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끝나간다. 다들 나이 먹기 싫어서 부정하고 있겠지만, 벌써 12월이 코앞이다.

2015

약 한 달 뒤부터 내가 밥먹듯이 할 일 feat.그림판

올 봄에 절친한 친구가 직접 물감으로 날짜까지 정성껏 써 준 나의 예쁜 2014년 달력도 이제 한 장 밖에 안 남았다. 글을 읽는 분들의 달력도 당연히 12분의 1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뜻밖의 친구 자랑. 사랑한다 친구야.

뜻밖의 친구 자랑. 사랑한다 친구야.

핸드폰에 달력 서비스가 탑재되기 시작한 이후로 달력을 사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탁상 달력이나 벽걸이 달력을 걸어 놓고 중요한 날이나 일정을 펜으로 표시해 놓기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서 다가오는 2015년 달력은 무엇을 골라야 잘 골랐다고 소문이 날지 벌써부터 고민이 된다. 이제는 해외 직구까지 가능하다보니 그야말로 수만 개가 넘는 달력 디자인들이 넘쳐난다. 그 중에 가장 예쁜 달력? 당연하다. 안 예쁜 달력은 필요 없다. 하지만 겉모습만 예뻐서는 부족하다.

나는 마음까지 예쁜 달력을 원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쁜 달력은 어떤 달력인가?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의 달력? 계절감이 살아나는 풍경화나 풍경 사진의 달력?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긴 달력? 예쁘고 멋진 사람들이 쭉쭉빵빵한 몸매를 자랑하는 달력? 기발한 아이디어로 종이 낭비를 막는 만년 달력?

최근 트위터에서는 이런 달력이 주목받았다.

twitter

꽃미남(…) 아일랜드 의사들이 달력 구매자들에게 자신의 몸매를 선물하는 동시에 간질환자들에게도 선물을 주기로 한 것이다. 이 달력이 아름다운지는… 음… 나는 일단 하나 산다면 책상 속에 숨겨 놓고 특별히 너무 (몸이) 외로운 날에만 볼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마음씨 고운 달력들은 많이 있다. 게다가 디자인도 아일랜드 의사 달력보다 훨씬 백배 천배 예쁘고 손님들이 구경하기에 안 쪽팔린다. (…) 지금부터 대표적인 예쁘고 착한 달력 딱 3개만 깔끔하게 소개하겠다.

1. 슬로워크 with 아름다운재단의 [한걸음달력]

CC by 슬로워크

이름부터 예쁜 [한걸음달력]은 말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에 대한 탁상달력이다. 한 달이 지나갈 때마다 한 걸음씩, 순우리말로 된 걸음걸이를 이르는 말이 등장한다. 사진이나 그림이 아니라고 해서 실망할 일은 없다. 각각의 걸음마다 진지한 궁서체, 끔찍한 신명조체, 돋는 돋움체가 아니라 그 걸음걸이를 느낄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슬로워크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1월은 화장걸음, 2월은 내친걸음, 3월은 발끝걸음, 4월은 아장걸음, 5월은 명매기걸음, 6월은 비척걸음, 7월은 비척걸음, 8월은 모걸음, 9월은 곱새걸음, 10월은 왜죽걸음, 11월은 터벙걸음, 12월은 황소걸음이라고 한다.

선공개된 걸음걸이 타이포그라피. 명매기 걸음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CC by 슬로워크

한 달, 한 달이 지날 때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달력을 넘기면 뚜벅 뚜벅 한 해를 살아나가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슬로워크는 “내가 걸어가는 시간에도 변하지 않을 시간을 기록해 줄 달력, 그 걸음걸이에 힘을 주고 위로가 될 수 있는 달력”이라고 상품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 달력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말 그대로 한 걸음, 한 걸음이 도전과 같은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달력이기 때문이다. 달력의 판매 수익금은 전액 아름다운재단의 장애아동, 청소년 맞춤형 보조기구 지원사업에 기부된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스스로 세상에 발을 내딛고 자신의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걸음달력]이야말로, 나에게는 작은 기부 한 걸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위대한 한 걸음이 되어 줄 수 있는 상품인 것이다.

이 상품은 텀블벅에서 후원금 모집 형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최소 후원금액은 만원부터 시작이고, 원한다면 더 많은 돈을 내고 살 수도 있다. 초과 후원금도 같은 곳에 기부된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 달력의 가치만큼 돈을 내면 된다. 중요한 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이 달력의 후원기간은 내일 모레(12월 1일)가 끝이다. 달력의 내면도 외면도 마음에 든다면 서둘러야 한다. 판매처https://tumblbug.com/ko/walk2015

2.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의 [빛에 빚지다]

밀양의 빛, 강정의 빛, 마을의 빛. 출처 시사인 “이 달력, 첫눈처럼 다가오네” 2014/11/28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이하 최소한)은 사진가들이 2009년 용산참사 현장 목격을 계기로 “사진으로 세상에 최소한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고민과 다짐을 하게 되면서 생긴 단체다. 뚜렷한 실체가 있다기보다 매년 말 [빛에 빚지다]라는 달력을 제작하기 위해 모였다가, 제작이 완료되면 흩어지는 프로젝트성 모임이다.

