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뭔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공식적인 된장과 허세와 패션의 도시다. 하지만 동시에 (궁서체로) 예술의 도시기도 하다. 특히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광고판과 밤낮없이 소비자를 유혹하는 번지르르한 쇼핑가로 뒤덮인 브로드웨이는 그야말로 세계 뮤지컬의 성지다. ‘그래도 뉴욕에 왔으니 자랑 겸 겸사겸사 한 편 봐야지’ 싶은 당신부터 ‘전 뮤지컬 덕후입니다만. 어디서부터 순례하면 좋죠?’ 싶은 당신까지, 뮤지컬 세계 입덕 경력 8년차, 뉴욕 가서 브로드웨이만 성지순례하고 온 명실상부 오덕후가 간략한 가이드를 써 봤다. 추천하고 등장하는 쇼 이름들은 어디까지나 글 쓰는 현재 시점 기준이고, 곧 무대를 마감할 예정인 쇼도 있고 새로 올라오는 프로덕션도 있으나 브로드웨이 씬은 아주 큰 물갈이가 이뤄지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최소 몇 년 간은 유용한 가이드가 될 것 같다.

작품 추천 전에, 알아두면 손해볼 것 없는 꿀팁 5가지

1. 당일치기 예매제도를 적극 활용하라.

그저 한 편 정도를 챙겨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오덕에게도 꼭 알아야 할 브로드웨이 상식은 이 곳이 현매(현장예매)의 천국이라는 점이다. 당일치기 예매에도 매우 다양한 타입과 방법이 있어서 당신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면 뮤지컬 하나 당일예매 하는 것쯤이야 식은죽 먹기다.

방법 1 – TKTS

뉴욕 안에 세 군데가 있지만, 브로드웨이 앞에 있는 그것이 주로 메이저 뮤지컬 티켓을 취급한다.

TKTS는 당일에 남은 표나 취소표를 싸게 파는 브로드웨이 공식 매표소다. 일단 공신력이 있기 때문에 맘 놓고 살 수 있고, 다양한 결제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 남쪽 근처에 분점 비슷한 게 최근 하나 생겼지만, 진짜배기는 브로드웨이 한 가운데에 있는 그것이다. 새빨간 계단 뒤편이다.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 같이 늦은 오후 쇼가 있는 날에는 아침 10시 반부터, 보통의 모든 저녁 쇼는 오후 두시부터 티켓 구매가 가능하다.
TKTS에는 브로드웨이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쇼가 올라오지만, <위키드>나 <라이온킹>같이 초절정 인기를 누리는 쇼의 티켓은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려니 모든 쇼의 티켓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하면 사실과 다르다.
현장구매가 가능한 티켓의 경우, 할인율은 30~50%로 다양하지만 대부분 풀리는 김에 화끈하게 4~50%정도의 할인율을 보여준다. 비교적 신작 축에 속하는 <킨키 부츠>나 아직도 인기 절정인 오프 브로드웨이 쇼인 <애비뉴Q>정도만 30%대 할인율을 유지한다. 자리는 예매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남은 자리 중 가장 좋은 자리를 티켓 매표소 직원이 골라준다. 그걸 보통 받아들이는 게 좋지만, 직원을 믿지 못하겠다면 미리 볼 작품을 골라서 해당 작품 극장의 좌석표를 스마트폰 스크린에 띄워 놓고 가라. 원활한 협상이 가능하다. (좌석표는 이 사이트에서) 어쨌거나 직원에 의해서든 다른 사람에 의해서든 좋은 자리는 일찍 나간다. 그러니 싼 값에 비교적 좋은 자리를 얻고 싶다면 일찍 가서 줄을 서는 것이 좋다. 줄은 보통 공식 매표소 오픈 2시간 전 정도부터 생성된다.
TKTS는 공식 앱이 있다. 앱에서 그날그날 풀리는 티켓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미리 확인하고 가면 개꿀! (안드로이드 버전 / 애플 버전)

