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9월이면 이미 진작에 끝났어야 할 고연전(연고전)을 올해는 10월에 해서 친구들의 중간고사 성적을 떨어뜨리더니, 11월에도 연고대는 사이좋게 일을 저질렀다. 연세대에선 문과대학 학생회 부정선거, 고려대에선 총학생회 부정선거… 이외에도 여러 학교들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있던 것 같은데, 여러 학교를 조사하더라도 결론엔 차이가 없을 것인데 내 어깨만 힘들어 질 테니 참고, 두 학교만 좀 파 보자.

기성언론으로부터 ‘막장’소리 듣는 고려대

11월 2일, 2013년 있었던 고려대학교 47회 총학생회 선거에서 a 선거운동본부 (아래 선본) 의 선거운동본부장이었던 S씨의 페이스북 계정에 여러 캡쳐들과 함께 고발글이 올라왔다. 고발의 주된 내용은 중립을 지켜야 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선거참여, 세칙에 10,000부로 제한된 리플렛의 12,000부 인쇄, 카카오톡 선거독려 등이 있다. 페이스북에서 이 글은 1,000건이 넘는 좋아요, 100회가 넘는 공유를 받았다.

고대생들은 이미 다 봤을 카톡 내용 CC by 노컷뉴스

고려대학교는 당연히 발칵 뒤집혔다. 여러 기성 언론은 신나서 뉴스로 재생산하기에 바빴고, 심지어 중앙일보에서까지 관련 기사가 났으니 아마 이것은 20대 우리 또래가 아닌 기성세대에서도 잘 알려진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노컷뉴스는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4·18 행진을 벌였던 고려대의 기백은 사라지고, 이제는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같은 당 소속 후보를 몰래 도와준 일과 다를 바 없다”며 가감없이 이 사태를 평가했다.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들은 마땅히 탄핵되었고, 모의한 사람들은 제명되었다. 이 결과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S씨는 “(자신이 차기 고대공감대 선거본부의 총학생회) 정후보가 됐다면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내부고발을 할 거였다면 1년이나 지나, 임기가 끝났을 때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건 여러 사람이 동시에 품어 왔던 의문이었다. 그는 어쩌다 보니 자기 입으로 그 가장 속보이는 의문에 대해 해명했고, 결국 제보자나 총학생회나 진흙탕에서 구르고 있던 것은 매한가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내부고발한 사람이 더 낫긴 한데, 이런 경우를 격식있게는 오십보백보, 인터넷 말로는 도찐개찐이라고 하려나.

오마이뉴스가 다른 기성언론들보다 말을 막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이걸 보도하면서 “막장된 고려대 학생회… 학생 사회 몰락을 봤다” 이 제목을 데스크에서 손대지 않은 건 좀 의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 공감도 갔다. 아무튼 이 사태는 막장이 맞기 때문이다. 아무리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 수가 득표수보다 많은 총학생회 선거라지만, 아무튼 국내 유수의 명문대에서 학생들을 대표하랍시고 뽑아 놓은 자들이, 이토록 비겁한 사람들임을 확인하게 된 것은, 한창 날리던 때의 연민정만큼이나 골때리는 사건이었다.

막장일세 막장이야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2014년 12월 11일 오후 9시 57분이고, 이 시간은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총학생회 선거 유세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미 무효가 된 작년 총학생회의 선거 부정은 12일까지의 투표 결과를 통해 어떤 파문을 낳았는지 좀 더 직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카톡유세? 리플렛? 부정선거의 꽃은 투표조작! 연세대

