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개할 안타까운(?) 소개팅은 최근의 경험담이다. 흔한 케이스는 분명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아니길 바란다. 흔한 케이스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이걸 글로 쓰는 것이 과연 의미있는 일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이 글을 읽으며 스스로를 위로할 누군가를 위하여.

마녀사냥에서 곽정은씨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연애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그 기분 때문에 우리는 연애를 한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연애는 낭만적이어야하고, 연애를 위한 전초전 ‘소개팅’도 그래야한다. 첫만남부터 번쩍 스파크가 튀는 것 까진 아니어도, 서로에게 낭만을 기대할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그 다음이 있는 법이다.

옆구리가 추운 계절, 로맨스가 필요해.

그래서인지 소개팅에는 성수기가 있다. 설렘 반 외로움 반의 공기가 감도는 낭만의 계절, 봄과 가을. 말하자면 대학생들에게는 개강 전후. 벚꽃놀이는 누구랑 가야하나, 크리스마스는 누구와 보내야하나 낭만을 꿈꾸며 신세한탄을 하게될 때 쯤이다. 이런 ‘계절’적인 성수기는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주변에 외로운 사람들이 많은 타이밍에 나는 (비자발적…)솔로였고 (따라서 주변의 동정을 사고 있던 터라) 여차저차 몇 건의 소개팅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갓 제대하고 복학을 앞두고있거나, 복학한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이건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이야기다.

어차피 어디에선가 ‘을’이되어 남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 세상. 연애를 상상할 때 우리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를 떠올리지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시사 다큐멘터리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내가 만났던 그의 삶은 입시와 군대와 취업이 전부였다.

내가 그를 만나고 떠올리게 된 것은 로맨스 코미디가 아니라 시사 다큐멘터리였다. 그의 세상에 위의 3가지 말고 다른 것은 없는 듯 했다. 그러는 그도 낭만을 찾으려 소개팅에 임했을 것이 분명한데, 대체 왜!

저 Actor 이름에 당신이, Actress이름에 내가 들어가는 게 베스트가 아니겠어요?

그래도 처음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 그는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앞서 나는 이것을 최근의 경험담이라고 했다. 방학 때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가 소개팅을 주선했고, 전형적인 소개팅처럼 연락처를 건네주고 조금 늦은 저녁 시간에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시작했다.

상당히 늦은 시간까지 연락은 이어졌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나는 깨어있었고, 그는 나에게 맞춰주려는듯 계속해서 연락을 해왔다.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보였으니까. 내가 여행지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은 내가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야 가능했고, 그 전까지 연락은 어쩌다 마주친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수박 겉핥기였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열거하는 수준의 대화였으나 내가 관심있는 분야의 이야기였고, 카톡은 아주 약한 연결고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런 단조로운 대화도 큰 문제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문제는 첫 만남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 그는 쉴 새 없이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나는 이 문제를 온전히 그의 문제라 말하고 싶지 않다.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대체 누가 그 남자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갓 제대하고 2학년 복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소개팅도 엄청난 준비를 하고 나오셨다. 어떤 식당에 갈지 여러 곳을 미리 찾아보고 오셨고, 메뉴까지 미리 봐두신 듯 했다. 서로가 편해질대로 편해져 결국에 끝을 본 연애를 마치고 소개팅에 나온 나에게, 이런 준비는 (비록 찰나였지만…) 좋은, 낯선 기분을 주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다른 것을 준비하느라 목적을 잊으신 듯 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질문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제외하고) 나의 학업 진행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내가 몇 학년에 재학중인지, 휴학을 했었는지를 물어왔다. 일단 나는 물어오는 질문에 답했는데,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그는 내 페이스북을 미리 찾아보고 왔고, 어느 학교 어느 과에 재학중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1차 멘붕… )그리고 자신도 취업을 위해 나와 같은 전공을 복수전공으로 준비하고 있다며 전공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

아… 네…그러셨구나….

다행히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그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꺄르르꺄르르한듯 보이는 식사를 했다.

분명 1시간 정도 대화를 했는데, 그의 초점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조리개가 고장난 카메라 마냥, 그의 입에는 깔대기가 있는 듯 무슨 이야기를 해도

기, 승, 전, 입시/군대/취업이었다.

