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까 말까 한다. 이런 때 ‘옆구리가 시리다’라는 관용어는 더 이상 관용어가 아니게 된다. 어떤 이들은 36.5도 가량의 거대 난로를 옆에 끼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그것을 보며 마음으로 ‘나도 손 잡아 주고 뽀뽀해주는 기능이 탑재된 난로를 원한다!’고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소개팅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부러우면….지는 거다….

소개팅을 ‘잘’하는 방법 같은 게 정해져 있을 리는 없다. 어차피 연애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뭔가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확실한 오답은 있는 것도 같다. 지난번에 수박남에 관한 글을 쓴 것도 이래서는 소개팅으로 도저히 발전된 사이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썼던 것이다.

댓글 중에 수박남이라고 할지라도 시간과 공을 들여서 알려주고 고쳐주면 된다는 댓글도 있었다. 물론 간절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솔직히 나도 수박남 만날 시기에 좀 연애라는 것 자체가 간절했다. 그러니까 5번이나 만났겠지… 하지만 5번이 한계였다. 당시의 나에게 있어 그 수박남은 그 이상 공력을 들이기에는 너무 난관이었다. 그때까지 날아간 내 시간과 돈이 매우 아까웠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문제인 게 아니고 네가 덜 간절했기 때문에 or 눈이 높았던 게 문제야!’ 라고 말해 버린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ㅇㅇ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ㅇㅇ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소개팅의 심각한 오답 얘기를 할 건데, 여기다가 대고 “간절하면 안 되는 건 없다!”라고 말하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그냥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 정도로 간절하신 분과 이런 패턴을 지닌 분이 만나서 지구가 블랙홀 되는 그날까지 행쇼하시길 바랄 뿐이다.

서문이 길었는데 사실은 별 거 없고, 그냥 웃픈 소개팅 직-간접 경험담 몇 개 나누자는 거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보거나 겪었던 소개팅을 망치는 세 가지 카톡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소개팅에서 카톡(혹은 몇 년 전만 해도 문자메시지)은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소개팅은 이런 단계를 거쳐 성사된다.

  1. 주선자를 통해 당사자가 연락처를 교환한다
  2. 당사자들끼리 연락을 통해 약속을 잡는다
  3. 만나서 데이트한다
  4. 집에 들어가서 수다를 떨며 친해지거나 다음 약속을 잡거나 한다 or 연락두절(…)

2번과 4번 과정이 주로 카톡이나 문자메시지와 같은 메신저들이 활동하는 부분이다. 소개팅이라는 만남 방식의 특수성이 나타나는 부분은 2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개팅을 할 때마다 이 부분이 아주 난감하고 어색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한 번도 얼굴도 본 적 없는 (사진 교환을 했더라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사람끼리 대화를 주고 받는다는 게 이상했다. 뭐, 누구라도 편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다.

만나기 전에 주고 받는 문자 속의 그런 어색함에서 설렘이 싹튼다면 좋을 것이고, 그냥 다소간의 어색함과 불편함이 오가는 정도라면 만나서 얼마든지 해소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만일 황당함이나 불쾌함이 느껴지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만남에 차질이 빚어지거나 아예 파토가 나는 수도 있다.

아아 피기도 전에 져버린 연애의 가능성이여…

아니, 본 적도 없는데 무례하게 굴거나 욕을 하지 않는 이상 그런 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평탄 이상의 무난한 소개팅을 해 오신 축복받은 분이시다. 나는 2번 과정에서 소개팅이 파토가 나는 경험을 직접 한 번 했고, 주변에서도 몇 번 보았는데, 그 중에 가장 극단적인 사례만 짧게 풀어보겠다.

참고로 00남이라는 표현은 그저 내가 소개팅 후기를 친구들과 공유할 때 상대방 남성에게 붙인 별명을 편의상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세상에는 이런 행동을 하는 여자들도 있을 수 있으며 그들에 대한 웃픈 후기를 댓글로 달아 주시는 분이 있다면 오예입니다.

1. 백문백답남

시작은 나무랄 데 없었다. 사진을 먼저 교환했는데, 양쪽 다 마음에 든다는 표현을 전했고, 양쪽 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맨 처음 연락처를 주고 받고 난 뒤, 전화가 왔다.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나에게 끌려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나에게 끌려

사실 나는 연애 수단으로는 항상 카톡보다 전화가 좋다고 생각한다. 전화는 문자로 된 메시지보다 훨씬 개인의 특성을 노출하는 ‘행동’에 가깝다. 목소리, 말투, 심지어는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라는 간격과 그것에 묻어나는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사이라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일단 사진을 봤고, 마음에 들었고, 상대도 내 외모를 아주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으니 부담스럽기보다는 기분이 좋았다. 내 이상형은 이런 저런 사람 다 필요 없고 나 예쁘다는 사람이다. (…)

통화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당장 약속을 잡는 딱딱한 대화가 아니라 사진을 통해 확인한 서로의 모습에 대한 칭찬(…)을 나누고 짧게 주선자에게 들은 내용을 주고 받는 자기소개 비슷한 것도 하며 친근해지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에는 “자기 전에 통화할 사람이 있으니까 좋네요.” 같은 훈훈한 멘트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설레는 밤이었다. 솔로였던 기간에 그렇게 기분 좋게 잠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침이 밝아 오자, 그의 카톡이 시작되었고, 지옥도 시작되었다.

