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우리 모두는 MMORPG 게이머였다. 리니지와 리니지2, 마비노기, 라그나로크 등 국산 MMORPG들이 범람할 때 말이다. 물론 이 시절부터 WOW 등 외국산 MMORPG를 즐겼다면 당신은 힙스터! 그 시절에 친구들 (혹은 게임 속 친구들)과 함께 길드를 이루고 아웅다웅 다투면서도 기적적인 콤보를 넣고 보스몹을 잡는 경험은 이제는 웬지 모르게 추억이 됐다.

야 페상에서 드라큘라 X나 때려잡은 적 없는 사람 저리 나가 훠이 훠ㅣ

야 페상에서 드라큘라 X나 때려잡은 적 없는 사람 저리 나가 훠이 훠이

MMORPG 플레이 경험을 ‘추억’이라 명명한 것은 지금도 명을 근근히 이어 가고 있는 리니지, 블레이드&소울,아이온 등 정말 몇 안 되는 게임들과 WOW 정도 빼고는 망겜이 되지 않은 MMORPG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비노기는 ‘마비노기 2:아레나’의 개발을 2011년 즈음 발표해 놓고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고 (그마저도 이름만 가져온 것일 뿐, 실제로 마비노기 식의 ‘생활형 RPG’가 되지는 않을 공산이 매우 큰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부제도 ‘아레나’ 잖아… 망했어요)  아키에이지는 ‘망키에이지’라는 대단한 칭호를 얻으며 오픈 몇 주만에 PC방 순위에서 실종됐다. 그런데 정작 외국 나가서는 대성공 했다면서요 역시 내수시장 차별이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픈 베타를 연 지 딱 한 달이 된 (자칭 타칭) 대작 ‘검은사막’이 빛의 속도로 망겜의 길을 걷고 있다. 

ㄱ나니? 검은사막 문열기 전 손꼽아 기다리던 우리들

검은사막5

1차, 2차, 그리고 개발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안 하고는 못 배겼던 3차 CBT까지 모두 테스터 신청이 폭주했었고, 게이밍용 컴퓨터를 사려는 사람들은 ‘나 검은사막 나온거 보고 옵션 맞출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그’ 김대일 사단이 몇 년 전부터 별러온 프로젝트인 데다가, 각종 행사 등을 통해 스윽 스윽 유출되는 X나 큰 월드맵과 어마무시하게 세세한 그래픽 표현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떡밥으로 기능했다.

물론 퍼블리셔가 다음으로 결정됐을 때는 상당한 걱정들이 앞섰으나(다음은 검은사막 전에는 대형 MMORPG를 운영해 본 경험이 없다), 몇 년 째 누적된 떡밥들은 노가리와 길드와, 무엇보다도 그 자체가 훌륭한 ‘커뮤니티’가 되는 대작 MMORPG를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었다. OBT 오픈 전 사전 캐릭터 생성이 무려 100만 건을 넘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출시 직후 주말을 끝으로 검은사막의 반짝 전성기는 끝났다. 1월 둘째주 PC방 점유율 순위에서 검은사막은 턱걸이 10위를 차지했다. 점유율은 2.06%로, 계속해서 그 전 주보다 20% 정도씩 쑥쑥 하락하고 있다. 그리고 물론 치고 빠진 반짝 유저들의 길고 긴 리스트(…)에는 나도 있었고, 주변에서 한껏 기대했던 지인 겜덕들도 있었다(…). 사실, 게임을 잠깐 플레이 해 보고 남들의 플레이를 구경해보기 전까지는 이해가 안 갔다. 이렇게 기대가 컸던, 이렇게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이렇게 모두가 명작이 될 거라고 확신했던 게임은 왜 빼박캔트 망겜이 됐는지.

트레일러 보고 심쿵했던 내가 잘못했어 젠장…

검은사막에도 역시 트레일러나 사전 발표한 원화들로 게임의 퀄리티를 함부로 기대하지 말라는 좋은 교훈을 줘버렸다(…).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망키에이지의 트레일러 비디오 왜 유저의 입장에서 검은사막은 재미가 없었는지 툴툴거려 보려고 한다. 그리고 부디 바라건대 개발사와 퍼블리셔가 유저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게임으로, 지금이라도 고칠 건 고쳐 보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1. 혹시 이거 콘솔게임이에여? (갸웃)

이거 아무리 봐도 견적이 콘솔게임인데 MMORPG 맞아요?

