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이창근, 굴뚝을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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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m 높이의 쌍차 굴뚝. 아파트로 치면 23층 높이이다. CC by 안똔

입을 벌렸지만 숨쉴 공기가 없었다. 내 밑으로 한 사람, 위로 두 사람이 깔려 있었다. 욕지거리, 숨 넘어가는 소리, 몸과 몸이 방패에 부딪히는 소리, 확성기 소리가 물 속에서 듣는 것처럼 전해졌다. 살려주세요, 사람이 깔렸어요. 말소리는 가까우면서도 멀어 먹먹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행히 밀어대던 경찰이 뒤로 물러났고, 누군가 나를 일으켜세웠다. 평택의 쌍용자동차(이하 쌍차) 공장 앞, 2013년 4월 30일, 메이데이 하루 전이었다. 당시 평택의 한 송전탑에는 한상균, 문기주, 복기성 이들 세 금속노조 쌍차지부 조합원이 쌍차 국정조사 실시,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날 내가 있었던 집회의 이름은 ‘저 꽃이 지기 전에’였다.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차 해고노동자 156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뒤, 두 해고 노동자가 쌍차 평택 공장의 굴뚝에 올랐다.

그 공장엔 무슨 일이 있었나

2015년이 되기 하루 전이기 때문인지, 취재를 위해 찾아간 넓은 공장이 스산했다. 쌍차 후문을 찾았다. 공장으로 들어가는 후문 앞에는 경찰들이 서 있었다.

쌍차 노조의 세 번째 고공농성이었다. 예전과 달리 쌍차 사측은 조합원들이 출입하는 일을 아예 막아버렸다. 굴뚝에 오른 노동자들이 먹을 매 끼니, 그들이 아래 세상과 소통하는 데 필요한 배터리를 저 위로 올리는 일조차 사측이 통제하고 있었다. 사람 한 명 주변에 접근할 수 없는 굴뚝이 추워 보였다. 굴뚝에 다가갈 수 없었던 동료 조합원들은, ‘굴뚝남’ 이창근과 김정욱에게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후문 밖에 천막을 치고 굴뚝을 멀리에서나마 지키기 시작했다. 이 천막을 지키기 위해, 벌써 두 명이나 연행을 당했다.

천막 앞에 놓인 난로. 한겨울 천막에 온기라고는 이 난로뿐이다. 천막을 지키는 사람들이 난로에 고구마를 굽는다.

천막 앞에 놓인 난로. 한겨울 천막에 온기라고는 이 난로뿐이다. 천막을 지키는 사람들이 난로에 고구마를 굽는다. CC by 안똔

이 공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왔기에, 이들은 한겨울과 한여름에 길바닥을 전전하고, 연행되고, 체포되고, 감옥에 가며 6년을 싸워온 걸까.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윤충렬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정비지회 부지회장이었다. 그는 굴뚝을 한 번 바라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19일째입니다.”라는 말로 담담히 입을 뗐다. 김정욱, 이창근이 굴뚝에 올라간 기간이었다.

쌍용그룹이 해체된 이후, 쌍차는 대우에 인수되었다가 2004년 상하이그룹에 매각되었다. 매각 당시, 노조는 상하이그룹의 목적이 투자가 아닌 기술 유출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와 사측은 이를 반박하며 쌍차의 매각을 밀어부쳤다. 5년 후, 노조의 우려는 현실화되었다. 속칭 먹튀였다.

윤충렬은 2009년을 회상하며 말했다. “5년만에 도망간 거예요. 그런데 회사가 잘 돌아가면, 도망을 못 가잖아요. 그러니까 (경영 상황을) 어렵게 ‘만든’ 거예요. 어렵지 않은데, 회계 조작을 해서 도망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거죠.”

2007년, 회계조작 이전 쌍차의 부채비율은 168%였다. 보통 양호한 회사라 간주하는 비율이라고 한다. 비교를 하자면, 기아와 GM대우의 부채비율이 180% 정도였다. 그런데 쌍차의 장부 상 부채비율은 2008년 들어 500%를 뛰어넘으며 폭증하기 시작한다. 재무제표 조작이었다.

