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취업을 한 선배나 동기나 친구나 후배 기타 등등에게 취업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내가 들은 대답들은 대충 이랬다.

  1. 힘들지만 될 사람은 된다. 힘내라.
  2. 너만의 독특한 점을 어필해라. 누구나 갖고있는 스펙 소용없다.
  3. 죽을만큼 열심히 해라, 사회는 만만하지 않다.
  4. 너는 걱정할 필요 없지 않을까? 나보다 능력 있잖아.
  5. 이게 다 새누리당때문이야!

어떤 내용이든 간에 듣는 사람이 가히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며 문제의 해결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취업준비 하는 친구들이 조용히 시야에서 사라진다면, 보통 이런 얘기를 피해서인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얘기 싫어서 사람 피하면서 취업준비 했는데, 그 듣기 싫은 취업기를 쓰라고?

더러운ㅅㅔ상!

더러운ㅅㅔ상!

물론 할 얘기가 없는 건 아니다. 면접을 붙거나 떨어지거나 하도 속이 상해서, 몇명 보지도 않은 블로그에 ‘왜 내가 힘든지’를 일기처럼 적어둔다던가 술 마시고 페이스북에 뭔가를 싸질러놓은 적이 적지 않, 아니 사실 꽤 많다. 취업은 가해자가 불분명하고 피해자만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짜증내고 싶어도 대상이 없으니 한만 쌓이고 할 말이 쌓인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 얘기를 취업준비생한테 할 수는 없는 노릇. 지금의 난 그 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었으니까 배부른 사람의 과거 추억 얘기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속을 긁지 않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취업할 때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는 취업 이야기니까.

사실 우리는 서로가 어떤 방법으로 취업을 준비하는지 잘 모른다.

면접준비 모임에서나 가끔 편린으로 맛보는 정도를 제외하면, 서로가 어떤 직장을 지원하는지, 어떤 자소서를 쓰는지, 어떤 부분에서 영혼에 스크래치가 나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서로 나누고 싶어하는 이야기는, 그저 결과 뿐이다. 그래서 붙거나 떨어지거나 라는 결과 외에 모든 이야기는 개인사라는 이름으로 묻어두기 마련이다.

지금 쓰려는 건 바로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다. 이 글은 2년간 취업이라는 곳에 발디디고 살았던 사람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생애사다. 취업과 관련없는 이야기도 많이 나올 것이고, 그런 취업과 관련없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죄책감 같은 것도 써둘 생각이다. 최선을 다한 이야기보다는 딴짓을 하고 놀았다는 이야기와, 왜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놀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변명이 길게 길게 이어질 예정이다. 그러니까, 그냥 소설처럼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취업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실용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특정 직종의 연봉이라던가, 각종 취업 정보 등은 이미 다 까먹었고, 그 당시에 많이 알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이런 정도의 쓸모는 있겠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어느순간 죽을 만큼 힘든 순간이 있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왜 힘든지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그럴 때 혹시나 이 글을 참조하면 자신이 왜 힘든지, 자소서가 왜 써지지 않는지 정도를 잡을 수 있는 실마리는 되어줄 수 있겠다. 아니면 드립이라도 쳐서 힘들고 귀찮을 때 한 번 웃게 해주는 효과라도 줄 수 있게 힘써보겠다.

취업을 어쩌다가 결정하게 되었나

저도 잘 모릅니다(...) 모르거든요 모른다고요

저도 잘 모릅니다(…) 모르거든요 모른다고요

이거 하나 물어보자. 다들 취업, 생각은 하고 사시는지? 그게 생각을 하기도, 안하기도 어려운 주제다. 완전히 생각을 안 하고 살기엔 졸업이라는 미래가 한끝한끝 다가오고, 너무 매여있다면 대학 4년을 취업사관학교처럼 보내게 될 것이다. 나는 좀 심각하게 생각을 안 했던 편이었다. 대단한 곳에 취업하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 하고싶은 직업도 매번 달라졌다. 어렸을 때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 이후로는 뭐 제대로 된 꿈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얼마만큼의 돈을 벌고 싶은지라도 알아야 직장 윤곽이 잡힐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 공무원인 부모님이 매달 용돈을 주셨고, 주말마다 알바도 했다. 모자란 적이 없으니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할지 감각이 없었다. 결혼과 내 집? 애초에 버린 꿈이었다. 그냥 적당히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뭘 해도 특별히 잘 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았다. 한 마디로, ‘그냥저냥 뭐든 적당히 해서 살겠지’?