이거 아무리 봐도 견적이 콘솔게임인데 MMORPG 맞아요?

검은사막 오픈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당신, 오픈 날에 친구들과 몰려가서 pc방에서 단체로 그 좋다는 커스터마이징도 대충 하고 게임의 세계로 폴짝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윽고 그렇게 함께 뛰어든 친구들을 볼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마는데…

아 이거 방금 지어낸 이야기 아님. 실제로 이렇다. 검은사막의 초반 진행은 다른 MMORPG에 비해 매우 느리고 – 물론 이것이 북미/유럽식 RPG가 아니라 한국식 광렙형 RPG에 익숙한 미개한 한국인들의 불만이라는 쉴드가 있었지만 그럴거면 여기 말고 북미에서 서비스하시든가 – 다른 RPG에 비해 정말로 매우 광대한 맵, 그리고 잦은 마을간 이동을 요구하는 등 덕분에 메인 퀘스트 하나 깨는 데도 제법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물론 그 시간을 느긋하게 즐겨줄 여유 따위는 없다. 제작진이 기대한 것은 커다란 월드맵과 이 풍광에 감탄하며 퀘스트도 쉬엄쉬엄 하고 스토리도 열심히 읽는 유저였겠지만, 뭐랄까, 그런 여유랑 ‘짜증’은 진짜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 차이를 잘 잡는 작업을 우리는 게임의 ‘밸런싱’이라고 부른다.

검은사막에서는 동시간대에 여러 플레이어가 함께 한다는 MMORPG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증발하다시피 했다. 그걸 다행히 개발사도 눈치챘는지 오는 24일에 대규모 점령전 업데이트가 예고돼 있지만, 이미 콘솔게임 같은 플레이를 보고 떨어져 나간 유저들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줄요약: 혼자 광활한 월드맵 달리면서 한 시간 정도 퀘스트 깨다가 내 레벨 10도 안된 거 보고 빡침

2. (대부분의) 유저는 관심 없는 그래픽 퀄리티 자랑

참고로 최소/권장사양 ㅇㅇ. 권장사양의 경우 최소 10만원에서 시작하는 그래픽 사양을 맞추게 됩니다

참고로 최소/권장사양 ㅇㅇ. 권장사양의 경우 최소 10만원에서 시작하는 그래픽 사양을 맞추게 됩니다

검은사막의 그래픽은 확실히 이전 세대의 국산 MMORPG보다 진일보했다. 그래그래, 트레일러만 봤을 때는 정말 예쁘다. 하지만 그 트레일러가 모니터 앞에 펼쳐지는 순간 유저의 플레이 경험은 지옥도가 되고 마는데 제작사는 지옥도가 되는 상옵 미만 컴퓨터를 가진 유저들에는 관심도 없어 보인다. 또, 정작 그 그래픽이 대단한 부분이 플레이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데에서 제작사가 그래픽의 퀄리티를 높여서 유저의 경험을 향상시킨다기보단 그저 ‘우리 이만큼 잘한다 뿌뀨뿌뀨!’하고 자랑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게 된다.

This is Game의 검은사막 커스터마이징 영상. 친구 중 한 명은 ‘차라리 이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성형외과에 팔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이다. 미터로 조정할 수 있는 정말로 세세한 부분들과 xyz축의 등장, 각종 다양한 화장과 문신과 끝도 없이 펼쳐진 커스터마이징의 세계는 커스터마이징 덕후들의 관심을 지대하게 끌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1. 유저가 클릭질을 열라 해도 반응이 너무나 느리고
  2. 되돌리기 따위 없고
  3. 헤어스타일은 더욱 더 망인 데다가
  4. xyz축이 각각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직관적인 설명이 빠져

유저들은 멘붕의 늪에 빠지고 말았고 나도 커스터마이징 1시간 하다가 빡쳐서 대충 함, ‘보던 것과는 다르게’ 매우 귀찮고 직관적이지 않은 시스템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한 짜증이 폭발했다.

