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부도
: 영업으로 재무제표상 흑자를 내고 있지만 과도한 투자, 기존의 빚으로 인해 부도를 맞는 상황

회계원리 책을 읽다가 우연찮게 본, 뇌리에 남은 단어. 영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 회사가 망하는 상황 자체가 특이하긴 하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랑 닮아서 그런갑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데 파산하는 상황이 나랑 닮았다. 복학하면서 남들이 하는 ‘스펙쌓기’에 뒤지기 싫어 대외활동 몇 가지를 했다. 언론학부 출신이라 ‘~기자단’은 쉽게 될까 싶어서 기자단 대외활동에 집중해 지원했다. 운좋게도 몇 개에 붙어 지금 미스핏츠를 제외하고 3개의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1주일에 최소 2개의 기사를 쓰거나, 1달에 2개 이상을 쓰거나, 자율적으로 쓰거나 기자단마다 규율은 다르다. 그런데 이 놈의 기자단 역시 결국 ‘글쓰기’라서 내 안의 무언가를 짜내야만 한다. 지식, 감성, 검색노가다 등 무언가를 ‘기계적으로’ 짜내서 쓴 글은 내 새끼지만 참 매력없다. 아웃풋은 의무적으로 만드는데, 그 아웃풋이 똥망이다. 그나마 있는 자산도 이런 똥망아웃풋에 쏟아부으니 내 속에 남은 게 얼마 없다. 

아이고 의미없다

대외활동을 한다고 해서 학점을 놓치면 안 된다. 복학한 학교는 여전히 학점 전쟁터, 팀플 전쟁터, 영어강의 전쟁터다. 내 팀플을 캐리해줬던 선배들은 이미 학교를 떠난 지 오래인지라 내가 팀플을 캐리해야만 한다. 고학번이 돼서 하는 팀플은 뭔가 다르다. PPT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할 거 같고, 하지도 못하는 포토샵과 프리미어 프로로 사진과 영상을 편집하지 않으면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할 거 같다. 게다가 고학번이니까 일은 앞장서서 해야할 거 같다. 후배들이 ‘태업’을 하는 건 절대 아닌데, 괜히 내가 해야’만’할 거 같다. 무언의 강박증이다.

대외활동에서 기계적으로 글을 짜내고, 학교에선 ‘성적’에 집착하며 아웃풋을 만들어내니 자연스레 신선한 어떤 ‘인풋’을 넣을 시간이 없다. 1교시 수업을 들으러 6시 30분에 일어나 12시 17분 막차를 타고 들어간다. 정신없이 수업을 듣고, 건강을 위해 학교 헬스장을 갔다오면 어느새 6시다. 팀플과 과제에 치이고, 대외활동 일을 마무리하면 12시가 다 되어간다. 일요일부터 5시간 이상 잘 수가 없었다.

허헠 마 타임 이즈 러닝아웃

대학생이 이런 소리 하니 우스울 수 있다. 직장에서 착취당하는 선배들을 보면 괜히 숙연해진다. 상사한테 쪼인트까이면서 뭘 만들기는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돈은 박봉이다. 비단 일부의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163시간이다. 여기서 IT업계 종사자분들은 1000시간 정도 더하면 될까 싶다. 근로시간이 깡패인 만큼 수면시간은 창렬이다. 평균 수면 시간이 7시간 49분이라는데, 왠지 현실은 더 짧지 않을까 싶다.

생존을 위한 인풋

근로시간은 이런데, 생존하기 위해서 ‘인풋’을 쑤셔넣어아먄 한다. 근데 이 때의 인풋은 좀 질이 다르다. 여태껏 말한 ‘인풋’이 보다 나은 ‘아웃풋’을 넣기 위한 과정이면, 여기는 생존을 위해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존만을 위한 행위. 정시퇴근도 못하는데, 기껏 퇴근했더니만 ‘잘리지 않기 위해’ 다시 학원을 다녀야만 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어학연수부터 인문학 강좌 심지어 ‘탬버린 댄스’까지 무한경쟁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인풋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워킹푸어의 나라다. 일을 해도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워킹푸어는 300만 명에 달하고, 전체 근로자 중 1/4은 근로소득이 중간값의 3분의 2도 되지 않는 저임금 근로자다. 수도권의 주택을 구매하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27년을 저축해야 한다.

그래서 오지게 합니다

생존만을 위한, 영혼없는 인풋에 괜찮은 아웃풋이 나올 리 없다. 아웃풋이 거지 같으니 개인은 ‘자산’을 쌓지 못하고 결국 ‘번아웃’된다. 대외활동, 공모전, 영어, 학점, 알바로 온갖 아웃풋은 만드는데 정작 자신의 내용물을 쌓지 못하는 이 촌극. 읽고 싶은 책보다는 ‘마케팅’, ‘경영’, ‘트렌드’ 책만 읽게 되는 지금. 기업이 원하는 표준 스펙을 쌓다보니 나는 어느 순간 ‘One’은커녕 ‘One of them’이 됐다.

내공쌓기

20대는 무작정 아파야 하거나, 천 번은 흔들려야 하는 시기가 절대 아니다. 그저 차곡차곡 자신 안에 ‘내공’을 쌓아 건강한 인간이 되어야 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 저장하기는커녕 내보내기에 바쁘고, 내보내는만큼 새로운 걸 넣기 힘들어서 슬프다. 생각없이 바쁘게 살기만 하는, 직진 일변도의 인생은 비루하다. 반성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외활동은 좋은 영감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기댈 수는 없었다. 타인의 의지가 둘러쌓인 인풋은 마냥 건강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삶은 축적돼야 한다. 지식과 경험이 조금씩 쌓이고, 그것들이 가치로 승화한다. 그렇게 승화한 가치는 개인의 삶, 나아가 우리 사회를 건설한다. 사회의 발전에는 ‘축적’이 있어야 한다. ‘소진’, ‘번아웃’일변도의 삶은 분명 ‘틀렸다’. 여유롭게 인풋을 넣는 시기를 ‘게으르다’고 비웃거나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라고 비웃었던 내 자신을 반성한다. 더이상 누군가 탈진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