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9일. 정리해고를 실시하려는 쌍용자동차의 방침에 반대하는 노조의 장기파업투쟁이 시작된 날이다. 그로부터 약 2000일이 지난 지금,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났다. 조작된 회계장부에 의한 정리해고일지라도, 회사의 긴급한 상황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사측의 판단이라는 게 법원의 판결이다. 고등법원으로부터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받은 쌍용차 노조는 대법원으로부터 ‘파기환송’을 받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정리해고가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의중은, 중년의 아저씨들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틀린 회계장부로 이뤄진 해고가 정당?

짧게 소개하자면, 쌍용차의 정리해고는 두 방향에서 옳지 못하다. 첫번째, 그들의 정리해고는 ‘부풀려진’ 회계장부에 의거했다. 두번째, 노동자 세 명 중 한 명 꼴로 구조조정을 통보하기 전에 회사는 해고 회피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 무급휴직 등의 해고 회피 노력은 정리해고 직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자를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하기에 합리성을 그에 따라 참작’, 후자를 ‘필요한 인력 규모와 노력은 경영진의 문제’라며 정리해고를 ‘틀리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판결이 다시 이길 일은 만무하다. 결국 2000일 간의 투쟁은 ‘경영상의 위기’라는 6글자에 힘을 잃었다.

‘조작’된 회계장부로 이뤄진 정리해고판단이 법리적으로 왜 유효한지, ‘법알못’인 난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옳지 못한 근거에 의한 행동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난 배웠다.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가 ‘동성애는 질병이다’라는 합리적이지 못한 근거라면 그 주장은 설득력을 잃듯이, 그릇된 근거에서 나오는 그릇된 판단은 명백히 ‘틀린’ 판단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경영상황이 긴박”했으며 “사측이 해고자를 최소화하려 한 노력도 인정된다”며 ‘틀린’판단을 정당화시켜줬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약자는 기댈 데가 없다 더이상은.

법은 대체 뭘까. ‘문과 간지의 끝은 법대’ 라는 망상만 갖고 있던 어린 나는, 어렴풋하게 법이 ‘정의’를 지키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전교조 판결’, ‘콜텍 판결’, ‘쌍용차 해고 판결’ 등을 보며 “‘어린’나는 정말 ‘어렸구나” 싶더라. 우리의 법원은 기득권(사측)에 대항하는 모든 이들(노동자 등)을 억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약자들보다는 기존의 강자들을 위하고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보다는 사회를 유지하는 기관이 됐다. 법이 최소한의 도덕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내게 법은 더이상 정의가 아니다. 법은 기득권 수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더라.

물론 법이 사회유지의 기능을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사회유지와 기득권의 수호는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는 사회 내부 최소한의 역동성이 보장되는 수준의 유지다. 체제 자체의 변화는 힘들어도 체제 내에서의 변화는 가능한 수준이다. 후자는 체제 내의 잘못마저 그대로 안고 가는, 부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틀린 것을 틀린 것이라 말하지 못하는 사회가 지속되는 이야기다.

법원의 보수화는 참 무서운 일이다. 약자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법’이 대한민국을 ‘그들만의 리그’로 이끌어가는 첨병이 되는 일이다. 반대를 무시하고 찬성만 인정하는 파시즘의 연장선이다. 25명의 노동자들과 가족을 떠나 보내고 맞이하는 6번째의 겨울에, 다시 한 번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주범이다. 사회 곳곳의 비명을 ‘가진 자’의 시선으로만 보게 하는 주범이다. 약자에게 하는 손찌검을 정당화하고, ‘강자’가 되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게끔 한다.

독재정권 하에서도 국보법 폐지를 논하던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독재가 역사의 전부일 거 같은 시절에도, 그와 동료들은 역사의 반역자로 남았다. 서슬퍼런 날을 들이대도 꼿꼿이 목소리를 밝혔던 선배들과 달리, 후세들은 기꺼이 보수정권의 졸개로 남고 싶으려나보다. 법조계 인사들은 기꺼이 행정부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고 있는 현실이다.

안녕, 우리 사회

보수 정권에 맞는 보수와 기득권 코드의 대법원은 그래서 암담하다. 다양성을 바탕으로 ‘견제’를 노래해야만 하는 언론은 보수 기득권이 잡아먹은 지 오래고, 최후의 보루이던 대법원마저 보수 정권이 점령했다. “‘경영자의 판단’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미명 아래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울까.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노동을 강제로 뜯어내버린 기업을, 합리적이라고 인정한 대법원은 얼마나 비정한가. 정의따위, 정부에 대한 견제따위 개나 줘버린 2014년의 대법원을 기억하며 대법원장의 인사말과 함께 글을 마치겠다.

“우리 사법부는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법치주의를 우리 사회에 구현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이를 위하여 국민과 진정으로 교류하고 소통하고자 합니다. 국민으로 하여금 법원 속을 들여다보게 하고, 우리가 국민 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열어 보임으로써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투명하고 열린 법원을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