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의 미생,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아, 먹는거 얘기가 아니라, 그러니까 윤태호 원작의 드라마 미생 이야기다. 3회만에 목표시청률 3%를 돌파해서 출연진이 각종 공약을 지키게 만들고, 응답시리즈부터 나인까지 이어지는 tvn 드라마 신화를 연장하고 있는, 바로 그 미생 말이다.

사진=트위터 이용자 @1116_****

2년 전, 출근 버스안에서 다음 웹툰을 새로고침하며 오매불망 미생만을 기다리던 시절부터 나는 미생의 팬이었다. 때마침 회사에 취직한 터라서 옷 불편하게 입고 어째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장그래 모습이 몰래 회사에서 웹툰보는 내 모습과 겹쳐보이기도 했다.

어쩄든 2년이 지난 뒤, 드라마로 재탄생한 미생도 의리와 기대로 꼬박꼬박 본방사수중이다. 주변 사람들의 평은 대부분 호평에 감동 일색이다. 장그래와 안영이의 인기는 말할것도 없고, 개념 상사 오과장은 모든 직장 상사의 롤모델이 되었다. 아침 출근해서 보던 웹툰에서 퇴근후에 본방사수하는 드라마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변환이 있다면 손실이 있는 법. 원작 미생을 꼼꼼하게 살펴보던 사람으로서, 드라마에 상당히 비현실적인 구석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웹툰에서의 미생이 이상적인 직장의 현실을 보여주는 직장일기에 가까웠다면, 드라마는 일부러 상황을 꼬거나 과장해서 극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즉, 카타르시스 분출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는 것. 그래서 감정에 취해 볼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실제 직장생활과의 괴리를 느낄만한 부분이 많다. 그간 경험을 바탕으로, 미생이 과장하고 있거나 비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직장생활에 대해 순서대로 분석을 해 보았다.

장그래, 도대체 퇴근시간이 몇시니?

나는 장그래의 퇴근시간이 매우 궁금하다. 도대체 몇시에 퇴근하길래 집에 가서 사전보고 공부하는 모습까지 보여줄 수 있는 것일까. 퇴근해서 집도착이 8시쯤 되는 나도 평일에 책 붙잡기 힘들다.

집에서 공부하다니 독한 쉐키... / 사진 = tvN 드라마  화면 캡쳐

집에서 공부하다니 독한 쉐키…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쳐

그나마도 나는굉장히 일찍 퇴근하는 직장인에 속한다. 출근시간은 또 몇시일까? 드라마를 잘 보면, 항상 장그래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출근해있다. 그렇게 계산해보면 대략 출근시간 최소 40분은 먼저 와있다는 뜻. 그런데 장그래는 어머니가 챙겨주는 아침밥까지 먹고 나온다. 수면시간이 대략 궁금해진다.

계산을 해보자. 꽤 많은 경우, 장그래는 정시 퇴근을 못한다. 해 떨어지고 퇴근하는 모양새를 보니 빨라야 한 8시 정도에 퇴근한다고 치자. 그런데 바로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경우 오과장님과 곱창집에 들르는 경우가 많다. 그럼 회식이 끝나는 시간은? 잘 잡아도 10시쯤 되겠다. 집에 들어가면 11시, 출근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것으로 보아 7시 30분 정도. 그리고 한국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약 한시간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장그래의 시간표는 12시 취침, 6시 기상 정도인 건데…

해도 안 떴는데 나와... / 사진 = tvN 드라마  화면 캡쳐

해도 안 떴는데 나와…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쳐

이것도 최대한 긍정적인 경우다. 퇴근시간이 한두시간 늦어진다면? 짤없이 수면시간이 줄어든다. 그런데 우리의 위대한 장그래는 공부까지 한다! 그러고보니 장그래는 회사에서 졸지도 않는다?! 한국인의 현실적인 수치를 덧붙여보자면, 한국인의 평균 직장인 출퇴근 시간은 58분이다.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55분. 근무시간 평균은 하루 평균 10시간 30분이다. 그냥 기계적으로 합쳤을 때 출근 두시간에 잠과 근무를 합치면 20시간 30분이 되고 남은 3시간 30분만이 일반적인 직장인의 자유 시간이다.

