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것은 여느 홍대나 상수에 있을 법한 넓고 분위기 있는 카페였습니다. 공이롱(孔怡蓉)씨를 만난 날은 그가 입사한 지 1년 3개월 째 처음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온 날이었습니다.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고… 으… 발표할 때는 질문 시간이 제일 싫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만의 의료 NGO에서 일하고 있는 박궁그미와 동갑내기(!) 이롱씨는 중학교 때부터 한국어를 공부한 한국어 능력자입니다. 슈퍼주니어에 입덕하시느라 (밝혀서 미안해요 후후 덕질 당시에는 성민이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고, 타이난의 집에서 상경해서 타이베이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한국어 공부도 본격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느리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야팡, 타오팡, 그리고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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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마마 기금회(대만에서 임대 관련 사회적 기업 및 법률 상담 등의 사업을 진행하는 NGO)에 갔을 때 벽에 걸려 있던 야팡, 타오팡, 그리고 스튜디오의 가격들. 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보통 타이베이에 가족들이 사는 젊은이들과 달리, 이롱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타이베이에 상경했기 때문에 벌써 독립 생활 6년차입니다. 타이베이에서 젊은 사람들이 사는 방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하숙’에 해당하는 야팡(雅房), 부엌이 없고 개인 화장실이 딸려 있는 타오팡(套房), 그리고 우리나라의 원룸과 같은 싱글 스튜디오죠. 이롱씨는 각각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야팡을 아무래도 불편하니까, 좀 그렇고요. 타오팡은 그냥 잠만 자고, 가끔 먹는 방? 스튜디오는 진짜 ‘살 곳’인 것 같아요.”

이 중에서 당연하게 집세가 가장 싼 방은 공용 화장실을 쓰는 야팡이지만, 대만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게 최근에는 야팡을 선호하지 않는 추세래요. “대신 대학가 앞이나 신베이(新北), 주로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사는 타이베이 외곽 지역) 근처의 타오팡을 많이 알아보죠.” 이롱씨도 대학을 다닐 때는 대학교 앞의 타오팡에서 살았고, 지금 직장을 잡고 나서는 신베이의 타오팡에서 산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원룸, 아니면 하숙인데 비해서 그 중간 형태인 ‘타오팡’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대만의 식문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보통 아침 같은 경우는 간단히 토스트를 해 먹거나, 아니면 사 먹어요. 사 먹는 게 해 먹는 것 보다 싸기도 하고요. 저는 출근길에 아침을 사서, 회사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회사에서 아침을 먹는 편이고요.” 확실히 아침이면 길거리 곳곳에서 각종 샌드위치, 토스트, 아침용 파전병과 밀크티를 파는 ‘아침 가게’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럴 법 합니다.

타오팡 임대는 합법적인 사업이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타오팡 임대는 탈법입니다. 애초에 타오팡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주택가를 불법 개조한 원룸들처럼 보통 평수의 아파트 한 채를 방 여러 개로 쪼개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보통 사는 원룸에 합법적인 개별 주소가 없듯이, 타오팡도 개별 주소가 없습니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타오팡에 개별 주소가 없는 것은 보통이지만, 불법 임대 타오팡들은 거래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월세를 모두 현금으로 낸다고 합니다. 은행 이체 기록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바로 집주인에게 현찰 박치기(!)를 하는 경우죠. 그나마 은행 이체가 되는 타오팡이 합법인 타오팡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원룸 닮은 대만의 ‘타오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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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롱씨가 취재 노트에 직접 그려 주신 타오팡의 생김새. 네모난 모양은 창문이라고.

타오팡을 만들 때는 보통 아파트 한 채를 3~4개의 방으로 나누지만, 대학가 같이 좁은 지역에 많은 수요가 몰리는 경우 한 채를 7개까지 나누기도 한대요. “그래도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방은 한 채를 방 세개로 나누어 놔서, 1평이나 1.5평 짜리 타오팡에 사는 친구들보단 훨씬 사정이 나은 것 같아요. 그래도 평수에 비해서 너무 큰 침대가 있어서 불편하기는 해요. 방에서 뭘 하려고 하면 무조건 침대에서 하거나 침대를 넘어 다녀야 해요.(웃음)” 반강제로 침대족이 된다는 이롱씨의 이야기가 어찌 낯설지 않습니다. 방에 가구를 들여 놓으면 넘어 다닐 복도가 없어서 침대 주변에 결국 모든 생필품을 늘어놓고 먹고, 자고, 글을 쓰던 저의 첫 원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가 무지 궁금해하자, 이롱씨는 펜을 들어 방의 모습을 직접 그립니다. 5평 남짓한 방에는 각종 가구, 가전들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와 있습니다. 침대가 확실히 너무 크기는 큰 것 같습니다. 이 방에서 산 지도 1년 3개월 차입니다. 집주인분에게 올해 초에 재계약을 하면서 침대를 바꿔 주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지만 여분의 침대가 없어서 안 됐다고 합니다. “원래 오븐이랑 밥솥을 타오팡에서 못 쓰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집주인 분이 허락 해 주셔서 가끔 오븐이랑 밥솥으로 밥을 해 먹기도 해요. 그래도 보통 퇴근하고 집에 가면 7시, 8시 정도 되니까 저녁을 따로 해서 먹는 날은 드물어요. 그냥 밥을 안 먹는 경우가 가장 많고.”

