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말에 팀 쿡이 정식으로 커밍아웃을 했더라. 뉴스를 보자마자 너무 글 서두에 인용하기 좋아서 원래 써 놨던 이 글의 첫 문단을 다 날려버렸다. 사실 딱 타이밍 좋게 이렇게 나와 준 게 고마울 정도다. 아이폰 6 발매 직전에 커밍아웃해도 판매량 괜찮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는지는 좀 궁금하다. 정말 팀 쿡이 게이든 혹은 프로토스 종족이든 그것이 아이폰의 퀄리티나 상품의 철학과는 무관하겠지만, 누군가는 팀 쿡이 물러나기 전까지는 애플의 폰을 절대 사지 않게 됐을 것이다. 괜히 그 때 트위터에 개드립으로 “지옥에 가기 싫으면 당장 아이폰, 패드, 맥북 등을 버리십시오! …저한테” 이런 것들이 넘쳐났던 것이 아니다.

더불어 이참에 나도 공짜 맥북 하나만.

더불어 이참에 나도 공짜 맥북 하나만.

섹스로 구분되는 나란 인간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감과 경계심이 만연하고 있다. 사실 나는 직접적으로 겪어본 적은 없다. 다행히도 커밍아웃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여주었고, 가장 안 좋았던 반응도 고작 종교적 신념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말하지 않고 몰래 멀리한 정도다. (참 고맙게도 나는 그 애가 날 멀리하는지도 몰랐다.) 내 주변이 굉장히 괜찮은 사람들이 많긴 했는데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다 그렇다고는 못하겠다. 나를 대상으로 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받아들여주지 않은 나머지 주변으로부터는 별의별 편견이나 착오에 기초한 오산, 성적 언어폭력이 쉽게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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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겪었던 것 중 가장 어이가 없었던 것은 친구가 교내 성소수자 동아리에 관해 했던 이야기이다. 동아리연합회에서 동아리 홍보지를 다 모은 책자 같은 걸 나눠주었는데, 그걸 뒤적거리다가 성소수자 동아리가 면접을 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걸 잠시 읽어보더니 무신경하게 뱉는 한 마디.

성소수자 동아리가 면접을 보면 면접에서 뭐해? 성소수자인지 구별해야 할 거 아니야. 근데 그러려면 그거 해야 하지 않나?

네가 가정을 꾸렸을 때 부부임을 증명하기 위해 스킨십해 볼래? 정말 그 때는 이 정도로 무신경한 소리를 뱉을 수 있는 건가 싶을 만큼 놀랐다. 우리가 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하는 고민도, 남에게 당당히 말하기 위해 내는 용기도, 그는 몰랐고,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우리가 약간 다른 섹스를 한다는 것이 우리를 정의하는 유일한 잣대라고 여겼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니고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인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동아리방들이 몰려 있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성소수자 동아리 문패를 발견했단다. 그 때 누군가가 뱉은 한 마디.

안에서 뭐 하고 있을지도 몰라!

글쎄, 우리가 우리와 같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밀폐된 공간 속에 존재하면 서로 뒤엉켜 꼬이지 못해 안달이 난 주머니 속에 넣어둔 이어폰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농담거리로 할 수가 있는 거지? 애초에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할까?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웃어주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우리는 그냥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밖에 생각이 안나는 너희는!

우리는 그냥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하고 있었는데, 그런 것밖에 생각이 안나는 너희는!

나는 아픈가보다

사실 이러한 언어적 폭력은 어떤 개인이 혼자서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 조차 우리에게 그 화살을 쏘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의 정체성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바라보게 됐을 때의 일이었다. 구체적인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나, 2학년이었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헌혈이 가능해진 나이였다. 아마 몇몇 사람들은 여기서 내가 왜 놀랐는지 감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드디어 공짜로 보겠구나 하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간 헌혈의 집. 가서 컴퓨터로 몇몇 문답에 답하고 있는데, 최근 얼마간 동성과의 성 접촉이 있었는지를 묻더라.