조작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사측은 재무제표에서 신차종 판매로 나올 매출은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구차종의 매출예측치는 낮춰 계산했다. 그 결과, 6000억원의 이익이 장부에서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내수만으로 지속될 수 없는 특성을 지닌 산업이다. 그런데 쌍차는 수출 물량을 줄여버렸다.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사측은 조건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거나 소유한 토지를 팔지 않았다. 회사가 어렵다는 사측의 주장과는 정면 대치되는 행보였다. 쌍차의 최대주주였던 상하이차는 상황이 어렵다는 말만 할뿐 해고를 회피하고 기업을 살리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왜? 그땐 다 빼갔으니까.” 윤충렬은 상하이그룹이 의도한 쌍차의 기획파산과 뒤따른 정리해고의 이면을 단 한 줄로 정리했다. 기술유출을 위한 인수, 기술유출 이후 자본철수를 위한 회계조작, 그리고 회계조작으로 인한 정리해고가 일어난 것이다. 반발한 노동자들에 대한 징계해고도 포함하여, 사측은 3,000명에 달하는 인원의 감축을 통보했다.

“그래서 저희가 함께 살자, 이건 충분히 살 수 있는 회사다,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사측의 주장이 과연 옳은지 면밀히 검토해야 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는 중립의 입장조차 고수할 생각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노동조합을 깨야 하니까, 특히 또 금속노조잖아요, 지금 박근혜 정부도 노동조합을, 민주노총을 깨려고 하는데, 똑같은 거예요.”

정리해고 앞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2009년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역대 쟁의행위 투표 상 가장 높은 찬성률(86.13%)로 쟁의를 결의했다. 5월 13일, 5년 후 김정욱과 이창근이 다시 오르게 될 굴뚝에서 세 명의 노동자가 농성을 시작했다. 뒤이어 5월 22일, 노조는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전면 총파업에 돌입했다. 77일간의 옥쇄투쟁이 시작되었다.

취재 당일 이창근이 올린 트윗. 아직도 쌍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중에서는 진압 작전 당시 경찰 헬기 소리의 환청에 시달리며 선풍기를 틀지 못한다거나 변기 물을 내리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창근의 트윗에도 경찰 진압이 남긴 트라우마가 묻어나온다. 혹자는 쌍차 진압 사태가 5.18 이후 한국에 가장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말한다.

취재 당일 이창근이 올린 트윗. 아직도 쌍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중에서는 진압 작전 당시 경찰 헬기 소리의 환청에 시달리며 선풍기를 틀지 못한다거나 변기 물을 내리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창근의 트윗에도 경찰 진압이 남긴 트라우마가 묻어나온다. 혹자는 쌍차 진압 사태가 5.18 이후 한국에 가장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고 말한다.

옥쇄파업 기간 동안, 사측은 차례로 공장의 인터넷, 음식, 물, 전기 공급을 끊었다. 용역 깡패를 내세워 공장에 진입하기도 했다. 회사는 공권력과 합동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그리고 8월 4일, 대대적인 폭력 진압이 시작되었다. 사측 직원 및 용역은 파업 참여 인원에게 새총을 쏘는 등 경찰과 함께 움직였다. 현장에서 국회의원들마저 연행되었다. 09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조승수는 연행되며 쌍차 진압 작전을 두고, 청와대가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하고 있다고 울부짖었다. 공장에는 테러 진압에 사용되는 테이저건으로 무장된 경찰 특공대가 투입되었다. 경찰 특공대는 각종 분사기, 가스분사 겸용 곤봉, 장봉 등 기본 장구 외의 장비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경찰 헬기는 최루액을 하늘에서 폭포수처럼 쏟아부었다. 이토록 중무장한 경찰 병력이 투입된 진압 작전 사례는 2009년 이래 지금까지도 없었고, 진압을 지휘했던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은 경찰청장으로 진급했다. 이명박 정권의 논공행상이었다.

진압 이후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은 힘겹게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26명이 죽었다. 그리고 2014년, 회사 측의 회계조작을 인정한 고법 판결을 대법원은 파기환송하고 말았다. 즉, 정리해고는 정당했으며, 해고가 무효라는 고등법원더러 다시 따져보라는 판결이었다. 그렇게 두 해고노동자는 막다른 골목에서 굴뚝을 올랐다.

폭력과 불법, 평화와 합법: 누구의 기준이고 누구의 편인가

대법원은 파기 환송의 취지를 “사측이 쌍용차의 예상매출 수량을 다소 보수적으로 추정했더라도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윤충렬은 이에 대해 “대법원 문제가 있다. 이거 심각하다.”라며 “정리해고는 회사가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해고의 요건인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는 사실상 만들어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회계조작으로도 정리해고가 합법적으로 되는 거고, 콜트콜텍1) 같은 경우 흑자를 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미래에 올 경영의 위기다, 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정당하다고 대법원 판결을 해줬어요. YTN2)도 해고 옳다, 이랬고요. 말도 안 되는 거예요.”