지금 유저가 갈 수 있는 전지역을 다 밝혀도 (그것도 어마무시하게 큰데) 전체 월드맵의 20% 정도 밖에 안 된다.

커스터마이징 시스템 뿐만이 아니라, 심리스(seamless)로 만들었다고 하는 진짜 겁-나게 큰 월드맵 및 그 안에 가득 담겨 있는 그래픽 요소들도 유저에게 처음엔 감탄을 안겨주다가 나중엔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가 돼 버렸다. 그래, 땅 참 넓다. 나중에 퀘스트 다 깨고, 만랩 찍고 심심할 때 애완동물 등에 타서 한 바퀴 돌아보면 참 예쁠 수도 있다. 게다가 그 땅에 비가 오고, 흐리고, 날씨가 좋고, 태풍이 불고, 그러한 날씨의 변화가 나뭇잎 한 장과 길가 주택의 유리창에까지 반영된다. 엄청난 퀄리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그 퀄리티를 구현하는 데 있어서 그래픽 사양의 장벽은 압도적이다. 최고사양에서 룰루랄라 게임을 즐길 상황이 안 되는 꽤 많은 수의 유저들에게 다양하고 지나치게 디테일한 그래픽은 오히려 프레임만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았고, 결국 그거 끄고 하면 이 게임의 큰 메리트를 자가 제거하는 셈이 돼 버린다. 어쩌라고 양날의 검이 따로 없다. 고퀄리티의 그래픽 역량이 직접적인 플레이 경험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배경 구현보다 각 유저들의 캐릭터나, 소품 등 지금 불만이 솟구치는 부분에 조금 더 투자됐다면 유저 경험은 이보다 훨씬 나았을 것 같다.

한줄요약: 유저 경험과는 크게 상관없는 그래픽 퀄리티를 높이느라 유저 경험을 오히려 해친 듯한 느낌적인 느낌

3. 닷씨는 경제를 무시하지 마라

하도 여기저기서 경제 경제 해 대는 탓에 정말 게임에서만은 경제를 논하고 싶지 않지만 MMORPG는 어디까지나 유저 간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게임인 탓에, 유저들이 만들어나가는 경제와 그 경제적인 상호작용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의 중요성이 겁나 크다.

※오토주의※

MMORPG에서의 ‘경제’라고 말하면 웬지 작업장에서 잔뜩 돌아가는 오토들과 아X템베이를 생각하게 되지만… 그렇지만… 유저들이 게임 전체의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서로 거래하고 교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MMORPG 안의 세계는 무너지고 만다. 그 좋은 예시로 이제는 검은사막을 들면 될 것 같다. (주륵)

일단 유저간 1:1 거래를 아예 원천적으로 콱 막아버린 조치에 대해서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게임 초기에 1:1 거래를 막아서 스윽 스윽 등장하는 오토들의 존재 의미가 없어지고, 아이템의 불법적인 거래도 애초에 할 수 없게 된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1:1 교환을 통해서 이뤄지는, 각종 비공식적 거래의 가능성은 영영 사라졌다. 오토/아이템 거래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따로 강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지만 분명히 없어서 1:1 거래를 막은 것일 테니까 할 말이 없다.

그나마 1:1 거래 원천 차단은 나름의 이유라도 있다. 그러면 남은 유저들간의 거래 채널은 거래소인데, 거래소 수수료가 30%다. (…) 거래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놈들아 러시앤X시도 대출이자를 이렇게 안받는다  거래소가 사실상 마비돼 버린 건 예견된 결과다.

안 괜찮아(...)