방법 2 – 로터리

그렇다. 브로드웨이의 명물은 뭐니뭐니해도 로터리! 유명한 뮤지컬 극장들이 몇 블록 안에 밀집해 있다는 점 때문에 생긴 독특한 제도다. 이건 아주 유명하고 잘 팔리는 쇼들도 다 한다. 로터리가 없으면 관행적으로 욕을 먹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싶은 작품이 언제 몇시에 로터리를 하는 지 알고 싶다면 이 사이트를 참고하라. 평일 저녁 쇼들이 대체로 주말 쇼보다는 당첨 확률이 좀 높은 편이다. 사람이 없으니까. 보통 로터리는 공연 시작 두 시간 반 전에 시작해서 두 시간 전에 추첨식을 하기 때문에, 만약 저녁 7시와 8시 쇼가 갈린다면 두 쇼의 로터리를 모두 시도해 볼 수 있다. 본인의 이름, 이메일 정도만 쓰고 로터리 티켓을 넣으면 1인당 최대 2매까지 살 수 있는 당첨자를 보통 10~15명정도 뽑는다. 로터리로 풀리는 자리들은 대부분 ‘명목상 오케스트라 석이지만 실제로는 R석정도인 자리’들이다. 예를 들어 공연의 맨 앞 두줄, 시야가 약간 가려지는 파샬(partial) 뷰의 로얄이나 오케스트라 석이 여기에 해당한다. 당첨되면 싸게는 25달러부터 비싸봤자 37달러(세금 및 공연 fee 포함) 사이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일행이 많으면 많을 수록 유리하다. 1인당 1번 로터리를 낼 수 있기 때문.
아주 큰 기대는 하지 말고 가자. 난 로터리 10번 정도 넣어서 간신히 하나 됨 ㅋ
아, 로터리가 안 되더라도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은 되도록이면 하지 말자. 그 때까지도 남은 조금 좋지 않은 좌석을 보통 3~40% 할인된 가격에 로터리가 끝나고 팔기도 한다.

방법 3 – 개별 극장 매표소 현매
저어어어엉말로 목을 걸고 보고 싶었던 뮤지컬이 있다면 그 뮤지컬을 하는 극장으로 아침 일찍 돌진하라. 당일 취소표를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보통 개별 극장 매표소들은 오전 10시쯤 문을 연다. 그 때 가면 꽤 좋은 자리가 간간히 취소표로 풀린다. 게다가 현장에서 당일 예매만 받을 수 있는 깜짝 할인도 수시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위키드>는 40% 학생할인을 (아무 학생증이나 보여주기만 하면 됨- 그렇다. 한국 대학 학생증도 된다. 영어로 알아먹을만한 대학명이랑 ‘스튜던트’ 정도만 쓰여 있다면.) 당일 예매에 한해 한정적으로 실시한 적도 있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예매 사이트의 중개 수수료가 빠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약간 더 싼 값에 티켓을 구할 수 있다. 사람도 TKTS에 비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여유롭게 자리 협상을 진행해 볼 수 있다.

‘라이온 킹’이 공연되는 극장. (디즈니의 자금줄을 업고) 얘만 이렇게 큼.

2. 입장은 10분전에 해도 충!분!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을 본다는 것’은 대학로에서 우연히 표팔이에게 붙잡혀서 보는 우발적 뮤지컬이 아닌 바에야 ‘맘먹고 가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보통 한 시간에서 30분 일찍 가는 것이 예의로 통한다. 가면 포토월도 있고 이것저것 머천다이즈도 파니까 시간도 금세 가는 편이고. 하지만 브로드웨이는 그딴ㅋ건ㅋ없엉ㅋ이다. 우리나라 뮤지컬 극장 같이 큰 극장들은 <라이온킹> 극장 하나 쯤이나 될까. 나머지 모든 극장들은 입구 – 극장 – 출구밖에 없는 그야말로 극장이다. 일찍 들어가봤자 할일 따위 없다. (가뭄에 콩 나듯 머천다이즈를 팔기도 하지만 대부분 프로그램과 CD, 매우 비싼 티셔츠 선에서 그친다) 그리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15~10분 전에 입장을 러시하기 때문에 뮤지컬이 정시에 시작하지도 않는다. 줄 서 있는 모든 관객의 입장이 완료된 후에야 뮤지컬이 시작되니 늦어서 앞부분을 놓지면 어떡할 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주변에서 밥을 여유롭게 먹고 느긋하게 10분 전에 가자.