회사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노동자를 징계하거나 자를 수 있는, 노동이 불안한 현실은 살아가기 힘겹고 억울하다. 그러나 그것이 회사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인식 또한 팽배한 현실이다. 생존을 위해 기울어진 권력의 무게추를 거스르려는 움직임에 대한 시선도 차갑기는 마찬가지다. 그 분들 안 됐는데, 그래도 불법 시위나 폭력은 나쁜 거 아니냐. 취재를 진행하러 평택으로 오기 전 들었던 말이었다. 옥쇄 투쟁 당시 경찰 진압은 폭력적이었지만, 그렇다고 공권력에 저항하려 했던 쌍차 노동자들이 매순간 ‘비폭력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말을 전하자 윤충렬은 할 이야기를 많이 쌓아두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을 쏟아냈다.

“그런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시위 현장에 한 번 가보세요. 거기에서 경찰력이, 공권력이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지 (보세요). 합법적으로 집회 신고를 해도 못 하게 해요. 아예 못 들어오게 해요. 이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냔 거죠. 그럼 가만히 손 놓고 있느냐는 거죠. 우리나라 노동법에, 헌법에 보장되는 노동권, 그걸 우리가 지킬 수가 없어요.”

법조문의 내용, 법의 정신은 현장에서 공평하게 보장되지 않는다. 상황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물어보았다.

“(노동자에게) 굉장히 불리하죠. 보세요. 저희가 (공장) 정문에서 집회를 해요. 문은 정문, 후문, 많잖아요. (물류가) 다 들어가요. 그런데 저희들한테 업무 방해를 넣어요. 집회 때문에 물류차들이 못 들어갔다, 그래서 손해배상을 해라. 그리고 재판 가면 판사가 그대로 인용을 해서 벌금을 때려요. 공장이 안 돌아간 게 아니거든. 그런데 업무 방해로, 손해 배상, 가압류, 다 걸리는 거예요.”

실제로 노동쟁의에 있어, 업무방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 굉장히 드물다고 한다. 얼핏 보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제도가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를 손쉽게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실제 공권력이 작동하는 양상은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편을 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는 공권력에 대항했다고 다 재판 가서 벌금을 맞든지 처벌을 받아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자본가는 처벌 안 받잖아요. 예를 들어 유성3)의 구사대들, 처벌받은 사람 거의 없어요. 아주 심각하게 언론에 나오니까, 거기 핵심적인 간부, 용역 업체 운영하는 몇 사람만 처벌을 받았잖아요. 나머지 돈 받고 구사대 용역 들어간 애들은 처벌받은 애 하나도 없어요. 이게 맞냐는 거죠. 두드려 맞고, 병원 입원하고, 다 우린데, 노동잔데, 실질적으로 보시면 두드려 맞고, 벌금 내는 게 시위 참여한 사람이고, 학생이고……. 진짜 이 나라가 안타까운 나라예요.”

법정의 천칭도 결코 해고노동자와 사측에 동등하지 않다. 민변은 쌍차 파기환송을 2014년 최악의 판결로 선정했다. 파기환송 판결의 이유로는 대법원의 보수성에 더불어, 해고노동자 측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쌍차 측의 경제적, 사법적 동원력이 있다. 쌍차는 재판에 대형 로펌들을 끼고 19인의 거대 변호인단을 동원했다. 이들 중 두 명이나 대법원 재판관 출신이다. 고등법원장 출신도 있다. 어찌보면 고등법원에서의 승리가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제도 내에서 평화적으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봉쇄되어 있다. 사측과 보수 언론은 그것을 알기에, 몸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해고노동자들과 자신을 대비시키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은폐하고 사뭇 신사적인 여론 공세를 펼칠 수 있다.

 

쌍용차 옥쇄 파업을 전후하여,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 언론들은 쌍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언어의 칼날을 마구 쏟아냈다. 그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이 누구에게, 누구에 의하여, 누구를 위하여 강제되는 지는 폭력/평화, 불법/합법의 말잔치 속에 사라진다. CC by 조선일보

쌍용차 옥쇄 파업을 전후하여, 조중동을 필두로 한 보수 언론들은 쌍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언어의 칼날을 마구 쏟아냈다. 그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이 누구에게, 누구에 의하여, 누구를 위하여 강제되는 지는 폭력/평화, 불법/합법의 말잔치 속에 사라진다. CC by 동아일보

“저희도 평화적으로 하려고 해요. (사측에) 계속 대화를 하자고 했거든요? 근데 회사는 법적으로 하겠다, 대화 안 한다. 대화할 여지가 없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겠어요. 저기 올라가면 몸 성할 거 같아요? 굴뚝 올라가면 매연이 몸에 굉장히 안 좋아요. 그리고 이 추운 날씨에 저희도 농성 안 하고 싶어요. 농성하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몸도 가고.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거예요. 노동자가 몸밖에 가진 게 없는데,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는 거예요. 그만큼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거예요.

