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 뻔한 말이죠. 어느 정도냐면, 너무 평범해서 누가 그런 말을 하면 문학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 아닐까 의심할 만큼. 많은 문학가들이 어떻게든 해보려고는 하는데, 아마 잘 안될 꺼에요. 반영해야 할 현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뭘 내놔도 현실을 반영했다 말하기 어렵게 되는거죠. 자, 서설이 길었네요. 오늘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김사과의 <천국에서> 입니다.

혹시나 김사과를 알고있는 분들이라면 물음표를 떠올리실 수 있어요. 김사과를 리얼리스트로 분류하다니? 한국 문단에서 김사과의 위치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이긴 한데, 어떻게 봐도 리얼리스트는 아닙니다. 다른 작품-테러의 시, 영이, 미나, 풀이눕는다 등등-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렇죠. 하지만 이 작품만은 좀 달라요. 아주 맘 잡고 현실반영 해보려고 쓴 작품이죠. 김사과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히기도 했구요.

제목은 <천국에서>인데, 내용은 정반댑니다. 세상이 망했어요. 삶에서 희망을 찾아요? 어떻게든 주장해 보세요. 사실 적당한 심술궂음이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웬만한 희망을 이루기 어렵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실제로 작가는 그런 모든 관점을 교묘하게 돌려 까요. 책에 나오는 모든 20대들은 다 그런 관점을 사람으로 표현해 둔 거지요. 집안이 잘 살거나, 못 살거나, 이론적이거나, 힙스터거나, 노동자거나, 된장녀거나 무식하거나 기타 등등. 그런데 모두, 모두 서로를 비웃어요. 노동자는 힙스터가 위선적이라고 까고, 힙스터는 이론가가 위선적이라고 깝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말이 돼서, 소름이 끼칠 정도죠.

김사과가 건드리는 건 항상 ‘어쩔 수 없이’ 수용하는 모순들이에요.

예를 들어, 이론적 좌파인 댄은 여자친구인 써머한테 위선적이란 말을 듣죠. 그렇게 세상 망했다는 말만 하고 있어서 뭐하냐는 거에요. 그런데 우린 알잖아요. 그렇다고 지하 운동조직을 만들거나, 세상을 계몽하는건 사실상 어렵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인생을 바치느니 클럽에서 마리화나 하나 얻어 피는게 낫다는 거요. 그의 여자친구 써머를 볼까요. 써머는 진성 뉴욕 힙스터에요. 엘리트 교육을 통해 받은 예술 감각으로 티셔츠에 그림 그려 팔면서 뉴욕에서 힙하게 쳐노는 게 목적이에요. 당연히 댄한테 멍청하다는 말을 들어요. 그런게 그게, 어쩔 수 없는 거에요. 세상이 망해서 놀겠다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할 수 있죠?

주인공 케이를 볼까요. 어렸을 적 강남의 단맛을 보았다가 아이엠에프로 밀려나고, 어찌어찌 서울로 복귀는 했는데 잘 사는 거 같지는 않아요. 간신히 중산층이라는 끈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케이는 돈에 관심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케이가 살아가는데 돈이 필요없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케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우디 앨런, 스트랜드 헌책방, 잭 캐루악, 윌리엄스버그, 알렉산더 왕, 모스코 뮬, 유기농, 페스카마 15호의 망사스타킹 등등. 다들 어떻게 평가하실 지 모르겠지만, 저라면 한국 중산층 자녀의 평범한 욕망을 구현한 존재라고 말하겠습니다.

보통 다른 작가들이 비슷한 캐릭터를 다룰 때, 그런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워하는 자아를 슬며시 집어넣는다던가 아니면 전형적인 골빈 캐릭터로 타자화시켜요. 그런데 김사과는 그런 짓은 안합니다. 그냥 ‘원래 그렇게 태어난 존재’로 생각해요. 주인공 케이는 정말로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그녀는 비슷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 뿐이지, 돈을 많이 번다던가 미래를 살아나간다던가 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거에요. 이런 캐릭터는 전작 <풀이 눕는다>의 주인공과 비슷한데, 주인공의 대사를 인용해 볼게요.

