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2일, 그녀가 죽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2011년 3월 22일. ‘미의 화신’이라 불리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죽었다. 그리고 다음 날, 뉴욕타임즈는 ‘헐리웃 글래머 시대의 화려한 정점(A Lustrous Pinnacle of Hollywood Glamour)‘라는 제목의 부고기사를 올린다.

4000개의 단어, 62개의 단락, 총 23,023자의 장문의 기사였다. “회고록을 쓰는 게 어떠냐”라는 질문에 “Hell no” 라고 대답할 정도로 고고했던 그녀. 그런데 기사 마지막 줄이 눈에 띈다.

“Mel Gussow, the principal writer of this article, died in 2005.”(“이 기사의 원 저자인 Mel Gussow는 2005년에 죽었다.”)

그렇다. 이 부고 기사의 원작자는 2005년에 이미 죽었다. 죽은 기자가 기사를 작성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뭘까?

관행과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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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는 원래 유명인들의 죽음에 대비해 부고 기사를 미리 작성해 놓는 관행이 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고령의 전직 대통령들의 부고 기사를 미리 작성해 놓는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죽음에 대비해 뉴욕타임즈 역시 미리 부고 기사를 써 놓았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사와 뉴욕타임즈의 한 가지 다른 점은, 원작자에 대한 존중이다.

기사는 멜 구소의 원작에 몇몇 사람이 새로 정보를 넣었다고 명기한다. 그럼에도 뉴욕타임즈는 기사를 쓰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먼저 가 버린 Mel Gussow 기자의 이름만을 바이라인에 걸어두었다. ‘원작자’에 대한 존중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마, 선진국 좀 보고 배웁시더!

선진국을 본받자며 핏대를 세우는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정말 갈 길이 멀다. 정홍원 전 총리를 고통에서 해방시킨 이완구 국무총리는 아직도 논문표절 의혹을 해결하지 못했다.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와 한국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백년대계’ 교육을 맡기로 했던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 역시 ‘논문표절’ 의혹에 휩싸이며 낙마했다. 삼성의 음원 서비스 ‘밀크’는 공식 SNS 계정에서 “노래 들으며 즐길랬더니 돈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광고 문구로 논란을 일으키고 결국 사과했다. 한국 최고의 대기업부터 사실상 최고위 공무원인 국무총리, 교육 최고위 담당자인 교육부장관 후보자까지 이 지경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이거 처음에 공식계정 사칭인 줄로만 알았는데.jpg

 

그렇다고 ‘저작권 침해를 죽입시다! 저작권 침해는 나의 원수!’라고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사용자만 꾸짖지는 않으련다. 공급자 역시 마인드가 개차반인 건 마찬가지다. 한 때 영화판을 뜨겁게 달군 문제는 ‘불법 다운로드 근절’이었다. 1999년 9000억 가량의 규모였던 영화 부가 시장은 2009년 약 900억으로 줄어들었다. 영화계는 위기감을 느끼고 합법 다운로드를 권장하는 ‘굿 다운로더’ 캠페인을 시작했다. 영화관에 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법하다.

네이버 n스토어에 가보자. 굿 다운로더 캠페인의 제휴사였던 네이버는 안타깝게도 영화를 최고화질로 제공하지 않는 모양이다.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같은 경우 화질이 720p(1280×720)까지 밖에 되지 않는다. 가격은 6,500원이다.

2014년 한국 영화 박스 오피스 1위부터 10위 중 어떤 영화도 네이버 n스토어에서 720p를 넘는 화질을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굿 다운로더 위원장이었던 안성기가 출연한 <신의 한 수>도 1080p를 제공하지 않는다. 내 돈으로 사면 720p로 보고, 토렌트에서는 공짜로 1080p를 본다. 이런 현실이면 누구도 선뜻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다.

미국 같은 경우는 넷플릭스, 아이튠즈 스토어 등으로 컨텐츠를 합리적인 가격에 유통하고 있다. 한국에도 넷플릭스가 한국에도 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나라 같은 ‘어둠의 경로’의 나라에서 얼마나 성공할지 궁금하긴 하다.

저작권, 참 중요하다. 큐레이팅 미디어가 판을 치고 뉴스의 전달이 빠른 지금, ‘원작자’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으면 내 글이어도 내 글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 내가 싼 똥이 남 똥으로 바뀌는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내가 낳은 황금이 남의 황금으로 바뀔 수도 있다.

영화와 음악 등의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꿈을 현실로 바꿀 기회를 주고, 꿈을 계속 꾸게끔 한다. 그 꿈으로 우리 이용자는 울고, 웃고, 쉴 수 있다. 무채색의 일상이 그들의 꿈 덕에 다채로운 색을 띠게 된다. 당위론이 10선비 같고 지겹다고? 그럼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 내 글로 남이 돈을 벌면 배 아프지 않은가. 남이 타인의 글로 돈을 벌면 그것도 배 아프지 않겠나. 난 억울해서라도 더 엄격한 저작권 보호를 주장하련다.

과거를 잊은 간나들에게 미래란 없다 으아아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부고 기사에서 배운 두 번째. 기사의 정보 수정을 기록해 놓았다는 점이다. 기사 말미에 뉴욕타임즈는 ‘Correction’ 이라며 초판 기사가 배우의 이름을 잘못 기재했다고 써 놨다.

기사 정정에 대해 우리나라는 언론사마다 지침이 다른 듯하다. 국민일보는 [인人터뷰] 건설단장으로 남극 탐사 새지평 연 김예동 극지연구소장  이라는 기사에서 자신들의 오류를 정정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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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한국일보, 한국경제TV 같은 경우는 ‘세월호 전원구조’와 관련된 자신들의 오보를 아직도 남겨두고 있다. 한국일보는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는 기사를 삭제했지만, 네이버 뉴스에는 해당 기사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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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는 아직도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버젓이 기사를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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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가 틀린 기사를 처리하는 정답을 나는 모른다. ‘기사의 오류를 정정하고, 그 사실을 독자에게 알린다’라는 기본 원칙만 지킨다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이 기준에서 국민일보는 100점 만점에 95점(일단 애초에 틀렸으니까), 한국일보는 1점(미친 오보를 받아쓰기하고 아직도 네이버 뉴스에 남겨두었으니), 한국경제TV는 ‘산소 아깝다’라는 평을 주고 싶다.

뭐 꼰대식으로 저널리즘 윤리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하루 기사를 마무리하는 것도 힘든 게 기자일테니까. 그래도 ㅄ같은 건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