소개팅의 목적달성, 탐색을 위해 최근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그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고, 요즘의 입시 경향을 정말 자세하게 말해주었다.(2차 멘붕…) 서로의 공통분모인 주선자 이야기로 운을 띄우면, 군대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그와 주선자는 군대 동기이다.) 우리가 만나기 전에 카톡으로 하던 이야기로 운을 띄우면, 그는 또 군대에서의 에피소드로 답했다. (3차 멘붕…)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걸어가면서 나누었던 대화이다.

(길가에서 Jeff Bernat의 노래 Call you mine이 나오고있었다.)

나: 요즘 이노래 참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멜로디 흥얼흥얼)

남: 어떤 노래요?

나: 지금 나오는 노래요! 제프 버넷! (멜로디 흥얼흥얼)

남: 아, 힙합 좋아하시는구나(꺄르르꺄르르)

나: (4차 멘붕…) 아, 아니에요. 아까 노래 잘 못들으셨봐요. 요즘 나름 인기있는 팝이에요.

남: 아, 저는 군대에 있을때 …

소년… 다른 얘기도 좀 해 봐… 응…?

어떤 대화주제를 꺼내 놓아도 그의 답변은 입시와 군대와 취업 3대장에 관한 것이었다. 아무리 대화 주제를 바꿔 보려고 해도 그의 회피율은 엄청났고, 이 남자는 소개팅에 나온 우리의 목적이 ‘연애’라는 것을 잊은 듯 했다. 나는 이런 그에게 낭만을 기대할 수 없었다.

마지막 한 방 : 제발 그러지 말아요. 안타까우니까.

나름 조용하고 천장높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최근 감명깊게 본 영화의 러닝타임 보다 긴 시간동안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망의 K.O.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에게 돌려 돌려 말을 꺼냈다.

‘EBS TV입학사정관’이 아니라 ‘ MBC 우리결혼했어요’가 보고싶다고!

(그에게서 다시 대한민국 입시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왔다.)

나: 입시 공부가 많이 기억에 남으시나봐요!

남: 사실 제가 좀 찌질했어요. 저는 전형적인 외고찌질이에요.

나: …….

다른   얘기 할까요? (웃음) 이번 방학 때 특별한 계획 있으세요?

남: 개강하기 전에 미리 적응도 할 겸 취업준비도 할 겸 학교에서 스터디 하고 있어요.  OO씨는요?

소개팅에서만큼은 입시, 취업, 군대 말고 로맨스의 그림자 좀 찾아보자고요!

반나절을 함께 식사도 하고, 카페도 가고, 산책도 했다. 사람을 한 번 보고 판단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다. 하지만 소개팅으로 시작된 만남은 한 번이 될지, 두 번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수 차례 멘붕을 남긴 채 소개팅은 끝났다.

그런데, 찌질이, 그것도 외고찌질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다. 아마 그냥 그저그런, 별로였던 소개팅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었을 일인데 안타까워서 이 이야기를 세상에 풀어놓게 된 계기가 바로 저 단어다. 찌질이.

녹색창에 ‘찌질이’를 검색해보면 “소위 일진회 아이들을 가르키는 말 강자에겐 비굴하고 약자에겐 강한 모습을 하는 아이들” 이라고 나온다. 그가 자신을 찌질이라고 칭한 것은 자신이 일진회라는 뜻은 아닐테고, 네이버 웹툰 《찌질의 역사》의 ‘지지리도 못난’을 의미하는 ‘찌질’을 말하는 것이이라.

안타까운 첫만남 이후에도 우리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영화를 보자는 그의 애프터에도 응했다. 앞의 ‘수박남’의 사례에서처럼, 나는 그를 한번 더 만나보고 싶었다. 그의 삶은 정말 입시, 군대, 취업이 전부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 나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약속을 미룰 수 밖에 없었고, 그는 나에게

“참 바쁘게 사시는 것 같네요. 그렇게 시간이 없으세요? 수업 열심히 들으세요. 저는 이만 꺼질게요.”

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안타깝게도 이게 끝이다.

참 슬픈 이야기… CC by Glenn Brooke

그가 이렇게 ‘찌질’이를 자처하게 된 것은 그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우리 사는 세상의 문제였을까.

낭만을 좇아 나간 자리에서 할 말이 입시,군대,취업 이야기 밖에 없는 이 남자. 학창시절 입시에, 대학에 왔더니 군대에, 취업에, 너무 치여서 정말 그것들 밖에 남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그를 한번 더 만나봤었다면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