그의 카톡은 백문백답 그 자체였다. 예전 일이라 스마트폰이 몇 번 바뀌어서 캡쳐가 없는 것이 한스럽다. 하지만 그 패턴 자체는 잊기 어려울 만큼 단순했다. 예시를 몇 줄 적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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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카톡 대화를 재연해 보았다.jeyon

당시의 카톡 대화를 재연해 보았다.jeyon

당시 나의 기분.giboon

나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다시 쓰면서도 돌겠다. 와 나….. 뻥 치지 말라고? 뻥 아니야… 진짜야…. 한 번 더 말하지만 인증을 할 수가 없는 게 정말 한스럽다…

아니, 보통 “홍시씨는 영화 뭐 좋아해요?” 라는 질문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꺼내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백문백답남의 어떤 질문도 해당 주제를 꺼내는 오프너가 아니었다. 답을 듣자마자 퀘스트 처리하는 느낌으로 NEXT! 를 외치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호감 있는 사람이 ‘칼답장’을 보내주면 보통은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계속 저런 식으로 속사포 질문이 쏟아지니까 정말 힘들었다.

나한테 진짜 조금이라도 시간을 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 자세한 답변을 하거나 그 주제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고 싶었는데, 진짜로 100개의 질문을 준비하기라도 한 건지 바로 바로 다음 질문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빛보다도 빠르게 넘어갔다. 내가 대화에 깊이를 조금이라도 더할 수 있는 답변을 고민하느라 끙끙거리며 카톡을 쓰고 있는 사이 다른 질문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물론 카톡 대화라는 게 원래 대화의 텀이 문자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긴 하다. 가끔 보면 한 어절씩 보내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꼭 한 마디씩 주고 받을 필요 없이 상대의 말을 잠시 무시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된다. 그렇게도 해 봤다. 하지만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상기 대화를 변형해서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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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떤 질문에도 단답으로 대충 대답하며 나에게 다시 질문 폭격을 했다. 그냥 예전에 블로그에서 유행하던 백문백답 리스트를 프린트 해 놓고 하나하나 지우면서 카톡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대놓고 “너무 제 얘기만 하는 것 같네요^^;;; 백문씨는 요즘 관심 분야가 어떤 거에요?” 하면서 질문을 던져도 “그냥 별거 없어여 ㅋ” 라는 심플한 단답형 대답과 “어떤 동물 제일 좋아하세요?” 라는 101번째 질문이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1~2시간 정도 그와 이런 식으로 카톡을 나눈 뒤 정신력을 모두 소진했고 전날 밤의 설렜던 통화가 꿈이나 된 듯이 아련해졌다. 한 마디로 정이 뚝 떨어진 거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그는 며칠 간 “뭐해요?ㅋ”로 시작하는 백문백답을 이어갔고, 내 답변 간격은 점점 길어졌다. 나는 그가 카톡 메시지 하나를 보낼수록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제곱되어갔기 때문에 서서히 그가 보낸 카톡을 읽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수업시간에 전화를 해 댔고, 수업시간이라서 받을 수 없다는 카톡에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섬뜩한 답변을 보냈다. 나는 주선자에게 연락해서 그를 차단시켰다.

썩 꺼지렴.

2. 중2남

이건 가엾은 내 친구가 올해 중에 겪은 일이다. 긴 말 하지 않겠다. 그녀는 일정이 잘 맞지 않는 상대방과 어렵사리 약속을 잡았다. 약속의 날 이틀 전에 상대는 문제의 카톡을 보냈다.

친구의 신상 보호를 위해 당시의 카톡을 거의 그대로 재연해 보았다.jeyon

친구의 신상 보호를 위해 당시의 카톡을 거의 그대로 재연해 보았다.jeyon

친구는 곧바로 나에게 캡쳐를 보냈고 나는 즉시 ㅋ을 40개 정도 보내주었다. 그리고 “네 5빠는 벌써 집에 5셨3? 전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서 그럼 20000”으로 답장하라고 종용했지만 닥치라는 말만 들었다. (…)

크게 당황한 와중에도 친구는 그렇다는 답변을 보냈고 중2남은 어렵게 잡은 약속을 또 한 번 파토 내는 내용의 용건을 꺼냈다. 친구는 구체적인 약속 날짜를 다시 잡으려는 상대방에게 답변을 미뤘고, 다음 날 주선자에게 저 카톡을 보여줬다. 주선자는 육성으로 “ㅋㅋㅋ앜ㅋㅋ미안ㅋㅋㅋㅋ”을 외치고 이 소개팅을 정리해 주었다.