 

3. 자리 값은 값을 한다

‘싸고 좋은 자리’란 세상에 없다. 만약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뮤지컬의 오리지널 버전을 보러 간다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좋은 자리를 사라. 할인하는 자리들은 다 할인하는 모종의 이유가 있다. 음향이 편향돼서 들린다던가, 무대가 가려져서 전체적인 무대 장치를 감상할 수 없다던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단지 관람하는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비싼 자리를 살 이유는 절대 없다. 본인이 그 뮤지컬에 매기는 가치 만큼은 돈을 쓰자. 좋은 자리 값은 정말로 그 값을 한다.

 

4. 물 한 병 사고 들어가는 센스

우리나라와 다르게 대부분의 브로드웨이 극장들은 공연을 보면서 먹고 마시는 게 아주 일상화 돼있다. 극장 안에서 머천다이즈로 칵테일과 믹스넛츠, 과자들을 팔 정도니 말 다했다. 단, 값은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는 것의 딱 다섯 배다. 물 마시는 게 규정 위반이 아니므로 그냥 본인이 마실 물이나 음료수를 사서 들고 가면 장땡인 것이다. 냄새나 소리가 심하게 나지 않는 선에서 간식 섭취도 가능하다.

 

5. 그래도 공연 내용을 조금은 찾아보고 가자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은 그 공연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매력을 자랑한다. 어떤 쇼는 입이 떡 벌어지는 특수효과가, 어떤 쇼는 주인공의 압도적인 가창력이, 어떤 쇼는 칼같은 군무가 매력 포인트다. 그걸 알고 가야 뮤지컬을 100퍼센트 즐길 수 있다. 정보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해당 뮤지컬 이름을 그냥 검색하라. 리뷰가 바로 튀어나온다. 리뷰를 다 읽을 필요도 없다. 제목과 중간중간의 사진, 그리고 결론 부분만 읽어라. 그러면 어떤 부분이 강점이고 어떤 부분이 약점인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본격 작품 추천! 덕력별 추천 뮤지컬

 

1.  관광객 타입브로드웨이 뮤지컬 추천 #1

대상: 뮤지컬을 평소에 그다지 즐겨보지 않지만, 뉴욕에 왔으니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하나는 봤다는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당신

추천 뮤지컬: 일단 가성비에 방점을 둔다. 굳이 많은 예산을 뮤지컬에 들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

 

1) 오페라의 유령 – 한 번 영화화된 덕에 누구나 아는 스토리.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무난하다. 노래도 약간 오페라에 방점이 찍히긴 했지만 무난한 구성과 훌륭한 멜로디 덕분에 대부분에게 어필한다.

장점: 무난한 스토리와 무난한 멜로디, 높은 할인율( TKTS에서 거의 매일 50%)

단점: 굉장히 오래된 프로덕션이기 때문에 무대 시설이 조금 구리다. 극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팬텀 역을 맡은 배우들이 솔직히 말해 최정상급은 아니다. 가까운 자리에서 봤을 때 특수효과의 수준에 ‘풉!’할 수 있다. 조금 지루하다.

2) 시카고 –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공연했던 뮤지컬이기 때문에 비교적 익숙하다. 옴니버스 형식이라서 스토리를 이해하려고 가사를 집중해 들을 필요가 없다. 여감옥의 핫한 뉴비 록시와 올드 퀸 벨마의 갈등이 전체적인 내용이라면 내용이다. 브라스밴드가 무대 위로 올라와서 연주하기 때문에 뮤지컬이라기보단 갈라쇼 느낌으로 감상이 가능하다. 여죄수 여섯 명의 캐릭터 역시 선명해 햇갈릴 여지가 없다.

