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은 린위루(林育如), 영어 이름은 소피아(Sofia)입니다. 작년 3월에 결혼한 새댁이죠. 소피아와 저는 원래 그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터뷰 하루 전날 무례하고 뻔뻔하게 ‘혹시, 집에 가서 집 구경도 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했고 소피아는 흔쾌히 그러마,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피규어들과 레고가 가득한 2년 한정 원피스 덕후(!)의 집에 침입하게 된 것입니다.

262번 버스를 타고 찾아간 린위루의 동네

3저는 올빼미 비슷한 생활 사이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린위루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집을 찾아 가기로 한 시간은 무려 아침 아홉시 반. 인터뷰를 늦으면 안 된다는 필사의 다짐을 한 덕분인지 아침 여덟시 반 즈음 숙소를 나설 수 있었습니다. 맞기에도, 우산을 펴기에도 애매한 비를 피해 성질 급한 운전 기사 아저씨가 운전하는 262번 버스를 탑니다. 급정거를 밟으실 때마다 좌석에서 굴러 떨어질 뻔한 위기를 열 번쯤 모면하고 나자, 어느 새 제가 내릴 민생동가(民生東家) 입구입니다.

린위루의 마을은 군데 군데 깨지긴 했지만 붉은 벽돌로 인도가 포장돼 있는 소담한 마을이었습니다. 가는 길을 영 모르겠어서, 버스에서 내려 그에게 전화를 겁니다. 5분 정도가 지나자 만나기로 약속한 편의점 앞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막, 편의점 안에서 중국식 호빵 하나를 골라 계산하던 때였습니다.

2

이거…ㅎ

누구에게나 그렇듯 첫 만남은 어색합니다. 오티, 엠티, 각종 동아리 술자리 등 처음 보는 사람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자리에서의 뻘쭘한 스스로를 되새김질 해 봅시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거든요. 하지만 그런 여느 술자리보다 더 뻘쭘한 상황은 ‘처음 봤는데 말이 안 통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간단한 영어로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메일을 주고 받기는 했지만 서로의 실존을 이제서야 확인한 인터넷 친구에다가, 심지어 제가 중국어를 못하고 린위루도 한국어를 모르니 그보다 더 어색할 수 있겠어요? 어설픈 미소만 서로 씨익 짓습니다. 다행히, 통역을 통해서 ‘동네가 참 예쁘다’, ‘ ‘드디어 만나게 돼서 너무 반갑다’, ‘오는 길은 어렵지 않았느냐’ 등등, 서로에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린위루가 살고 있는 맨션 근처에는 타이베이에서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그렇듯 시장이 있습니다. 그래도 여태까지 야시장만 마주한 외국인 1은 아침에 활짝 문을 연 ‘시장’이 너무 신기했습니다. “제가 과일을 얼마나 먹고 싶어했는데요…!”라고 말하자 마자, 그러면 과일을 좀 사고 가겟냐고 흔쾌히 시장에 들리는 린위루. 시장은 그야말로 시장답게, 시끌벅적하게 망고부터 돼지 비계, 춘권과 수면잠옷까지 정말 각종 물건이 다양하게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집이 시장을 통과해서 가야 하는 것인줄로만 알고 시장 구경을 느긋하게 하다가, 제 말 한 마디에 방향을 틀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아니에요! 과일은 나중에 사겠습니다요”하고 다시 그의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린위루의 집

가는 길에 동네의 호젓한 공원을 지납니다. 린위루는 “공원이 크지는 않지만 꽤 유명하고, 사람들이 이 공원을 보러 여기에 오기도 한다”고 자랑합니다. 타이베이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이 동네의 초입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공원과, 활기찬 시장까지 있으니 젊은 부부들이 이 동네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아이도 키우기 좋고, 살기도 좋잖아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원 주변 길을 따라서 3분 정도 더 걸으니 린위루가 사는, 그 ‘문제의 맨션’이 등장합니다. 1층의 오른쪽은 찻집이 있었고, 왼쪽은 문틈 사이로 보이는 빨래들로 보아 가정집 같았습니다.

낡은 맨션 속, 소담하고 예쁜 그 집

집소개최근, 아니 거의 제 인생을 통들어서 가장 크고 굵게 생긴 열쇠를 두 개 꺼내고 나서야 린위루의 집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집에는 마주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린위루의 남편 분이 계셨습니다. 짧은 영어로 서로에게 반갑다고 인사하고, 곧 전도유망한 엔지니어인 남편 분은 후드티를 입고 출근합니다.