하지만 대학원생의 현실은…

하고 싶은 게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은 대학원이었다. 사실, 졸업 전에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물론 내 친구들이 인문사회계열에 편중되어있다는 것은 고백해야겠지만) 대부분 대학원을 최소 한 번 이상 생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군복학 이후 어쩌다보니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됐고, 일주일에 한 권씩 책 읽는 하드코어한 스케쥴을 일년 정도 소화하다 보니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대학교 2학년 이후로는 책 읽은 기억이 반이다. 좋아하는 분야는 주로 과학철학, 정신분석, 인류학, 미학, 문학…돈 안 되는 학문만 골라서 좋아했다. 주변 친구들도 ‘이리저리 고민하다 대학원 갈 사람’ 이라는 시선으로 많이 봤었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가 있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어떤 과에 가야하는지 잘 몰랐고, 하고 싶은 공부도 매번 변했다. 문학을 읽다 보면 비교문학을 하고 싶고, 사회학 책을 읽다 보면 문화학이 하고 싶고, 심리학 책을 읽으면 과학철학이 하고 싶은데 어쩌란 말인가. 가고 싶은 대학원이 계속 변하는데 뭘 준비하기도 어렵고 해서 그냥 디립다 책만 읽던 시절이었다. 언젠가는 답이 나오겠지 기대하면서.

언제나 그렇지만 선택의 순간은 어이없거나 시시하게 찾아왔다.

항상 그렇지만 명절이 문제였다. 나의 학비와 주거를 책임지고 있지만 나의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던(않으리라 믿었던) 부모님께 넌지시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집이 그렇게 가난한 편은 아니고, 웬만해서 내가 하려는 일을 크게 반대한 적도 없는 분이라서 큰 문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알지 못했던 사정이 있을 줄이야.

어머님 말씀에 따르면, 몇촌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팔촌 이내의 친척이 대학원에 갔다가 바람이 들어서 미국 유학을 가겠다고 집안을 뒤흔들어 놨다고 한다. 그 유학을 가겠다고 집안 등골을 다 빼서 보내놨더니, 박사과정 마치고 돌아와서는 뭐 대단치도 않은 시간강사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 나로서는 그리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를 풀코스로 늘어놓으시며, 그런거 하지말고 바로 취직하라는 말을 대뜸 꺼냈다.

대학원 가지 마 이 X끼야!

당연하게도, 나는 바람 안 들고 석사 끝나고 취업하겠다고 할 수 없었고(하고싶은 공부는, 음…철학 쪽이다.) 그러므로 집안 등골 안 빼먹겠다고 아버지께 약속할 수가 없었다. 돈과 교환되지 않는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자식새끼를 부모님은 도저히 이해를 못 하셨고, 나는 나대로 인류의 지성에 한 발짝 다가가고 싶은 아들네미의 욕망을 무시하는 부모님께 환멸을 느꼈다. 언성이 끝도 없이 높아지고, 거의 죽네 사네 하는 와중에 어머님은 내가 한번 정신 못차리면 계속 정신 못차린다고 대학원에 갈 거면 죽어버린다 어쩐다 하셨고, 나는 나대로 분이 받쳐서 당신들 돈 받아서 대학원 가느니 돈 벌어서 대학원 가겠다고 소리치고 바로 짐 챙겨서 서울로 올라와버렸다. 그리고, 그게 내 취업 시즌의 시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별 생각이 다 들긴 한다. 뒤늦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공부라는 걸 깨달았을 때, 어떻게든 사기 쳐서 대학원 갔었어야 했나 라는 후회를 제법 많이 했었다. 대학원 붙어놓고 말할 걸, 돈 없이 공부할 방법을 좀 찾아볼 걸 이라는 생각도 자주 했었고. 사실 당시 생각은 정말 ‘취업해 우선 돈 벌고, 회사와 공부를 병행하며 차근차근 대학원 준비하자’ 라는 거였다. 실제로 대학원을 갈 생각은 없지만 공부하고 싶어하는 친구들과 수유너머 비스무리한 컨셉의 무언가를 만들기도 했었다. 아무튼, 나의 취업은 그렇게 의도치 않게 ‘밀려나서’ 시작되었다.

취업을 시작하는 방법.

2012년 설은, 1월 말이었다. 그리고 난 첫 직장에 3월 5일 입사했다. 최초의 구직 기간이 약 한 달 정도였던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억세게 운 좋은 케이스에 속했다.

내가 생각하는 취업은 간단했다. 사람이 필요한 곳이 있다 -> 이력서를 보내고 면접을 본다. -> 되면 성공 안되면 재반복.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없으니 업종이나 부서는 상관 없었다. 영업도 써 봤다가 관리직도 써 봤다가 현장직도 써 보고 진짜 다 써 봤다. 급여? 내가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하는지 감도 없었다. 아니 사실 직장인이 얼마만큼의 돈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지금에야 대충 내가 자립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돈을 써야 하겠구나 라는 감이 잡힌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돈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헤이 거기 취준생, 취준생 기본 5종 세트가 안 됩니까?

