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는 (저런 아빠가) 없으니까 

 

요즘 ‘관찰 예능’이 대세란다. 적당히 놀고 먹던 ‘아빠’들이 대거 출연해서 매주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들로 산으로 놀러 나가서 애들 자랑 하면서 돈을 번다. 애들을 통해서 재기한 아빠들은 심심찮게 광고도 따고, 다른 예능에도 얼굴을 디밀기 시작했다. MBC <아빠 어디가>를 제작한 PD는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인기를 끌 줄 몰랐다’는 심경을 밝혔지만 아빠들의 화려한 방송 복귀 통로로 자리매김한 – 덧붙여 아이들 역시 방송에 데뷔시키며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는 – 프로그램의 포맷은 연이어 다른 지상파 방송사에도 전파됐다. 엄마 없는 48시간을 아이와 아빠가 함께 보내는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 그리고 최근 시작한 SBS의 <오! 마이 베이비>까지, 지금 우리나라의 주말은 아이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아빠와 정신이 나갈 정도로 귀여운 아이들에게 점령당했다.

솔까 귀여운건 인정해야지. 진짜 정신이 홀라당 나가는 것 같음. 사진 = 존슨즈 베이비 로션 광고 중

 

‘아빠 어디가’가 제공하는 환상

매주 배낭 하나 들쳐 매고 아빠와 아이들이 들로 산으로, 국외로 농촌으로 쏘다니는 <아빠 어디가>는 관찰 예능이라는 모순적인 말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관찰’이라니. 무엇을 관찰한단 말인가. 출연료를 받고 나온 아빠와 아이들이 수십 명의 VJ가 따라다니는 가운데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것 만큼 부자연스러운 일상이 있을까. 하지만 PD는 이를 ‘내가 예능에서 뭔가 시키지 않고 상황을 주고 관찰만 한다’는 정도의 태도로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 엉뚱하고 발랄한 모습, 아빠들의 자상한 모습과 내뱉는 말 하나 하나까지 자기들이 대본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게 말인지 똥인지 모르겠다. 같이 여행가서 아이들과 뿌잉뿌잉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생계 유지가 가능한데 어느 아빠가 우리 주변의 아빠들처럼 소파에 늘어져 있고, 요리도구와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하겠나.

이런 요리를 만들면서 돈을 벌면서 ‘아빠 노릇’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니 거참 편한 노릇이다.

이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포장해버렸기 때문에 김성주는 쨍알대면서도 다정하고 교육적인 아빠, 윤민수는 아들을 너무 사랑해 마지 않는 듬직한 아빠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고, 이게 마지 그들의 ‘현실’인것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버린다.그리고 그 좋은 이미지는 짭짤한 광고 수입과 방송 광고 판매로 연결되니 제작자와 출연자 모두가 윈윈하는 거다. 배가 아프다.

하지만 현실의 아빠들은 해외여행은 커녕, 가족들의 성화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 캠핑을 갈 시간 조차도 없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연간 노동시간이 2,090시간으로 OECD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국가인데 (첫 번째는 멕시코다), 이는 법정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으로’ 68시간까지 연장 근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록된 노동만 해도 연간 노동시간이 2천 시간이 넘는다는 거다. 거기에 ‘캍퇴근’을 죄악시하는 기업 조직 문화, 기록되지 않은 각종 야근과 잔업 등등까지 생각해보면 노동자의 여가시간이란 간신히 잠자리에 자기 몸 한 몸 누이면 다행인 그런 시간일 것이다.

아들, 딸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캠핑을 가고, 아이들을 위한 연극도 꾸미고, 심지어 무인도에서 생선까지 낚아 식량을 해결하는 <아빠 어디가> 아빠들의 능력은 2천시간 + a를 일하는 아빠들의 노동 시간을 생각했을 때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관찰 예능’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건 존나 일상이야! 주말마다 해야 하는 아빠와 아이의 일상이라고!’를 외치기 시작한 순간 2천시간을 일하는 아빠들에게는 또 다른 짐덩어리가 얹혀진다. 그래서 실제로 쓰는 지는 의문인 각종 캠핑 용품들과 캠핑을 타겟으로 한 상품들은 폭발적인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주말마다 배를 긁으며 늘어져서 TV를 보는 아빠가 육아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주5일 이상의 근무량을 견뎌낸 아버지에게 주말마저도 가족의 요구에 전폭적으로 부흥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겨주는 것은 좀 징글징글하다.