‘최소한’ 스스로 소개하는 [빛에 빚지다] 달력이 품은 마음은 이렇다.

“달력의 이름 “빛의 빚지다”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한 줌 빛에, 숨 막히듯 아름다운 풍경에, 가슴 저린 삶에 빚을 지고 사는 사진가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참여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달력의 판매 수익금은 실제작비를 제외한 모든 금액을 그해 가장 연대가 시급한 곳에 전달합니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choisohan.org

전문 사진작가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지는 만큼, 사진 퀄리티는 아주 훌륭하다. ‘최소한’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기륭전자 해고노동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해왔다.

올해는 마을과 마을이야기다. 국가의 폭력으로 사라지고 있는 마을 공동체, 경남 밀양과 제주 강정마을의 사라질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았다. 어쩜 그렇게 예쁜지 모를, 마을의 사람 냄새가 고대로 느껴지는 공개된 사진을 보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노트형 스케줄러와 탁상달력이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격은 배송비 포함 13000원이다. 12월 10일 수요일까지 예약판매한다. 판매처 http://choisohan.org/order.php

3.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아기와 냥~!”

길고양이와 사람의 공존을 위해 활동하는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이하 고보협)는 매년 길고양이 후원 달력을 판매하고 있다. 달력에 들어가는 사진은 고보협의 회원들이 직접 공모한 사진들이다.

아기와 고양이라니 벌써부터 귀염사 조짐이 보이는 조합이다. 출처 고보협

올해의 주제는 길고양이 사진이 메인이 아니다. “아기와 냥~!”이라는 주제처럼 아기와 함께하는 고양이의 사진이 들어갈 예정이다.

매년 발생하는 9만 9천여 마리의 유기동물 중에서 많은 수가 임신과 출산, 결혼을 이유로 버려진다. 고양이도 개도 마찬가지다. 동물이 있으면 털이 아기의 기도로 들어가서 숨이 막힌다든가, 질병이 옮는다든가, 아토피가 생긴다든가, 임신 중에 동물을 키우면 기형아가 탄생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 때문에 많은 생명이 무책임하게 길거리에 버려진다.

<어린왕자>의 현명한 여우가 말했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말 옳은 말이다.

여우가 준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보협의 2015 “아기와 냥~!” 달력은 혹시나 임신과 출산과 반려동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소문 때문에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을 섣불리 방기하는 사람이 없도록 홍보를 위해 제작되었다. 고보협 회원들이 공모한 아기 또는 임산부와 고양이가 함께 하는 사진으로 제작된다. 달력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기생충 및 감염병 연구소를 비롯해 의학 전문가들이 참여한 임신, 출산과 반려동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함께 포함될 예정이다. 달력 판매금은 모두 고보협에 후원되어 길고양이 구조 및 지원에 쓰인다.

달력은 회원들을 대상으로만 판매된다. 최저 후원비가 월 1만원으로 저렴하고, 고보협이 심각한 재정위기에 시달리는 만큼 평소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이 달력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회원가입을 추천하고 싶다. 회원가입은 좀 부담스럽지만 달력은 사고 싶은 사람이라면 미스핏츠 페이스북 페이지로 메시지를 보내주시면 회원인 홍시가 대리구매해서 배송비 무료 및 아주 사소한 선물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리겠다. 선착순 10분은 까짓 거 공짜로 드린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직 판매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이나 상품 이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10명한테 쏘겠다는 얘기를 하는 근거 없이 용감한 나…) 하지만 작년에 고보협에서 판매한 2014 “대장냥이 달력”을 참고해서 추측해보면, 올해도 상당히 질 높은 달력이 나올 것 같다. 2014 대장냥이 달력 리뷰는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뽀짜툰>을 연재 중인 작가 ‘유리’의 리뷰로 대신한다.

대략 이런 스타일이다. CC by 유리

대략 이런 스타일이다. CC by 유리

셋 다 예쁘고 의미 있는 달력이라서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세 개 다 사면 고민 끝! 주위 사람들한테 좀 선물도 하고 그러면 좋지 아니한가. 돈 많으면 두 개씩 사서 막 뿌려라. 난 돈도 없는 주제에 10개 살 거다. 좋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시간도, 인력도 할애하기 힘든 평범한 우리에게 ‘돈’이라는 최소한의, 그러나 아주 중요한 도움을 건넬 수 있는 이런 기회는 매우 소중하다. 놓치지 말자. 2015년은 금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