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0 기상
  • 7:00 학교 도착
  • 7:00~9:00 언어 EBS 지문 분석
  • 9:00~10:20 기출 모의고사 분석
  • 10:30 ~12:20 영어 EBS 분석
  • 12:30 ~1:30 점심식사
  • 1:30 ~ 2:00 영어 EBS 듣기 문제풀이
  • 2:00 ~ 4:30 수학 모의고사, 오답노트 분석
  • 4:30 ~ 5:00 독서실로 이동
  • 5:00 ~ 5:30 독서실 지하 주차장에서 혼자 저녁식사
  • 5:30 ~ 7:30 근현대사, 사회문화 EBS 문제풀이
  • 7:30 ~ 9:00 영어, 수리 인강 시청
  • 9:00 ~ 10:30 영어 EBS 지문 분석
  • 10:30 ~ 12:00 수리 오답노트 제작
  • 12:00 ~ 1:00 언어 모의고사 분석
  • 1:30 ~ 6:00 집 도착, 수면

이제는 추억이 된 내 고3시절, 아마 5월 달 즈음부터의 내 하루 일과였다. 저 스케줄로 11월 수능까지 살았다. 이동시간, 밥, 수면을 빼면 나 자신에게 당당할 정도로 공부만 했다. 순수 공부시간만 하루 14시간. 하도 똑같이 살아서 지금도 이렇게 기억으로만 쓸 수 있을 정도다.

당시 친구들은 내가 이렇게 사는 걸 들으면 ‘멋있다.’ ‘쩐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한테도 칭찬을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내 공부 플래너를 인쇄해서 40명반 모두에게 한 장씩 돌려 보여주었다. “너네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 고3은 그렇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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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삶에 자부심을 가졌던 것도 같다. 그러니까 이 악물고 버텼다. 10월 달 즈음에 지하실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1주일 중 3번 정도는 울었던 것 빼곤 참을 만 했다. 그렇게 나는 11월 8일 수능까지 살았다.

수능 점수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원점수 언어 97, 수리 96, 외국어 97, 사탐은 백분위로 98,95. 전체에서 5개를 틀렸다. 평소 모의고사에서 최소 1개~ 최대 6개 정도를 틀렸던 것을 감안한다면, 또 이 시험이 수능이란 걸 고려한다면 나름 선방이었다.

수능 얼마 후 수시 발표가 났다. 4군데를 다 떨어졌다. 정시로 어디를 가야 좋을까를 찾아보다가 우울증에 걸렸다. 모든 게 다 짜증났다. 우리 집 TV 리모콘을 부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목표로 했던 연대 교육학과에는 딱 한 문제가 부족했다.

딱 한 문제

수리 30번 문제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답이 573이었는데. 채점 당시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계산이었다. 9+4 =? 이걸 12라고 계산해서 572라고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한 문제가 내 연대 갈 점수를 2~3점 갉아먹었고, 난 과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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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부들부들… 이제는 건드릴 수도 없는 문제…

난 무엇 때문에 하루 14시간씩 공부했으며, 그것이 내 논리력을 얼마나 증명해주며, 정시는 왜 수시에 비해 40%밖에 안 되냐며, 한 문제 차이로 대학이 바뀌는 게 얼마나 공정한 경쟁이냐며 ‘오르비’라는 사이트에서 죽자 살자 신세를 한탄하는 글을 올렸다. 내 노력부족이라고 외치던 자들과 피터지게 싸웠다.

나는 말했다. 내 입장이 되어보라고. 나는 일반고에서 내신 1.3을 땄으며, 전교 1등이었으며, 평소 모의고사는 어땠으며, ‘에피’를 달고 있으며… 등등으로 나의 가치를 역설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보다 더 불쌍한 사례를 가져오면서, 원래 세상이 그런 거라고, 누구는 3수를 했네, 너보다 더 심한 사례가 있네, 하며 나를 몰아세웠다.

