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 않는 경우 스크롤을 멈추고 이 창에서 나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 <카트>를 봤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라는 영화로 인상 깊은 부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부지영 감독의 2009년 작품 와 2014년 작품 의 포스터

부지영 감독의 2008년 작품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와 2014년 작품 <카트>의 포스터

<카트>는 특별할 것 없는 영화였다. 신문에서 들어본, 주변에서 겪어본 그런 이야기가 스크린을 채웠다. 갑이 된 회사, 을이 된 노동자. 그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흘러나왔다. 영화관을 등지고 나오는 길엔 마음이 쌉싸름했다.

영화는 부당해고를 한 회사에 대한 투쟁을 계속하는 마트의 ‘여사님들’(영화에서 마트에 고용된 비정규직 여성들을 부르는 말)이 자신을 가로막는 전투 경찰을 향해 카트를 들이미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전경이 내세운 차가운 방패, 그보다 더 찬 물대포를 향해 여사님들은 돌진한다.

cart1

그런 장면을 평범하다, 익숙하다 여기게 만든 현실이 잔혹하다. 슬프고 분해 눈물지으면서도 생각나는 건 이 사회에는 ‘카트’를 들이밀게 된 ‘여사님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중 다수는 자신이 그 처지에 놓인 것을 모른다. 또 다른 다수는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현실이라 순응하는 것이다. 결국 소수만이 카트를 힘차게 들이민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는 완벽히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굴하지 않고 행동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행하는 이는 특별하기 때문에. 그래서 ‘인간답게 대해 달라는 것뿐이다’ 외치는 여사님들의 이야기에 나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cart3

영화를 보고 나와 한 번 더 울컥하게 된 것은 나에게는 ‘카트’조차 없음을 깨달은 탓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겐 카트를 들이밀 대상이 없다. 일 년에 가까운 구직생활을 했지만 아직 무직 상태인 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국가에게 카트를 들이밀어야 할지, 사람을 뽑지 않는 기업에 카트를 들이밀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번번이 탈락하는 나 스스로에게 카트를 들이밀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나를 포함한 다수의 ‘실업 청년’들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은 2014년 2월 10.9%를 찍었다. 비경제활동인구를 포함해 산정되는 고용률은 40.5%다. (출처: 통계청)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고, 당장 찾을 수 있는 건 비정규직-계약직 일자리 뿐이다. 정부는 그렇기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겠단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cloud-458699_640

답.답.

장기하가 ‘장기하와 얼굴들’을 시작하기 전 몸담았던 밴드 ‘청년실업’의 노래 ‘쓸데없이 보냈네’엔 이런 구절이 있다. 반복되는 후렴이다.

아 오늘도 이렇게 재미있게 바쁘게 보냈네
아 오늘도 이렇게 재미있게 쓸데없이 살았네

스터디를 하고,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그렇게 ‘취준생’으로서의 시간을 보내는 나에겐 가끔 ‘현실 자각 타임’이라는 게 온다. 미래를 위해 의미있는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만 가끔씩 ‘쓸데없는 시간’ 보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돈 못 버는 내가 인간 구실 못하는 불량품처럼 느껴지는, 그런 슬픔도 함께다. 뿌연 안개 속에 잠긴 미래와 함께 ‘카트’가 없는 지금 현실에 대한 자각은 씁쓸하기만 하다.

light-bulb-517345_640

제 구실 못하고 달려 있는 이 전구 같은. 그런 거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 카트는 있습니까.

그것은 공격력 좋게 잘 벼려진 카트입니까. 둘 데 없어 녹슨 카트입니까. 꺼낼 생각은 있습니까. 이 나라 청년들에게 카트는 있을까요. 그것은 어디로 들이밀어져야 할까요. 우리 모두에게 카트는, 당신에게 카트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