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은 유행에 민감할 거라는 편견이 있다.

약간… 이런 이미지?

사실 난 어느 정도 민감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돈이 많아서 옷을 엄청 잘 살 수 있는 특정 시기에 국한된다. 과외를 네 개 뛰고 월 수입이 100을 넘어갔던 내 인생의 황금기, 리즈시절에는 정말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내 옷장은 당시에 샀던 옷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기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이들이 패션이나 유행에 민감하다는 건 별로 사실이 아니다. 패션에 관심 있는 친구들도 있고 전혀 관심 없는 친구들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 가장 최근의 전남친은 정말 옷을 못 입었다. 그런 상태에서 담배도 뻑뻑 피워대고 면도도 안하고 나오는 날이 있어서 뭐랄까… 분명히 대학생인데 이미지는 백수였다.

하지만 어떤 게이들은 패션에 민감해야만 한다는 강박도 갖고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다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게이들’로 뭉뚱그리기 뭐한 감도 있다. ‘민감하고 싶다’와 ‘민감하다’의 차이점도 애매하고, 강박이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내가 강박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한 것뿐이라고, 혹시 불쾌감을 느낄 분에게 미리 사과한다. 아무튼 어떤 게이들은 분명 패션에 민감하고 싶다거나, 민감해야만 한다거나, 그런 생각 이면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인권과도 밀접한 이슈를 숨기고 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한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

2013년 9월 7일, 커밍아웃한 영화인인 김조광수 감독은 그의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웨딩 사진은 2개가 공개되었다. 턱시도를 입은 사진과 드레스를 입은 사진. 독특한 건 사진들에서 어느 한 쪽이 턱시도를 입고 상대방이 웨딩드레스를 입는 형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둘 다 턱시도를 입었거나, 혹은 둘 다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김조광수, 김승환 커플의 웨딩사진 보러 가기

그 이유는 이들의 사랑이 동성애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즉 이성애가 왜곡되어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일 한 쪽이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면, ‘아, 이 사람이 이 커플에서는 여자구나.’하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 커플은 대부분의 경우 (어느 한쪽이 수술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이고 생물학적 성별이 동성인 경우를 제외하면) 두 사람 중 한 쪽을 이성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이 남성이면서 남성을 좋아하는 것이고, 여성이면서 여성을 좋아하는 것이다.

김 감독 웨딩사진의 또 하나의 특징은 두 사진을 다 찍은 것이다. 그들이 남성 동성애자이기에 우리, 즉 동성애자들은 턱시도만 입고 찍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웨딩드레스를 입는다는 행동은, 웨딩드레스가 여성의 옷으로 인식되어 온 것 때문에, 동성애자에게 이성의 성질이 반영되어 있어서 동성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김조광수 감독을 종종 싫어하는 이유와도 같다. 그는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을 깨부수는 데도 일조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게이는 여성스럽다는 편견을 만드는 데에도 일조했다.

그러나 그가 그의 파트너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것은, 단순히 게이뿐만 아니라 퀴어 사회 전체를 위한 의도 때문이다.

우리 사회 다수의 사람들은 남자가 여자 옷을 입은 것을 정말 이상하게 보고, 여자가 남자 옷을 입은 것을 별로 긍정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때로 생물학적 이성의 옷을 입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까진 모른다.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해서 여자 옷을 입는 남자일 수도 있고, 단순히 여자 옷이 예쁘고 자신한테 어울리니까 입는 남자일 수도 있다. 나는 이게 비정상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고등학생 때 앞머리를 길게 기르고 자르지 않아서 눈을 가리자, 여동생한테 빌린 머리핀으로 앞머리를 고정시킨 적이 있다. 아버지가 머리 잘랐냐고 묻길래 아무 생각 없이 “아니, 핀 꽂은 건데?”라고 대답했다가 대판 싸웠다. 난 아직도 내가 왜 그런 문제 때문에 아버지와 싸웠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머리핀을 꽂는 것 조차도 남자가 할 짓이 아니시라는데, 내 아들이 여자나 꽂는 머리핀을 사용한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시겠다는데 어쩌겠나.

아무튼 이성의 옷을 입는 것, 혹은 악세사리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귀걸이를 낀 남성이 한국 사회에서 어색하지 않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사람들에게 대항하는 작업의 하나는,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존재합니다.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김조광수 감독과 그의 연인이 드레스를 입은 까닭은, 성소수자의 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자 한 행동인 것이다.

재미와 삶 사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밴드인 피아가 <탑밴드 2>에 나왔을 때, 나는 덤으로 로맨틱펀치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두 밴드의 보컬은 둘 다 결승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의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 의상을 입고 나왔다. 피아의 보컬인 옥요한은 치마를 입고 나오질 않나, 로펀 보컬인 배인혁은 (정말 예쁘게 생긴데다가) 나올 때마다 화려한 스카프를 스탠드마이크에 감고 노래를 부르질 않나, 내가 안 반한 게 천만다행이다. 예전엔 조권이 TV에 나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abracadabra> 춤을 춘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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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우리는 여자 옷을 입는 남자를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 목적이 쇼에 있기 때문일까? 누군가의 재미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묵인할 수 있는 걸까? 재미를 위해 남자지만 여자 옷을 입는 사람을 용인할 수 있다면,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자 옷을 입는 것은 어째서 아직까지 용인되지 못하고 있을까?

우리는 자신이 재밌기 위해 남을 괴롭혀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불쾌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내가 불쾌하지 않기 위해 너를 괴롭힌다.” 왕따를 합리화하는 친구들의 논리와 뭔가 유사한 저 말이 좋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불쾌하지 않기 위해서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서에게 생물학적 이성의 옷을 입지 않도록 하거나, 혹은 입었을 경우에 해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갈 길이 멀다

민낯을 쓰다 보면, 왜 항상 글 끝에서 내 태도가 관조적이 되는지 살짝 수수께끼다. 언제쯤 이 모든 것들이 바뀔지 몰라서 혼란을 겪는 걸까, 어려움을 느끼는 걸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인데, 이 세상에서는 결코 당연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완결의 글이 늘어간다.

사족

2013년에서 201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어그부츠를 샀다. 신세계를 맛본 나는 최대한 그것을 많이 신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평범하게 운동화를 신었던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어그부츠 신은 남자 X나 싫어. 게이 같아.” 오 세상에, 친구야, 너는 한 번의 발화를 통해 나를 두 번이나 욕했어! 물론 게이 같다가 욕이 되는 건 잘못된 것이지만, 그 애가 어떤 함의를 담아 한 말인지 아니까 “엿같다”와 동의어로 생각해도 상관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해외직구로 백 달러나 들여서 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