안 괜찮아(…)

뒤이어 각종 버그 때문에 (주로) 강화석의 역할을 하는 블랙스톤이 좌르륵 풀려버렸고, 물론 이것은 어 이거 어디서 본 레퍼토린데 몇몇 고랩 유저와 고랩 깡패 길드에게 독점당했다. 아이템빨로 먹고사는 RPG에서 아이템 격차를 이렇게 벌려 놓고 아직 적절한 수습은 없었다고 하니, 그로 인해 벌어질 유저 간의 격차와 경제불평등(…)은 눈물이 날 지경이다. 당연히 소수의 이득을 본 사람들 빼고는 게임 접고 싶어 지는 게 맞다.

한줄요약: 게임 오픈한지 한 달 됐는데 게임 내 경제가 이미 망쪼에요

4. 설정은 좋은데 아무도 이해 못한 스토리

대부분의 국산 게임들은 선/악의 대립 구도 이외의 스토리를 짜려고 시도 조차 하지 않지만, 검은사막은 타 국산 게임에 비해서 제법 방대하고 심오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스토리를 유저들에게 이해시키는 데에 실패했다. 공홈에 있는 스토리보다 이를 스샷으로 버무려서 재조합한 한 유저의 글이 30배 정도 쉽다 (…). 아무렴 선악 구도 스토리도 안 읽는 유저들한테 그것은 사치였나 

다양한 나라들간의 이해 관계, 제법 세세한 지도자들의 캐릭터와 이에 맞추어 개연성 있게 전개되는 좋은 이야기의 얼개가 짜여져 있지만, 안 그래도 원래 스토리 라인에 큰 관심이 없는 유저들에게 이를 납득시키고 유저가 몰입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이해시키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구성해 놨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 게임을 실행할 때 나오는 비디오 자체도 엄청나게 불친절하다는 말들이 많다.

흑정령은 퀘스트를 진행하면 할 수록 모습을 바꾼다. 처음엔 귀요미였는데 제길

설정을 설명해주려는 시도가 부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유저의 플레이 내내 끊임없이 등장하는 아이템호구 흑정령이다. 별 다른 설명도 없고, 나오는 대사만으로 가늠했을 때는 그냥 플레이어를 안내하기 위한 본격 스토커형 NPC인줄만 알았는데, 스토리를 나중에 차근 차근 읽어 보니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정말 의미심장했다. (심지어 엔하위키에서는 흑정령의 존재를 바탕으로 평행세계 가능성까지 주장할 정도로(…) 의미심장한 떡밥이다) 문제는 그렇게 ‘스토리를 차근 차근 읽는’ 게임 외의 시간까지 투자해야만 게임 속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결론: 장인정신에 몰입하다 유저를 잊어버린 게임

사실 그렇다. 위에서 지적한 모든 문제들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콘솔 게임과 같은 그 맛을 즐기고 솔로 퀘스트를 유유자적하게 깨고 다니는 유저도 분명 있을 거고, ‘그래픽이 왜 문제여? 그렇게 발전한 건 나름 좋은 일 아닌가’ 하며 문제 없이 플레이하는 유저도 있을 거다.

하지만 위의 문제들(그리고 여기서 차마 쓰지 못한 자잘자잘한 문제들 – 단골메뉴인 고객센터의 늑장 대응과 밸런스 붕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리밸런싱과 여기서 피를 보는 유저들 및 강화 시스템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의 근본은 결국 같다. 게임을 만들 때, 유저를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점이다. 

게임은 하나의 훌륭한 종합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지만, 즐기는 ‘플레이어’가 있고 그 플레이어가 이미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상호 작용과 ‘의외의 결과’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서 좋은 인터랙티브 예술이다. 유저와의 상호작용이 없는 게임은 반쯤 죽은 게임이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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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하나의 대작 게임이 골로 가버렸… 아니 우울한 징조를 보이고 있다. 정말 국산 MMORPG는 콱 죽은 걸까? 이미 ‘X나 예전에 끝난’ 게 맞는 걸까. 예전에 그랬듯이, 그리고 지금 검은사막이 그렇듯이 유저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정말로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모두들 와우저나 되라십니다 


주석 1. 게임명 ‘검은사막’의 올바른 맞춤법 표기는 ‘검은 사막’이 맞지만 제작사에서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늘 붙여서 이야기하는 탓에, 그냥 고유명사로 생각하고 이 글에서도 쭉 이어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