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단 불만이 뭐냐면요,

박궁그미씨(연세대·24세)의 지난 학기에 대한 감상이다.

  • 목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주말을 끼고 애매하게 설정됐던 중간고사 기간
  • 어떤 과목은 수업을 하고 어떤 과목을 시험을 치르며 혼란스러웠던 기말고사 기간
  • 공휴일/축제 등과 겹쳐 유난히 휴강이 많았던 과목
  • 그 덕에 1주는 뒤로 미뤄진 발표/보고서 순서

유난히 복잡했고 짧게만 느껴졌던 한 학기였다. 그저 흔한 고학번의 착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올해를 기점으로 명백하게 줄어든 ‘수업시수’가 가장 큰 이유가 됐을 테니까 말이다.

*수업시수 [授業時數] : 교육법시행령을 통하여 각급학교의 각 교과목을 이수하는 데 소요한다고 결정된 시간단위.

지난해까지 연세대학교의 한 학기 수업시수는 16주였다. 16주의 수업시수란, 하나의 과목을 이수하기 위해 한 학기에 총 16주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이 수업시수에 변화가 생겼다. 2014학년도 1학기부터 전체 16주의 학사일정 중 15주차와 16주차의 마지막 2주가 ‘자율학습 및 기말고사’ 기간으로 설정된 것이다.

학교 측의 설명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3학년도>

  • 15주차에 종강한다. → 16주차에 기말고사를 본다.

<2014학년도~>

  • 1안. 14주차에 종강한다. → 15주차에 기말고사를 본다.
  • 2안. 15주차에 자율학습(이라 쓰고 수업이라 읽는다)을 하고 그 주에 종강한다. → 16주차에 기말고사를 본다.

즉, 어떤 과목은 한 학기에 15주를, 어떤 과목은 16주를 수업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체 이 학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

대체 이 학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당최 모르겠다

그렇다면 ‘대체 왜’ 수업시수에 변경이 생긴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해 연세대학교는 ‘교육부에서 지정한 한 학기 수업시수가 15주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제시한다. 명불허전 기승전’법때문에’ 라는 식의 답변인데, 사실 딱히 이유라고도 볼 수 없다. 왜 15주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있어도, 왜 15주로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해주지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학교는 작년까지 16주 수업을 시행해왔던 점에 대해 “보다 넉넉하게 일정을 잡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사실 넉넉하게 일정을 잡겠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잘 감이 오지 않지만, 그 넉넉한 인심이 올해 들어서는 ‘어떤 이유로든’ 사라질 수밖에 없었나보다.

한편, 연세대학교는 수업시수가 16주에서 15주로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기본적으로는 16주를 유지하는 것이며, 교수 재량에 따라 기말고사를 앞당겨 15주차에 끝내도 되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잠깐. 연세대학교가 학사일정을 통해 공지한 2014학년도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을 살펴보자.

“2013학년도까지 중간시험은 학기 8주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행돼 왔으나, 이번 학기부터는 7, 8주차에 걸쳐 진행된다. 이는 지난 2013학년도까지 16주로 유지돼왔던 한 학기 교육시수가 이번 2014학년도 1학기부터 교수의 재량에 따라 15주로 축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연세춘추, 이원재 기자, <2014.5.3, 1729호 :중간시험 일정, 이번 학기부터 변경>

이미 연세대학교는 한 학기 교육시수를 15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니까 학교 측의 입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우리는 수업시수를 16주에서 15주로 줄인 것은 결코 아니다.
  • 그렇지만 학기의 중간은 7.5주다.
  • 고등교육법에서는 15주가 최소 교육시수다.
  • 즉, 법적으로 우리는 최소한은 지금까지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냥 연세대학교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대신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우리 연세대학교는 수업시수를 고등교육법에서 지정한 최소 교육시수인 15주로 축소했습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 재량에 따라 16주차까지 수업을 1주 연장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관대하….응? 사진 = 영화 300

1. 자율학습은 반어적 표현이었겠죠

그렇다면 16주와 15주를 선택하는 주체, 학교가 그토록 강조하는 ‘재량권’을 가진 주체는 누구일까.

“교수가 판단하기에 14주차까지의 수업시간이 충분한 과목은 15주차에 기말고사가 치러진 후 종강될 수 있으나 14주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다른 과목의 기말고사 일정과 관계없이 15주차에도 정규 수업을 진행하고 16주차에 시험이 치러진다.”

연세춘추, 이원재 기자, <2013.11.13, 1720호 : 한 학기 교육시수, 교수 재량 따라 1주 축소 가능해져>

“자율학습 [自律學習] : 전통적인 교수 활동에서와 같이 교사의 사전(事前) 계획에 따라 교사가 학습을 통제하는 진행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학습이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학습의 필요를 느끼고 학습문제를 발견하며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는 학습.”