핸드폰으로 절대 저런 ‘오타’는 날 수가 없다. 컴퓨터로도 물론 안 된다. 손이 미끄러져서 닿을 곳이 아니다. 당연히 의도적인 타이핑이다. [ㄴr는 슬플땐 눈물ㅇiㄴr…]와 비슷하지만 좀 더 성의가 없고 아저씨 같은 철 지난 외계어 비슷한 거였던 것 같다. [우리 42는 0원토록 4랑하는 42] 이런 느낌… 그렇다면 저 문장을 보내는 목적은 셋 중 하나다.

  1. 너 중학교 2학년이냐고 물어본 것이다.
  2. 믿고 싶지는 않지만… 웃기고 싶어서 자신의 위트와 재치를 발휘한 것이다.
  3. 만나보지도 않았지만 내 친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면 다른 연애의 가능성이 생겨서 미리 거절하고 싶어졌는데 그냥 하던 대로 약속을 애매하게 미루는 대신 아무도 생각지 못할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정말 유머러스한 분이시구나.

정말 유머러스한 분이시구나.

어느 쪽이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혹시 중2남이 3번의 이유로 수를 부린 거라면 아주 창조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만큼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어색한 존댓말을 사용하는 와중에, 그것도 카톡으로 무리한 개그를 시도하는 것은 만나기도 전에 소개팅을 망치는 정말 확실한 방법인 것 같다. 혹시라도 개그 코드가 잘 맞는 사람이라면 대박이 날 수도 있겠지만, 리스크에 비해서는 미미한 리턴일 듯하다.

3. 은행남

이 경우는 앞서 말했던 소개팅의 네 단계, 즉

  1. 주선자를 통해 당사자가 연락처를 교환한다
  2. 당사자들끼리 연락을 통해 약속을 잡는다
  3. 만나서 데이트한다
  4. 집에 들어가서 수다를 떨며 친해지거나 다음 약속을 잡거나 한다 or 연락두절(…)

에서 4번에 해당하는 카톡 대화를 나눌 때 실수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의외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을 은행남이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KB국민은행 수지동천점에서 나한테 보내는 문자하고 흡사한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KB수지동천지점 김순옥 올림
-묻어나는 가을의 향기가 전해지는 한 주 되세요. KB김순옥
-추운 날씨지만 고객님의 따뜻한 미소로 추위 녹이는 하루 되세요. KB정은경

최근에는 내가 김순옥씨를 스팸메일함에 보낸 게 들켰는지 정은경씨한테서 문자가 오는데,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아무튼 만날 때는 나쁘지 않았는데 다음 날부터 반드시 대답할 수 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네요. 어제 좋은 꿈 꾸셨나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춥다고 하네요ㅎㅎ 감기 조심하세요.
-월요일이 돌아왔네요. 피곤하진 않으신가요? 월요병 조심하시고 힘찬 하루! (이모티콘)

개인적으로 이런 메시지는 좀 안쓰럽다.

다 좋은 말이다. 참으로 따뜻하고 훈훈한 말인데, 대답할 말이 “네 감사합니다. ㅎㅎ 은행씨도요~”밖에 없다. 아무리 찾아도 그거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만났을 때 괜찮았어도 이런 식의 메시지가 반복되면 김이 픽 새는 기분이 들면서 기억 속의 상대방의 매력도 쭉 빠져버리는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건 마이너스다.

백문백답남이 의미도 없고 맥락도 없고 끝나지 않는 질문을 던져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면, 은행남들은 아예 대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혼자 끝내 버린다. 수박남과의 소개팅 당시가 카카오톡이 아직 출시되기 전이었는데, 그 때 이런 문자 많이 받았다. 그래도 카톡이 대화의 호흡을 많이 줄여 준 덕분에 이런 사람들은 많이 없어졌을 거…라고 믿고 싶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시즌 4의 6번째 에피소드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는 노트북 앞에 앉아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통신 수단의 발전이 정말로 우리의 소통을 돕고 있는 걸까? 사랑에 관한 한, 행동은 정말로 말보다 강한가?”

(Are all these improvements in communication really helping us communicate? In matters of love, do actions really speak louder than words?)

사람의 매력을 전하기엔 카톡창은 너무 작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매력을 전하기엔 카톡창은 너무 작을지도 모른다.

사실 난 그렇다고 믿는다. 구체적으로는 카톡보다는 전화가, 전화보다는 얼굴을 보고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만남이 연애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나열한 것 같은 지뢰만 안 밟으면 카톡 때문에 소개팅이 망하는 경우는 별로 없을 거라고 믿는다. 드물게 존재하는 이런 지뢰는 웃프다. 나 혼자 웃프기는 아까워서 써 봤다. 혹시, 혹시, 혹시라도 잘 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와중에 이런 실수 하는 사람은 없으라고 쓴 마음도 조금은 있다. “반대로 소개팅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싶은 창의적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주선자한테 거절 의사를 전하든지 “좋은 사람 만나세요~”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선자한테 욕 먹고 다음 소개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