아마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들의 노력이 나의 것 보다 더 덜한 것이 아니라는, 보장 아닌 보장을 얻을 수 있었던 모양이었을지도. ‘더 말도 안 되는 사례가 있다’는 게 묘하게도 자신들에게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 뭐 근본적으로는, 내가 징징대는 것이 정말 꼴 보기 싫었겠지. 거기엔 원래 세상이 불공평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른이라는, 성숙한 체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당시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제일 역겨웠다. 뭐 쨌든 나는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했고, 1학년 초반에 벌어진 흥미로운 술 파티는 그런 우울증쯤이야 금방 사라지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고3 시절을 잊어갔다.

아주 가끔씩,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고3시절 얘기가 나올 때면 난 저 얘기를 항상 했다. 13수능 수리 30번 문제, 572, 입학 초반의 술자리에서, 세상의 쓴맛을 처음 맛봤다며 재수를 한 형 누나들과 웃으며 얘기했다. 동시에 다들 그렇게 살았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 친구는 지금 삼수중이라는 등의 얘기도 들었다. 그 쯤 돼서야 자연스레 세상이 원래 이런 거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학과를 낮췄을 뿐, 학교가 바뀌진 않았다. 연세대에 입학했을 정도면, 나도 그 정도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았다.

이제는 결과가 100% 보장받지 않았던 내 노력도 어떻게든 다른 방식으로 도움이 되겠지, 하며 문제 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상처 많은 학창시절을, 헤어진 여자 친구 아름답게 보내주듯, 보내줬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였다. 이제야. 이제야.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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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과연 공부시간을 더 늘려야 했을까

내가 수능, 모의고사 등과 다시금 관계를 맺게 된 건 21살 여름 때였다. 그때 나는 학원 강사 일을 했다. 거기에서 내 이야기를 했었다. 처음에 썼던 내 고3 시절 스케줄을 칠판에 쓰면서, 내가 이렇게 14시간씩 공부를 했는데도 연세대에 턱걸이로 들어왔다고, 너네는 진짜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하라며 겁을 줬다. 가끔 1:1 수업을 하던 고2, 고3 아이들에게는 ‘이야… 너네도 한번 X돼봐라…!’라며 웃음기 띈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더 이상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그 때의 입시를 향한 분노(?)며 억울함이며, 내 모습에선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나도, 우리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부르는 대열에 조금씩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쌤 ! 조금만 공부하면 안 되나요? 그렇게 해서도 대학 갈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질문을 하던 고1 학생한테는 반 장난으로, 그러나 꽤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야! 세상 그렇게 만만한 줄 알지 마라, 그런 식으로, 너 좋은 대로 공부해서 좋을 게 뭐냐? 열심히 살아서 나쁠 게 뭐냐고. 요즘 입시가 어떤지 니가 전혀 몰라서 그래,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너란 말야. 그따구로 살면 안돼~”

하루에 공부를 10시간 하는데 , 공부방법도 내가 가르쳐 준 대로 교정해서 그동안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집중’이 되지 않는 거 같아서 성적이 정체되었다는 고2 학생에게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그럼, 그럴 때일수록 더 늘려보는 건 어때? 너 그거 그냥 지금보다 조금 공부하겠단 소리 아냐? 물론 네 말 대로 집중력은 분명히 중요한 요소인 게 맞는데, 야, 그것도 오래 앉아있는 데에서 나올뿐더러, 세상에는 엄청난 집중도로 하루에 너보다 3~4시간씩 더 하는 놈들이 있어. 바로 옆에서 경쟁상대를 찾지 말란 말이야. 걔네들이 니 목표대학을 생각한다면 니 진짜 경쟁상대야. 더 앉아있어 봐, 이건 내 제안이자 충고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문득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실 고2 때는 걔만큼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음에도, 굳이 먼 곳에서 경쟁상대를 찾지 않았음에도 그 학생보다 점수가 높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연속해서 3대의 담배를 태웠었다.

그 애는 과연 공부시간을 더 늘려야 했을까. 공부방법의 문제일까, 고2 때부터 그렇게 공부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하는 잡생각에서부터, 정말로, 걔가 그렇게 공부량을 늘렸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안 오르거나 대학을 잘 가지 못한다면… 하는 죄책 섞인 불안감들.

