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가 유행이다. 페이스북에서 유행하여 네이버 메인까지 차지했다. 대부분 언론사들의 카드뉴스는 지면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여 이미지로 재가공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이 카드뉴스이 지면기사는 뭔가 이상하다. 두 개의 기사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확연하게 다르다. 다름 아닌 SNS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달관세대’ 기사다.

페이스북에는 숨겨진 20대 개새끼론

조선일보의 지면 기사에는 헤드라인 아래 두 개의 소제목이 있다.

  •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삶 희생해 얻는 건 스트레스,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게 최고
  • 전문가들 “사회이슈 될 것”
    현실 安住 젊은이 많아지면 경제성장에 부담될 수도

청년들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내용과 함께 전문가들의 우려를 담고 있다. 기사의 결론부분이 될 수 있는 마지막 단락도 안분지족하는 ‘달관세대’가 늘어나면 경제성장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달관세대’라는 프레임을 씌운 청년들의 삶의 방식을 긍정하기보다 오히려 우려스럽다는 눈길을 보낸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카드뉴스에는 우려의 시각과 경제 전문가의 코멘트가 쏙 빠졌다. 대신 헛된 욕망을 버리니 행복하다는 ‘달관세대’ 청년들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해시태그로 #지금이순간 을 강조하고 #누가돈을던지랴 라는 말장난을 통해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만은 없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아예 “기성세대가 ‘아이들 패기가 없다’고 타박할 수 있을까요.”라는 오리지널 문구도 삽입했다. 정작 자기들도 지면에서는 사회 이슈가 될 것이고 경제성장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했으면서.

서로 다른 연령의 독자층을 겨냥한 조선일보의 말바꾸기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페이스북 이용자는 2~30대 위주인 반면 조선일보는 50대 이상 독자가 56%다. 조선일보는 기성세대에게는 안분지족하는 청년이 늘어나면 경제가 우려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반면, 젊은 세대에게는 ‘달관세대’를 긍정하는 교묘한 이중 메시지로 소위 ‘20대 개새끼론’을 전 연령에 확장하고 있다.

‘달관세대’를 긍정하는 메시지조차 ‘20대 개새끼론’의 일부인 이유는 <조선일보는 왜 ‘달관세대 프레임’을 내세웠는가>(2015.2.25. ㅍㅍㅅㅅ)에 잘 나와 있다. ‘달관세대 3부작’의 두 번째 기사를 위주로 ‘달관세대 프레임’의 허구성과 분할 지배 전략을 비판한 글이다. 일독을 추천한다. 이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둘 중 하나만 읽으셔도 무방하다. 이 글에서는 특히 2~30대 독자층을 겨냥한 카드뉴스를 위주로 조선일보의 눈속임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달관세대 프레임’이 생략한 현실 1 : ‘미래’ 없는 ‘지금’

조선일보는 ‘달관세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양극화, 취업 전쟁, 주택난 등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절망적 미래에 대한 헛된 욕망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사는 게 낫다”고 말한다.

양극화, 취업 전쟁, 주택난은 바꿀 수 없는 절망적 미래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조건이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의 지속 가능을 위해 어느 수준은 꼭 필요하다. 양극화, 취업 전쟁, 주택난 덕분에 기초적인 생활비를 버는 것도 녹록지 않다.

이것을 무시하기 위해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여러 가지를 ‘편집’했다.

‘달관세대 프레임’이 생략한 현실 2 : ‘양극화’ 없는 ‘꿀알바’

카드뉴스를 봐도, 심지어 지면 기사를 읽어도, ‘달관세대’들이 눈앞의 양극화 현실을 어떻게 달관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조선일보가 예시로 든 ‘달관세대’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심하다. 3부작을 통틀어 등장한 청년들의 소득 격차가 월 52만원에서 280만원이다.

월 52만원을 버는 삶과 월 280만원을 버는 삶의 차이는 엄청나다. 이건 돈이 곧 행복이라는 식의 사고방식과는 별개의 문제다. 단적으로 주거 환경과 저축의 양이 달라질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질이 그만큼 차이가 난다. 여기에 대해 정말 달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청년 세대가 양극화를 달관한 게 아니다. 조선일보가 양극화를 무시한 것이다.

취업 전쟁도 마찬가지다. 카드뉴스에서는 오씨의 “정규직 취업은 힘든 시대지만 아르바이트 자리는 많다. 업무 강도가 낮은 계약직으로 일하면 월 100만~200만원은 벌 수 있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런 오씨는 파트타임 논술 첨삭으로 월 52만원을 벌었다. 52만원은 100~200만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돈이다. 파트타임 논술 첨삭 일을 두 배에서 네 배로 늘려야 한다. 그것이 과연 업무 강도가 낮은 노동일까?