장점: 우리나라의 인순이급 대배우와 핫한 루키 배우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음, 높은 할인율(TKTS에서 50%), 극장이 작아 어느 자리에 앉아도 몰입도가 높은 편.

단점: 옴니버스 식이라서 스토리가 없다. 미국식 유머가 중간중간에 등장해 모든 사람들이 나 빼고 웃을 수도 있다.

 

2. 입덕 타입

브로드웨이 뮤지컬 추천 #2

대상: 뮤지컬을 1년에 1~2편은 보고, 형편만 되면 더 보고 싶지만 뮤지컬 티켓은 좀 비싼 것 같은 당신

추천 뮤지컬: 유명한 뮤지컬들의 오리지널 프로덕션을 한 편 거하게 보거나 최근 토니 어워드(브로드웨이계의 청룡영화상 느낌이다)에서 호평받은 뮤지컬 한두 편을 보는 걸 추천한다. 편성한 예산에 맞게 고른다.

 

1) 위키드:한국어 프로덕션도 이제 초연한 지 꽤 됐기 때문에 유명한 뮤지컬. 그러나 오리지널 프로덕션은 수준이 다르다. 타이틀 롤인 엘파바와 글린다는 꽤 여러 번 바뀌었지만 공연 스태프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진행이 매우 매끄럽다. 더불어 떠오르는 루키라면 누구나 거치는 엘파바 역의 배우들도 호평 일색. <오즈의 마법사>를 원전으로 한 훌륭한 사이드 스토리.

장점 – 뮤지컬 넘버의 퀄리티가 매우 압도적. 훌륭한 군무와 특수효과. 소설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

단점 – 비싸다.거의 할인이 없음. 볼 거면 미리 예매해서 좋은 자리 보길 권함. 스토리를 잘 알아야 더 재밌음(즉 영어를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재밌음)

 

2) 킨키 부츠: 우리나라에는 당분간 들어올 일 없는 공연. 드랙 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망해가는 신발공장집이 드랙 퀸을 위한 화려한 공연용 부츠 집으로 재탄생하는 소박하고 보람찬 스토리. 80년대를 풍미했던 신디 로퍼가 작곡가로 데뷔한 작품이기도 하며, 2013년 토니 어워드에서 ‘Best Musical’상을 포함해 총 6개 부문 수상을 달성했다. 한마디로 기초가 튼튼한 새 뮤지컬이라는 거다. 등장하는 드랙 퀸 배우들의 춤과 노래 실력이 상당하고 8비트 리듬을 시종일관 타고 나오지만 지루하지 않다.

장점 – 매우 신난다. 지루할 틈이 없다. 비교적 신작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TKTS에서 3~40% 할인 표가 종종 풀린다.

단점 – 드랙 퀸에 거부감이 있다면 스킵. 주인공 한 명 빼고는 모두 실제 드랙 퀸 배우들이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의 특수효과는 없다.

 

3) 라이온 킹: 몇 해 전 우리나라에도 한 번 내한을 했기 때문에 위키드와 비슷한 느낌으로 유명하다. 스토리는 여러분이 모두 알고 계시는 디즈니의 그 사자, 심바 이야기. 배우들의 ‘동물’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굉장히 실감나는 동물 의상을 제작했다. 전신 탈 같은 1차원적 방법이 아니라 각각 동물들의 특징만 엑기스로 뽑아 만든 반인반탈ㅋ의 포스가 대단하다. 더불어 디즈니 표 뮤지컬이라면 언제나 기대해도 좋을 색감 좋은 조명과 창의적인 무대 표현은 인상깊다.

장점 – 본격 눈호강 뮤지컬. 극장 시설이 엄청 넓다. 스토리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

단점 – 시설에 비해서 노래 자체가 좋지는 못하다. 그렇기에 가성비는 좀 떨어진다(할인이 절대 없다). 그리고 극중 배우들이 실제로 남아공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배경 설정도 아프리카로 해 놓아서 극중 쓰이는 언어가 ‘아프리카식 영어’ 및 ‘아프리카 토속어’다. 알아듣기 진짜힘들다.