린위루가 그래도 손님인데, 차 한 잔이라도 내 오겠다며 차를 우려 주는 동안 스리슬쩍 집을 둘러 봅니다. 곳곳에 놓인 마벨, 사우스파크, 원피스의 피규어와 팬시들이 눈에 띕니다. 무언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말이 통할 것만 같은 동지의식을 강하게(…) 느낍니다. 이케아에서 사온 듯한 심플한 탁자에 소파, 그리고 안락의자에 카펫까지. 거실을 가로지르며 놓인 각종 피규어, 레고들이 신혼부부 집에 센스와 덕력을 더해줍니다.

미처 몰랐는데, 린위루도 약간 부시시한 모습입니다. 차를 들고 안락의자에 앉는 폼이 ‘나는 매우 아침이다’ 였습니다. 편한 츄리닝에 빗질이 덜 된 머리. 제가 아침에 집을 급습한 것은 매우 분명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숭아 홍차와 함께 까 먹을 간식거리를 이것 저것 주섬주섬 줍니다.

동네도 호젓하고, 나름 ‘학군’이란 것도 조성돼 있으니 집값이 왠지 비쌀 것만 같습니다. “이 동네에서 이만한 집을 월세로 살려면 월 28,000NT(한화 약 980,000원) 정도가 들어. 그래도 나는 여기가 친구 집이라서 22,000NT(힌화 약 770,000원)만 주고 살고 있지. 사실 작년에 집을 구하러 다녔을 때는 월세 15,000NT(한화 약 525,000원) 정도의 집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월세가 생각보단 한참 초과긴 한데, 그래도 워낙 동네도 괜찮고 해서 이사 왔어.”  아하, 린위루가 살고 있는 이 집은 친구가 가지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집이 워낙 오래된 것 치고 깔끔해서 물어보니, 친구가 집을 사면서 리모델링을 한 번 했다고 합니다. 정말 여느 신혼부부라도 탐낼 만큼 깔끔하게 리모델링 된 집입니다.

4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래는 베란다였던 공간을 튼 넓은 창가에 식물들이 이것 저것 자라고 있습니다. 동네 건물이 낡아서이기도 하지만, 집주인들이 조금이라도 실평수를 넓혀서 월세를 더 받으려고 많이들 베란다를 튼다고 합니다. 난지창처럼 컨테이너 박스를 아예 집 위에 덧씌운 것은 아니지만, 베란다를 개조하는 것 정도는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도 흔히 하는 일이래요.

베란다는 앞뒤로 트고, 옥상에는 불법 주택도 올려야지

40년 전에 지은 집의 구조로는 영 두 명이 살 수 있을 만한 넓이의 집이 되지 않아서, 린위루의 친구는 집의 앞, 뒤에 붙어 있던 베란다를 모두 터서 거실과 연결된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저기, 현관문 근처의 약간 낮은 천장과 아일랜드 식탁이 위치한 곳의 약간 낮은 천장이 보이죠? 바로 그 자리가 원래 앞뒤로 베란다가 있던 자리입니다.

5이 동네는 난지창의 컨테이너 박스 같은 불법 주택이 옥상에 들어 앉아 있습니다. “저기, 옆 건물 보이지? 저기 옥상에 보이는 게 불법 주택이야. 우리 동네는 옥탑이 이런 걸 짓는 경우가 많아. 원래 건물 옥상이 공용 옥상이긴 한데, 맨 꼭대기 층에 사는 사람들이 보통 옥상을 자기 거라고 생각하더라고? 그래서 저런 불법 주택들은 보통 가장 꼭대기 층에 사는 사람들이 지은 거야.” 불법 주택은 역시 생각보다 타이베이의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대만의 집들은 대부분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갑니다. 슬리퍼를 신고 들어 가면 피규어가 줄줄히 놓인 안락한 거실입니다. 밝은 녹색의 소파랑 안락의자가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대만에 와서 처음 보는 아일랜드 식탁! 뭐랄까, 한국의 제 집보다 나은 것 같기도(…)

“친구의 아이가 클 때까지”

하지만 2년 뒤면 린위루는 이 집과 이 동네를 떠나야 합니다. 집을 빌려준 친구가 2년 뒤부터는 자신의 집에서 살 예정이기 때문이죠. 타이베이에서는 보통 대학교, 혹은 직장 때까지 될 수 있으면 부모님과 함께 살고 결혼할 때 독립을 처음 고민하곤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특히 타이베이 주변의 집값이 비싸서이기도 하지만, 도시 자체의 크기가 서울의 1/4 규모이기 때문에 원래 집이 타이베이 외곽이나 타이베이일 경우, 통학과 출, 퇴근에 큰 문제가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말 집에 사는 ‘식구’의 수가 늘어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는 때에 독립을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린위루에게 이 집을 빌려준 친구는 지금 갓난아기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유치원을 갈 때 쯤이면 아이의 방도 슬슬 꾸며 줘야 하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방이 세 개인 이 집을 미리 사고 리모델링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갓난아기이다 보니 아직은 그렇게까지 넓은 집이 필요없었고, 그래서 린위루네에 세를 놓게 됐습니다.