기사에서는 이 분 알바로 52만원 버셨다는데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다고 업무 강도가 낮아 편하게 월 100~200만원을 버는 계약직 자리가 많은 건 아니다. 조선일보는 극소수의 ‘꿀알바’를 아무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인 것처럼 보도했다. 지금 당장 알바천국에 들어가보자. 계약직 구인 천국이다. 월급 200만원의 계약직은 드물다. 상대적으로 ‘꿀알바’로 분류되는 월 120~180만원의 사무직조차 9~6시가 기본이다. 정규직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야간 근무를 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대부분 수당은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

200만원… 어딨냐

수많은 청년들은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청년층의 실상은 ‘달관세대’가 아니라 아무리 일해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다. 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115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워킹푸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직장인이 무려 74.76%였다. 설문에 참여한 20대 직장인 597명 중 67%(400명)는 100만~2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2014년 11월 29일~30일까지, 이메일 설문조사, 표본오차±2.98%P, 95% 신뢰수준)

돈을 적게 번다고 시간적 여유가 담보되는 것도 아니고, 개같이 번다고 정승같이 쓸 돈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비단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다. 조선일보의 ‘달관세대 프레임’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

‘달관세대 프레임’이 생략한 현실 3 : 집값이 안 드는 삶?

저… 지금 계신 방 보증금 월 80으로 몇 년 모으셨어요?

외국계 인턴 생활 이후 대기업 입사의 꿈을 접고 월 52만원을 벌었다는 오씨는 주거비로 얼마를 쓸까? 집에서 디자인 아르바이트로 월 80만원을 번다는 박샘씨는? 보증금, 월세, 관리비, 공과금. 조선일보의 카드뉴스와 지면뉴스 어디에도 ‘달관세대’의 주거비는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현실적으로 부모님 집에서 얹혀 살 가능성이 높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나는 조선일보가 ‘달관세대 주거비의 진실’을 편집한 이유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생각한다. 세 가지의 의도를 추측해본다.

첫째, ‘달관세대’의 지속가능성을 무시하기 위해. 주거비가 저렴해질수록 저임금의 삶은 훨씬 지속 가능해진다. 부모님 집에 천년만년 얹혀살 수 있다면 월 52만원이든 80만원이든 욕심만 줄이면 왜 못 살겠는가? 그런데 조선일보가 말하는 ‘달관세대’란 단순히 독립적인 생활조차 영원히 초탈한 ‘캥거루족’들은 아니지 않나. 그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부모님이 부자가 아니라서 집을 물려줄 수 없는 경우에는?

적은 돈으로 행복하게 살기, 좋은 가치관이다. 저성장 시대로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적은 돈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삶의 지속 가능성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담보되지 않기에 미래가 불안한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절망하고, 아기를 낳지 않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다.

실제로 청년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행복’에 관심이 있다면 지속가능성 여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지속이 불가능한 삶의 방식을 ‘새로운 행복’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편파적이다. 

둘째, 눈에 보이는 삶의 양극화를 무시하기 위해. 주거비가 달라지면 삶의 환경이 극적으로 달라진다. 관처럼 조그마한 고시원 방에 5만원을 추가하면 창문이 생긴다. 손바닥 만한 햇빛의 가격이 5만원인 것이다. 5만원을 더 추가하면 샤워기, 다시 5만원을 추가하면 변기가 생긴다. 줄을 서지 않고 욕실을 쓸 수 있으려면, 자다가 일어나 신발을 신지 않고 화장실에 갈 수 있으려면 월 10만원의 주거비가 더 필요하다.

월 52만원과 200만원의 차이는 잠만 자는 방과 사람이 살 만한 방의 차이가 될 수 있다

고시원을 탈출하려면 보증금이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300~500만원이면 반지하나 옥탑방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방은 대부분 보증금 천만원부터 시작한다. 보증금에 따라 생활의 기본 조건이 달라진다. 곰팡이와의 전쟁을 벌여야 하는 반지하방이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옥탑방이냐, 불법개조 원룸이냐, 신축 오피스텔이냐… 월 52만원, 80만원, 100~200만원으로 모을 수 있는 보증금은 뚜렷하게 다르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서도 모을 수 있는 돈은 다르다. 계약직에게는 승진도 수당도 보너스도 없기 때문이다.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고시원에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기’ 같은 내용이 없는 한, 조선일보가 만들어 낸 ‘달관세대’는 눈속임이다.