교육학용어사전,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5.6.29, 하우동설

연세대학교 측의 설명에 전제된 ‘자율학습’의 정의는 교육학사전에 기재된 정의와는 꽤나 달라보인다. 연세대학교가 전제한 자율학습에서는 사전적 정의에서 언급하는 ‘학습자의 자발적인 의지’가 반영될 여지는 전혀 보이지 않으며, ‘교수의판단’이라는 모호한 기준만이 15주와 16주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 수업시수가 학습자의 수업권과 직결돼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결정하는 기준은 지나치게 모호하고 또 일방적인 것이다.

아…말 갖고 장난치지 말라니까요

이처럼 모호한 기준 아래서는 교수에서 학생으로 향하는 수직적 일방적인 교육 시스템, 교수에 대한 학생의 불만만을 강화시키는 제도로 악용될 여지가 적지 않다. 한 사례로, 이번 학기 연세대학교 기말고사 기간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시험기간과 관련된 불만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15주를 진행한 교수는 ‘수업내용이 부족한 것 같다’, ‘수업시수 줄어든 것 알고 일찍 종강한 것 같다’와 같은 수업시수 변경과 직결된 내용의 비난을, 기존과 같이 16주를 진행한 교수는 ’15주 과목이 시험을 치르는 와중에 이 과목은 수업을 들어야 해서 공부할 시간을 뺏긴다’와 같은 비난을 받았다.

어떤 과목은 15주 수업을, 어떤 과목은 16주 수업을 적용하면서 수업과 시험의 일정이 엉켜, 학생들은 오히려 진정한 ‘자율학습’의 시간을 빼앗긴 것이다.

2. 다른 학교는 어떤지 알아나 봅시다

“다른 학교들은 이전부터 15주 수업을 해 왔기에 우리의 16주 수업은 사실상 학생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었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2014.6.17, 사립대 기말고사 한달전부터 자율학습? 학생들 ‘부글부글’>

수업시수 변경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과 관련된 기사에서 학교 측이 제시한 답변이다. 앞서 보인 “보다 넉넉하게 일정을 잡기 위해서” 지난해까지 16주를 적용해왔다는 답변 다음으로 또 미소를 짓게 하는 답변이 나왔다. 그나저나 ‘다른 학교들은 이전부터 15주 수업을 해왔’다는데, 과연 그럴까 궁금하다. 연세대학교와 상황이 비슷한 다른 4년제 종합사립대학은 수업시수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 한양대의 경우 2012년 등록금을 동결하면서 수업시수를 16주에서 15주로 단축했다.
  • 당시 한양대 학생들은 다음 아고라를 통해 “수업일수를 원상복구하거나 수업일수 축소한 만큼 등록금을 인하하라”는 청원 운동을 벌였다. 현재 한양대는 수업시수가 16주로 복구된 상태다.
  •  2012년 수업시수를 16주에서 15주로 단축한 광운대 총학생회도 당시 학교 본관에서 수업일수 단축에 대한 학교측의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2010년 수업시수를 단축한 단국대는 단과대 회장 등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학교 수업일수 단축을 반대하는 글을 연이어 올린 바 있다.
  • 2014년 현재, 고려대, 경희대, 서강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중앙대 모두 수업시수 16주를 적용하고 있다.

현황을 조사해보니, 연세대학교가 말하는 ‘다른 학교들’이 대체 어디인지 슬슬 궁금해진다.

3. “등록금과 관계없다”하면 그러려니 할 줄 알았나요

연세대학교 측은 “법정 수업시수와 등록금에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등록금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다.

헤럴드경제, <2014.1.3, “15주차 수업 계획은 없습니다” ’16주도 아니고 15주도 아닌’ 이상한 대학 수업시수>

그래. 뭐 이런저런 복잡한 이유 또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고 치자. 학교 관계자가 언급한 대로 법정 수업시수가 등록금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궁금하지 않은가? 굳이 ‘교육시장’이라는 개념을 끌고 오고 싶지는 않지만 대학생은 연간 평균 852만원의 등록금(2014, 연세대학교 기준)을 학교에 지불하는 교육시장에서의 한 명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학생 복지, 시설 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 우리의 등록금이 사용된다고 해도 한 명의 소비자이자 학생으로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영역은 학교로부터 받는 교육에 대한 권리, 즉 수업권일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1주 안★녕

쥐도 새도 모르게 1주 안★녕

그러나 2014년, 학교는 새삼스럽게 교육부가 제시한 근거를 제시하며 수업권과 직결된 수업시수 1주를 ‘교수의 재량’에 넘겨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업권의 주체인 학생들의 의견은 반영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15주 수업 + (자율학습 1주) 로 정리되는 연세대학교의 학사제도 변화. 제도의 변화에 대해서 무조건 반대하자거나, 16주가 옳으니 16주로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제도의 대상이 되는 1인으로서 느끼는 불쾌감은 전달하고 싶다.

등록금은 다 받아먹으면서 수업시수를 축소하는 근거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는다거나 ‘수업시수를 축소한 것이 아니’라며 굳이 돌려서 말하는 것, 끝내는 교육부 방침으로 화살을 돌리고 마는 것 등 학교의 태도는 학교가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또 한 번 여실히 보여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