세상에 장그래가 아닌 이상 장그래처럼 살아서 딱히 행복할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안 그래도 회사다니기 짜증나 죽겠는데 돈도 안주는 야근 하면서 ‘와 난 일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어’ 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아, 있긴 하다. 직장 말고 다른 목표가 없어서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자아실현인 사람. 개인적으로 바람직해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니 장그래가 좀 불쌍해보인다.

오과장님 회식 좀 그만하세요.

그만 좀 드세요. / 사진 = tvN 드라마  화면 캡쳐

그만 좀 드세요.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쳐

미생에는 회식 장면이 참 많이 나온다. 퇴근 시간이 되면, 일어서려는 장그래 앞에 ‘술 한잔 하러가자’ 고 하는 오과장이 나타나 그를 곱창집으로 데려가서 끊임없이 소주를 먹인다. 그리고 마지막은 꽐라가 되서 택시타는 오과장. 물론 집에서 보고 있으면 나도 양곱창 먹고싶긴 하지만, 사실 그 모습을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양곱창이라도 그렇지 그 귀중한 퇴근시간이 늦춰졌는데 주인공이 싫어하는 내색이 없다니요.

그래, 뭐 그러려니 했다. 주인공 장그래는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모든 문제를 자신에게 돌리는 위대한 장그래 아니던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진짜로 위화감에 몸사리쳤던 장면이 있다. 바로 1화에 꼴뚜기 찾던 장면!

꼴뚜기가 뭐길래…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1화에 꼴뚜기 찾으러 간 인턴들이, 꼴뚜기를 찾다가 돌아오라는 말에 환호하는 장면. 거기까지는 좋은데, ‘영업 3팀에서 한턱 쏜답니다!’ 라고 하니 모든 인턴들이 환호한다. 그 광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컬쳐쇼크였다. 만약 내가 입사동기들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다면 당연히 욕부터 튀어나왔을 것이다. 아니, 엉뚱한 일로 지금까지 부려먹었으면 됐지 회식까지 가야돼?

세상은 넓고 못 만나본 사람이 많으니 장담할 수는 없다만, 아직까지는 회식을 즐거워하는 신입사원은 만나본 적이 없다. 그것이 아무리 평소에 먹기 힘든 양의 곱창이든 쇠고기든 스테이끼든 마찬가지. 있다 보면 어차피 목적은 부어라 마셔라인걸 뭐. 술 못 마신다고 빼면서 맥주를 홀짝거려보아도 어느순간 술 종류가 소주로 고정되고 사람들 맥주잔에 소주들이 섞여가는 걸 보게 되면 누구라도 회식이 싫어지게 될거다.

신입사원 입사원서 낼때, 암암리에 회식 많은 영업직군과 술 많이 먹을듯한 부서를 피하는 건 다 이유가 있는거다. 구직사이트에 ‘사내 문화’를 묻는 질문이 단골로 올라오는 것도 결국 퇴근과 회식을 피하려는 이유가 반이다. 여러모로 원인터내셔널의 사내 문화는 ‘최악’의 꼬리표를 달만 하다. 매번 마셨다 하면 끝을 봐야 하는 상사, 중간에 눈치보고 빠져주지도 않는 상사, 일 하나만 성공하면 술마시러 가자는 상사는 최악 중 최악이다.

오 과장님... / 사진 = tvN 드라마  화면 캡쳐

오 과장님…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쳐

오과장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밑에 부하직원 챙겨줘야 하는데 술 한잔 사주는 것 말고는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한국의 흔한 아저씨라서 그런 게지. 다만, 자신이 오과장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사라면 절대 이것만은 따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고의 상사는 1차에서 밥만먹고 카드주고 사라져주는 상사라는 걸 꼭 기억해주세요.

인턴분들, 눈치 안보세요?

제 1화. 장그래가 꼴뚜기를 열심히 찾고 있을 때 인턴 동기들이 몰래 도망간 에피소드가 나온다. 장백기는 ‘신고식’ 이라고 포장했던 그거. 사실 그게 상식적으론 있을수 없는 일이다. 주변에 저런 짓을 하는 인턴이 있다면, 제대로 줄타고 내려온 임원 아들딸인지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물론 그들도 개념이 있다면 저런 짓은 안하겠지).