계속 쓰다보니 느끼는 것은 있었다. 쉽게 말해 ‘누울 자리’가 보였다고 해야 되나. 당시에 난 토익 성적이 없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력서를 쓸 수 있는 기업이 반에 반토막이 났다. 거기에 어떠한 이중전공도 하지 않은 순수한 인문대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건 의도치 않건 내가 쓸 수 있는 기업은 크기에 관련없이 토익점수를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깨어있는 기업이거나, 아니면 그런 거 정말 필요없는 작은 기업들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쓸 수 있는 곳은 출판사, 잡지사, 벤쳐기업 정도였다.

제일 처음 붙은 곳은 잡지사였다. 커피 관련 잡지였는데 동네 까페에 가면 꽤 자주 놓여있는, 유명하다면 유명하고 아니라면 아닌 잡지였다. 사실 커피를 워낙에 좋아하고 직접 볶아서 내려먹는 수준은 되서, 꽤나 자세하게 이력서를 썼기에 ‘웬만하면 될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던 곳이었다. 이력서에 과거 했던 커피 포스팅 주소나 까페쇼 관람 사진 같은 것도 집어 넣을 정도로 꽤나 공들여 썼던 기억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이력서 붙고 면접에 갔는데..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이죠

문제는 연봉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면접관이 받을 수 있는 연봉과 대충의 근무 조건을 말해주는데, 한 달에 두 번 주말 출근과 월 150만원이 안 되는 월급이었다. 우선 면접자리에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면접 이후 며칠간 여길 가야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다. 월 130 받고 좋아하는 커피 취재하면서 글 쓰고 살아 봐? 그래도 맛있는 커피는 진탕 먹겠지. 아 그래도 최소한 기자라면 뭔가 있어 보이긴 하겠구나. 내 글이 정기적으로 잡지에 실린다니 잡지 들고 좀 자랑하고 싶기도 하겠어. 그런데 월 130이 무슨 숫자지? 내 용돈이 130으로 늘어난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이돈으로 부모님 용돈드리고 월세내고 쌀 사면서 살아야 되는 숫자인가? 그런데 생활비가 얼마가 되야 살 만한 거야?

이게 아마 내가 돈과 근무조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최초의 일이었을 것이다. 회사는 우선 붙고 봐야 하는 것이었지만, 붙은 다음에는 조건 하나하나가 또 걱정이었다. 결국, 고민 끝에 잡지사에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잡지사 쪽 이력서는 다 끊었다.

이력서를 쓰고, 이력서에 떨어지는 생활이 반복되면 보통 두 가지 경향이 나타난다. 첫 번째가 겁을 먹는 경우다. 자꾸 떨어지니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취업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끝도 없는 준비를 해야 취업에 붙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준비없음에 절망하는 케이스다. 두 번째는 정말 막나가는 것이다. 에이 시X 이라고 외친 다음에 아예 형식에 벗어나는 이력서를 쓰면서 얼마나 자신이 돋보이는 인간인지 세상에 드러내려고 노력하게 된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두 번째 케이스였다.

왠지 이 정도 정성을 들였으면 면접에라도 붙여주지 않을까 싶던 이력서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제대로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이었다. 쓸 이력서가 밀려 있는데 편집하긴 귀찮고 해서, 정말 한번 막 나가 보자고 어느 벤처회사의 이력서를 반 페이지로 때워버렸다. 그때 이력서 서두가 이랬다.

자기소개 : 회사의 채용공고를 본 지 30분만에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쓰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채용공고를 본 순간 ‘이건 혼신의 힘을 다한 자기소개서로 답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정자세로 컴퓨터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려대고 있었습니다. 아, 혼신의 힘을 다하기 위해서 이력서의 형식은 최대한 저를 드러낼 수 있는 형식으로 고쳤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의 장점 : 교육과 기획에 대한 저의 장점을 줄줄 서술할까 하다가, 역시 사람은 직접 봐야 안다는 생각에 저의 남은 매력포인트는 비밀로 남겨둘까 합니다. 아니 안 불러주시면 놀러라도 갈 생각이니까, 주저말고 연락주시면 됩니다. 어떤 인재인지는 보는게 더 편하실 테니까요. 저 또한 그게 더 편하고. 그러면 곧 뵙겠습니다.

농담 같지만 딱 한 번 저렇게 썼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이력서를 쓴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저렇게 쓴 이유는

  1.  어차피 벤쳐면 튀는 애들 뽑을 것이다.
  2. 에이 씨 길게 써봤자 다 떨어지더라.
  3. 어떤놈인지 궁금해서라도 면접에는 부르겠지.

였다.

놀랍게도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다른 면접자들 다 보고 결재도장 찍기 바로 전에 모 팀장님이 그래도 얘 얼굴이나 보자 싶어서 면접을 봐서 붙여준 것이라 했다. 옷도 학교에 있다 바로 가서 아주 일반적인 캐주얼이었는데, 그것마저 플러스 요인이었다. 오전 10시에 면접보고 오후 2시에 합격 전화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모로 운 좋은 케이스였다.

G사 – 연봉 2400, 벤쳐기업, IT 교육 관련,

그렇게 나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