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원 강사 일을 2014년 9월 즈음에 그만뒀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7~8월경, 그러니까 내가 아직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14년 6~7월은 고1 학교 내신 수업으로 정말 바빴다. 애들 시험기간이 내 기말고사와, 세월호 참사로 미뤄진 학교 축제와 겹쳤었다. 정말 바쁘게 살았다. 돈도 많이 벌긴 했지만, 지옥 같다면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분석’한 모의고사만 과장이 아니라 학교당 2~3회. 6학교를 가르쳤으니 약 15회 정도를 분석해야 했다. 한 달 안에, 거기에 교과서랑 보충 프린트까지.

©1999  EyeWire, Inc.

앙대… 그… 그만!!

고1 녀석들 시험이 끝나고, 한동안은 한가했다. 난 주로 게임을 하며 살았다. 여자 친구도 없겠다! 돈도 많이 벌어놨겠다! 1~2주간의 휴식을 즐겼다. 그렇게 8월이 왔다.

1. 부대찌개 집

다시 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 가게가 많이 어려워져서 우리 집 전기세를 내가 냈기 때문이다. 동네 근처에서 오전 알바를 찾았다. 평일 오전에는 안양에 있는 부대찌개 집에서 알바를 했고, 화, 목 저녁에는 학원에 가서 일을 했고, 월, 금, 토 저녁에는 원래 일하던 술집에 가서 일을 했다.

술집이야, 일한지 오래 돼서 편했다. 문제는 부대찌개 집이었다. 와, 정말 나랑 안 맞는 곳이었다. 내가 식당보다 호프집, 푸드코트 등 그다지 위생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많이 일했었기 때문인지, 지적을 많이 받았다. 내가 잘하는 것과 거기서 요구하는 것이 달랐다. 때문에 위생 관리 차원에서 사장님한테 많이 혼났다. 커피를 제대로 못 탄다고 이모한테 구박을 받을 때는 진짜 짜증도 화도 많이 났다. ‘맘에 안 들면 지가 만들어 처먹던가, 같이 일하는 처지에 그걸 애초에 내가 왜 해야 되는데!!!’

문제는 같이 일을 하던 나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애였다. 말이 ‘애’지 난 나보다 2~3살 많은 누난 줄 알았다. 키가 나보다 5cm 정도는 컸다. 얼굴도 꽤 예쁘장하게 생겼으며, 여기서 고2때부터 일했단다. 적어도 부대찌개 집에서만큼은 나보다 일을 훨씬 잘 했다. 근데 문제는, 성격이 더러웠다. 뭐 하는 족족 나에게 지적이었다. 나이고 뭐고 초면부터 나한테 말을 놨고, 행주를 어디다 놨네, 테이블이 깨끗이 안 닦여있네 하며 나에게 일일이 지적했다. 그것도 굉장히 신경 거슬리는 말투로.

사장님은 그 아이 편이었다

일을 나보다 잘 했으니까. 애초에 나는 전날 술집 알바를 새벽까지 하고 오전에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 거의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을 하다 보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식당 일’이 처음이다 보니, 실수가 굉장히 잦았었다. 사실 솔직히 시급 5500원 받고 일하기엔, 2명이서 홀을 전부 다 보기엔 손님이 굉장히 많았다. 어느 날은 손님이 정말 정말 많았다. 나는 집게를 안 가져다주는 등 실수를 저질렀었다. 그 여자애도 참다 참다 못 참았는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야, 일 좀 똑바로 하면 어디 덧나 ? 나보다 나이 한 살 더 처먹고 그것도 제대로 못하면 어쩌겠다는 건데 ? 대체 왜 그래 ?

이성의끈이끊어지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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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싸워서 얻는 건 손해다. 알바도 잘릴 것 같았을 뿐더러 한 살 어린 여자애랑 목에 핏대 올려 싸워봐야 나한테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고작 부대찌개집 일 자체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이상해 보였다. 난 그냥 식당일이 처음일 뿐인데, 같이 일하는 처지에, 지가 사장도 아니고, 소위 ‘후임’들에게 갑질을 하는 꼴이 못마땅하면서도, 작년 내가 일하는 술집에서 고참이 되어갈 때 쯤 새로 들어온 알바들한테 했던 말과 행동들이 오버랩 되었다.

사실 나도 저런 인간이었다 

그때가 되고 나서야, 거기서 나한테 구박을 받곤 했던 ‘일 못하는’ 24살 공익 제대한 형이 떠올랐다. 나이차가 많이 나서 대놓고 막말은 안 했지만, 어깨를 치고 가거나, 말을 무시하는 등으로 주의를 줬던 적이 있었다. 그 형이 생각났기 때문일까, 부대찌개 일이 끝나고 학원으로 가서 강의가 끝날 때까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자존심도 상했을 뿐더러,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었단 듯이, 그것도 나름 재밌게 강의를 꾸려야 했다. 그 날이 너무 힘들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도림천

일이 끝나고 걸어야 했던 도림천. 대부분 일이 끝나면 밤이었다. 그 날 저 길을 걸으며 온갖 생각을 다 했던 기억이 난다.

