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한 친구의 스물세 번째 생일을 잊었습니다. 미리 알고는 있었는데,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는 걸, 삭막한 하루가 끝이 나고서야 기억해 냈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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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가장 친한 그 친구는 여고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어요. 이 친구는 저랑은 외모, 취향, 성격, 사주까지 반대입니다. 유머코드라는 실낱같은 공통점을 희망으로 우정을 근근이, 혹은 끈끈히 이어오고 있어요. 저나 이 친구나 (그럴 수가 없지만) 불알친구처럼 서로를 막 대하는 사이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고, 고단한 날 치킨이나 같이 뜯으러 가자고 말하며 서로를 응원해왔습니다.

생일 축하가 좀 늦었네, 싶었지만 그렇게 엄청나게 미안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좀 쿠사리 좀 듣겠구먼, 하는 정도였어요. 집에 가는 길, 막 축하 문자를 보내려고 하는데 마침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더군요.

까똑,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메시지를 보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내가 몰랐겠냐, 한 살 더 먹어서 어떡하냐, 능청을 떨다가 저는 말을 멈췄습니다.

무뚝뚝한 내 친구가 전화기 너머에서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얘가요. 어떤 애냐면요. 정말 책임감이 강하고 독립적인 애거든요. 전공 공부를 하느라 밤을 새서 작업을 하고, 장학금 수령에 필요한 봉사활동 시간을 채울 여유가 모자라, 헌혈로 봉사시간을 채우는 그런 독한 친구거든요.

친구는 마음이 휑하다며 울고 있었습니다. 요즘 너무 외롭다며 친구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지방으로 교환 수업을 들으러 갔다 왔다고. 홍대에서 조치원까지 교환 수업을 듣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왕복 두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친구가 탈탈거리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돌아오면 시각은 밤 12시, 텅 빈 강남대로에 버스가 섭니다. 퀘퀘한 고속버스 시트 냄새에 취해 졸다가 눈을 뜨면 푸르스름한 형광등 빛이 파르르 떨립니다. 다들 서로를 알지 못하므로, 말없이 혼자 파르르 눈꺼풀을 떨며 잠을 깨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버스에서 내립니다.

화려했던 강남 도심은 불 꺼진 커다란 간판들만 가득합니다. 옛 도시의 폐허처럼 도시엔 사람 냄새 하나 안 난다 했습니다. 그 곳에서 정릉동 주택까지 가는 길엔 ‘빈 차’라는 붉은 글씨만 가득하다고. 말할 수 없이 외로운 밤들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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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그래도 오늘은 생일이라 축하를 받고 싶었다 했습니다. 아무도 집에 가자고 날 깨워주지 않고, 지나가는 차는 다 ‘빈 차’인데도 날 태울 택시는 없고, 그래도 견뎠으니까, 그래도 열심히 오늘도 살았으니까, 오늘은 생일이니까 축하를 받고 싶었다고.

집에 돌아오니 1시, 집에는 명동에서 하루 종일 일본 손님들에게 시달리고 돌아왔을 엄마가 계셨답니다. 친구는 엄마한테 오늘 라멘집 장사는 잘 됐는지 묻다가 엄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하고 물었대요.

엄마가 모른다고 대답하셨고, 친구는 마음이 상했고, 엄마는 오늘 하루 삶이 힘들었는데 케잌이며 환한 초가 없다고 화를 내는 딸내미가 미웠고… 그랬겠지요.

싸울 땐 미움의 말들이 오갔겠지만 그게 어디 미움이겠어요? 내 힘든 하루를 아무도 몰라준다는 서러움. 그런 거였을 겁니다.

친구는 방문을 닫고 들어와 얼굴이 팅팅 붓도록 울다가 저에게 전화를 한 거였어요. 저는 착잡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돌아보니 그렇더군요. 오늘 뭐했지. 오늘 하루 참 뭐했는지도 모르겠고 먹은 끼니 수만 기억나는 구나. 그래도 나 바쁘게 열심히 살았는데. 너도 열심히 살고, 나도 열심히 살고, 엄마도 열심히 살았는데, 다들 삶은 외롭기만 하고.

저는 너무 외롭다고 엉엉 우는 친구를 수화기 너머에 두고, 엄마와 딸은 문짝을 사이에 두고 엉엉 울면서, 우리는 피곤한 새벽 한 시를 견디고 있었습니다.

우는 친구도 불쌍하고 문 밖에서 우신다는 엄마도 불쌍했습니다. 우리는 이 문 하나를 못 열어서 그 밤을 혼자 엉엉 울며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갱년기의 엄마는 딸에게 화를 내고 또 다시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아빠는 말도 없이 등을 돌리고 자는데.

엄마는 아빠와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났다고 친구는 말했습니다. 엄마는 이쁜 처녀, 아빠는 멋진 총각이던 그 시절에 두 분은 패션을 공부하던 열혈 청춘으로 서로에게 반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만들고 제 친구랑 친구 동생을 낳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명동에서 일본 라멘집의 사장님이 되셨다고 해요. 친구는 대충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자리에 누워서 잠깐 예전에 친구가 해준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나더군요.

그리고 그런 꿈을 꿨습니다. 첫 번째 문을 여니 우는 엄마가 보입니다.
또 다시 문을 열면 처음 집을 사고 도배를 하던 엄마가 땀을 닦고 서있습니다.
그 뒤의 문을 열면 한 살짜리 나를 안고 웃고 있는 엄마가 있습니다.
그 뒤의 문을 여니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가 낑낑대며
산더미 같은 천이며 옷감을 혼자 나르고 있습니다.
그 뒤의 문을 또 여니 교복이 커서 다 흘러내리고 있는 여자아이가 손장난을 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을 여니 한 아이를 안고 있는
낯익은 여자가 웃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수록 우리가 혼자 견뎌야하는 시간들과 외로움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쓸쓸한 날도 많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서로 위로가 될 수 있는 날이 더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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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요? 내가 문을 열지 않아 혼자 웅크리고 있을 ‘누군가’가 문 안에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다음날, 케잌을 먹으며 웃던 친구와 저도, 그렇구요. 말없이 미역국을 끓여놓고 가게로 나가신 친구네 엄마도 그렇구요.

그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언젠가의 우리’가 거기에 있을 겁니다. 환한 초와 케잌도 좋지만 그런 것 없이도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