라도 밖에 나가서 읽지. 물론 세라복을 입고 말이야.”

신주쿠나 하라주쿠, 시부야 등 번화가에 가면 할배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낭설이었다. 그는 갈 일이 있을 때만 그 곳에 간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오히려 트레인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책을 읽는 것이다.

“트레인 환승 시스템을 이용하면 진짜 좋아. 트레인은 출발역이랑 도착역만 계산해서 요금을 산정하니까, 예를 들어 나카모토신주쿠에서 출발해 신주쿠역으로 가기만 한다면 150엔만 내면 돼. 경로는 상관없어.

그러니까 예를 들어 나는 나카모토신주쿠에서 하치오지로 가서 하치코선으로 갈아타는 거야. 그리고 코마가와로 가고, 또 거기서 다카사키로 가지. 그런 다음에 료모선으로 갈아타 오야마까지 가는 거야. 시간이 더 있다면 미토라인으로 갈아타 토모베야까지 가지. 거기서 죠반선을 타고 우에노로 가. 그 다음에 야마노테선을 타고 신주쿠로 가는 거야. 그렇게 하면 8시간이 걸려. 그게 내가 책을 읽는,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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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복을 입었다고 해서 조용한 엔지니어의 정체성을 가진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라복을 입었다고 해서 순정만화를 보는 것은 아니다. 그가 가장 최근 읽은 책은 뇌과학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어떻게 우리의 의식이 작동하는지 메커니즘을 설명한 책이다.

“가끔 신주쿠에 가고 하라주쿠에 가는 게 나를 아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함인 줄 알았다고? 음, 그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가끔씩 하라주쿠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사진을 찍자고 하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가는 건 아니야. 대개는 다른 이유 때문에 하라주쿠에 가지. 예를 들면 몇 주 전에 시부야에 있는 한 출판사에 갔거든. 시부야에서 하라주쿠역까지 가려면 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나는 하라주쿠를 걷기로 했어. 그 거리를 걷느라 2시간이 걸렸어. 물론 예상 가능한 일이었지. 그렇게, 예상하고 의도해서 거리를 걷지만, 그것 때문에 그 주변에 간 건 아니잖아. 그런 거야.”

그가 일하는 세상.

“지금 카메라 평형이 잘 맞지 않아. 조금 옆으로 기울여야 할 것 같은데…”

그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하자, 그가 우리에게 한 말이다.
카메라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그는, 아마추어 사진가다.

엔지니어라는 천직을 찾았지만, 그가 엔지니어로서의 직업적 정체성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할 때마다 하늘하늘하게 흔들리는 그의 수염처럼, 그는 그가 흔들리는 대로 가도록 내버려둔다.

그는 촬영의뢰를 받을 만큼 인형사진계에서 유명하다. 취미라고 하기엔 그보다 진지하게 사진을 찍고 있지만, 사진촬영으로 돈을 벌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예쁜 사진이 아닌, 본인이 끌리는 사진을 찍을 줄 안다.
유방이 네 개, 그리고 다리가 없는 인형을, 다리 밑에 터를 잡은 노숙인들이 사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는 식이다.

이 사진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음…… 나는 아마도 어떤 종류의 ‘연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차별받거나 사회의 낮은 부분에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모두에게는 삶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많은 사람들이 노숙자가 되는 것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어떤 사람에게는, 그건 선택의 문제야. 나는 가치판단을 잘 하지 않아. 그냥 하나의 삶의 방법인 것 같아. 나는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삶이 그곳에 왔는지가 궁금할 뿐이야.”

발길 닿는 대로… 아이돌이 되기까지.

그리고 그의 사진가로서의 삶은 그를 생각지 못한 곳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아, 그래 맞아. 아이돌 그룹에도 있었지. 근데 2년 전에 탈퇴했어.”

“알다시피 내가 사진가잖아. 인형사진뿐만 아니라 연극단 사진도 찍었었거든. 그걸 통해 아이돌 매니저를 알게 된 거야. 그 사람이 나를 아이돌 사진작가로 캐스팅했어. 스튜디오에서도 찍고, 스테이지에 올라가서도 찍고 그랬지. (‘세라복을 입고?’ 라는 질문에 ‘응’이라고 답했다) 그러다가 스테이지에서 그 아이돌들이랑 춤추고 노래하고 하게 됐는데, 그 다음에 내가 멤버로 영입된 거야. 그렇게 아이돌이 된 거지.”

세라복과도 잘 어울리는 것처럼, 아이돌도 잘 해낼 것만 같은 할배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그런 문제로 그룹에서 탈퇴했다.

“탈퇴한 이유?….는 음… 설명하기 어렵지만, 멤버들 간의 사이가 안 좋아졌어. 근데 그런 분위기가 싫었어, 너무. 그래서… ‘지금이 나갈 때다’ 생각했지.”

그는 행복하다 말한다.

그에게 행복에 관해 물었다.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보통은 행복한 편이야. 기본상태가 행복한 상태랄까.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특별히 뭔가를 해야 하거나 하지는 않아. 힘든 하루를 보냈어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치킨과 레드와인을 마시면 나는 정말이지 행복해져.”

