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에 왔다. 12월 10일은 인권의 날이며, 원래 인권헌장이 선포되기로 하였던 날이다.

지난 번 글이 올라가고 누군가는 그랬다. 어떤 법도 아니고, 어떤 강제성도 없는, 효력이 존재하지 않는, 인권이 있다고 말하는 것 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는 헌장 선포의 실패가, 그렇게 억울하며 그렇게 시장을 향해 화살을 돌릴 일이냐고 말했다. 나는 어떤 논리적 대답 대신, 그 자리에 갔다 왔던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풀어보고 싶다.

12월 2일의 기독신문 보도를, 나는 글 쓰는 주제에 소식 듣는 귀가 느려터져서 4일에야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들었던 절망감, 분노, 그리고 불안은 가득 쌓여있던 희망을 무너트렸고, 지난 번 글에서 뱉어낸 이후에도 꽤 장시간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하루나 이틀로 복구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시청을 찾아가는 걸음의 뒤에는, 혹시나 그 불안감을 쫓아내 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양쪽 발꿈치에 묶여 있는 듯했다.

비가 왔다

날씨는 궂었다. 비는 한산하게 내렸다. 출발하기 전 낮,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목요일 시험을 위해 준비하던 도중, 시장님이 면담에 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청에 있는 사람들의 4가지 요구 중 하나는 이루어졌다. 주로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라, 4가지 요구가 무엇인지 모를 사람이 많을 것 같으니 정리하자면

  • 하나.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사실상 용도폐기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 하나. 서울시 스스로가 예정했던 세계인권선언기념일 (12월 10일) 에 선포하기를 촉구한다.
  • 하나. 서울시민인권헌장 공청회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혐오폭력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한다.
  • 하나. 성소수자와의 대화에 즉시 응해야 한다.

원문은 더 긴데 핵심문장만 뽑았다. 주어는 전부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즉, 이뤄졌다는 한 가지 요구는 마지막, 대화에 즉시 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와 박 시장은 10일에 인권헌장을 선포하지 않았다.

CC by 여우

CC by 여우

나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만일 그가 며칠만의 농성으로 “잘못했습니다. 인권헌장 선포할게요.” 이렇게 나올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다수결을 뒤엎는 둥 하는 문제는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면담까지 이루어진 다음 아무런 다음 결과가 없자 실망한 사람들은 분명 존재했고, 내가 도착했을 7시 경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안타까운 표정, 결연한 표정, 용기의 표정이 그 자리에서 역력하게 보였다. 그리고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은 어둡고 어두웠다.

Over the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닥에 빼곡히 붙어있는 색지와 천장에 걸려있는 레인보우 깃발에 눈을 뺏기게 될 것이다. 직후 그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인지를 알고 놀랄 것이다. 내 인생 최초로 그들 한 가운데에 들어가 본 농성장이었다. 가장 최근에 농성장을 본 거래야 영화 <카트>에서 본 게 전부였는데, 상당히 비슷해서 순간 영화관으로 돌아간 줄 알았다.

CC by 여우

CC by 여우

잠시 멍때리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친구들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와서 토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토론의 주제는 그 날에 있었던 사건, 박 시장이 SNS를 통해 사과한 것과 면담에 임한 것 등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농성에 대해, 그리고 인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나와 같은 소수자는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Ally –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이성애자들이다. 물론 그 중에도 내가 모를 뿐 성소수자인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커밍아웃 안 했으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어느 시점까지 타인의 입장이거나 외부에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와 논의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말로 정리하기는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 번 글의 페이스북 링크 댓글들을 보고 내가 느낀 뭐라 할 수 없는 빡침, 그 이야기를 하지 못한 후회, 아직도 이만큼 갈 길이 멀다는 회한 같은 감정과 정반대의 감정들이라면 비슷할까. 고마움이기도 하고, 용기이기도 한.

CC by 여우

CC by 여우

토의가 끝난 다음엔 각자의 단위, 모둠, 그런 소그룹에서 한두 명씩 나와서 논의에 대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단위에서 낮의 면담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농성과 연대와 투쟁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주된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풀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여기 이렇게 있으며 논의해 주었다는 사실은, 어떤 찬송가 소리가 나오기 전까지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반대의 경계선

한 쪽 구석엔 기독교 측에서 나온 사람들이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사실 소리가 그닥 큰 건 아니었기에 처음엔 뭔지 몰랐다. 어느 순간 익숙한 찬송가 멜로디가 나왔다. 그 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 들어, 그 쪽으로도 가까이 다가가서 분위기를 알아보고자 했다.

음, 내가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나 안일하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찬송가가 소리높게, 아니 사실 높진 않고 적당히 울려퍼지고 있는 계단 옆 공간으로 발을 내딛었을 때,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왜요, 왜, 왜!” 나는 굉장히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그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내가 멍청한 거였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뒤돌아 나왔을 때, 그는 나를 뚫어버릴 듯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었다.

인권헌장 공청회 당시 난동을 부렸던 기독교인들 CC by 김태환(노동자연대)

박 시장은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 전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내 글의 페이스북 링크에 댓글을 단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읽을까?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이며 인권적인 내용이라 말할까. 분명히 그런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걸 절망으로 읽는다. 결국 헌장은 박 시장의 때에는 선포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강하게, 매우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시간과 더 깊은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데, 댓글들을 읽어보면 더 많은 시간은 한 백년쯤 될 것만 같고, 더 깊은 사회적 토론이란 비수를 내 맘속에 찔러가며 그 깊이를 재는 것일 것만 같다. 내가 너무 부정적인 것일까. 다수결로 승리하게 된,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그 아픔은 어마무시하게 커다란 것이었는데, 만장일치까지 가야 한다면, 그게 무섭고 불안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여기 커다란 금이 쳐져 있다. 내 쪽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들과, 나와 같은 사람들이 서 있다. 반대편엔 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서 있다. 그어진 금 외엔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 서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금을 넘어가는 순간 나는 공격을 당할 것만 같다. 반대로 나는 그 사람들을 내 쪽 금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내 팔을 잡고 쉴 틈없이 왜냐고 물어보던 그 기독교인은 사회적 토론을 통해 “서로간의 합의 과정”에 나올 수 있을까. 내가 더럽다고 말한 그 페이스북 유저는 단지 나도 약간 다를 뿐,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반대의 경계선을 넘어오는 모습을, 내가 내 삶의 눈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산을 넘어가면 머루밭이 있을까

다음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떤 정치인이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른다면, 드디어 이 나라에서도 차별 받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상상한다.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도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게이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려본다.

CC by INDEX : Design to improve life

시청에 잠시 발을 붙이고 서 있던 것은, 지금 내 앞에 떡하니 서 있는 산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서였다. 모르겠다. 나는 산 뒤편을 본 것도 같다. 그러나 그 전에 오히려 산의 높이가 더 크다는 것만 확인하고 돌아왔던 것은 아닐까. 두려움을 줄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쓸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아픔을 줄이고자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행동할수록 아픔은 더욱 번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