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 사실 저에게는 너무 짧게만 느껴집니다 – 대만 취재가 마무리되고 오늘 오후에 대홍팀은 홍콩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지금 시각은 새벽 12시 반, 일본에서는 썸머가 넷카페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있고 한국에서는 국내팀 친구들이 내일 나갈 글을 편집하고 있으며 홍콩에서는 이렇게, 지난 8박 9일 동안의 대만 취재를 돌아보는 제가 있습니다.

홍콩에서 잡은 호스텔에는 거실이 있습니다. 사실, 숙소의 다른 부분이야 창렬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소중히 모아 주신 돈으로 온 취재니까 괜찮습니다. 뭐, 몸 누일 공간만 있으면 되지요. 그나마 기대도 안 했던 거실이 있어서 글을 쓰기가 조금은 수월한 것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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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일상적인 동네 모습. 끝없이 늘어선 아파트, 재건축 그리고 그 틈바구니의 사람들. 사진/김준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숙소 근처의 템플 스트리트 마켓, 홍콩의 야시장을 들리고 숙소에 들어왔습니다. 한 때는 엄청난 번화가였을 카오룽 지역은 지금은 지나칠 정도로 잔뜩 늘어선 각종 쇼핑몰들과 체인점들로만 가득 찬, ‘자신의 전성기를 보낸 동네’의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스스로의 성을 파는 것이 합법인 이 곳에서는 야시장 옆에 섹스 숍이 있고 피곤해 보이지만 완벽한 화장을 한 매춘부 언니들이 망사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고 호객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면서 버스 안에서 처음 마주한 홍콩은 마냥 화려했지만 가까이 걸으며 도시의 민낯을 보니 또 보이는 게 달라서 신기하기도 합니다.

홍콩의 첫 날을 보내면서 새삼 대만에서의 첫 날이 생각납니다.

숙소 근처에 도착하자 엄-청나게 큰 백화점이 있었고, 숙소 앞의 골목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약간 홍대, 상수, 신촌 같아 보이는 카페들과 대만식 식당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먹은 대만식 국수는 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값이 싸서 행복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8박 9일동안 대부분은 식비를 아낀다는 명목 하에 맥도날드와 대만식 국수, 세븐일레븐의 주먹밥으로 연명하던 날들이었지만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해서 취재하기에 대만은 정말로 ‘적절’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물론 대만의 청년 주거에 대한 모든 맥락이 한국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그런 나라는 당연히 없죠. 하지만 대만에 가서 직접 만나본, 또 보고 들은 이야기는 미스핏츠에게 분명히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갔다 와서도 2월 말, 또 3월 초까지 꾸준히 기사를 보내드리겠지만 일단 현지에서 보내는 기사는 크게 두 종류였습니다. 첫 번째는 새둥지운동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풀어낸 다음 뉴스펀딩의 기사, 그리고 두 번째는 월요일에 올라간 린위루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해 다양한 주거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대만 청년들의 이야기입니다. 각 청년들의 이야기를 저희가 생생히 듣는 만큼 독자 분들도 생생하게 듣기를 원했기 때문에 상황과 저의 감상을 솔직하게 담은 인터뷰를 내보냈고, 이들의 인터뷰 저변에 공통의 사회적인 기억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새둥지운동에 대해서 저희가 보고 들은 것을 공유하고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새둥지운동에 관련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크게 두 가지의 비난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거기까지 가서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룬다더니 왜 총론을 다루고 있냐, 주제에나 충실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결국 주거 문제는 주거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것의 결과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뭐, 제가 조금 좋은 말로 순화하기는 했지만 더욱 생생한 목소리와 광경(…)은 다음 뉴스펀딩의 댓글들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생각 모두에 대해서 반박하고자 하고, 더더욱이 대만, 홍콩 취재가 여기서 가지고 있는 의미 역시 조금 더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청년이 사회의 격리수용소에 살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결국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 연결돼 있단 말입니다

먼저 ‘청년의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청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에 대해 말해 보죠. 사실 이 이야기는 굳이 반박을 해야 하나 싶은(…)데(…) 그래도 정확히 짚고 넘어가 봅시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기 여러분. 청년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그 중에서도 지금 미스핏츠에서 열심히 다루는 문제는 주거 문제니까 주거에 대해서 한정해 봅시다, 그 문제들의 원인이 대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세요? 청년들이 어디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격리수용소에 사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거든요.  청년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와 얽혀 있다는 말입니다.

