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찡.

설리가 잠정 휴식을 발표하기 며칠 전, 이 글을 마감했다. F(x)의 화려한 컴백을 경하드리기 위해 쓴 한 오덕의 글은 졸지에 슬픈 추억글이 돼버렸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길거리에선 타이틀인 Red Light가 시도때도 없이 흘러나오고 있고, 팬으로서 이렇게 오랜만의 컴백을 떠나보낼 준비는 전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나 하나 뿐만이 아니라고 살짝 확신해 본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F(x)에게 바치는 한 오덕의 헌정글을 공개한다. 진리*님, 너무 마음고생 하지 말고 하루빨리 돌아오시옵소서. 으앙.

아무리 연예인이 정치인보다 도덕적인 기준이 높은 이 시대의 새로운 조리돌림 아이콘이라고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의 예의는 지켰으면 하겠는데 말이다. 내 설리를 돌려내 이사람들아……. 사진 = SM 엔터테인먼트

*혹시나 모르실 분을 위해. 설리의 본명은 최진리다.

 

‘F(x) 가사 해석’

‘F(x) 뮤비 의미’

 

연관 검색어에 이렇게 ‘해석, ‘의미’가 많이 붙는 아이돌이 또 있을까. 최근 또 다시 정체불명의 가사와 함께 타이틀 ‘Red Light’로 돌아온 F(x)는 아이돌 천국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돌 인듯 아이돌 아닌 아이돌 같은’ 포지셔닝으로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 쯤에서 선감상을… F(x), Red Light 뮤직비디오.

 

사실 F(x)의 컨셉은 매우 일관적이다. 뭔지 정확히 모르겠는 소녀의 심리가 그것이다. 데뷔 때부터 (마케팅 콜라보인 ‘Chocolate Love’를 제외하고서 ) 제목부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라 차타’를 시작으로 그 해의 (반 쯤은 웃음거리) 유행어였던 ‘꿍디꿍디’를 만들어낸 ‘NU ABO’와 같은 곡들에서 F(x)는 ‘나는 달라!’라고 외치고 싶은, 좀 튀고 싶은 소녀들을 이야기했다.

 

SM은 그냥 예쁘고 섹시해서만은 더 이상 장사가 안 되는 아이돌 레드오션을 돌파할 방법을 일찍부터 모색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F(x)는 SM 아이돌들의 전체적인 ‘빵상화’에 크게 기여한 그룹이기도 하다. 이렇게 팔아도 장사가 되니까! 곡의 묘한 구성 때문에 한동안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던 소녀시대의 I got a boy나 SM 특유의 오글거림이 우주를 뚫고 나간 EXO의 ‘늑대와 미녀’가 그 대표적인 예다. (샤이니가 맡고 있는 역할은 여자 F(x)급이기 때문에 – 이 표현에 빈정이 상한다면 F(x)를 여자 샤이니로 치환해도 된다 – 나중에 따로 다뤄 볼 기회가 있으리라 본다.) 물론 그 밑바탕엔 SM의 어마어마한 팬덤 생성력과 유지력이 결합돼 있지만 그것이 팬덤을 넘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없었다면 흥행은 실패했을 것이다.

 

빵상함과 오글거림을 넘어서

동료 그룹들의 빵상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반 농담으로 얘기했지만, 어쨌거나 이 ‘빵상화’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F(x)의 어법은 날이 갈수록 세련되지고 있다. 되돌아보자. ‘NU ABO’ 시절만 해도 F(x)의 컨셉과 타이틀을 보고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치 중학교 소녀가 고등학교가 되고, 허세 돋는 시집들과 시인 등을 만나며 세계가 커 가는 것처럼, 그들의 화법도 자라났다.

네. 이 말 가면 말입니다. 사진 = SM 엔터테인먼트

처음으로 이 그룹의 음악을 보고 ‘예술적이다’라고 느꼈던 건 정규 미니앨범 Electric Shock 때부터였다. 우습지도 않은 말 가면을 쓰고 재킷의 전면에 등장한 다섯 소녀들은 6곡 뿐이긴 하지만 상당히 일관적인 컨셉으로 앨범 전체를 연결지었다. 전기충격 4행시에서 처음 빵 터졌던 사람들이라면 압도적인 사운드와 한국 노래 같지 않은 노래의 구성(실제로 F(x) 곡 대부분의 작곡가는 외국인이다), SM 퀄리티가 녹아 있는 믹싱에 감탄을 표하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이틀을 제외하고 다른 곡들은 ‘여행’이란 분명한 테마가 있었다. 타이틀 빼고는 모두 함께 호흡했던 것이다. 타이틀 곡이 버릴 수 없을 만큼 좋았다는 뜻도 될 것 같다. 시원하게 터지는 여름용 사운드에 가슴이 홀딱홀딱 했다면 그 후 이어지는 제트별 – 지그재그 – Beautiful Stranger – Love Hate – 훌쩍의 5연참 콤보는 모험적인 여행을 떠나는 소녀라는 화자를 분명히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도 여름에 가장 즐겨 듣는 앨범 중 하나다)

‘내가 나빈지 나비가 나인지’ 등의 철학적인 가사까지 중간중간 등장한다. 그런 가사마저 본인들만의 매력으로 ‘아이돌스럽게’ 소화해낸다. 보통 아이돌의 미니앨범이 ‘빵 뜰만한 타이틀 하나’에 ‘잘 팔리는 미디 템포 발라드’, ‘신나는 댄스곡 하나’ 등등의 분명한 조합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F(x)는 이 조합식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SM은 스토리텔링에 결합된 썩 훌륭한 음악이 식상한 아이돌식 음악보다 폭넓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흩뿌린다는 걸 이 앨범의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Electric Shock 전곡 듣기 링크.)

