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글이 올라갔다. 링크 글의 좋아요 숫자가 올라가는 것은 뿌듯하면서도, 링크를 눌러 내 글을 읽으면 그 얕음에 슬퍼졌다. 사실 그 글에서 한 이야기는, 같은 상황에서 굳이 게이가 아니더라도 인권감수성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얕은 지점밖에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고자 마음먹었을 때 쓰고 싶었던 글에는 그런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역시 글 쓰는 사람으로선 나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동시에 내가 품어왔던 독을 뱉어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섬세한 글로 풀어낼수록, 자세하게 이야기할수록 아웃팅의 두려움을 동시에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게 내 글을 쓰는 데에 어떤 장벽이 되거나 제약이 되지는 않아야 한다. 만일 그런 점 때문에 두려워서 조금이라도 필요한 이야기를 왜곡하면, 공감도 얻기 힘든데다가 이런 삶이 있다는 솔직한 이야기조차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이 올라갔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많은 내면적인 투닥투닥을 거쳤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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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쓸데없이 길다. 줄이려고 최대한 노력했는데도 더 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내가 이 다음 문을 여는 것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글이 올라간 다음에 벌어질 일이, 정말로 보고 싶지만, 한편으론 무섭다. 그러면서도 내 안을 향해 조금이라도 더 깊은 곳을 헤집어보고 싶다. 무엇이든 글을 쓰고 나는 이 마음을 보내주고 싶다. 이게 어디에 닿는다면 나는 더 나아질지도 모르니까.

중학생 소녀가 된 것처럼 고백할 수 없던 시절

만일 내가 나와 같은, 아니면 나를 이해하는 친구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스트레이트 – 이성애자 – 야”라고 하면 당장 접으라는 이야기부터 듣는다. 당연히, 내가 이제 와서 스트레이트로 뿅 하고 바뀔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게 된 스트레이트도 무슨 일이 생겨도 하루아침에 게이로 바뀌진 않는다. 그러면 내 사랑은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주머니 속 짝사랑이 되어서, 꺼내져서도 안 되고 표현되어서도 안 되며 상대방이 이해해 준다 하더라도 절대 받아들여질 리 없는 외사랑으로 진화할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케이스는 드물지 않다. 사실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의 절반이 남자고, 나는 좀 인간관계를 허투루 한 사람도 아니어서 주변에 꽤 괜찮은 남자는 널려 있다. 그 상황에서 아무에게도 눈길 가지 않고, 아무에게도 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이상한 거다. 다른 사람들은 연애하고 싶다면 그만큼 소수자들끼리 구성된 사회를 많이 찾아가고, 어떻게든 그 안에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기 때문에 괜찮은데, 나는 굳이 다른 사회를 또 방문하기가 귀찮아서 특별히 그러지도 않는다.

나는 금사빠가 아니고, 첫눈에 반하는 상황도 별로 겪지 않아서, 내가 그 동안 진심으로 좋아했던 스트레이트 남자는 4명 정도로,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숫자 같다. 경험해 본 연애 횟수보다 저 사람들 수가 더 적다는 것은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 잘 분간이 안 된다. 한 번은 고등학생 때였고 (쓸데없는 뱀다리지만 첫사랑이었다.) 세 번은 대학 재학 중, 그러니까 최근 몇 년간의 일이고, 가장 최근은 지난 겨울이다.

급히 말머리를 돌려보자면, 사실 이성간의 연애에만 한정하더라도 삼각관계는 은근히 쉽게 발생하던데, 그것도 썸 타는 단계에서도 누가 먼저 고지를 차지하는 지의 경쟁이 종종 나타나던데, 거기에 성소수자를 끼얹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스토리는 이것이다. 여자 A는 남자 A를 좋아했다. 그런데 여자 B도 남자 A를 좋아했다. 남자 A는 유감스럽게도 다른 여자 C를 좋아했다. 남자 A의 친구 남자 B도 비밀스럽게 여자 C를 좋아했다. 꼬리를 물린 여자 C는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안 문 건 아니어서 남자 C를 좋아했다. 그러다가 남자 B와 여자 C가 먼저 사귀었고, 남자 A와 여자 B가 그 비슷한 시기에 사귀게 되었다. 남자도 세 명, 여자도 세 명. 딱 한 번만 읽고 이 관계도를 완벽히 기억할 사람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남녀만 이야기해도 이렇게 복잡한데, 여기에 내가 끼얹어진다. 나는 남자 B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이 관계도의 여섯 명 모두 나랑 무척 친한 사람들이어서, 당시에 어떻게 이걸 정리해야 하나 걱정했던 기억과, 결국 남자 B와 여자 C가 사귀는 것을 보면서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슬퍼하던 기억이 난다.