간단한 예만 하나 들어 봅시다. 엊그저께 제가 아직 대만에 있을 때 신촌 맥도날드에서 알바노조가 시위를 했습니다. 최저 시급 좀 올려 달라고요. 아르바이트에도 인간적인 대우가 필요하다고요. 그러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거지같은 작업 환경에 대해서 시위한 건 청년 문제인가요, 사회 문제인가요? 청년들을 부려먹는 사장님들이 문제니까 장년 문제에요? 아니면 사장님들이 그렇게 부려먹을 수 밖에 없게 프랜차이즈 관리를 빡세게 하는 맥도날드가 문제에요? 아니면 최저시급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의 장이 전혀 청년에게 개방돼 있지 않은 사회 분위기의 문제에요? 결국,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다 사회의 다른 면들과 연결돼 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청년 주거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시대에 같이 살고 있는 다른 사회 구성원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그들을 공통으로 묶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취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지금 그렇게 까시는 청년들요, 저희가 이 나라의 허리란 말입니다. 사회의 허리라고요. 저희가 힘들어 하면 10년 뒤에 누가 취직해서 애를 낳고 정착하기 위해서 집을 사고 집에 가전제품 필요하면 하나씩 턱턱 지르냐고요. 사회의 주요 노동력, 그리고 주요 소비력의 원천이란 말입니다. 결국 청년의 문제가 사회 문제라는 이야기는 청년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사회도 청년이 자라는 만큼 함께 자라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랑 같다고요. 그렇게 같이 살자고, 살자고 협박해도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예?

’20대 게으름뱅이론’ 흔븐믄드믈흐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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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청년 문제에 관해서는 청년 이야기나 하라’는 지적의 밑바탕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죠. ‘야 그거 다, 그냥 이야기에 나온 걔네, 그리고 그걸 걸고 넘어지는 너희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야, 나 때는 말이야, 나 때는!’ 그래요. 그 ‘나 때는’으로 시작되는 그 이야기들요. 이건 다 요즘 20대가 게으르고,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하고, 싸가지는 어디에 쓸래도 이미 밥말아먹은 듯이 홀랑 없어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 이야기들요.

정확히 저희가 <청춘의 집> 기획을 시작한 게 ‘사실은 그게 저희가 게을러서 그런게 아니라니까요!!!!예!!!’에 대한 이야기이고, 청년 문제는 청년이 게을러서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복잡한 문제임을 보여드리고자 저희가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만, 예에, ‘나 때는 말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지금 저희가 겪는 현실에서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들어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20대에 난방이 안 되서 겨울에는 물이 얼고 집 안에서 파카를 입고 생활했지만, 꾸준히 열심히 일했더니 지금은 서울 한복판에서 자가(自家)를 마련해서 살고 있다’는 분, 이제 저희는 열심히 일해도 그 집 하나 사기 힘들다고요. 간신히 취직해서 5~10년 모은 연봉으로 전셋집도 못구하고요. 대만 친구들 보세요. 집값이 90년치 월세인데, 집을 살 엄두가 나겠어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은 집을 사는 대신에 다달이 버는 돈에서 월세를 꼬박꼬박 내면서 살고 있죠. 그들이 집을 사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정부에서 부채질하고 기업에서 불을 붙인 부동산 투기의 불길 때문이죠.

또, ‘미래에 받을 보상’을 위해서 현재의 고통을 견디라는 논리는 결국 현재를 담보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라는 이야기잖아요. 지금 당장 저희는 괜찮지 않단 말입니다. 겨울에 물이 얼고 집 안에서 파카를 입고 생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한 고생이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말로 정당화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에게도 ‘당장 행복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 권리를 단지 젊을 때니까, 젊을 때는 고생도 사서 하니까, 라는 말로 어물쩡 밟고 지나갈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고 이 불쌍한 청년들’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대만에서의 8박 9일동안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청년으로서의 저’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제가 대만에서 마주한 청년들의 문제, 분노, 그리고 이를 함께 하는 야영 시위로 치환해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기억이 인상깊었습니다. 분명히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문제의식과 분노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를 긍정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사회가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시위를 벌이면, ‘에잉, 젊은 것들이 시위는 무슨. 그 시간에 일이나 해서 부모님께 효도할 생각은 안 하고.’ 친구들과 팀을 꾸리거나 시민단체, 협동조합에서 일하면서 사회적 의제에 시간을 쏟으면 ‘미래에 뭐 먹고 살 지 고민 안 하는 아이들’. 혹시, 그 효도, 미래라는 단어로 청년이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을 아주 효과적으로 깎아내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핏츠는 사회에 ‘핏’ 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와 희노애락을 싣고자 하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기성 언론에서 ‘아이고, 이 불쌍한 청년들!’정도로만 다뤄지는 청년 주거 문제를 그 ‘불쌍한 청년들’의 눈으로 보고 듣고자 청년 주거 프로젝트를 아시아 각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청년이 부닥친 주거 문제는 사회적인 공감과 합의가 없다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 인식과 함께요.

이제 다시 묻고 싶습니다. 미스핏츠의 <청춘의 집> 주거 기획에서는 주거에 대한 총론을 다룰 수 없습니까? 청년의 집 문제는 결국 청년이 게으르기 때문입니까? 여러분의 답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