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

라는 문구로 끝맺는 페이스북 글이 있었다. 여느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면 어그로 종자 취급을 받거나 일부가 동조하는 정도만의 관심을 끌었겠지만, 이번 글이 남긴 파장은 달랐다. 바야흐로 서울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고, 세월호 유가족이 정부를 대하는 태도를 문제 삼는 맥락으로 나온 문장이었으며, 글을 올린 주체는 유력 주자 중 하나인 정몽준 전 회장의 막내아들이었다.

인터넷을 타고 글은 급격히 퍼졌다. 확신할 수 없지만 시장 선거의 판세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한다. 결과는 다들 아는 것처럼 박원순 서울 시장의 승리로 맺어졌다. 여기서 마무리가 됐더라면 철없던 한 청소년이 일으킨 해프닝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양상이 달라졌다. 각종 커뮤니티의 글, 혹은 댓글에서 ‘몽주니어 1승 추가’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몽주

몽주니어는 물론 정몽준의 아들을 뜻하는 말이다. 사용 방법 역시 간단하다.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도덕이 지켜지지 않는 사건을 두고 ‘몽주니어 1승 추가’를 적으며 몽주니어의 발언이 옳았음을 암시하면 된다. ‘주니어 무패 가도’ 혹은 ‘몽주니어 연승 행진’ 등의 변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외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경우에는 ‘몽주니어 해외 진출’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퍼거슨 감독의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속칭 “트인낭” -실제 발언과는 차이가 있지만 내포하는 의미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된다.- 은 SNS에서의 헛소리에만 적용되는 반면 몽주니어의 발언은 국민의 전반적인 행동을 대상으로 하기에 훨씬 사용범위가 넓다. 그렇게 ‘몽주니어 1승 추가’는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말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정말 몽주니어는 승리하고 있을까.

먼저 몽주니어의 글을 살펴보자.

사실 이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하겠다. ‘국민들이 대통령이 가서 최대한 수색 노력하겠다고 하는데도 소리 지르고 국무총리한테 욕한다.’는 것을 근거로 국민이 미개하다는 것으로 추측되며, 국민이 미개하기 때문에 그 국가에서 ‘대통령만 신적인 존재가 되어 모든 국민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의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가 미개한 것 아닌가.’라는 문장은 위의 논리에 화룡점정을 찍는 심정으로 썼다고 감히 짐작해본다.

더 깊이 얘기할 것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미개하다의 기준은 자의적이라 하더라도, 국가적 재난 사태에 총 책임자가 적절하지 못한 대응을 하였음에도 친지를 잃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분노하는 것을 미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근거부터가 뻘소리라, 이후는 사실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꺼진 불도 다시 보라고 하지 않던가. 특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행동을 두고 이를 국민 정서로 비약하며 글의 병신력은 점차 상승한다. ‘국민이 미개한데 대통령이 모든 국민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는 부분에서는 기어코 절정을 이룬다. 그 어떤 개화된 국민의 대통령이 모두를 만족시키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뒤의 문장은, 의도했던 대로 화룡점정을 찍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뻘소리를 폭발시키는.

몽주니어의 글은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중에 쓰인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 읽어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한다. 어떻게 됐든, 저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뻘소리라는 것은 변치 않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사용하는 의미는 이게 아니다.

몽주니어가 뭔 말을 했는지가 중요하지는 않다. ‘몽주니어 1승 추가’를 말하는 사람 중 언론을 통해 드러난 몽주니어 생각의 흐름에 동감한 사람은 몹시 드물다. 대다수는 ‘국민이 미개하다’는 문장이 주는 느낌을 하나의 개그 코드로 승화하여 사용할 뿐이다.

재밌는 표현이 빨리 퍼지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표현은 좀 경우가 다르다. 몽주니어의 글에 담긴 맥락을 제외하고서라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행동을 미개하다고 지칭하면 이는 오롯이 그만의 문제가 된다. 그들을 지칭하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데서 오는 남모를 우월감을 얻을 수 있을 테다.

‘몽주니어 1승 추가’라는 표현을 통해 문제는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의 특성이 미개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된다. 왜, 라든가 어떻게 라는 질문은 필요치가 않다. 그들이 미개한 탓이니. 정말로 그러한지도 사실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를 읽는 한 순간 재미있게, 혹은 공감되게 소비되면 그만일 뿐이다.

여전히 많은 곳에서는 ‘몽주니어 재평가행’, 좀 더 발전하여 ‘김치스탄의 현실’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온다. 세세하게는 다르지만 내용 역시 대체로 일관적이다. 국내에서 일어난, 상식선을 벗어난 일을 보여주는 게 이들 내용의 전부다. 마무리로 비아냥대는 문구를 몇 개 넣어주면 ‘쿨하게 나의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글’이 간단히 완성된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 프란치스코 고야

사람 탓은 나중에 해도 된다.

몇 달여 전, 판교 환풍구 참사가 있었다.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환풍구 위로 올라갔지만 환풍구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며 많은 사상자가 난 사건이었다. 많은 사람이 ‘왜 올라가선 안 될 곳에 올라가 사고를 당하느냐.’는 반응을 보일 때였다. 여론과는 다르게 슬로우뉴스에는 ‘판교 환풍구 참사, 사람 탓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시스템으로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슬로우뉴스의 글은 여기서 말하려는 바와는 물론 차이가 있다. 슬로우뉴스에서는 주로 실물로서의 시스템을 강조했지만, 미개를 논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실체보다는 시민의식의 부재가 초래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저에 있는 생각은 크게 다를 바 없다. 미개하다고 지칭된 사람 역시 시스템 아래서 살아간다. 진부하지만,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사회라는 시스템에서.

한국 사회라는 시스템이 이미 미개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라면 조금 논점이 달라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국민이 미개하다’는 말이 널리 쓰이지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미개인 취급을 당하는 상황은 어디까지나 일탈적 상황이기 때문에 화제가 된다. 사회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합의가 이뤄져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에너지가 충분히 있다. 흔히 미개, 혹은 천박하다고 일컬어지는 갑질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차차 개선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콜센터 직원과, 감정노동자 보호 업무협약을 체결한 유통업체의 움직임은 상징적이다.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은 함께 보완해나가야 할 단편이다. 몽주니어는 승리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