인턴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평가다. 인사팀이 그런 건 딱히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본인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바른인류처럼 행동하게 된다. 혹시 구직활동 하며 2박 3일 취업캠프같은 데 가본 사람이라면 무슨뜻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있다 보면 취업캠프가 아니라 간디캠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타적인 인류가 가득하다. 세계평화 구현이 구직활동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리가 없긴 / 사진 = tvN 드라마  화면 캡쳐

자리가 없긴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쳐

만약 드라마처럼 누군가를 골탕먹이는 짓을 했다가 들키면 바로 평가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드라마같은 상황이면 오과장님이 눈치채고 팀장들 커피마실때 한두마디 얘기꺼내고, 그러면 인턴 평가하는 팀장급 사이에 소문 돌고 각 팀 사원급에 소문돌고 인사팀까지 소문나면 당연히 정직원은 빠이빠이다.

인턴의 평소 목표는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한테까지 다 신경쓰게 되고, 인사 잘 하게 되고, 실수 안하는 게 목표가 된다. 아, 착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니까 만약 고졸 장그래가 등장한다면, 적어도 겉으로는 ‘사회생활 못하는 동기에 대한 이타적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행동방침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자아를 회사에서는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신이 고졸이라도 저렇게 무시당할 일은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아두자. 물론 뒤에서 수군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나만 뺀 카톡방이 만들어져 있을 수는 있다.

부장님, 뭐가 그리 당당하세요?

5화와 6화는 직장인 여성을 위한 화였다. 선차장님의 고충과 안영이가 받는 수모를 보며 속을 끓였을 사람이 한둘이 아니리라 생각된다. 특히 다같이 모인 회의시간에 자원팀 부장의 막말은 보는 것만으로도 암 걸릴만 했다. 하지만, 직장에서 저 정도 막말 듣기는 쉬운 것이 아니다.

인간 발암물질 / 사진 = tvN 드라마  화면 캡쳐

인간 발암물질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쳐

여기서 오해할까봐 추가발언. 직장에서 여성 차별이 없으며 대한민국에 평등한 사회가 구현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직장에서 대놓고 하는 여성차별은 적어도 ‘잘못 해서 승진 누락될 가능성’ 이 있는 곳에서는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발생한다면 철밥통 직장이라 뭘 해도 짤릴 일이 없거나, 자신의 평가에 영향을 줄 만한 사람 중에 여자가 별로 없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모로 평가에 민감한 곳에서는 위에서나 아래서나 눈치를 많이 본다.

대신 직장에서의 여성차별은 직접적이기보다는 은근한 방식이 더 잦다. 예를 들자면, “안영이씨는 여자라고 술마시는거 빼거나 하진 않지? 아, 그런데 커피 좀 타와요.” 같은 거. 보통 직장에서의 차별은 ‘너도 남자랑 똑같은 성과를 내’ 라는 것과 ‘그럼에도 너는 여자잖아’ 라는 두 명제를 동시에 적용하는 데 있다. 남자와 똑같이 일하지만 남자에게 없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내면 죄인이 되는 것이 첫번째 명제의 예시라면, 두번째 명제는 은근한 성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공격해주심 / 사진 = tvN 드라마  화면 캡쳐

공격해주심 / 사진 = tvN 드라마 <미생> 화면 캡쳐

고로, ‘여자는 죄인이지’ 라는 선 차장의 말은 현실적인 말이지만 직장에서 대놓고 ‘여자니까 일을 못하지!’ 자원팀 부장은 조금 비현실적이다. 당장 감봉 3개월 먹었는데 저정도로 정신 못차리면, 부하직원이 반발할까봐 위에서도 걱정중일거다. 적어도 인사팀이 제정신이라면 말이다.

결론 : 미생은 재밌지만, 그래봤자 드라마다.

물론 처음에도 말한 것처럼, 매체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웹툰 스토리를 떠와서 영상으로 만들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마 캐릭터를 만들고 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편집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드라마로서’ 미생을 즐기면 된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보고 장그래처럼 살아가라는 양반들한테는 ‘너 먼저 오과장처럼 살아라’라고 말해주면 되고.

PS. 여담인데, 드라마가 시작한 이후로 스스로를 오과장이라고 생각하는 회사 과장님들이 급속도로 번식 중이다. 가끔 그런 분들이 ‘너프씨도 장그래처럼 살아봐’ 라고 하면, 아 그냥 난 존나 닥치고 있을 수밖에. 이렇게 글이나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