이롱방

 

원래 집으로서의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보니 따라오는 ‘당연한’ 불편함도 있습니다. 지금 이롱씨가 살고 있는 방은 타오팡 주인의 바로 옆 방입니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어린 아이를 하나 키우고 계시는데, 애가 이제 막 유치원 들어가나? 그래요. 아기가 많이 울기도 하고, 엄마한테 맨날 혼나는 소리도 많이 들리죠. 사실 약간 시끄러울 거라는 건 집을 계약하기 전에 집주인에게 미리 언질을 받았어요. 그걸 걸고 넘어져서 집세를 깎을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흥정을 잘 못 하는 성격이라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 옆 방에 사는 아이가 또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혼나고 우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들의 얼굴을 매일 보지는 않습니다. “집주인 분은 보통 방값 낼 때만 보죠.” 원래 개별 방이 아니었던 공간들을 나눠 놓으니 소음 문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방을 구하는 방법

그래도 이롱씨는 비슷한 집세(월 10,000NT)의 방들에 비해서 꽤 괜찮은 방을 구했다고 합니다. 대학교 시절 상경하면서 방을 한 번 구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부동산은 거치지 않습니다. 591닷컴이라고, 부동산 매물 정보 사이트에서 예산 안의 방을 여러 군데 본 다음, 네 개 정도의 후보를 정했대요. “일단은 가격 범위 안에서 집들을 찾은 다음에, 집 보러 다니는 걸 하루에 싹 몰아서 다녔어요. 며칠씩 집 보러 다니면 완전 피곤하잖아요. 대신에, 각 집들의 구조 같은 걸 그림으로 그려 와서 집에서 다시 보면서 네 개의 방들을 서로 비교했죠.” 이롱씨만의 집 보는 꿀팁입니다. “또, 요즘은 PTT라고 익명으로 관련 쓰레드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진 커뮤니티에서도 집을 많이 구해요.” 역시 대만이나 한국이나 이제 부동산은 별로 믿지 않는 분위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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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렇게 생긴 익명 쓰레드에서 집을 구한다고 합니다. 여기는 ‘타오팡’을 구하는 쓰레드. 가입 절차가 나름 까다로워서 익명임에도 불구하고 거래를 빈번하게 한다고 하네요.

또. 타오팡은 원래 그렇게 계획해서 지어진 주거 공간이 아닌 만큼 개조된 벽의 재질 등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롱씨는 이번에 방을 구할 때 각 타오팡들의 벽이 뭘로 만들어졌는지까지 집주인들에게 꼼꼼히 물어 봤다고 합니다.

“하지만 집은 사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쭉 그 타오팡에서 살 거냐고 물어 보자 이롱씨는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집을 살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집값에 거품이 낀 걸 누구나 알고 있고, 그래서 살 만한 가치도 없고, 사도 회사와 부동산업자들만 돈을 버는 일인 것 같아서요.

그래서 같이 상경해 있던 동생들도 데리고 지난 10월, 디바오 앞의 새둥지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주욱 친한 친구 한 명이 주거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는데요, 걔가 페이스북 등에 주거 관련 게시물도 자주 공유하고 해서 처음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주거 문제가 문제가 된 지도 수십 년인데, 그 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시위에 참여하게 됐고요. 또, 시위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는 게 진짜인 지도 잘 모르겠고, 사실을 보기 위해 현장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의 말에서 뼈대 있는 고민이 느껴집니다.

새둥지운동의 시위대가 야영을 하던 작년 10월, 디바오에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한 명망 있는 정치인 커원저(柯文哲)가 살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의 아버지도 유명한 정치인이거든요. 동시에 우리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갑부이기도 해요. 대대로 유명한 정치가들이 많은 가문인데, 그 시장 후보가 디바오에 살고 있고 아빠는 갑부란 말이죠. 사실 저도 그 정도인 줄은 몰랐거든요? 새둥지운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 알았어요. 그 시장 후보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요.” 결국 작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무소속의 의사인 리엔셩원(连胜文)이 시장으로 당선이 됐습니다. 물론, 대대적인 표차는 아니었고 여전히 디바오에서 살던 후보도 전체에서 약 45%를 득표했던 아슬아슬한 승리였지만 그래도 시위 후에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죠.

이 아슬아슬하지만 값진 결과 밑에는 결국 청춘들이 있었다고 이롱씨는 이야기합니다. “친구들이 페이스북 같은 데에서도 계속 후보 두 명을 비교하면서 공약들을 읽어 보고, 서로에게 ‘투표하자’고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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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소리 내서 말하기 전, 한 번 카페 주위를 스윽 둘러본 이롱씨는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소곤 속삭입니다. “대만에서는 젊은 친구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해요. ‘국민당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대만의 미래는 없다’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 때 주변을 조심하는 그의 모습에서도 또 다시 한국이 생각납니다.

답이 없어도 함께 기지개를 펴자

이롱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겪은 대학가의 원룸, 그리고 거기서 무수히 터져나오는 친구들의 볼멘소리들이 머리를 스치고 갔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저희가 대만에 나와 있다고, 또 타이베이에서 수천 명의 친구들이 모였던 주거 관련 시위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에서 무슨 해답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타이베이의 집값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저희 같은 친구들은 옆 집이 무얼 하는지 강제로 알 수 있는 방에서 살고 있고, 미래에 집다운 집을 구할 수 있을 지도 아직 잘 모릅니다. 해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집’, 우리가 사는 그 ‘집’에 대해서 사회 전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생긴 후로 타이베이는 천천히 변하려고 기지개를 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통, 번역 및 중국어 감수/ 노서영

사진/ 김준철

글/ 랫사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