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관세대의 원조, 사토리세대가 살고 있다는 일본에 있을 때였다.

아닌 밤중에 조선일보 특집기사가 내 페이스북을 뒤덮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 이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기사 대충 쓰는 소리 좀 안 들리게 해라.)

사토리세대를 아시나이까 – 번역의 차이.

조선일보가 달관세대 기사를 썼다.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고대로 한국에 들여온 건데, ‘달관’. 두 글자가 내 시신경을 지나 뇌가 그 뜻을 인지하자 불현 듯 빡이 쳤다.

왜일까. 나는 생각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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왤까? 왜 빡쳤을까? 하하? cc by gettyimagesbank

번역할 때 문학성 발휘하지 마세요.(나 진지하다. 궁서체다.)”

사토리세대라는 단어가 들린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사토리세대는 일본의 20대 정도 세대를 일컫는 말인데, 사치품이나 출세에 욕심이 없다고 해서 붙여졌다. 사토리세대는 지금껏 우리나라에서 ‘득도’로 번역됐다. 한 일본인은 ‘깨달음’이라고도 번역하더라. 그런데, 뜬금없이 조선일보가 ‘달관’이라는 말을 쓴 것.

득도와 달관은 다르다. 유노?

득도와 달관은 비슷해 보이나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있다. ‘즐기느냐 아니냐’의 차이. 내 ‘선택이냐 아니냐’의 차이. 연애를 안 하냐 못 하냐의 차이. 이거슨 하늘과 땅의 차이.

즉, ‘득도’세대란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것을, 인지한 것에 가깝고 ‘달관’세대란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게 뻔한데 ‘아이-좋아’ 라고 생각하는 칠푼이에 가깝다.

이는 조선일보의 ‘사토리세대(달관세대)’ 설명에서도 드러난다.

“1980년대 중후반~90년대에 태어난 10대 후반~20대 중반 일본 젊은이 중 미래는 절망적이지만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

원래 사토리세대는 이렇게 설명된다.

“득도(得道)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사는 젊은 세대로 정의된다.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그러니까, 간신히 ‘아픈’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근데 솔직히 아파도 괜찮지? 에이, 행복해 보이는데 뭐, (그냥 그렇게 살아)”라는 말을 한 것 같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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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마주한 것 같은 충격ㅋ cc by gettyimagesbank

그래서 나는 우리 세대가 미디어로부터 그런 취급을 당한 것에 깊은 빡침을 느꼈던 것 같다. 한국의 사전에도, 일본의 사전에도 ‘사토리세대’에 ‘행복’을 느낀다는 말은 없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대체 왜 절망의 세대인 우리가 행복하다고 진단한 걸까?

“욕망 없는 세대인 이들은 비록 경기침체로 정규직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중저가 옷을 입고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행복을 느낀다(조선일보 ‘달관세대’ 설명 중)”고?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비정규직 자살의 시점이, 성희롱도 뭣도 아닌, 정규직이 좌절됐을 때라는 것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시나이까. (무슨 책 읽고 삘받으셨는지는 짐작이 간다.)

오 이런, 이 기사엔 사례, 사례, 사례밖에 없잖아?

  1. 연세대를 졸업한 조모(26)씨. 가구회사에서 3200만원 연봉을 주면서 8am-9pm 일을 시켜서 퇴사.
  2. 서울대 4학년인 오모(26)씨. 외국계컨설팅 인턴 중 대기업입사 꿈을 접음.
  3. 대학을 2년째 휴학 중인 임모(23)씨. 백화점 콜센터 계약직으로 월 120만원 받음. 10am-7:30pm 근무. 현재 생활에 만족. 정규직 알아볼 생각 없음.
  4. 경희대 졸업한 박샘(25)씨. 디자인 관련 재택아르바이트. 80만원 번다.

아니, 기사에 사례밖에 없다.

이게 머야… cc by gettyimagesbank

그러면 내가 반대되는 사례 네 명 찾아서 글 쓰면 우리 사회 경향이 반대가 되는 것일까? 사례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경향이 바뀌고 있다는 걸 절!대! 보여줄 수 없다. 왜냐하면 예전에도 이런 사람들은 있었으니까. (기사에서 실종된 ‘사회 경향 분석’을 찾습니다 ㅠㅠ)

게다가 미시적으로까지 까고 싶진 않았지만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3) 대학을 휴학 중인 임모(23)씨는 달관세대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고 한 번 의심해보지도 않았는지 궁금하다. 콜센터……..는 말이지. 무한도전에서 ‘극한’ 알바 특집에 나온…….. 매우 힘든 직업이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을 달관했다고……. 말한 건 대체 왜인지 궁금하다.

 지금 놀리는 거지? 그런 거지?

조선일보의 다음 구절을 보자.