무척 긴 옛날 이야기 하나의 편린을 꺼냈는데, 결국 저 과거 속에서 세 명의 사람은 자신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용기내어 고백했고, 두 명은 그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벙어리마냥 감정 표현을 금지당한 한 사람이 있었고, 그것은 나였다. 이 뻔한 이야기를 하자고 앞에서 그 고민을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요즘도 당시를 자주 회상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너무나 강한 네거티브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그 때엔 아니었으니까. 좀 더 이뤄지지 않는 짝사랑이라도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었으니까. 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나는 지금 이렇게 등허리에 질투를 눌러앉혔는지 궁금해 질 때마다 옛날을 회상한다.

다수자를 향한 질투

길고 쓸데없는 부연설명은 끝내자. 아직 2013년일 때 시작되었던 가장 최근 이야기. 내가 좋아하던 남자는 여친이 있었고, 그는 다른 여자와 잠시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서로 좋아하지만 여친이 있던 남자는 그 한계를 넘지 않았고, 결국 두 사람은 시작조차 하지 않고 끝났다.

끝날 시간이 다가오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항상 그를 찾았다. 그를 향해 손을 뻗곤 했다. 그는 내 시각 속에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녀에 의해 그 널찍한 시야 속에서 빠져나가곤 했다. 내 눈은 그를 가두기 위해 항상 쫓아다녔다.

추운 겨울 드라마에서 나온 것처럼 같은 목도리를 하고 걷던 두 사람은 또 어느 드라마에서 나왔을 것처럼 이별의 키스를 나눴고,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보거나, 듣거나, 아니면 짐작하거나 하며 나는 전부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고민을 털어놓을 동성 친구로서의 내게 의지했다. 끝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죄책감이 든다며 그는 내게 말했다. “걔랑 나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되게 행복했어. 지금은 멀어졌지만 언젠가 다시 편해지면 좋겠어. 그냥 옆에 있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를 왜 내가 일대 일로 듣는 사람이 되었어야 할까. 하필 나는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람을 핀 걸 목격하고, 바람의 대상을 계속 그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거였을까. 나는 나쁜 마음이 스물스물 자라나는 걸 느꼈다.

나는 울었다. 그는 내게, “너 왜 울어?” 하고 물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내가 형을 질투해서 울어, 라고 대답할 순 없었기 때문에. 동시에 내가 형의 바람이 이뤄지지 않아서 기쁘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억울했다.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소수자로 태어난 것이. 여자친구가 있을 때 그렇게 쉽게 주변에서 다른 여자를 찾아내는 ‘선택’을 나는 하지 못한다는 것도. 굳이 그런 나쁜 짓을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는 그럴 수 있는데, 그는 그딴 행동까지도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렇게 가만히 멈춰 서 있어야만 한다는 게 억울했다. 이런 생각에 그녀에게도 하지 않는 질투를 그에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를 미워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를 사랑해서 그에게는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악의는 다른 곳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바람의 희생자가 된 여자아이는 내가 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걸 헤집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 애 앞에서 그 남자 이야기를 했다. 요새는 뭐 하더라, 뭐 물어보더라, 너랑 친하지 않았냐, 왜 아무것도 모르냐. 그녀가 뒤에서 우는 것을 보았다. 일부러 더욱 심하게 몰아붙여 갔다. 생각해 보면, 가만히 수동적인 피해자로 남지 않고, 내가 다른 피해자를 향해 칼날을 세운 건 이상했다. 그 남자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나, 지금은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마 그렇게 하겠지. 도저히 가슴으로는 그를 공격하지 못하니까. 오히려 아무런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그녀는, 내가 유일하게 질투심을 아무에게도 눈치채이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아마 아직도 모를 것이다. 내가 그녀를 공격한 이유가, 그 남자라는 다수파에 소속된, 자유롭고 나쁜 놈 때문이라는 것은.

나는 소수이고 싶지 않다

친구들과 있을 때 가장 소외감을 느낄 때는 그들이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다. 누가 예쁘다, 누가 몸매가 좋다, 어제 헌팅 술집에서 만난 여자애들과 놀았는데~ 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럼 시큰둥한 나를 보고 친구들은 말한다. 재미가 없느냐, 고민이 있느냐. 그들은 그들끼리의 즐거운 생각에서 빠져나와 나로 인해 분위기가 약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순간마다, 미안함과 질투심이 동시에 나타난다. 나 때문에 이야기가 맥이 끊겼다, 는 감정도 존재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또 하나의 감정은, 나도 이성애자여서 그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끼면 좋겠다. 이렇게 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타자화하고 싶지 않다, 는 것.

쓰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눈물이 흐른다. 눈물에 색깔이 있을 수 있다면 이것은 분명 검은색일 것이다. 이뤄지지 않는 사랑과, 마이너리티로서의 억울함과, 질투에 기반한 여성혐오와 또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남성에 대한 혐오로 얼룩진 눈물은 투명할 수도, 하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