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의 맨 처음 아르바이트는 술집이었다.

2013년 1월 7일, 갓 스무 살이 되고부터 평촌역의 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선 이른바 ‘빡센 일’이 유행이었다. 사서 ‘노가다’를 뛰러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게 아마도 서로에게 멋있어 보였나 보다. 참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게 웃기지만 말이다(과거라는 건 항상 그렇다). 그래서 나도 일부러 술집에 들어갔다. 빡세게 살아보자며…

당시는 최저시급이 4860원, 내가 일하던 술집은 5천원, 나는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목, 금, 토에 일을 했다. 당연히 스무 살 돼서 처음 하는 일이라 무척 서툴렀다. 그 때 형들이 너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대걸레질을 앞으로 쭉~ 닦은 곳을 다시 밟는 꼴로 하다 보니, 그 모습을 보고 같이 일하던 형이 내 멱살을 잡았다. 그 형은 “여기가 아직도 학교인 줄 아냐? 씹새끼, 빠져가지고..”라고 했다. 난 처음이라 일이 다 원래 이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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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아직 학교인 줄 아냐?

성인이 돼서 처음 만난 취객들은 생각보다 역겨웠다.

오른쪽 팔뚝에 문신이 있는 아저씨는 바닥에 소주병을 던지면서 나에게 욕을 했다. 술에 잔뜩 취한 40대 쯤 되 보이는 아줌마(?)는 나를 뒤에서 안으며 내 귓불에 바람을 불었다. 회식자리에서 맛이 간(?) 이사님은 나를 옆에 앉혀두고 글라스 가득 소주를 따른 다음 마시라고 했다. 일 해야 된다고 사양하니 뺨을 때리며 “젊은 놈이 말야..”라고 하더라. 사장님한테 , 이럴 땐 어찌하냐고 물어봐도 “원래 그렇다, 네가 이해해줘라…”라는 대답뿐이었다.

이런 손님들의 ‘갑질’을 항의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알바를 몇 번 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고용측의 잘못도 아니고, 사실상 손님의 잘못도 없다고 보는 게 사회 분위기인 것 같다. 거기까지 참아내는 게 알바생의 ‘서비스’고 어른스러움이다.

김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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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제일 참기 힘들었던 일은 룸 테이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그 곳에 누군가가 김치전(?)을 부쳐 놨던 일이었다. 장갑을 꼈지만, 그 감촉이며… 다시 생각해도 싫을 정도다. 난 소위 말해 ‘오바이트’가 그렇게 뜨거운지 몰랐다. 신문지로 감쌌더니 토가 그 신문지를 뚫고 바닥으로 다시 떨어졌다. 룸 바닥에 토를 흘렸단 이유로 “왜 일을 또 늘리냐”며 같이 일하던 형한테 혼났다.

어머니한테는 자세한 얘기는 안 했다. 굳이 걱정시켜드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뿐더러, 20살로서, 사회에서 힘들더라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다. 그냥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서빙일을 하며 시급 5천원을 받는다는 정도만 얘기했다. 어머니가 시급이 너무 적은 거 아니냐고, 야간수당 안 주는 게 불법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내 대답의 요지는 대략 이랬다. “여기서 오래 일한 형들이나 내 친구들이나 다 그렇게 받고 여기서 일 해.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제대로 할 일도 못하지 뭐. 그리고 적게 받고, 또 힘들더라도 그게 다 경험이 되지 않겠수? 일 빡세게 배운다 치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나는 그 곳에서 지금까지도 일하고 있다. 햇수로 따지자면 2년째다. 이번 주 금요일에도 대타를 뛰기로 했다. 일도 이제는 굉장히 능숙하다. 취객들은 귀엽게(?) 보인다. 이제는 그 곳이 편하다. 최저임금이 올라서 시급도 5500원으로 올랐지만, 야간수당을 안 주는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젠 뭐 별로 문제 삼지 않는다. 난 그곳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았다. 다른 곳에서 아무리 부당대우(?)와 노동에 시달려도 그 곳에 비하면 할 만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난 내 일터에 자부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작년에도 간헐적으로 가끔씩 가서 일을 했는데, 그 때쯤부터는 일주일도 못 버티고 나가는 갓 20살 먹은 애들이 참 한심해 보였다. 때문에 욕도 자주 했다. 나도 그 형이랑 비슷한 말을 했다. ‘여기가 아직도 학교인 줄 아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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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수당을 주지 않는다며 투덜거리던 동갑내기 친구한테는 이런 말을 했다. “이런 것도 안 겪어보고서는 사회에서 대체 뭘 할 수 있겠냐. 좀 빡세야 인생 아니겠냐? 그게 멋있는 거지 뭐…” 일식집 알바가 너무 힘들다고 징징대던 나보다 한 살 많은 형한테는 “그거 가지고 뭘 힘들다 그래 형ㅋㅋ 나잇값 좀 해. 형보다 어린 나도 다 참고 있잖아. 나이 x구멍으로 먹었어? ㅋㅋ”라며 조금 버릇없게(!) 놀렸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정말로 나를 힘들게 했던 형들의 사고를, 사장님의 사고를, 실장님의 사고를 닮아가고 거기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이십대 담론은 이십대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들의 사회경제적 처지, 그리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논했다. 이십대들이 문제에 부딪혀 있으니, 이를 해결하여 이십대들이 ‘제대로’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여러 이야기들은 상시적인 불안에 내몰린 이십대들이 그 결과로 어떤 존재로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이십대들은 ‘정상적인 삶’과 ‘윤리’와 ‘공정’ 등에 대한 개념이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진보적 이십대’를 놓고 생각한다면 이들은 매우 뒤틀려 보이기까지 한다. 이십대 자체가 문제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이십대들은 마냥 고통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찬성하기까지 하며 스스로도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이런 기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십대 문제를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다.
<오찬호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20대의 자화상>_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