'남성'의 경우

‘남성’의 경우 ‘다른 남성’과의 성접촉이라니, 이분들 눈에는 일단 게이는 건강하지 않고 여성x여성 등 다른 조합은 전-혀 생각하고 계시지 않는 건가 싶네효. 눈앞이 대략 깜깜해 진다…. 사진/대한적집자사 홈페이지 전자문진 캡쳐

이 안에 함의되어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순간 어지러워졌다. 그들은 동성과의 성 접촉을 가진 사람들이 헌혈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당시의 나는 최근 6개월 간 동성과 성접촉… 에이씨, 섹스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지만) 내가 그러한 행동을 할 때마다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겠구나 혹은 이미 감염되었겠구나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문항을 만든 사람들 – 헌혈에 대해 기준을 정한 사람들은 의학적으로 지식이 풍부해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 사람들일 텐데, 이렇게 차별적이고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여기 들어가 있다니.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을 텐데 내가 굳이 동성애가 에이즈의 원인이 아니라고 입 아프게 설명하는 것은 귀찮고 또 슬프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내가 깬 유리창이 아닌데 모두가 나를 보고 “네가 깼잖아!” 하고 노려보는 아이가 된 것만 같다. 나는 내가 깨지 않았다고 하지만 의심은 쉽사리 거둬지지 않는다. 아무리 항변하려고 해봐야 억울한 눈물만 차오를 뿐.

“사랑합니다” “뜻이 틀렸어”

사진/네이버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 중

사진/네이버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 중

이미 좀 낡은 이야기지만, 지난 2012년 10월 국립국어원은 ‘사랑’의 의미를 종전까진 남녀가 서로를 열렬히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정의하던 것을 (성별에 무관하게) 어떤 상대방의 매력에 의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고 수정한 적이 있다. 진보 인사들이나, 트위터 등이나 아니면 이런 대안언론에서 말하는 사람들은 진일보한 변화라고 찬사를 보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반대자로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너무나 많지만, 혹시나 명예훼손이라도 걸릴까봐 무서워서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어차피 어떤 사람들일지 다들 짐작하고 있지...?

어차피 어떤 사람들일지 다들 짐작하고 있지…?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힘은 굉장히 강했나 보다. 국립국어원은 1년만에 이 뜻을 다시 원래의 의미로 돌려놔야 한다는 논의를 시작하게 된다. 많은 심의위원은 굳이 다시 수정하는 행위는 불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생각보다 강한 반대 목소리에 의해 결국 남녀간이 매력에 끌려 그리워하는 마음만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내 애인 – 이제는 사랑 애 자도 쓰지 못하게 다시 바뀌어버렸으니 –  아니, 내 파트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면 사랑은 남자와 남자 간의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 된 그리스로마신화나, 아니면 다른 동성애적 모티프가 드러나는 글을 본다면, 이상하게 ‘우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발견된다. 실제로 우정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경우 우정이 아니라 애정으로 해석해야 하는 텍스트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실존했든 실존하지 않았든 서로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냥 다른 사람들보다 정이 끈끈한, 겨우 ‘베프’ 정도의 의미로 오해되었다. 그리고 이 국립국어원의 퇴행으로 인해 그들의 우정은 앞으로도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여기에 살아있다.

여기, 그 어딘가에 말입니다. CC by Jason Das, Flickr

오로지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곳을 스쳐지나간다. 당신과 어깨가 부딪힐 지도 모르고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눌지도 모른다. 당신의 업무 파트너일 수도 있고, 오늘 커피를 먹은 카페의 점원일 수도 있고, 대화를 잠시 나누어보고 의기투합하여 친구가 되기로 한 사람일 수도 있다. 어느 순간 당신이 그와 훨씬 밀접한 관계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그 남자를, 혹은 그 여자를 사랑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이제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이 목에 걸린다. 왜냐면 나의 사랑은 국어적 사랑의 뜻과 전혀 맞지 않기에. 국어의 사랑이 전제하는 남녀 간의 마음을 나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재밌을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위의 연장선상에 있다. 종종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소수자들의 권리 – 적어도 그것 때문에 삶이나 직업 활동에 위협을 받거나, 타인으로부터 혐오를 받거나, 아니면 쉽게 성적이거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다. 그것은 사람의 일회성 발화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어떤 다른 행동, 제도, 무언가를 만들거나 그 만들어진 결과물 등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이 글과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들에서 나를,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 상처입은 이야기, 가려졌던 이야기, 외면되었던 이야기. 사실 그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중엔 이렇게 사회의 일에 대해서 쓸 것도 있겠고, 무척이나 나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사실 바로 다음엔 매우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려고 생각중이었고) 내가 내 입장에서 풀어가는 이야기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까?

무서운 건 내가 오히려 편견을 재생산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점.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박혀 있는 스테레오타입을, 적은지 많은지 내가 스스로 정의할 순 없지만 포함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나란 개인이 얼마나 당신에게 와닿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속시원한 이야기가 되어줄지는, 앞으로 계속 고민하게 되겠지. 하지만, 일단 토해내고 싶었던 이야기, 전송버튼 누르고 나서 계속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