 

자라나는 소녀들

그들의 첫 스튜디오 앨범인 Pink Tape(정규 1집은 <피노키오>지만, 이건 데뷔때부터 그때까지의 싱글 및 EP 리패키지니까 치지 않도록 한다)는 소녀의 오싹오싹한, 그러면서도 귀여운 망상에 가까운 사랑의 이미지를 팝적인 요소를 통해 분명히 했다. 이번엔 심지어 타이틀까지 컨셉과 일심동체. 무려 12곡이나 되는 곡 수에도 불구하고 ‘귀여우면서도 때로는 엇나가서 오싹한’ 사랑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곡의 장르도 다양하다.

게다가 ‘아트 필름’이라는 꽤나 모호한 영상을 티저 방식으로 공개하면서 비주얼 아트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를 높였음은 물론이다. 아트 필름에서 BGM으로 살짝 등장하는 ‘미행’은 타이틀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실질적인 세컨드 타이틀 역할을 하면서 ‘세컨 타이틀 + 타이틀’로 풀 라이브를 하는 F(x)의 컴백 무대 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앨범은 MILK + Red Light로 주로 풀 라이브를 하고는 한다)

 

다른 누가 했다면 ‘아이돌이 정신이 나갔네’라고 하기 딱 좋은 반쪽 화장이란 컨셉은 앨범이 대립과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비주얼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다. 사진 = SM엔터테인먼트

 

크게 이 두 개의 앨범을 거치며 F(x)는 아이돌이라고 부르기에는 뭣할 정도로 분명한 색깔과 일관된 화자를 가진 그룹이 됐다. 그리고 그게 팡! 하고 터진 게 가장 최근에 나온 정규 2집 ‘Red light’다. 나는 제목조차도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소녀’라고 말하기엔 좀 그런 나이가 된 멤버들의 위치를 정확히 보여주는 것만 같다. 타이틀 Red Light에서 소녀들은 현실에 부딪힌다. 그리고 여태까지 표현하던 두근두근하고 설리설리하던 사랑에서 벗어나 ‘진짜 사랑이란 어쩌면 아주 느린 파도’라고 설명한다. 핑크빛 환상이 아니라 빨강빛 현실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돌 가사 따위에 참 거대한 의미를 갖다 붙이네’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나에겐 사춘기를 지난 소녀 자아와 현실의 부딪힘-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인 앨범 곡도 이를 따라가고 있다. 앨범의 화자는 이제 두근대는 첫 사랑니 같은 사랑이 아니라 뾰족뾰족한 가시를 지닌 터질 듯한 감수성의 사춘기 소녀다. 마치 곧 어른이 될 것 같은, 그러면서도 될 것 같지 않은 반항적이고 모순적인. 그리고 그런 모순적인 심정과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은 다양하게 대립되는 이미지들의 향연으로 치환된다. Red Light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 – 고양이와 십자가, 반쪽 화장 등 – 이 그것이다. 그렇다. F(x)는 자라고 있다. F(x)가 표현하는 환상 속의 소녀들이 자라듯이 말이다.

 

아티스트 – 아이돌 – 아티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F(x)가 (어쩌면 영원히) 뚫지 못할 한계는 존재한다. 그것은 그들이 아이돌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이돌 따위가 어찌 대 아티스트의 벽을 넘죠?’ 따위의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아이돌은 어디까지나 프로듀서가 리드하는 컨셉에 따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거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할 정도로 빠져든 이들의 성장기와 컨셉은 결국 루나, 설리, 크리스탈, 빅토리아, 앰버가 아니라 SM의 고급 인력이 뽑아낸 환상일 뿐이다. 이들이 자신이 노래하고 표현하는 컨셉을 직접 떠올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표현했을 때만, 나는 F(x)를 아티스트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아이돌이다.

덧붙여,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독특한’ 컨셉의 탄생은 SM의 창조정신이 아니라 상업적 흥행능력의 촉 덕이 크다. SM은 ‘이렇게 하면 팔리기’ 때문에 F(x)를 이렇게 만들었을 뿐, F(x)가 데뷔를 3년 정도 빨리 했다면 소녀시대보다 더 소녀스러운 컨셉을 가지고 나왔을 수도 있다. 그 시절엔 그게 유행이었으니까. 지금 F(x)는 아이돌 시장에서 이런 존재가 됐다. “나 F(x) 좋아해”라고 말하는 게 크게 부끄럽지 않고, 뭔가 유니크하고 특별한 사람들을 좋아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존재들 말이다. 적당히 유니크하지만 동시에 적당히 대중적이어서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마치 나만의 것 같은, 나의 음악 취향에 특별함을 더해줄 수 있는 그런. 남들보다 튀지는 않으면서 동시에 튀고 싶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를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맛있으니까 합격. 사진 = 마스터셰프코리아 3 중 캡쳐

 

‘마셰코’의 김훈이 셰프가 “소스도 안 좋고, 손질 방식도 안 좋고요. 플레이팅도 구려요. 근데 맛있어요. 맛있으면 다니까 합격 드릴게요”라고 하는 것처럼, F(x)도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냥 ‘좋다’. 그러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합격점이다. 다음엔 이 그룹의 스토리가 어디로 흘러갈 지 나도 모르게 궁금해지니까.

 

거기 당신. ‘이 정도는 나도 알아, 이 덕 되다 만 놈아!’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탐구 심화편으로 건너가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