 

아빠가 슈퍼맨이면, 엄마는 뭔데

엄마 없는 아빠-아이의 48시간이라는 비슷하지만 말만 바꾼  포맷을 들고 온 KBS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경우도 크게 다를 거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대도 2천 시간을 일할 리는 없는 예능인, 음악가, 방송인, 운동선수가 아빠로 등장한다. 퍽이나 일반적이고 자연스럽겠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이휘재의 아내인 문정원은 플로리스트로 다시 일하고 싶지만 아이들 덕분에 고민된다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은 적 있다. 사진 = ‘슈퍼맨이 돌아왔다’ 중 캡쳐

이 프로그램은 점점 내용이 전개되면서 자기모순을 빚게 되는데, 그건 ‘엄마 없는 48’시간이라는 컨셉의 개무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엄마들을 매우 자주 등장시키는데 – 이 출연 빈도는 에피소드가 늘어날 수록 늘어나는 것만 같다 – 이 때 등장하는 엄마들은 거의 완벽하게 가부장적인 이상향을 지지한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서 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이는 나의 가장 큰 행복이다, 아이가 없었다면 나의 지금 삶은 어떘을 지 모르겠다, 내가 내 일을 다시 하거나 계속 하려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등의 내용으로 주로 이뤄지는 엄마들의 인터뷰는 마치 양념같이 중간중간 들어가면서 ‘일하지 않는 엄마(혹은 일하더라도 아이가 무조건 중심인 엄마)+돈 벌어오는 아빠+행복한 아이 한~두명(많으면 세명)’의 가족 형태를 지지한다.  귀여운 아이와 말 잘듣는 남편, 마치 누구나에게 있을 법 하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가지기 힘든 깔끔하고 넓은 아파트보다 더 목마른 판타지가 있을까.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가는 게 육아의 전부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사진 = 아빠가 돌아왔다 중 캡쳐

게다가 아빠의 육아행위를 ‘슈퍼맨이 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린 제목도 건방지다. 아빠가 어린 아이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것을 ‘슈퍼맨이 되어 간다’라고 말 할때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1)아버지는 원래 ‘저런 일’들을 잘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2)’저런 일’들은 엄마들이 원래 맡아 하는 일이고, 아버지가 한다면 특급칭찬감이다

 

기분이 안 나쁠래야 안 나쁠 수 없다.

 

덧붙여, 모성애라는 감정을 강제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애를 낳고 키우려고 하는 엄마들은 누구나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하고, 아이에게 될 수 있으면 많은 애정을 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투잡을 구하는 엄마들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강혜정이나 이정원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애들 키울 돈이 없어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하는 엄마들의 현실은 싸그리 무시해버리고 ‘뭐가 되도 좋으니 역시 애들이 우선이어야지’라는 모습을 보이는 엄마들만을 숭배하는 편집은 너무 가식적이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시부모 판타지까지

‘엄마 없는’ 48시간을 표방했지만 엄마를 양념처럼 사이 사이 끼워 넣은 KBS를 보고 자극을 받았는지, 가족 관찰 예능계의 가장 후발주자인 SBS의 <오!마이 베이비>는 아이와 엄마, 아빠로만 스토리라인을 한정하지 않고 장인, 장모, 시어머니, 시아버지까지를 가족 판타지에 포섭하는 놀라운 전개를 보인다. KBS가 제시한 현대 핵가족 판타지의 확장판이라고 할까. 사위의 깜짝 이벤트를 피아노를 치고 스케치북을 넘겨주며 도와주는 장인 장모님이라니.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부갈등의 시월드에서 도피가능한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여기에 자극을 받았는지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새로 합류한 장윤정 가족은 일찍부터 장윤정의 가족사 + 시아버지, 시어머니의 대단한 아량과 포용을 강조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예능은 예능이다

‘관찰 예능’을 보다 보면 우리는 사실 ‘리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제작자의 의도 하에 통제되는 조건들로 구성됐다는 아이러니를 쉽게 잊는다. 그것이 육아의 민낯이라면 육아는 주말마다 산으로, 들로, 외국으로 여행을 가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이유식을 만드는 것의 무한 반복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보다 더 더럽고 귀찮고 짜증나는 일의 연속이다. 육아 예능이 TV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오히려 그렇게 뽀송뽀송하고 예쁘게 육아를 할 수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저런 엄마 아빠가 되지 않으면 부모의 자격이 없는 걸까

 

…. 정말 우울해지지만 말이지. 사진 = 블로그 ‘에코노미의 속다른 이야기’

 

어쩄거나 관찰 예능들은 아직까지 재밌다. 순간 순간 터져나오는 애들의 귀여움은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짓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 웬수같은 예능들은 결혼과 육아의 부담을 모두 개인의 부담이라고 소리 높여서 외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당신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지 못하는 것은 단지 남편이 도와줄 의지가 없어서고, 결혼을 하고 일을 계속 하는 것은 아이에 대한 애정이 부족해서고, 아이 아빠가 주말마다 아이 손을 잡고 들로 산으로 양떼목장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이 아빠가 게으르고 피곤해 하기 때문일 뿐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의 세대는 불안정하다. 일단 취업이나 하고 보자. 그것도 안되면 1라운드 탈락이다. 해도 연애도 망… 어찌어찌 한다 해서 결혼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쳐도 두 몸 누일 전세집 하나 구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단다. 똥같은 현실에서 허부적대는 20대에게 이런 작위스러운 예능을 통해서 결혼과 육아를 함부로 장려하지 말라. 결혼과 육아는 개인적인 문제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문제고, 지금 20대가 부딪히는 현실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20대는 애를 키우기는 커녕 사회에서 쓸만한 인간 하나 되는 것도 어려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