 “지난해 서울의 한 명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올 초부터 모 금융기관의 6개월짜리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 달에 100만원 벌어 월세 25만원, 저축 20만원을 뺀 55만원으로 생활한다. 그는 “그래도 풍족하게 산다”며 “돈 안 들이고도 취미와 여가를 즐기며 사는 법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씨는 영화관에는 못 가지만 아쉬울 게 없다. 채널 수백 개에 매월 무료 영화 수십 편이 제공되는 IPTV 월 시청료 3만~3만5000원, 보고 싶은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하는 데 많아야 월 1만5000원, 둘을 합쳐 한 달에 5만원이면 퇴근 후 마음껏 영화를 볼 수 있다. 그래도 지겨우면 노트북으로 무료 게임을 한다.”

다음 구절도 보자.

 “’달관(達觀)세대’는 노는 법이 다르다. 비정규직인 이들은 명품 옷, 좋은 레스토랑, 개봉 영화관 같은 ‘고비용’ 소비엔 관심이 없다. 중저가 옷을 입고 햄버거와 떡볶이를 먹으며,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덕에 돈 없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말한다.”

과연 정말 달관세대가 명품 옷, 좋은 레스토랑, 개봉 영화 같은 소비에 관심이 없을까? 그냥 부담스러운 게 아닐까? SNS나 텔레비전이나 하는 얘기는 최신영화 얘기인데, 궁금하지 않을까? 이거 정말 설문조사 해보고 싶은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아, 이런 열악함도 경험해보는구나! 역시 엄마가 공부하랄 때 공부하길 잘했어 ^^ (찡긋) – 이런 느낌? cc by gettyimagesbank

그가 만약 정말 진심으로 ‘현재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면, 그것은 현재의 상황이 평생 지속될 것이 아니라, 곧 지나갈 일시적인 것이라고 포지셔닝 시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럴 것이다. 그는 명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고, 금융기관 인턴을 잡을 만큼 취업시장가치가 있으며, (아마) 충분히 어릴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게 됐을 때.

젊은이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게 됐을 때. 문제는 시작된다. 병이 들거나.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거나 하면, 소위 ‘달관세대’는 행복하다고 자위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될 것이 뻔하다.

일본의 청년들 역시 불안할 테지만, 그래도 그런 불안을 잊고 살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사회보장제도다. 그들은 어떻게든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청년들을 인터뷰하면서, 일본의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 내가 많이 들었던 말은 “일본에서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면 12만 엔을 받는데, 프리터 수입이 평균적으로 월 10-12만 엔이라는 점에 미뤄 보면, 상당한 금액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 (한국국적의) 친구들에게 그런 믿음은 없다.

젊은이가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게 됐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또 있다.

다시 조선일보의 다음 구절을 보자.

 “서울대를 나와 기업 계약직으로 일하는 A(25)씨의 취미는 십자수와 중저가 브랜드 쇼핑이다. 그는 “명품을 카피한 옷을 입거나 근처 아웃렛에서 저렴한 옷을 사지만 주위에 나처럼 명품은 꿈도 못 꾸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명품 백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A씨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대개 주변을 보고 스스로의 행복을 가늠하는 경우가 많다. 젊을 때는 도찐개찐인 경우가 많다. 격차는 나이를 먹을수록 심화된다. 잠시 유예된 상대적 박탈감은 슬슬 고개를 들 것이다.

달관세대 아닌 자 누구인가?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 만인달관세대설.txt를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착각이 아닌 듯한 건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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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는 사람 다 달관세~대 cc by gettyimagesbank

그렇다면 이 기사에서 달관세대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특집기사 3부작 중 첫 기사를 보면서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달관세대는 <대기업 직원이 아닌 사람> 이구나.”

마지막 기사를 보면서는 이렇게 생각했다.

“대기업에 다니더라도 승진이나 일 빡센 곳을 기피하는 사람이 달관세대라는 건가?”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보자. 달관세대가 아닌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기사에서 달관세대인 사람을 제외해보면 이 정도가 남는다.

“주요 대기업, 그것도 승진 쭉쭉 하는 부서에서 일하면서, 돈도 많이 받는. 엄친아 혹은 엄친딸.”

그럼 이제 계산을 해야겠다. 이런 엄친아 엄친딸들은 몇 퍼센트나 될까? 과연 이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그런 엄친아-엄친딸이 아닌 사람들은 ‘안 한 걸까, 못 한 걸까?’ (어휴, 우리 엄마도 엄친아 엄친딸의 엄마 되게 해주고 싶은데.)

안 했든 못 했든, 소위 ‘승자’가 되지 못 하는 청년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이다. (승자의 자리가 적으니까 -_-)

그리고 그런 상황에 왔을 때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개다.

1) 그냥 내가 이런 삶을 원한다고 믿어버리거나, 2) 믿지 않고 그런 1%를 바라보며 불행하게 살거나.

어떤 마음가짐이든, 결과는 똑같다.

그러니까, 이건 (기사에서 강조하고 있는) 선택의 문제라기보다 절망의(라 쓰고 ‘망할’이라 읽는다)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일 뿐이다.

그러니까, 절망의 상황을 간신히 받아들이기 시작한 우리들에게 행복까지 강요하지는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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