“난 말이야. 돈을 벌 능력이 없어. 농담하는 거 아니야. 나한텐 그런 능력이 없어. 불가능해. 다들 돈을 벌잖아. 그런데 나는 도저히 할 수가 없어. 생각만으로도 막 죽을 거 같애. 알아, 이런 기분? 너는 모르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많이 노력해봤어. 그런데 안 돼. ”
-김사과, 풀이 눕는다 156p

철이 없죠. 상식적으론 그래요. 하지만 모든 것을 차치하고, 정말 ‘그렇게 태어난 존재’가 있다면? 돈이 없이 어떻게 사냐구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부모님 돈을 뜯어 쓴다든가, 형제 돈을 뜯는다든가 친구의 호의를 받는다든가 운좋게 돈이 생긴다든가 며칠 지속하지 못할테지만 알바를 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생각보다 세상은 기생하려고 맘먹으면 그렇게까지 못살 곳은 아니에요. 그리고 주인공의 생각을 들어보면 쉽게 돌 던지기도 어려워지죠. 주인공이 주장하는 저 말이, 바로 우리가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인간다운 삶을 주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니까요.

“그러면 도대체 내 존재 자체에 충실한 그런 삶이 아니라면 왜 살아야 하나요?”

김사과는 힙스터 작가라고 불리기도 해요. 힙스터 작가라는 말은 김사과가 힙스터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힙스터를 다루는 작가라는 말이기도 하죠. 저는 이 글을 쓰며 김사과-힙스터로 검색했을 때 그렇게 많은 글이 나올 줄 몰랐습니다. 아마 김사과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이 글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후작인 ‘설탕의 맛’ 때문이기도 하고.

전 힙스터라는 존재는 학문적으로 다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사과가 말하는 힙스터의 정의를 볼게요.

한마디로 힙스터들은 더 이상 창조적이며 젊은 반문화/하위 문화가 태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존의 반문화/하위 문화를 패션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는 최첨단 소비 집단이다. 누구보다 까다롭고 앞서있는 문화 소비 집단으로서 이들은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을 취향 판단으로 환원시킨다.

힙스터들은 삶의 모든 영역을 소비자로서 대한다. 즉, 자신을 표현해줄 ‘힙’한 품목을 마치 백화점의 구매 담당자처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모으는데 삶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된 순간 깜짝 놀라 도망치듯이 다음 품목으로 옮겨간다.

다들 힙스터가 아니라곤 하는데, ‘힙’이라는 말이 힙하지 않게 여겨질 뿐인거지 20대의 행동양태 대부분은 전형적인 힙스터의 그것입니다. 그래서 서로를 쉽게 무시하죠. 자신이 차지한 취향이 최고고, 그렇지 못한 취향은 뒤처진 것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취향이 보이면 재빨리 습득하고 안심합니다. 지식도 이제 취향이에요. 예전처럼 계보를 그리면서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최대한 방대하고 광범위하게 아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인문학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새로운 학자 이름을 봤을 때 보이는 눈빛은, 아무리 봐도 힙스터가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찾았을 때 보이는 눈빛이죠. 뭐, 쉽게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확인해보시면 바로 아실 거에요.

김사과는 힙스터보다 더 힙해지기 위해서 이런 소설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요. 분석이 끝난 건 더이상 힙하지 않으니까. 아무튼, 김사과가 힙스터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비판적이기도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거에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모르고, 그런 방법이 있지도 않아요. 세계가 망하고 있다는 걸 알든 모르든 똑같아요.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 내리지 않지?

이 한 마디가 아마 소설의 핵심 주제일 겁니다. 아무것도 무너져 내리지 않는 현실. 차라리, 망가졌으면 좋겠는데 점점 망가지기만 할 뿐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 현실.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안에 있는 모든 캐릭터들이 서로를 우습게 보고 스스로를 자조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어찌 됐든, 도망가려고 노력은 해봐야겠지요. 위에서도 말했지만, 분석된 것은 힙하지 않으니까. 만약 우리가 힙스터라는 것을 제대로 분석해버린다면, 우리는 힙이 더이상 힙하지 않아서 정이 떨어져 버릴지도 몰라요. 그러기 위해서는 힙스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할 겁니다. 김사과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하면서 글을 끝맺을게요.

끊임없이 최신 소비 목록을 갱신하지 않고서는 파산해버리고 말 현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 문제를 온 몸으로 표현해내는 순진한 어린애들이다. 그런 애들은 비단 뉴욕이나 런던뿐이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다. 그들이 아메리칸 어패럴의 브이넥 티셔츠를 입지 않고 아이폰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힙스터가 아닌 것이 아니다. 초국적 자본주의의 단일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얼마간 힙스터들과 같은 위기에 빠져 있으며 비슷한 머저리 짓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런 저런 문제와 성가심이 있다고 해서 이 한심한 멍청이들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사려 깊은 독자라면 이 책의 산만한 논의 속에서, 힙스터들의 그 정신없는 겉모습 속에서, ‘힙’한 문화 상품의 범람과 그것의 끊임없는 갱신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이 포스트모던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