2. 학원

나는 그 때 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쳤다. 중2 녀석들 3명과, 중3 녀석들 9명이 당시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었다. 중 3녀석들은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꽤 착한 녀석들이었다. 시키는 게 있으면 그래도 군말 없이 해오는 편이었다.

정작 문제는 중2 녀석들이었다. 3명 중 한 명은 여자아이였다. 정말 조용한 아이였는데, 공부를 정말 ‘못’했다. 객관적으로, 단어시험 60개를 보면 40개를 항상 틀리는 아이였다. 영어도 거의 못 읽었다. 학원을 다닌 지는 꽤 됐다고 들었다. 1년 반 정도?

3주간의 관찰 끝에, 난 도무지 못 참겠어서 화를 냈다. 그렇게 좋은 말로 다독이고 애를 쓰고 숙제검사도 하는데, 대체 단어를 그렇게 틀린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그 날은 특히 65개중에 50개를 틀리더라. 너무하다 싶었다. 그냥, 내 눈에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걸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그 애한테,

 “너, 오늘 9시에 가지 말고 10시까지 여기서 단어 외워. 너 한 두 번이 아니잖아. 쌤이 앞에서 너 외우는 것까지 지켜 볼 거야. 적어도 내가 알기로 한 시간 정도 노력하면 이 시험은 반 이상 틀릴 일은 없거든? 적당히 좀 하란 말야. 노트에 빽빽이 써, 단어 하나하나 다. 오늘은 10개 안으로 틀릴 때까지 집에 못 간다 생각해라.” 라고 했다.

나도 9시에 모든 수업이 끝났다. 안 그래도 학부모가 “애들이 집에서 공부를 너무 안 한다. 제대로 시키는 게 맞나”며 전화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 얘기를 원장님께 들은 상태였다. 그런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도 내가 바로 앞에서 째려보고 있었던 덕(?)인지, 그 아이는 노트 한가득 빽빽하게 모든 단어를 2~3번씩 썼다. 열심히 외우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단어만 쓰니, 거의 한 4장 정도를 꽉 채운 거 같더라. 그리고 시험을 봤다.

24/65, 걔가 단어를 맞춘 개수였다.

묘했다. 정말 묘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나를 놀리는 건가? 싶다가도, 그 애의 울먹이는 표정은 너무나 진지해 보였다. 나는 더 이상 그 애를 혼낼 수가 없었다.

점수는 말해주지 않고, 수고했다며, 집에 가라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짓을 해 왔는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그 애를 위한다고 했던 말들, 노력하지 않는다고 다그쳤던 말들. 결국 술집에서 했었던, 부대찌개 집에서 당했던, ‘갑질’의 반복이었다.

다음 날 수업에 또 단어시험을 봤다. 걔는 또 40개를 틀렸다. 옆에 앉아있던, 그래도 공부를 성실히 해서 5개 정도를 틀린 남자애가 핀잔을 주는 걸 들었다.

“야 ,너는 또 재시험이냐 ? 나보다 학원도 오래 다녀놓고 왜 그래? ㅋㅋ”

 마르틴 부버에 의하면, 우리가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는 근원적으로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그 하나는 ‘나-너’ 관계이고 또 하나는 ‘나-그것’의 관계이다. 전자의 경우, 나는 전 인격을 기울여 너와 마주 대하지만, 후자의 경우, 나는 상대를 대상(그것)으로 경험할 뿐이다(이 경우 너 혹은 그것은 인간일 수도 사물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살아간다면 참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너와 대면함에 의해서만 참된 나가 된다. 이러한 너도 언젠가는 그것으로 화(化)할 운명에 있다. 그러나 결코 그것으로 되지 않는 영원한 너가 있는데, 그것이 신(神)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와 너 [I and you, Ich Und Du, Je Et Te]> (철학사전, 2009, 중원문화)

 부버의 사상이란 어쩌면 간단하다. 요컨대 남이나 세상을 물건 취급하여 ‘그것’이라 하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대하며 ‘너’라고 여기자는 것이다. 세상을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관계로 만들자는 것이다. 즉 서로 떨어진 이기적인 인간들이 대화하고 이해하며 진실한 관계 속에 살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진실한 삶의 길을 나누자는 것이다.
박홍규 <마르틴 부버> 28p ‘들어가는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