더 행복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그에게도 세라복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4년 전, 한 라멘집 이벤트에 참가하며 세라복을 입게 됐다. ‘30살 이상 중 세라복을 입고 오는 사람에게 공짜 라멘을 주겠다’는 이벤트였다. 할배는 그 때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고, 그 후에도 계속 세라복을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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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복을 입고난 뒤 행복은 완전히 달라졌어.
처음에는 세라복을 입고 밖에 나가는 것에 대해 걱정했거든. 사람들이 욕을 하거나 경찰을 부를 줄 알았어. 그런데 정말이지 뜻밖에도 사람들이 다들 나를 보고 웃어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거야. 정말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어.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사회적인 사람이 됐어. 그 전엔 나는 굉장히 조용하고 내성적이었거든.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았고 수학 생각만 했어. 그런데 세라복을 입고 사회성을 가지게 된 거야.

사회적인 사람이 되면, 삶이 더 쉬워져. 그 전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를 주저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말을 하는 게 쉬워. 그게 날 행복하게 해.”

누구라도 크로스드레싱을 멈출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그게 꼭 나를 모두가 좋아하는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 싫어하는 사람들도 무조건 있을 거야. 그런데 일본 사회에서는 무언가를 싫어한다고 해도 그것을 말하지 않아. 그냥 조용히 멀어질 뿐이지. 어쨌든,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똑같아.”

“세라복을 입기 전에도 나는 귀여운 걸 좋아했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고 숨어서 혼자 좋아했었지. 귀여운 속옷을 입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내가 남성과 다른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야. 내 머리를 봐. 내가 여자가 되고 싶었다면 머리도 여자처럼 하고 메이크업도 했겠지. 행동도 여성스럽게 했을 거고. 하지만 난 그런 의도가 없어. 그냥 옷 자체를 좋아하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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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복 뒤에 이렇게 수건이 삼각형 모양으로 삐져나오게 하는 것은 ‘지금 남자친구를 찾고 있어요’라는 뜻이다. 할배는 그냥 작은 삼각형이 귀여워 보여, 이렇게 하고 다닌다고 했다.

“이제 애인을 갖겠다는 것은 포기했어. 나는 내가 번 돈 대부분을 나를 위해 써버렸거든. 보통은 가족이 있으면 아내나 아이에게 돈을 써야 하잖아. 그런데 그럴 돈이 없어.

물론 아내가 돈이 있다면 뭐 괜찮겠지. 그런데 한 번 생각해봐. 돈이 있는 아내가, 크로스 드레싱을 하는 남자를 수용하는 그런 일이… 있을까?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한… 0.3% 되려나?”

나는 그가 실력 있는 수학자라는 사실을 문득 상기했다.

나는 또 궁금해졌다. 크로스 드레싱과 사랑 중 선택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할배는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크로스 드레싱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글쎄… 내 경우는 아니지만 그런 일은 종종 있어. 대개는 크로스 드레싱이라는 취미를 숨기고 살다가 들킨 후 취미를 그만둘 것을 요구받는 경우지. 그럴 땐 많이들 이혼하게 돼.
아무래도 그 누구도 크로스드레싱을 멈추는 것은 불가능할 거야.”

그는 꿈 속에 산다.

“꿈이 있냐고? 글쎄… 나는 이미 내 삶을 즐기고 있기 때문에 더 기대할 게 없어. 이미 내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나가 있는걸. 그래도 꿈이 있다면, 평생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는 거랄까? (웃음) 계속 세라복을 입고 싶어. 사람들이 지루해져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계속 할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어렸을 때 꿈은 그냥 프로페셔널이 되는 거였어. 딱히 분야를 특정하진 않았지. 이미지 프로세싱일 수도 있고, 아니면 뭐…. 수학자나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어쨌든 성공하고 싶었어.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논문을 쓰거나 하는 그런 거 말야.
아마 그렇게 살았다고 해도 분명 행복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의 나의 삶도 무척이나 좋아. 내가 이렇게 살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 했을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직장에서도 많은 알고리즘이랑 패턴을 적용했으니까. 내 영역에 만족해.”

무슨 말이냐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한 말이 있다.

“아, 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한 번도 내가 한 일들을 후회한 적이 없어. 아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거야. 무엇이든 해봐. 그냥 저질러. 모두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 그게 새로운 시각이나 경험으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일이야.

세라복을 입은 후에 생긴 일들은 99.9% 좋은 일뿐이었어. 계속 좋은 일만 생겼어. 만약에 당신이 무언가 하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그냥 이제 그만 주저하고, 그 일을 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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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다시 보고 싶다.

(할배라 부르기 민망한 나이(52)지만) 세라복 할배 고바야시 히데야키씨는 중학교 때부터 ‘케바야시(Kebayashi)’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뜻을 풀이하자면 ‘grow-hair’라는 의미.
그는 그래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자라기 시작한 수염(hair)을 그냥 자라게(grow) 내버려뒀다는 것.

사회의 통념은 개나 줘버리고 그가 원하는 것을 실천할 줄 아는 고바야시씨. 이름이 grow-hair이라 수염을 기르고 귀엽다길래 귀여워졌다는 그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실천하라’는 흔한 말이 이처럼 와 닿은 이유는 그의 말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던 탓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