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콜라라는 게 있었다.

벌써 10년이 더 된 일이다. 우리나라는 IMF의 공기에 무섭게 눌려 있었다. 기업은 줄줄이 도산했고 국민들은 금을 모았다. 사리 분별이 가능한 나이는 아니었기에 그 때의 분위기가 생생히 떠오르진 않는다. 머리통이 좀 굵어지고서야, 그 때 그랬었구나 하는 것을 조심스레 생각해 볼 뿐이다.

그리곤 그 때 815 콜라가 있었다. 콜라독립을 선언하며, 다시 뛰자 대한민국을 외쳤다. 별도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데서 얻은 저렴한 가격과,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자는 국민의 정서 등 외적 요인이 결합해 이들은 콜라시장에서 13.7%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무섭게 성장했다. 부동의 콩라인 펩시는 진지하게 위기감을 느꼈다. 코카콜라에서도 각종 프로모션을 통해 815콜라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들의 기세는 이내 꺾여버리고 말았다.

국가는 IMF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고 국산 콜라에 대한 국민들의 성원도 예전 같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자신만의 맛을 찾지 못했다. 시판이 이뤄지는 도중에도 배합 방식을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갔다. 어제 먹은 콜라와 오늘 먹은 콜라의 맛이 다르다는 데 소비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내가 만드는 김치찌개도 나름 균일한 맛을 유지한다. 시장은 국산 콜라의 시행착오를 기다려 줄 만큼 여유로운 친구가 아니다.

815는 그렇게 안드로메다로 갔다. 파리로 갔다면 라임이라도 맞췄을텐데.

안녕 815……

너를 지키겠다는 고백 이젠 어디에

너를 향해 달려가던 난, 이젠 어디에

-안녕, 스무살. 토이

수업에서 발표할 자료를 준비하다 잠깐 담배를 피러 나왔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래도 며칠 동안 헤매던 것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았다-815는 아직 학교 자판기까지 들어오진 않은 듯 했다-. 불을 붙인 후 수정할 부분은 없는지 한번 천천히 되새겨 보았다.

새로운 IT 기술이 기업의 경영 및 사회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루는 발표였다. 자료의 말미에는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얻을 수 있는 효익을 약술한 부분이 들어가야 했다. 업무 처리에 필요한 노동력이 줄어들어 보다 유연하게 인건비 부담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 역시, 한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채 닫지 않은 워드 파일에는 여전히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어폰에선 토이의 노래가 나왔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로 돌아가 빠르게 결론을 수정했다. 여전히 마음 한 켠이 불편하다. 노랫말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매미는 십 년을 기다려 성충이 된다.

815콜라는 지난 6월 다시 매대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장은 그 때와 많이 다르다. 815 콜라를 이끌던 애국심 마케팅은 이제 약빨이 다했다. ‘애국’이란 단어는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어가는 것 만 같다. 국산 과자 및 즉석식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어 보인다. 콜라의 판매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콜라를 대체하겠다며 나온 음료들 역시 잠깐의 반짝임 이후 시들거나 그 자취를 감췄다.

그들도 더 이상 콜라독립을 외치지 않는다. ‘Korea fighting’이란 문구를 사용하긴 하지만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는다. 대신, 경쟁사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맛과 비슷비슷하지만 미묘하게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다. 잘 팔리는지는 모르겠다. 출시 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보면, 예전의 영광을 되찾는 중이라 보기는 힘들 것 같다.

편의점에서 815를 하나 사 들고 나왔다. 나쁘지 않은 맛이다. 코카콜라나 펩시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나았다. 디자인에서도 강렬한 의지보다는 청량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일단 부딪히고 본 후에 갈팡질팡하다 이내 자취를 감춰버린. 그리곤 10년 만에 정제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 콜라를 그렇게 지켜봤다.

성충이 된 815는 호의를 얻지 못한다. 예전의 그 당차던 친구, 쯤으로 사람들은 떠올린다. 정체성은 희미해졌다. 오히려 숨기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경쟁에 터져나가는 탄산음료 시장 속에서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몸을 비벼댈 뿐이다. 가격과 성능만으로 성장해 나갈 꿈을 꾸며.

주변의 사람들도 성충이 되어간다. 당차게 미래를 바라보던 표정은 하나둘씩 굳어간다. 일단 부딪혀 본 사람도, 부딪힐 여력조차 없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들 다 한다는 학점에 영어에 대외활동. 그렇게 스스로를 정제해 나간다. 배운 것과는 다르게,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다들 비슷비슷 한 것만 같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조차도 곱지 않다.

시장은 국산 콜라의 시행착오를 기다려 줄 만큼 여유로운 친구가 아니다. 물론, 우리의 시행착오를 기다려 줄 만큼 여유롭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