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익명 게시판에 혼전 순결을 주장하는 여자와 남자 사이의 갈등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당사자가 아닌 당사자의 지인이, 자신의 친구의 행동을 비판하며 올린 글이었다. 사연인 즉, 자신의 친구가 ‘혼전 관계는 더럽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본인의 남자친구에게 장난이라는 명목으로 수위 높은 애무를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장난’은, 처음에는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 정도의 수준이었다가, 나중에는 발로 남자친구의 성기를 직접적으로 애무하는 정도까지 발전했다. 이에 여자친구의 순결에 대한 신념을 존중하는 남자친구가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러 글쓴이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글쓴이는 자신의 친구의 행동이 혼란스러워 익명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뭐

…뭐?

여자친구가 ‘나는 혼전순결주의자이다. 하지만 성기와 성기의 결합만 없으면 순결한 것’이라고 주장해 혼란을 느낀다는 남자의 글도 있다. 여자친구의 신념에 맞춰 순결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들은 애널 섹스를 즐긴다는 내용이었다. 남녀가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관계를 하면서 성기에의 삽입만 없으면 순결하니 괜찮다는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혼란이 온다는 글쓴이의 고민을 읽으며 답답했다(물론 결과만 봤을 때, 손가락만 빨며 전전긍긍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나, 자의적으로 내린 순결의 정의에 끊임없이 자신을 옥죄는 모습이 불쌍할 뿐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어딘가 답답한 기분과 함께 과연 순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순결의 기준이 무엇인가. 삽입이 있는 관계만 가지지 않으면 ‘순결’한 것인가? 그렇다면 위 사연과 같이 농도 짙은 애무, 성적인 장난을 치는 것은 ‘깨끗’하고 ‘순결’한 것인가?

물음표

순결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의문은 곧 왜 사람들은 순결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당장 필자의 주변을 봐도 ‘깨끗한’ 상대, 순결한 상대를 배우자로 원하는 사람이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렸다. 하지만 그들에게 ‘도대체 순결한 상대가 무엇이냐’ 물으면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당연히 순결한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말은 반복하지만, 이는 앵무새가 뜻도 모른 채 안녕하세요, 만을 반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정확한 실체도 없는 순결이란 단어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마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성행위를 불결하고 나쁜 것으로 보는 시선을 들 수 있다. 동물에 있어서 성교는 원래 번식을 위한 행위이다. 현대 인간사회에서 성행위는 성인 둘(혹은 그 이상)이서 합의 하에 성적인 무엇인가를 나누는 것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참 간단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온갖 미사여구로 그 이상의 의미를 성행위에 부여하고 있다. 이에 순결은 절대 결혼하기 전까지 잃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고, 성과 관련된 모든 것은 ‘음란한 행위’로 규정되어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이런 관점을 주입받아 온 사람들은 자연스레 성은 부끄러운 것, 숨겨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은 오히려 성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 ‘판도라의 상자’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관련된 주제를 꺼내면 그런 얘기는 하는 것이 아니라며 받는 타박과 눈총은 오히려 성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결국 사회에 성에 대한 온갖 억측과 잘못된 지식이 떠돌게 만든다. 과장된 허풍 무용담, 야동 속 기괴한 체위, 그리고 베드신에 나오는 조각 같은 몸매의 배우들이 진짜 성의 세계인 줄 착각하게 된다. 성에 대한 무지와 착각은 결국 안전하고 즐거운 성생활을 즐길 수 없게 만들고, 성은 다시 음지로 기어 들어가 부정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 ‘내 것’에 대한 소유욕과 이기심이 동시에 작용한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항상 완벽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어딘가 흠집이 있어 남들 앞에 내보이기 부끄러운 물건은 소유하지 않으려 하거나, 소유하고 있더라도 이를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소유 사실 자체를 일종의 콤플렉스로 여기며 우울하게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사랑은 곧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라 여긴다. 매일 온갖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넌 내 거야’, ‘널 갖고 말겠어’ 등의 표현도 사랑=소유 라는 관념의 공식화에 일조했다. 때문에 순결을 중요시하는 이들에게 배우자가 순결하지 않음은 용서할 수 없는 결점이다. 새 휴대전화 단말기를 샀는데 액정에 흠집이 나 있는 것과 같은 결점 말이다.

crack

훈련소 시절, 혼전 섹스는 더러운 것이라고 역설하던 동기와의 일화를 소개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소위 ‘날라리’였다. 술 담배는 물론 여자들과 성관계도 빈번하게 가졌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음’을 얻고,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를 했다. 헤어지자는 말과 함께 그가 애인에게 한 말은 바로 ‘지금껏 널 더럽혀서 미안하다’였다.

