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pride be your guide. 지난 번 글에 독자님께서 저 말에 내가 처한 상황의 답이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졸문을 읽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페이스북에서도, 힘쇼를 하나 받았다. 역시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힘낼 상황은 아닌 것 같지만, 아닌가, 고백도 못하는 짝사랑은 힘내야 할 상황처럼 보이나? 아무튼 이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말 하려고 한 건 아니고. 또 오늘 얘기는 힘내야 할 상황이 맞으니까.

소외된 것을 이겨내기 위해 나 스스로 나에게 자신감을 가져야 하는데, 종종 그것이 너무 힘들 때가 있다. 그 원인은 지난 번 이야기때처럼 내 내면에서 올 때도 있고, 오늘 이야기처럼 외부에서 올 때도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14년 12월 4일 오후 1시 33분, 나는 경악스러운 뉴스를 보고 20분만에 기존에 쓰고 있던 글을 다 지워버렸으며, 지금 이 인트로를 적고 있다.

CC 기독신문

성전환자에 대한 보편적인 차별은 금지되어야 한다.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

기독신문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지난 1일 저렇게 말했다. 이 뉴스는 서울시민인권헌장 폐지에 관한 박원순 시장의 입장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 인권헌장을 둘러싼 논의나 표결의 전개 과정은 슬로우뉴스에서 매우 훌륭하게 보도해 주셨으므로, 나는 특별히 다시 정리하지 않겠다.

사회갈등이 커지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

기도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듯이 인권헌장도 합의가 중요하다.

가장 먼저 링크한 기독신문 기사에 따르면 박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말만 보면, 타당해 보인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지지하는 방향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 정해진 체제니까, 할 수 없이 되어야 할 결정을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슬로우뉴스에서 말해줬듯이 인권헌장 채택은 다수결, 민주주의대로 이뤄진 방식이다. 민주주의마저 뒤엎은 결정이기 때문에 인권변호사라는 박 시장의 과거까지 빛이 바랬다.

특히나 박 시장에게 어마어마한 배신감이 드는 이유는 그가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지지한다는 말을 해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The Examiner에 따르면, 박 시장은 개인적으로 동성애자의 권리를 지지하지만, 한국에서 개신교들이 강하므로, 정치인들이 그러기가[발언 혹은 지지] 쉽지는 않다(원문-“I personally agree with the rights of homosexuals,” Park said. “But the Protestant churches are very powerful in Korea. It isn’t easy for politicians.”)고 말했다.

그는 더욱이 타이완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혼을 허용하는 국가가 될 지도 모른다는 기자의 말에 (“I asked him if Taiwan might be the first Asian country to allow same-sex marriage”) “한국이 최초가 되길 바랍니다.” (“I hope Korea will be the first”) 라고 대답했다.

믿은 내가....

믿은 내가….

공주님이신가? 유체이탈 화법은 정치계에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고 있나 보다. 대체 어떻게 분명히 ‘agree’라고 먼저 말했으면서, “동성애는 확실히 지지하지 않는”다고 같은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처음 당한 일도 아니다

2012년 대선 때 이미 민주통합당은 우리에게 칼을 꽂았다. 우선, 노컷뉴스의 기사를 첨부한다. 글의 중간 약간 이후

“동성애와 종교사학 문제에 대해서는 온도차를 보였다. 양 후보 진영 모두 동성애와 동성혼 합법화에 대한 기독교계의 우려를 받아들이면서도 박 후보 측에서는 법률제정 반대를, 문 후보 측은 국정운영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라는 문장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문재인 캠프와 민주통합당은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에 부정적이지 않았다. 민주통합당은 같은 해 총선 전에도 차별 철폐를 주장했었기에 좀 더 신뢰가 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재인 캠프는 얼마 안 가 이것을 다시 부인했다. 심지어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까지 했다. 당시를 생각하면 어떤 감정이었는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는 문재인에게 표를 줄 생각이었지만, 이 뉴스가 나오고 나서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후보 측에서 동성혼까지 지지해주니, 고민하지 않고 투표할 후보를 정했는데, 그들은 그 약속을 다른 약속으로 꺾어버린 것이다.

“정치인 가득한 곳에서 “이 거짓말쟁이야!!” 라고 외치면, 누군지 어떻게 알아?”

이 일을 겪었기에,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겨도 정치인은 믿지 말아야지 싶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달랐다. 외신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면, 그리고 이 사람이라면 혹시 진짜 행동으로 옮겨주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기독신문의 기사를 읽고, 수업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참아야 했다. 계속해서 사회의 칼날에 내몰려지는 소수자로서의 삶이기에 앞에서 찔리는 것은 무표정하게 넘길 수 있었지만, 의지할 거목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오히려 나를 짓누르겠다고 선포하자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냉정한 인간이라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선 기독교계 표가 동성혼에 찬성하는 성소수자와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동성혼에 반대하는 성소수자도 존재한다) 동성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표보다 몇십 배는 많을 거다. 몇십 배도 예의상 그렇게 쓴 거고, 몇백 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박 시장이 대권을 바라보고 있다면, 아니 그냥 계속해서 정치권에 있을 생각을 한다면 명백히 전략적으로 훨씬 나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머리가 차갑다고 해서 속까지 차가워지진 않는다. 이렇게 눈 뜨고 등 뒤에 칼이 찔렸는데 “와~ 현명한 판단이세여 시장님~ 대선에 나가면 파이팅~” 라고 말해줄 수는 없다. 그가 공주님만큼이나 이렇게 치명적인 말바꾸기를 할 수 있는 인간임을 알게 된 시점에서, 지지하는 정치인한테 가져야 할 신뢰를, 나는 그에게 가질 수가 없다. 차라리 프랑스로 망명신청을 하고 한국 국적을 포기해버리고 말지.

약자다, 나는.

Alienation CC by Ioana Harjoghe Ciubucciu

Alienation CC by Ioana Harjoghe Ciubucciu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내게 화살처럼 쏘아진다. ‘싱글세’를 만들겠다는 것은 내가 꼼짝없이 위장결혼을 하여 돈을 웨딩홀 따위에 한 번에 날리던지 아니면 주기적으로 국가에 납부하던지 양자택일하라는 말이었고, ‘중규직’을 만들겠다는 말은 눈 감으면 보이는 것이 내 미래라는 사실을 현실감있게 전달해줬고, ‘사실 내가 지지한다고 밝힌 건 [기독교계의]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말은 혹시나 하고 품어 보았던 나의 희망을, 철저하게 끌어모은 다음 깨부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 서울 한복판에서, 나는 이들의 말바꾸기와 우리를 향한 적대, 그리고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살 것을 요구하는 무언의 공기를 견디다 못해 찌부러지기 일부 직전이라,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