한참 고대 총학생회의 여파가 가실 무렵, 본격 투표함 개봉 및 조작표를 집어넣는 클래식한 부정선거가 2014년에 대한민국 명문 사립 대학교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니,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학생회 선거가 그 무대다. 27일 오후 2시쯤 총학생회와 모든 단과대 학생회 선거가 일제히 각 교내 주요 건물에서 진행중이었는데, 갑자기 문과대학 건물 두 곳에서만 선거가 멈추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이미 그 날 아침부터 전날 확실히 봉인해두었을 투표함의 봉인이 풀려 있는 등, 이상한 징조는 충분했다. 연세대학교 문과대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함이 잠드는 공간의 CCTV를 확인하려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문과대 선거관리위원회실에는 CCTV가 없었고, 복도에 있는 CCTV는, 그 시간에 근방의 복도로 들어갔을 사람을 찾아주었지만 그들이 투표함을 개방했는지 아닌지까지는 말해주진 못했다. 물론 선거관리위원회는 복도로 들어간 사람들을 – 라고 해 봤자 세 명이었지만 – 추궁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아무튼 그 결과 봉인이 풀린 투표함에 범인들이 한 짓은, 몇 표나 했을 진 몰라도, 적지 않은 수의 조작표를 투하한 것이다. 나중에 개방하고 나서 보니 문과대 선거를 총합해 68표의 오차 표가 나왔다고 한다. 무서운 것은, 계산해보니 오차율 5.4%가 나온 것이었다. 연세대학교의 선거세칙에 의해 오차율이 5% 미만이면, 재투표가 되지 않는다. 물론 5% 밑이었어도 조작이 확실해지면 재투표가 되었겠지만, 60여표를 조작했다는 것은 그 오차율 5% 밑이길 노리고 저지른, 매우 계획적인 소행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12월 9일까지 재투표가 진행되었지만 이번엔 총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투표율이 50%을 넘지 못하면 개표하지 않기 때문에, 문과대 선거관리위원회는 결국 11일까지의 연장 투표를 결정했다. 위에서 말했듯 이 글을 쓰는 시점은 11일 밤, 문과대 학생회 투표가 완전히 종료된 시점이다. 최종 투표율은 42%, 결국 개표하지 못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이 나온 것은 학생들이 얼마나 이 사건에 대해 실망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어떤 학생들은 재투표가 진행되기 전, 선거 조작의 범인을 잡는 것이 재투표보다 먼저라고 주장하는 자보를 붙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취재를 시도해 본 결과, 공감하는 학생이 적잖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재투표를 하더라도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한 조작범이 원하던 대로 뽑힐 가능성이 있는데 어떻게 투표를 하느냐는 것이 그 주장이다. 이러한 투표 거부에 의해 문과대 선거관리위원회는 최후의 최후까지 최선을 다해 투표를 독려해 보았지만, 마지막 날 동안 약 5% 정도의 투표율을 높인 것이 그 한계였을 뿐이다.

대학 사회 내에 다시 민주주의가 서기를

부정선거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다수결이라는, 가능한 한 많은 구성원의 의견을 듣는다는 현재까지 나온 방법 중 가장 ‘민주적이어서’ 여전히 존재하는 방법에 대해 손을 대는 것은, 그 ‘민주적인’ 결과에 반발하는 것이다. 기분 같아서는 “지성인의 요람인 상아탑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고 긍정의 힘을 믿는 여우가 고함. 이러고 싶을 지경이다. 나처럼 생각하는 또래들은 한 두 명이 아닌가 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S씨의 글의 댓글이랑 문과대 선거관리위원회의 입장문의 댓글을 하나씩 가지고 와 보았다.

“고대학생은 아니지만, 내부고발자분도 대단하고 고발대상자분들도 다른 의미에서 참 대단하네요. 어디서 (고대공감대의)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글을 본거 같은데, 속은 그들과 다를 바 없었네요”
“문과대학 학생으로서 수치스럽습니다. 그 날 이후 평생을, 죽어가는 한순간 한순간을 후회하십시오. 고귀한 민주주의를 더럽힌 죄 절대. 용서받으실 수 없을 겁니다. 제 반응이 과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닙니다. 우리가 걸어온 역사를 생각하십시오. 민주주의는 결코 우리가 가볍게 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했듯, 고려대학교는 부정선거에 발발해 움직였던 학교고, 연세대학교는 이한열의 이름을 아직도 매년 떠올리는,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었고, 많은 열사가 스러져 간 곳이다. 비단 이 두 학교만이 아니다. 경희대학교 문·이과대학의 벽화 <청년>을 본 적이 있는가? 광주를 위하여 투신한 서강대학교의 김의기 열사는 기억하고 있는가?

경희대 문·이과대학 벽화 <청년> CC by neolook.com

그렇게 우리 앞의 세대가 그 몸을 희생해가며 이룩해온 민주주의인데, 이번 사건은 누군가가 그 탑에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것은 단체이기도 했고 개인이기도 했다. 자신들의 권한·지위를 위해 조직적으로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은폐해 온 고려대의 a 선본, 연세대학교에 조작표를 집어넣은 누군가, 어쩌면 누군가‘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나와 같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렇게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다는 걸 말하려니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도 같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결국 우리들 사이에서 나와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바라보고 자성의 목소리를 발판으로써 내어주지 못한다면, 우리 위에 어깨를 밟고 우뚝 서야 할 민주주의는 결코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