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빠지는 흔한 로직이 있다. 직장인 1, 2년차, 있다 보니 이곳에서 평생 일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웬만큼 세뇌당했거나 어마무시한 직장이 아니라면 말이지. 문제는 때려치고 할만한 게 없다는 것. 그리고 직장을 때려치고 새롭게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게 문제다. 그래서 이 시기에 흔하게 재테크(라고 쓰고 주식이라고 부른다)에 빠져서 어떻게든 돈을 바득바득 모아보려는 계획을 세우거나, 퇴사 후 괜찮은 회사로의 이직 계획을 세운다. ‘3~5년만 다니고 내가 이 회사 때려친다.’ 라는 말을 기도문처럼 외우면서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다. 그렇게 3~5년이 된 뒤엔 또 비슷한 고민을 반복한다. 적당히 더 다니다 때려칠 것인지 옮길 것인지 버틸것인지. 아, 어떻게 해도 만족할 만한 돈은 절대 모으지 못한다. 보통은 결혼하거나 집사거나 차사면서 돈을 쓰겠지. 이 고민을 흔히 홀수년차의 고민이라고 부른다.

나의 경우는 비슷한 듯 달랐다. 어떻게든 공부가 하고 싶었다. 그 속내엔 적어도, 흔하디 흔한 ‘직장인’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내가 아는 직장인은 아주 균일한 집단이었다. 흔히 말하는 뼈빠지게 돈벌어서 간신히 결혼하고, 또 돈벌어서 간신히 애키우고, 그러다 간신히 대학 보낸 뒤에 허무함에 빠져서 어우적거리는 보통의 보통 인생이었다. 아무리 괜찮고 본받을만 했던 선배였더라도 직장인 1,2년차에 하는 소리는 빤했다. 돈,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 보통 둘 중에 하나만 없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선배들은 둘 다 없었다. 그리고 심지어 돈으로 시간을 사려고 돈을 더 벌고 싶어했다. 끔찍했다. 직장인이 된다면 나도 그렇게 될 것이 빤했다.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사실 대학 시절부터 책을 계속 같이 읽어오던 무리들이 있었다. 어느 겨울 1월, 다같이 졸업하고 할것 없다는 생각으로 우울하게 술 퍼마시던 저녁때인가, 우연히 나온 꽤나 고차원적 대화에 ‘대학원보다 우리끼리 얘기하는게 더 낫네! ‘라는 말을 던지고, 사람들이 그래! 그러네! 라고 호응했던 기억이 난다. 제정신인지 아닌지 모를 토의 속에 사람들 머리속에 대충의 초안이 잡혔다. ‘대안 대학원’. 우리끼리 공부해 보자! 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끼리 공부해 보자

꿈꾸는 그림은 대충 이랬다. 대안 대학원. 학부를 졸업했으되, 대학원을 가지 않고, 공부에 손을 놓지 않을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자기개발서는 안 볼 거에요. 영어공부도 안 하구요. 지나친 심도깊음과 신자유주의적 천박함 사이에서 눈을 틔워 봅시다. 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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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랬던 때)

요는, 스터디 종류를 다양화해 이것을 다 들었을 때 최소 대학 9학점정도의 무게감을 가져가도록 해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끼리 돌리고 있었던 스터디만 네개였으니 사실 어려워보이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이리저리 홍보하고, 회의하고, 조직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던 끝에 2012년 3월에  ‘인문학 공동체 헛간’ 을 세울 수 있었다.

애정이 컸었다. 자신도 있었다. 다같이 매주 모이는 독서모임을 2년씩 굴려왔던 멤버들이었다. 당시 수준은 웬만한 대학원생이 와도 딱히 수준 낮다고 하기 어려울 정도는 됐다. 어차피 한 주제만 깊이 파는 모임은 아니었고, 다들 한 분야씩은 깊게 알아서 나누는 재미도 쏠쏠했다.

결과적 실패에 대해서는…뭐 이 자리에서 나누기 적절한 얘기는 아니니 패스. 정말 짧게 얘기하면 열심히 할 사람들이 없어서 망했다. 일할 사람이 싹 사라지니 따라오는 사람도 없어졌고, 그래서 닫았다. 슬프니 그만. 이제  ‘왜 내가 열심히 안했나’ 에 대한 얘기를 말해보자. 난 3월 5일 입사였고, 헛간은 3월 1일 오픈이었다. 그리고 내가 1일에 했던 다짐은 3월 한달을 넘기지는 못 했다. 바빴다. 그게, 정말 변명같이 들리지만 바빴다.

직장 이후의 공부라는 것은, 그냥 단순한 주경야독이라는 단어로 표현될만한게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문과와 이과를 동시에 다니는 것, 아니 그것도 좀 이상하고. 지킬 앤 하이드라고 해야하나.

한 사람이 두 인생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냥 편리하게 하루에 열두시간씩 나눠서 살면 되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인생이 서로 경합한다. 한 인생을 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인생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한 인생은 필수적이고, 다른 한 인생은 필수적이지 않은 인생이다. 보통 전자에 직장을, 후자에 꿈이나 취미를 넣으면 거의 들어맞는다.

직장은 간단하게 말하면 시간을 집어넣어서 돈을 빼내오는 곳이다. 그리고, 난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직장의 효율성에 비교하게 되었다. 솔직히, 직장에 들이는 시간보다 더 나은 가치를 뽑아낼 자신이 없었다. 워킹데이 20일 기준으로 내 시급은 약 만원이 약간 넘었다. 버티고만 있어도 들어오는 돈이었다. 내가 대학시절 내내 했던 알바 시급의 정확히 두 배의 돈. 누군가는 그 두배를 벌지 못해 실망할지도 모를 직장이었지만 나한테는 생전 처음 만져볼 수 있는 거금이었다.

GettyImagesBank_88363875_M직장에 다니면 출근부터 퇴근까지만 시간을 바치면 될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직장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멀쩡한 컨디션이 필요하다. 그 컨디션을 만들기 위해 집에서 휴식도 취해야 하고, 스트레스도 알아서 관리를 해야하며, 여유가 있을 때 가끔가끔 직장 생각을 해 줘야 한다. 그것은 아무리 칼출근과 칼퇴근의 합리적인 직장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직장이 있으면 휴식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의무다. 직장/휴식의 이분법 속에서, 실제로 직장이 필요로 하는건 나의 24시간 전부였다.

물론, 이렇게 안 사는 사람도 있다. 퇴근 후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학원에 다닌다던가 자격증을 공부한다던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확신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시간을 투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확신. 그리고 그 확신에 취해야 한다. 그래야 나머지 한 인생이 유지가 된다.

사실 이건 변명이다. 퇴근하고 남는 시간 탈탈 털면 책 못읽지 않고, 누군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다만,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 ‘게으르다’ 는 평가로 끝나는 것보다는 우리 모두가 변명할 거리를 필사적으로 찾는게 나을 거라고.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찾는 변명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