셋째, 부동산 거품과 청년 삶의 연관성을 무시하기 위해. 집값 거품이 서서히 꺼지고 더 많은 청년들이 저렴한 주거비를 내고 살 수 있다면, 청년들은 적은 돈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가 안 된다면서 부동산 가격을 올리려고 하고 있다. 전월세 세입자 대책은 거의 없다. 임금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은 돈으로 지속 가능한 삶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청년이 달관하고 싶어도 달관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적인 요인들을 모두 무시하고 ‘달관세대 프레임’을 꿋꿋이 밀어붙였다.

‘달관세대 프레임’이 생략한 현실 4 : 서울이 아닌 곳의 청년

앞서 언급했듯이 조선일보의 ‘행복한 달관세대론’은 현실적인 주거비를 무시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다루고 있는 청년들의 소득 수준이 너무 다르니 분리해서 생각해보자.

  • 월 52만원, 80만원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적이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  1인가구가 월 200만원 소득인 경우엔,  통계적으로는 중산층이다. 1인가구 가처분소득의 중위소득 50%~150%가 96만원~289만원(중위값193만원, 2013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만원으로 월세를 내고 취미 생활도 하면서 전월세보증금을 얻으려면 (내 집 마련에 대해서는 ‘달관’한다고 치자) 몇 년이 걸릴까? 그거 모으는 동안 보증금이나 월세는 얼마나 오를까?

두 질문 다 함정이다. 정답은 ‘지역에 따라 사뭇 달라진다’. 같은 소득이라도 지방 중소도시에서 산다면 부동산 가격, 즉 주거비가 확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처분소득은 늘어난다.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차라리 ‘달관세대’ 기사가 서울·수도권 이외의 중소도시를 배경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수도권 중심의 바쁘고 고물가의 삶을 초월해, 농촌이나 지역도시로 스며들어 안분지족하면서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창조하는, 그리하여 새로운 삶의 의미를 모색하는 청년들이었다면? ‘달관세대’의 의미가 좀 더 긍정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부동산만 좀 싸진다고 안분지족이 쉽게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장벽이 하나 없어지기는 한다는 점을 짚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사례를 몇 개 찾는다 해도 여전히 ‘세대’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누가 봐도 현실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굳이 ‘달관세대’의 무대를 서울과 수도권에 한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추측해 보건대 조선일보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주류적 삶을 포기하고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가는 특별한 청년들이 아닌 것 같다. 서울과 수도권에 분포한 고학력 20대들이 ‘너희’(Target Audience)와 똑같은 상황인데도 저임금, 양극화, 주택난, 취업난에 불만을 말하지 않는 평범하고 조용하고 순응적인 청년들이 되어 가고 있다는 허구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일보가 이런 달관 세대라는 프레임을 짜 놓으면 모든 것이 편하다. 실제로 ‘달관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청년을 비정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기사를 본 많은 갑들은 달관하지 못한 청년에게 물을 것이다. 왜 이렇게 세상이 좋아졌는데, 경제는 어려워졌는데 많은 걸 요구하냐고.

‘너희 힘들다더니 이렇게 100만원 갖고도 잘만 살아가잖아? 심지어 저축도 하잖아. 어째서 임금 올려달라, 등록금 내려달라 난리야? 너희들 아낄 수 있는 데 까지 아껴 봤어? 이 청년처럼 IPTV 보면 영화값도 안 들잖아? 왜 요구하는 것이 많아?’

이들은 명품도 안 바란다. 몸이 망가지건 어쩌건 좁고 더러운 방에서 잘 산다. 영화관에 가는 법을 잊는다. 왜 너희는 그렇지 못한가?

-ㅍㅍㅅㅅ <조선일보는 왜 ‘달관세대 프레임’을 내세웠는가>

그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조선일보는 청년이 눈을 감으면 암울한 현실과 미래가 다 사라질 것처럼 말한다. (적어도 카드뉴스는 그렇다. 지면기사는 달관세대가 경제 성장의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과 미래가 다 사라지려면 영원히 눈을 감는 수밖에 없다. 32세, 35세였던 송파구 세 모녀 가정의 딸들처럼.

[separator size=”medium” center=”true” empty=”false” opaque=”false” margin_top=”10″ margin_bottom=”10″]

관련 기사:

[달관 세대론에 침 뱉기] 1. 일본의 원조 달관 세대를 만나다

[달관 세대론에 침 뱉기] 2. 오, 제발 달관, 달관 하지 말아줘. 열 받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