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臺北)에는 도시의 왼쪽 옆구리에서부터 오른쪽 아래까지를 흐르는 단수이(淡水) 강이 있다. 단수이 강이 굽이굽이 감싸고 돌면서, 마치 혹부리영감의 혹처럼 타이베이 시의 왼쪽 아래에 툭 하고 튀어 나온 동네 난지창(南機場)엔 대만 최초의 정건주택이 있다.

난지창의 연립 주택 단지. 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정건주택이란, 최근 새둥지운동에서 ‘이제 제발 그만 지으라’고 요구한 ‘합의주택’의 옛 이름이다. 1960년대, 막 도시화가 시작돼 너나 할 것 없이 짐을 싸 들고 도시에 오고, 도시는 강변에 둑과 제방을 쌓고 도로를 내면서 몸집을 불려 가던 시절, 돈이 없고 터전이 없어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해 대만 정부는 주택을 지어 시민에게 싼 값에 팔았다. 그 주택을 정건주택(Resettlement Housing)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곳에 가면

1년 내내 따듯한 기온 덕분에 베란다마다 자란 식물들과, 식물들에 성기게 얽혀서 쑥 튀어나온 컨테이너 박스들을 볼 수 있다.

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주로 베란다나 큰 환기용 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불쑥 자리잡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들은 거주민들이 좁은 평수를 견디지 못해 고안한 불법 건축물이다. 컨테이너 박스들은 특히 매우 좁은 평수에 해당하는 8평형 단지인 8단지부터 11단지에 많다. 도시재생운동을 하는 NGO인 OURs에 근무하는 춘치에(詹竣傑)는 11단지들의 뒷모습을 보여 주며 “정부가 불법 건축물을 좀 막아 보려고 단속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그렇게 늘어난 컨테이너 박스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건물 안에 또 다른 건물이 지어진 것 마냥 울퉁불퉁한 실루엣의 연립주택에는 이미 빼곡히 사람들과 그들이 지닌 삶의 무게가 들어차 있다.

8평 집 두어 평 늘리느라 잃어버린 빛

원래도 다닥다닥 붙어 있었을 8동, 9동, 10동, 11동 사이 골목은 느즈막한 오후에도 어둡다. 사실, 그 사이가 비가 오면 비가 새고 쨍쨍한 날엔 햇볕도 들어 오는 뚫린 공간이었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물론 이렇게 불법으로 집의 앞, 뒤를 늘리는 일이 이 정건주택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마치 현대의 건축양식마냥, 건물 외벽의 곳곳으로 튀어 나온 베란다들과 컨테이너 박스들은 타이베이 시내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그렇지만, 난지창처럼 건물의 외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법 개조된 슬레이트가 벽돌 벽을 대신한 곳은 찾기 힘들다. 최근 한국의 국토교통부에서 정한 한 사람의 적정 주거 전용 면적은 약 4.2평(14 제곱미터) . 보통 3~4인 가족이 살기에 역시 8평 집은 좁았다. 물론, 여기서의 8평은 주거 전용 면적도 아니다. 그렇게 앞뒤로 생존을 위한 공간을 개척하면서 주민들은 빛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빽빽하게 늘린 공간이지만, 들어올 때는 3~4인이었던 가족이 수십 년이 지난 후 한, 두 명만 남기도 한다. 이런, 경우 컨테이너 박스만을 따로 세 놓는다. 가난하고 돈이 없는 청춘들, 독거노인,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등 주거 비용을 많이 할애할 수 없는 사람들이 눈길을 돌리는 불법 주택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8동을 지나고 나면 초등학교가 나오는데,

못 사는 동네의 못 사는 초등학교란다. 난지창에서 지역 공동체 재생 운동을 하고 있는 천한광씨는 “이 학교 바로 옆에는 그래도 조금 형편이 나은 집에서 보내는 사립 초등학교가 있다”며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옆 학교로 옮기면 환경이 너무 달라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도록 학교를 더 괜찮은 곳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초등학교를 지나면 야시장이 있는 골목과, 창문의 너비만 봐도 조금은 넓은 것 같은 1, 2, 3, 4단지를 볼 수 있다. 좁디 좁은 북쪽의 단지들보다는 툭 튀어나온 베란다의 수가 적지만, 여전히 볼록하게 튀어 나온 집들을 볼 수 있다.

‘예의 없게 구는 그 놈들’과 여기, 가난한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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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여섯 시 정도를 넘기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사람들이 야시장에 저녁 거리를 사 먹으러 북적이기 시작한다. 취두부와 매콤 시큼한 양념들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넘실대며 코를 찌르는 야시장이 세워진 골목에서 한 골목만 아래로 내려와 1, 2단지 사이로 들어가면 난지창 마을의 이장을 만날 수 있다.

50년 전, 이 정건주택이 타이베이 시내에서도 꽤 번듯하고 정갈한 보금자리였을 때 여기에 입주한 방허성(方荷生) 씨는 이제 동네의 소소한 변화를 주도하는 이장님이 됐다. “주택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되어서, 이 때문에 정부에서 주택을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 사람들이 난지창 지역에는 유독 예의 없게 굴기도 하지요. 가난하니까.” 지금도 10평짜리 집이 4~500만 대만 달러(한화 약 1,700만원)에 거래될 정도로 난지창의 집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싸다. 하지만 새 건물이 올라 오면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10평짜리 집은 약 두, 세배쯤 가격이 뛰게 된다.

난지창의 이장님, 방허성씨. 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언제라도 불법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낼 수 있다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도, 결국 정부는 정부다. 마을을 정말로 살리기 위해서는 그들과도 꾸준히 대화해야 하지만, 영 이야기가 잘 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정부에서는 난지창을 재건축하자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가 구룡마을에서도, 은평구에서도 보던 그것과 똑같다. 그 재건 기간 동안 그 곳에 사는 주민들이 오갈 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불법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정도로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주민들이 새로 지어지는 건물들의 집값을 감당하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장은 ‘온전한 주거’(穩住)를 꿈꾼다. 먼저 새로운 건물들을 짓고, 나중에 이 새 건물로 불법 주택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옮겨 가는 것이다. 이들의 삶에 주거가 함께 해서 꾸준히 ‘온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 앉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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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준철. CC by Misfits

야시장을 제외한 다른 골목들은 고요히 밤에 잠긴다. 컨테이너 박스든, 얼마 남지 않아 찾기도 힘든 창문이든 저녁을 먹느라 켠 불빛 하나 찾기 힘들다. ‘조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50년 전에 지어진 주택은 시간이 흘러서 더 가난한 사람들과 더 비좁고 빽빽한 공간들로 채워졌다. 난지창을 마을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주거 운동에 관심 있는 시민단체, 그리고 이장이 협력해서 식품 은행,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난지창에 50년 동안 켜켜이 쌓인 가난과 주거에 대한 불안함을 걷어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통, 번역 및 자료감수/ 노서영
사진/ 김준철
글/ 랫사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