사측은 조건으로 (굴뚝을) 내려오면 대화를 하겠다는데, 우리가 그렇게 얘기했어도 대화를 안 하는데 내려온다고 대화를 할까요 과연? 그러니까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나마 저렇게 올라가서 여론이 되고,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윤충렬은 “그나마 회사가 불안해 했”던 때로 2012년을 꼽는다. 2012년도에 대선이 있었다. 박근혜를 포함하여, 여러 후보들이 쌍차 문제의 해결을 약속하며 쌍차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그리고 2013년, 쌍차 국정조사를 약속했던 박근혜는 취임하자마자 대한문에 있었던 쌍차 분향소를 철거했다. 철거 과정에서 수십 명이 또 연행되었다. 철거 및 연행 과정이 ‘불법적’이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기만 했다. 국정조사는 유야무야되었고,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중구청은 급하게 화단을 만들었다. 꽃이 심어진 자리에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다. 경찰은 꽃을 24시간 지켰다. 화단에 들어가는 것 또한 ‘불법’이었다.

쌍차는 누구의 싸움인가

얼마 전 연대 앞에는 ‘화가 난 젊은이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게시되었다. 이른바 ‘긍정의 힘을 믿는 아버지’는 한 마디로 “남 탓”하지 말라는 꼰대질을 참으로 길게도 써놓았다. 물론 그는 참으로 긍정적인 꼰대다. 최소한 국가와 기업의 밥그릇 챙기기에 대해서는 그렇다. 그러나 노동자가 밥그릇을 챙기려 하면 “제 배만 채우”는 “강성노조”이며 “과보호”이고, 젊은이가 밥그릇을 챙기려 하면 “저질 일자리를 구할까봐 두려워”할 뿐이란다. 어차피 국가와 기업이 외치는 강성노조 탓, 정규직 과보호 탓, 눈높이 탓도 “남 탓”에 불과한 데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밥그릇 뺏기기를 싫어하고 밥그릇 챙기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세상은 더 큰 밥그릇을 가진 사람이 보다 작은 밥그릇을 가진 사람의 밥그릇을 뺏기 쉬운 곳이다. 문제는 결국 밥그릇을 두고 싸움이 났을 때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도중, 필연적으로 장그래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윤충렬은 모두가 장그래라고 언급했다.

“다들 장그래입니다. 스펙을 쌓고 일을 열심히 한다고 정규직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시대예요. 지금 정부가 노동법을 바꾸는데, 자기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우리 해고될 때 그랬어요. 3000명 자르는데, 우리 조합원이 5400명이예요. 비정규직까지 해서 대략 두 명 중에 한 명이 나가는 건데, 근데 다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발표 당일까지.

공무원 연금도 개혁하죠. 그거 개혁 아니거든요. 개악이죠. 정부에서는 더 받는다고 막 떠들어요. 실질적으로는 더 많이 받는 게 아니에요. 학생들이 그걸 반대해야 해요. 공무원 시험 많이 치잖아요. 자기 연금 떨어지는 건데. 공무원 연금을 ‘너무 많이’ 받아갈 수는 없습니다.”

내 밥그릇이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피차 빼앗기는 처지에 남의 밥그릇을 철밥통이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과연 누가 유포한 논리이며 누구를 위한 논리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과보호라는 표현은 이미 그 ‘보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편을 들고 있다. 자신의 밥그릇은 전혀 내줄 생각이 없으면서, 마치 검투사들을 내려보듯 정규직에 안착한 자와 정규직이 되지 못한 자, 정리해고를 당한 자와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자 사이의 생존을 건 싸움을 부추기는 그 누군가다. 그리고 콜로세움을 탈출하는 길은 검투사들끼리의 결투 끝에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윤충렬의 가슴에 세월호 추모 뱃지가 눈에 띄었다. 그간 쌍차 해고노동자들은 희망버스4), 밀양5), 강정6), YTN 해고 기자 복직 투쟁, 씨엔엠 고공 농성7), 세월호 등 ‘남의 싸움’에 연대해왔다. 끝으로 그에게 ‘남의 싸움’에 대해 물었다.