6대만의 모든 신혼 부부가 린위루처럼 운 좋게 주위에 집을 가진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상황의 다른 친구들보다는 매우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가끔은 미안한 마음도 들어. 원래 우리 같은 신혼 부부들은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싼 집을 구하니까. 그렇게 집을 구해도 또 아이를 낳으면 아이 양육비도 생각해야 하고… 역시 돈이 많이 들고.”

혹은, 모든 신혼 부부가 린위루처럼 집을 임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는 우리가 집을 하나 사기를 원하고 계셔. 뭔가, 집을 사야만 가정을 꾸린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니까. 집을 안 사면 계속 이사를 다니면서 전전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내고 있는 임대료를 모아서 집을 샀으면 하시더라고.”

‘네가 사는(buy) 그 집’, 나는 이제 못 사

최근에 새둥지운동을 통해서 공공임대주택인 ‘사회주택(社會住宅)’의 개념이 대만 사회에서 등장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사설 임대 시장이 임대주택의 99%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타에베이 시내, 혹은 근처 외곽의 집들까지도 집값이 폭등하면서 더 이상 ‘집을 사야 한다’는 목표는 현실적인 목표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나 저기나 ‘그분들’이 하는 말은 비슷합니다. “정부는 ‘괜찮아, 그냥 외곽 나가서 살아’ 라든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되지 않나?’ 정도의 태도를 계속 취하고 있는 것 같아. 뭐, 그 사람들 말이 막 틀린 건 아냐. 타이베이 외곽의 신베이(新北) 같은 데로 나가면 어떻게 살 수는 있겠지. 그래도, 집을 쉽게 구할 수 없는 문제를 ‘젊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싶어하지 않아서 집을 못 구하는 거라’고말하는 건 좀 화가 나지. 악의적인 부동산 투기를 누가 방관했는데,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냐(…) 그런 느낌이야.

실제로 지나치게 뛰어버린 집값 때문에 이 동네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수십년 전에 집을 산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제 집을 사려면 말도 안 되는 정도의 집값을 부모님께 손을 벌리든지, 대출을 받든지 해서 부담해야 하죠. “지금 나는 한 달 월세로 이 집에서 22,000NT를 내고 있는데, 이 집을 사려면 2,500만 NT(한화 약 865,000,000원) 가 들어. 이 집을 아예 살 돈으로는 90년치 월세를 낼 수 있지.(웃음) 그러니까 집을 산다는 게 얼마나 이상한 일이냐고. 그냥 월세 내면서 사는 게 훨씬 이득인걸?”

사실 린위루도 결혼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그래도 집을 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합니다. “집을 살 때 1,500만NT(한화 약 525.000,000원) 까지는 쓸 수 있었어. 그런데 그 돈으로 집을 사려니까 정말 엄-청 낡고 오래된 방 밖에 없거나, 두 명이 살기에도 좁은 방 밖에 없더라. 그렇기도 한 데다가, 마침 친구가 좋은 제안을 해 줘서 그냥 임대를 택하게 된 거야.” ‘이쯤이면 되겠지’ 싶었던 예산으로는 신혼부부 두 명이 몸을 누일 편한 방 한 칸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름의 대안을 택한 것이지요.

“집은, 방파제야”

2년 뒤 어느 곳으로 또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지금은 밝고 깨끗한 집에 살고 있는 린위루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졌습니다. 물어 봤더니 잠시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집…집… 음…생각해 본 적이 없네.” 그리고 그가 내 놓은 답은 새삼 집이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집은, 마치 방파제와 같은 것 같아. 밖에서 얼마나 힘들었든 간에, 마음을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고 내가 늘 의존할 수 있는 곳이니까.

원피스(중국에서의 정식 명칭은 ‘해적 루피’래요)를 엄-청 좋아한다는 린위루를 2년 뒤, 타이베이의 민생동가에 다시 오면 만날 수 없겠죠. 그가 살던 집에는 원래 집 주인인 친구의 가족과 아이가 오순도순 살고 있을 겁니다. 민달팽이처럼 옮겨 다니는 삶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벗어날 방법도 딱히 없습니다. 대만의 집값은 90년치 월세니까요. 90년치 월세의 무게감 만큼이나 켜켜히 쌓인 주거 문제는 결국 ‘젊은 것들이 열심히 살지 않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대만이나, 한국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