학원 알바가 끝나면 걷곤 했던 도림천.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정이 어찌됐던 공부량을 줄이겠다는 녀석들을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왜였을까, 거기에 나는 “공부 더 해서 손해 볼 게 뭔데?”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나도 학창시절 때는 그런 말들을 싫어했다며, 하지만 ‘세상이 그런 걸 어쩌겠냐’며…

나는 어느덧, 내 하루 14시간의 노력이 보장받지 않았던 입시체제를 문제 삼기 보단, ‘내가 14시간 공부해서 이 쯤 왔다. 이정도 해야 이 쯤 오니까, 나보다 잘 가고 싶으면 너네는 16시간이라도 공부해라’라는, 오르비에서 나를 공격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무섭게 닮아 있었다.

어쩌면, 그 14시간이 어쩌면, 쓸데없는 노력과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을 애써 지우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서 드는 생각이다. 난 어떻게든 내 예전 학창 시절에 의미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그런 거’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정말 외로웠던 그 시간이며 고생이며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나서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지금 편하다. 난 무엇 때문에 그리 열심히 살았는지, 그 답을 만들어서라도 내고 싶었다. 보다 조금의 노력을 들여 나와 같은 곳에 입학한 동기들은 나중에 어떻게든 피 볼 것이라 생각했다. 뭐 나의 조금 과장된 고생이야 어떻게든 ‘다음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야 편했다.

그런데 이제야 내 심정이 어땠는지, 왜 그런 논리에 찌들어 있었는지 이해가 간다, 미생의 명대사가 와 닿기 시작한 시점부터였을까…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겠다.”

 이렇게 볼 때, 소미는 최소한 지금까지의 배틀로얄의 게임에서 탈락했음에도 그녀는 신기하게도 ‘희생자’가 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녀보다 ‘먼저’ 탈락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학력자본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깔아뭉갤 수 있는 ‘생존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현실의 배틀로얄 게임 참여자들은 언제든지 ‘자신보다 못난’ 존재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게임이 부당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88만원세대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행위자들이 현재의 상황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무슨 바리케이드를 들란 말인가? 도대체 어디에서 탈락자의 목소리를 듣겠단 말인가?

하지만 20대에게는 이러한 인식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세대들은 ‘비교’를 통해서 스스로를 완성시키는 데 아주 익숙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비교, 그러니까 남을 ‘평가절하’하여 스스로에게 만족을 주는 행동을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오찬호, <문화과학 63호> “88만원 세대를 읽어내는 딜레마-세대 ‘내’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중 일부 발췌

 우리는 답을 찾아야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노답’ 소리 듣는 현실에,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찾아야만 한다. 슬프게도 우리의 행복감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하지만 거의 모두가 다 똑같이, 이 불안함 속에 보장되어 있는 미래가 사실상 없다. 때문에 어느 순간 우리는 ‘미래’가 정말 있는지를 문제 삼지 않게 된 것 같다, ‘과정’으로써 승부한다. 누가 더 열심히 하네, 학점이 좋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네 등..정작 ‘미래’와 아무 연관 없을 수 있는 과정을, 미래인 양, 그 잣대로 서로를 비교하며 위안을 삼거나, 힘들어한다. 낙오된 자들은 깔본다. 그나마 ‘미래’를 가져올 개연성이 높은 ‘강도 높은 과정’일수록 우리는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비교한다. ‘과정’이 우리들의 답이 된 것이다. 그 ‘강도’, 혹은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우리 세대의 미덕이다.

그 과정이란 것은 사실 ‘의미 있을’뿐, 지금을 생생히 살아있지 못하게 한다. 지금을 과정으로 여김과 동시에 지금의 의미는 미래에 비해 퇴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 대신 신경증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 있다’고 믿음으로써 내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행복 대신, 의미가 지금을 살아가게끔 한다.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의미 있을 뿐이지, 행복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2015년 01월 29일자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