 

3. 중덕 타입

브로드웨이 뮤지컬 추천 #3

대상: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왠만한 라이선스 뮤지컬은 되도록이면 보는 편이다. 계절마다 한 번 정도는 공연을 보러 간다 (혹은 적어도 보러 가고 싶어 한다). 너무 좋아해서 혼자 흥얼거릴 수 있는 뮤지컬 넘버가 2~3개, 가사를 완전히 외운 게 1개 이상은 있다.

추천 뮤지컬: 장르나 시간적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조금 진입장벽 높은 뮤지컬

 

1) 레 미제라블: 입아프게 여러 말 할 것 없이 영국이 낳은 최고의 뮤지컬 중 하나가 아닐까. 원산지는 영국이니까 영국의 웨스트엔드에 갈 기회가 있다면 거기서 보는 게 더 이득이지만,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무대 수준 역시 압도적이다. 드디어 장발장 역을 맡아서 소원성취한 스타 배우 라민이 이끄는 장장 세 시간의 대모험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CG 배경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전체적인 극의 진행에서 꼭 필요한 부분에만 쓰이니 혹시 CG 배경을 싫어하더라도 크게 신경쓸 건 없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됐고, 책 여섯 권 짜리 서사를 비교적 잘 압축시켜서 극으로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연인들의 사랑은 지나치게 급전개 되는 등의 단점은 있지만, 전체적인 서사가 너무 거시적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팡틴 역의 캐시를 필두로 한 여배우들의 파워도 강력해서 라민에게 밀리지 않는다.

장점 – 압도적인 캐스트 퀄리티, 압도적인 노래 퀄리티.

단점 – 예매 헬게이트. 미리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보기 힘들다. 한인텔 등의 변칙 경로를 이용해서 한 자리 잡을 수는 있지만 이마저도 최소 한 달 전에는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일에 남는 자리는 200달러를 호가하는 호갱용 VIP석뿐. 극이 매우 길기 때문에 마음 단단히 먹고 봐야 한다.

 

2) 헤드윅 & 앵그리 인치:조승우, 오만석, 박건형, 홍광호 등 ‘좀 한다’하는 남자 슈퍼 루키들의 등용문인 헤드윅 & 앵그리 인치가 브로드웨이에도 돌아왔다. 그렇지만 브로드웨이답게 메인 캐스팅은 슈퍼 루키가 아니라 슈퍼스타다. 닐 패트릭 해리스가 이끄는 헤드윅은 이미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동독 출신 헤드윅이 미군에게 꾀여서 성전환 수술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곧 버림받고, 꼬마 소년 토미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도 배신 당하는 이야기. 다들 알다시피 빡센 드랙 퀸 여장과 락 콘서트같은 시끄럽고 조잡한 진행이 매력이다.

장점 – 실물 닐 패트릭 해리스를 본다(단, 2014년 8월 20일 이후로는 다른 배우가 맡을 예정!). 브로드웨이 퀄리티 락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츠학 역을 맡은 여배우 포스가 장난 아니다(토니 어워드 수상자라고 한다).

단점 – 역시 예매 헬게이트. 지금 시점으로 아마 세 달치 공연 정도가 매진이다. 남은건 로터리뿐이야. 혹은 공연 시작 5~6시간 전에 가면 간헐적으로 풀린 극소량의 표를 득템할 수도 있다. 어느정도 락덕이 아니라면 락의 어법으로 진행되는 공연 방식에 다소 적응하지 못할 수 있다.

 

4. 오덕 타입

브로드웨이 뮤지컬 추천 #4

대상: ‘내 인생의 공연’으로 꼽을 수 있는 뮤지컬이 있고, 좋아하는 뮤지컬의 넘버들을 거진 다 외우고 있으며, 뮤지컬 공연의 좋고 나쁨을 나름대로 평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뮤지컬 고급 호갱.

