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저렇게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디 뭐 노숙자들 있는 그런… 바람직하지 않다” 명실상부 여당이, 며칠 전에 있었던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여당 국회의원이 한 말이다. ‘노숙자’. 세월호 특별법의 난항에 몸소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빗댄 단어다. 혁신하겠다며, 도와달라며 외치던 새누리당은 이제 세월호의 남의 일로 치부하며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다. 심지어 조사위원회의 비용을 문제삼고, 세월호 특별법은 사법권을 뒤흔든다는 식의 문법으로 유가족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다. 나를 더 비통하게 만드는 건 세월호를 우리의 기억에서 인양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저들 뿐만이 아니란 사실이다.

100일이 넘었다. 애인과의 만남이나 다이어트 기간도 아니다. 국민들을 충격으로 몰아간 세월호 참사가 생긴 지 100일 째 되는 날이다.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구호를 되내었던 한국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안타깝게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고작 100일이 지났지만 우리는 이미 그들을 잊을 준비를 했다. 아니, 전부 잊었다. ‘기적을 믿습니다’ 란 노란 종이의 빛이 바랜 것처럼, 우리의 기억도 빛을 바랬다.

노란 리본을 양복 주머니에 매달며 국회에 등원했던 국회의원들이 망각의 선두에 서있다. 세월호 수습에 총력을 기하겠다던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세월호 유가족의 의견을 무시한 채 ‘식물’세월호특별법을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당정청 관계를 설립하겠다던 그는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게다가 세월호 특위 위원장인 심재철은 유가족들을 ‘돈벌레’로 몰고가는 카톡을 지인에게 뿌렸다. 세월호 특별법의 본질은 보상이 아닌 진상규명인데, 특위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메시지를 지인에게 뿌리고 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풀리지 않은 유가족의 한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방증한다.

 

사진: 한국경제 TV

심지어 국회 국정조사에서 청와대를 제외했다. 구조의 한복판에서도 구조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며 자신들을 분리하던 청와대는 이런 수습에서만 컨트롤 타워인가 싶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보는 풍경은 아마 팽목항이 아니라 세월호 순례단을 쫓는 사복경찰의 어깨 위인가 보다. 불통청와대, 무책임감여당은 엉망진창의 진도VTS와 똑같다.

 

그리고 모두가 잊었다

야당이라고 해서 다른 건 아니다. 새누리당의 안보다는 강하지만 세월호 유족의 안보다는 약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안을 우직하게 몰고 나갈 역량도 있어 보이지 않는다. 능력도 없고, 강한 비판 노선도 타지 않는 제1야당에게 세월호 유가족은 의지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지방선거에서 안전을 의제로 품지 못한 야당, 사회 개혁을 구체적으로 표출하지도 못한 야당. 유가족을 부탁하기에도 미덥지 못한 야당.

국회에만 세월호 참사를 망각한 엑스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 가장 큰 공명을 울린 시민사회도 끔찍한 망각을 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정치권이 대치하면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과 분열이 나타났다. 보수단체인 엄마부대 봉사단은 지난 19일에 있었던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범국민대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하며 맞불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세월호 유가족이 과도한 보상인 ‘의사자 지정’, ‘대학특례입학’ 을 바란다며 ‘유가족들들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라며 비난했다. 그들의 피켓은 사실관계부터 잘못됐다. 세월호 유가족이 바라는 것은 공식적인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다. 어느 순간부터 스멀스멀 생긴 ‘의사자지정, 대학특례입학’ 건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나왔다. 사실관계부터 잘못 파악한 저 사람들이 세월호유가족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비난을 하는 건 맞을까. 저런 더러운 독설을 내뱉는 사람들의 피켓에 ‘엄마부대’, ‘어버이연합’이 붙는 게 싫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사람들이 부모의 이름을 빌리다니. 저건 망각의 범죄다. 저건 부모가 아니다. 저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짓이다.

사진: 한겨레

저 분들이 전부는 아니다. 인터넷 세상도 다르지 않다. 언제나 우리의 공분을 샀던 일간베스트는 지금도 빠지지 않는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을 찢으며 “혐오스럽다”는 일베 회원은 인증샷을 올린다. 그들에게 유족들은 그저 ‘유족충’이다. 사실 그들에게 ‘망각’이라는 이름을 덧붙이기는 민망하다. 그들은 어쩌면 4월 16일부터 공감을 하지 못했던 싸이코패쓰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 전체가 세월호 참사에서 배워야 함을 공감했다면, 그들도 무언가를 배워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그저 광기의 가위질만을 하고 있다. 이미 한국의 시민사회는 저런 범죄에 커다란 공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피로해있다. 아니 어쩌면 세월호가 우리 머리 속에서 휘발되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는 점점 잊혀지고 있다. 각성을 바라던 시민사회는 정말 각성했을까? 역으로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의제가, 세월호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시민사회가 이끌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세월호를 왜곡한다. 정치권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세월호 해결에서 한 발 멀리 떨어져있다. 언론 역시 유병언포르노에 집중한다. 9일 째 되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단식농성엔 아무도 호응하지 않는다. 밀양, 콜텍처럼 여전히 누군가에겐 절실한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망각을 넘어선 행동은 어디 있나

100일 째 되는 지금, 평생 잊지 말고 우울해 하잔 얘기가 아니다. 사건이 생기고 난 후의 폐허에선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사회가 건축되어야만 한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그 의견엔 동의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100일이 되는 지금, 우린 그 동의를 얼마나 실행하고 있는가. 우린 진심으로 그 사회의 재개발에 기여하고 있는가? 되묻고 자조하고 반성해야만 하는 시기다. ‘기다릴게’라는 촛불이 흩날리던 안산의 밤, 바람개비가 돌던 서울 광장의 밤은 미래의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지금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