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복학왕>이라는 웹툰은 리얼리티와 현실감 때문에 인기 있는 웹툰이다. 최근 에피소드를 보면 우기명이 소위 ‘건설현장육체노동’을 통해 한 달간 알바해서 번 돈 240만원 중에서 200만원을 한때 썸을 탔던 친구가 일하는 술집에 탕진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웹툰에 달린 댓글 중에서 흥미로운 댓글은 ‘첫 월급을 부모님에게 쓰지 않네’였다.

이야기 둘.

우연한 기회에 대학생들을 면접을 하는데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웹진을 만드는 편집부를 뽑는 면접이었다. 면접 대상은 23살에 k대학에 정경학부에 다니는 미모의 재원이었다. 부편집장이 항상 면접대상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천만원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건지이다. 그녀는 질문에 동생이 이번에 대학을 가게 돼서 등록금을 보태고 싶다고 답했다. 우리가 원한 대답이 아니었으므로 질문을 바꾸어서 순수하게 자신을 위해서 천만원을 쓴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바뀐 질문에도 자신은 죄책감이 들어서 집에다 돈을 보태고, 그러고 남은 돈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면접이 끝나고 부편집장과 그 천만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최근에 면접을 하면서 저 질문을 꼭 하는 이유는 저 질문에 유독 등록금과 관련한 대답이 80%이상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신기해서 자꾸 물어본다는 것이다.

‘천만원이든 1억이든 마음껏 쓸 수 있는 돈이면 무엇을 할래?’ 라는 질문은 욕망에 관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천만원을 실제로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음껏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내가 본 대학생들은 욕망을 제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욕망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당연한가? 말은 할 수 있지 않은가? 자신밖에 모른다고 평가받는 젊은이들이 어째서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 없는 것일까?

dv537029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욕망은 나쁜 것이고 성인이 돼서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예를 들어 19세 미만이 서로 동의하에 섹스를 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섹스와 “19세 미만 금지”라는 코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불일치 속에서 우리는 욕망을 미래로 미루기에 최적화된 교육과정을 버텨 20살이 된다. 20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다양한 욕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대학생은 자신에게 투자된 비용을 생각하고, 살벌한 취업현장을 미리 걱정하며 욕망의 실천을 다시 미룬다. 대학을 가지 않았다면 뒤쳐졌다는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바로 직장을 잡고 살아간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이라는 억제와 인내의 시간이 도래한다. 취업도 생활도 어려운 상황에서 천만원은 실제로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욕망에 대해서 말할 수 없음이 생겨난다.

얼마 전 독일의 17세 고등학생이 자신은 시를 4개 국어로 번역을 할 수 있지만 세법, 근로기준법 등 세상 돌아가는 일은 학교에서 하나도 배울 수 없다는 트윗을 올려 독일을 뒤흔들었다고 한다.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시를 4개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학생들을 키워내는가? 세금이나 근로기준법에 대해서 가르치는가?

우리 교육은 억제와 경쟁을 가르친다. 그렇게 가르쳐서 대학생이 된다. 대학생의 억제된 욕망이 비어있는 자리, 한국에서는 그 자리를 무엇이 채우는가? 죄책감과 끝이 없는 경쟁의식이 채운다. 욕망은 경쟁하지 않는다. 욕망은 그저 채우려고 노력할 뿐이다. 다만 채워지지 않을 뿐이다. 일시적인 만족을 줄 뿐이다. 맛집이나 요리와 관련된 컨텐츠들이 인기를 끄는 비결 중 하나는, 먹는 것에는 생각이 필요 없고 즉각적으로 욕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GettyImagesBank_88365826_M

학교에서 행복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욕망을 채우는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욕망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 즉각적으로 욕망을 채우는 방법, 고차원적으로 욕망을 채우는 방법, 욕망과 행복의 연관관계 등을 알게 된다면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느꼈던 사소한 범죄와 비행에 대한 죄책감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욕망을 참고 버티고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이다. 이 분야 최고 전문가는 얼마 전 회고록을 출간하신 분이므로 그분을 특별 초청 강사로 모시는 것을 희망한다. (반면교사도 교사다.)

욕망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차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아이 때문에 가정 때문에 참아야 할 경력을 이어가고 싶은 욕망, 전업주부일지라도 육아에서서 해방 되고 싶다는 욕망,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기 싫다는 욕망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욕망을 가진 주체들끼리의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이야기 셋.

이 질문은 지난해 한 신문사 취업시험에도 나온 주제였다. 그 액수는 1억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번역이 아쉬운 철학 책(명예훼손의 우려 때문에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의 저작권을 사서 좋아하는 번역자에게 번역을 맡겨서 카피레프트로 인터넷에 공유하고 싶다고 답했다. 좋은 글을 읽은 독자들이 사는 세상에 좋은 신문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으로 구라를 마쳤다. 역시나 구라는 먹히지 않았고, 취업의 벽은 높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레프트라는 말 때문에 탈락한 것 같다고 했다. 프리라는 말을 썼으면 통과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