추천 뮤지컬: 뮤지컬 덕후에게는 ‘아니 내가 죽어서 천당에 왔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브로드웨이에서는 그 어떤 작품이라도 다 보고 가야 한다. 오덕을 위해서는 샘플 일정도 제시한다. 일주일간 머무른 다 했을 때 매일 저녁 어떤 공연을 보고 어떤 로터리를 뚫어야 할 지 정리해 봤다. (스케줄 표 삽입 예정) 앞에 나온 모든 뮤지컬 + a로 우리나라에 절대 들어올 리 없고 평생 안보면 후회할, 게다가 진입 장벽이 높은 뮤지컬을 추천한다.

 

1) 더 북 오브 모르몬: 사우스파크 제작진이 애니로만 버는 돈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본격 팔을 걷어붙이고 브로드웨이에 뛰어들었다. 미국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신천지 취급을 받는 모르몬교를 주제로 삼으며 화끈한 광역 도발을 시전, 불꽃 마케팅에 성공하고 전통적인 두 남자들의 모험 및 우정 이야기 플롯을 더해 대중적이면서 날카로운 사팍식 비수가 어우러진 좋은 뮤지컬이 탄생했다. 2013 토니 어워드 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특히 주연을 맡은 닉 룰로와 밴 플랫의 호연이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둘이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도 오른쪽이 밴 플랫.

장점: 우리나라에 영영 들어올 리가 없는 희소성. 공연 시간 내내 포복절도할 수 있음. 너무 웃어서 머리가 띵해질 수 있음.

단점: 호갱 마케팅 성공의 대표적 주자. 티켓값을 올리면 올릴수록 매진 속도가 빨라진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 다른 뮤지컬들보다 티켓 값이 동급 좌석 대비 4~50달러 비싸다. 남은건 로터리뿐이야ㅋ. 미국의 문화적 배경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재밌다. 거주 경험이 있다면 금상첨화, 없더라도 리서치하는 열정이 조금은 있어야 한다.

 

2)  If/then: 렌트, 그리고 위키드를 거치며 브로드웨이의 디바로 폭풍성장한 이디나 멘젤은 <프로즌>으로 인생의 제 2 전성기를 맞았다. (그렇지만 아카데미 상에서의 렛잇고는 잊을 수 없다) 그 이디나 멘젤, 그리고 렌트의 귀요미 앤쏘니 랩, 렌트의 제작자인 마이클 그리프가 다시 의기투합해 만든 2014 햇 뮤지컬. 내용도 창작이고 곡도 모두 창작이라 어느 정도 영어를 잘 한다 해도 쉽게 따라갈 수 없어 짜증나지만, 그만큼 괜찮은 뮤지컬이기에 오덕 레벨로 추천한다. 이디나 멘젤의 원맨쇼에 가깝다. 내용은 ‘내가 만약 그 때 그랬다면’이라는 인생에서 다가오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이 주제다. 무대가 위, 아래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두 개로 갈라진 메인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스토리는 if가 계속 계속 붙어서 무한으로 확장되면서 엄청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장점: ‘그’ 이디나 멘젤과 ‘그’ 앤쏘니 랩을 노래하는 실물로 볼 수 있다. 렛잇고의 수난은 잊어라. 극장 전체가 공명하게 만드는 ‘디바’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클래스. 따끈따끈한 신작인데다 내용이 어렵기에 한국에 들어올 리 없는 희소성.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당일 표를 꽤 싸게 파는 자비를 베푼다.

단점: 겁나 복잡한 스토리라인. 예습 필수. 남자 주인공이 두 명인데 앤쏘니 랩 말고 다른 남자 주인공 역이 노래를 별로 못한다. 허우대가 멀쩡해 뽑은 느낌. 반드시 full view의 좌석을 사야 한다. 무대를 상-하 혹은 좌-우로 절반씩 쪼개서 동시 진행하는 내용이 허다하기 때문에 무대가 조금이라도 가리면 극 이해가 엄청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