여자친구가 울면서 자신한테 화를 냈는데, 그는 그런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우리는 기가 찼다. 왜 그녀가 화를 냈냐고? 동기는 ‘더러운’ 성행위로 여자 친구에 ‘흠집’을 냈고, 자신은 그녀를 ‘소유’할 생각이 없기에 미안했던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 뒤에 숨겨진 이 모든 뜻을 여자친구는 파악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화를 낸 것이다. 자신은 사랑해서 그와 섹스했고, 그도 마찬가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배신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포장을 뜯으면 가치가 떨어지는 상품이 아니다. 태어나 상대를 만나기 전까지 수십 년 간 수없이 많은 인생 굴곡과 감정 변화를 겪어왔고, 앞으로도 (부부로서 평생을 같이 한다 하더라도) 쭉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순결한 상대를 찾는 본인도 살면서 단 한 번도 사랑에 빠져본 적 없거나, 욕정을 느껴본 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기준에 맞는 순결한 삶을 살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은 유치하고 이기적인 소유욕에 지나지 않는다.

놓치지않아

순결, 놓치지 않을 거예욧!

여기까지 들었을 때, 순결을 부르짖는 이들이 생각하는 순결의 뜻에 대해 짐작할 수 있다. 섹스를 하는 것은 더러운 일이고, 때문에 섹스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이는 깨끗하고 순결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섹스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가장 객관적인 책, 사전은 순결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국립국어원의 정의에 따르면 순결(純潔)이란,

  1.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깨끗함.
  2. 마음에 사욕, 사념 따위와 같은 더러움이 없이 깨끗함.
  3. 이성과의 육체관계가 아직 없음.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다. 앞의 두 정의는 일단 젖혀 두고, 세 번째 정의를 살펴보자. 여기서의 육체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삽입 섹스인지, 오럴 섹스인지, 애무인지, 키스인지… 그럼 자위는? 이성과 손을 잡는 행위는? 결국 사전을 통해서도 순결의 정의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순결이란 무엇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굳이 순결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얽매일 필요가 없다. 순결은 어린아이와도 같은 고집과 이기심, 성행위를 억지로 더러운 것으로 격하해 해석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이 만들어 낸 개념이다. 순결이라는 틀 때문에 많은 것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 볼 시점이다. 완벽한 배우자를 순결이라는 인위적인 색안경 때문에 놓치기는 너무 아깝지 않은가.

미드 <The Big Bang Theory>에서 여주인공이 남자친구에게 피규어를 선물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자가 선물한 피규어의 포장을 뜯으려 하자 남자친구는 기겁을 한다. 의아해하는 여자에게 남자친구는 포장을 뜯지 않고 보관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말을 한다. 그러자 남자친구에게 여자는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엄마가 순결에 대해서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꺼내서 갖고 노는 게 훨씬 재밌더라!”

a4bb64ce-1d42-45b1-8eaf-0e8356f10dcf

꺼내서 갖고 노는 게 훨씬 재밌더라!

성은 더러운 것도, 숨겨야 할 것도 아닌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과도 같은 당당한 즐길 거리이다. 남의 것도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장난감을 본인이 사용하는 것이 잘못인가? 성인끼리 합의를 하고 자신들의 규칙에 따라 성을 즐기는 것은 절대로 비난할 거리가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신의 이름을 대며 성을 억누르고 순결을 부르짖는다. 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의 뜻에 따라 창조되었다는데, 어째서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을 내다 버리려 하느냐고. 비싼 게임기를 사 놓고 포장만 계속 구경할 거냐고.

뱀발

아까 그 훈련소 동기의 이야기이다. 애인과 한 섹스가 왜 더러운 것이냐는 다른 동기들의 물음에 그는 ‘그럼 너희는 너희 딸이 결혼 전에 남자랑 섹스를 한다면 좋아할 거야?’ 라고 쏘아붙였다. (일단 질문 자체가 핀트에서 좀 어긋난 느낌이 강하지만) 좋고 말고가 어디 있나. 개인 인생인데.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식이 섹스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벌써 멸망했을 것이다. 섹스는 식욕 수면욕과 같은 본능이다. 밥 먹지 않으면 굶어 죽고, 잠을 자지 않으면 피곤해 죽고, 섹스를 하지 않으면…?

 

글 / 아날로그

편집 /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