“사실 쌍용자동차가 임금교섭하고 그럴 때, 09년 파업하기 전에, 연대라는 걸 잘 몰랐어요. 해고 되고 나서 (연대를) 많이 다녔죠. 2012년도 대한문에 분향소 차리고 나서 연대의 소중함을 너무 가슴 깊이 알았어요. 분향소를 차리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진짜 연대가 많이 필요하구나. 연대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공감을 하는구나. 우리도 밀양, 강정 이렇게 소외받는 데 가야 한다. 그래서 계속 다녀요.

사실은 저도 해고 안 되고 (공장) 안에 있었으면 똑같아요. 몰라요. 그런데 해고를 겪고 나서는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해야 하는구나 (생각해요). 연대 오는 동지들이 와서 힘을 받아요. 연대의 소중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또 매일 가서 하는 게 꼭 연대는 아니에요. 연대란 굉장히 많은 게 있으니까, 시간 나시면 집회 오셔도 되고. 마음으로 연대해주고 글로써 연대해주고 재정이 되면 재정으로도 (연대해주고). 하다못해 옆에 친구한테, 야 이렇더라, 바뀌어야 하지 않나, 이 말씀 해주시는 것도 큰 연대라고 생각해요.”

쌍차 공장 앞 버스 정류장 풍경. ‘함께 살자’는 구호가 2015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CC by 안똔

쌍차 공장 앞 버스 정류장 풍경. ‘함께 살자’는 구호가 2015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었다. CC by 안똔

자신의 일이 된 후에야 남의 싸움에 연대하는 소중함을 알았다는 쌍차 해고 노동자들을 떠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 2014년이 가고 있었다. 노곤한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0시를 기다려 핸드폰을 붙잡고 새해 인사를 전하는 중이었다. 0시가 되는 순간, 지하철에서도 기분 좋은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강정과 밀양에서도, 스타케미칼8) 굴뚝과 씨엔엠 전광판에서도, 평택 쌍차 공장의 굴뚝과 농성장에서도 2015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윤충렬은 헤어지기 전 덕담 같기도, 부탁 같기도 한 말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고, 정말 잘못이 없는데, 바르게 살아왔는데……. 부당한 일을 했을 때는 같이 도와주고 같이 싸워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스타케미칼도 올라가서 200일이 넘었는데,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고, 저희를 2015년에 꼭, 주위에 계신 분들이 조금 더 알아봐주세요. 그리고 주위에 알려주세요. 그렇게 해서 (쌍차 문제가) 해결이 되면 좋겠습니다.”

새해가 되기 1분 전,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쌍차 얘기를 꺼냈다. 그때 나는 이미 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 못한 글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의 말과 글이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새해 소망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굴뚝 위에서도, 굴뚝 아래에서도 기쁜 소식이 들려오는 복된 새해가 된다면, 그때 떠올린 남의 식상한 말을 인용하며 이 글을 끝맺어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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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편드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1) 전자 기타 등 악기를 만드는 회사로 2007년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2) 이명박 집권 이후 이명박 대선캠프 특보를 지내던 구본홍이 YTN 사장에 임명되자, 공정 보도를 할 수 없다며 항의한 기자들 6명이 징계해고 당했다. 3명만 복직되었으며, 사측은 복직된 3명에게조차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3) 유성기업은 부당해고를 비롯한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았고, 금속노조 유성기업지부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심지어 노조에 맞서 ‘회사를 구하는’ 구사대를 꾸려 쇠파이프와 삼각대를 나누어주고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구사대는 용역 깡패와 기존 유성기업 노동자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구사대에 동원된 노동자 중 한 명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4) 한진중공업이 생산직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시도하자, 김진숙이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을 하는 등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한진중공업 영도 공장으로 총 다섯 차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시민 등을 태운 ‘희망버스’가 도착하여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연대하였다. 이후 노사 합의로 종료되었다.

5) 일부 밀양 주민 및 활동가들은 주민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며 밀양에서 벌어진 송전탑 사업에 반대하며 송전탑 밑 농성 등의 운동을 하고 있다.

6) ‘강정지킴이’들은 이른바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이라 불리는 제주해군기지에 반대하며 강정 마을을 지키고 있다.

7) 케이블 방송 업체인 씨엔엠이 하청을 주고 있던 협력업체 다섯 곳과 계약을 끊음에 따라, 1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에 두 노동자 임정균, 강성덕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고, 2014년 12월 31일, 농성 50일만에 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고용됨으로써 둘은 땅으로 내려왔다.

8) 현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은 기존의 공장을 구입한 뒤,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부지와 기계를 분할 매각하려 하고 있다. 이에 해고 노동자 차광호는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