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에 새를 넣고 닫아본 사람은

모든 시선을 외로움으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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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by 전전

상자가 닫힐 적에 마지막으로 본 풍경은 세로로 찢어진 틈, 곁에 사람이 없을 때마다 청계광장에서 끌고 온 새들은 날마다 그 수가 늘었다 그것이 내 우주 항해의 이유다 테이프를 뜯어 뚜껑을 봉할 적에 느꼈던 것이 서글픔, 보다는 무서움, 이었으므로, 돌아오는 길은 항상 눅눅했고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새똥 냄새를 맡았다

 

이것이 내 우주가 멀미를 겪게 된 경위다

 

매일 밤 버스 타는 꿈을 꾼다는 어느 지구인의 이야기, 이를테면 이것은 바퀴 없는 비행기, 페달이 없는 자전거, 환승역 없는 지하철 같아 버스에 오르는 순간 나는 삑, 감사합니다. 그 후론 평생 지구에서 버스를 타듯, 행성에서 행성으로 다시 행성에서 또 행성으로, 우주를 떠도는 동안 버스는 이 세계를 따라서만 움직이는거야 끝없이, 정류장 아닌 곳에서 시간을 내어줄 수는 없듯이, 기사님 잠시만요 그렇게 내 언어가 깜깜한 허공으로 풀려 나가는 순간 나는 삑, 환승입니다, 처럼.

 

그리고 이것이 내 지구에 시간이 정착한 이유다

 

몇 년 전

1956~2009

천문학을 전공한 나의 큰아버지는 손바닥에 시간들을 옮겨 쓰다 몸이 무너졌고

오래 전

1724~1804

칸트는 외부에도 이처럼 적요로운 세계가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최근

1963~?

엄마의 우주가 퇴화 중에 있다고 쓴다

 

그공간은둥글고이따끔붉은빛을띤다꿈을기록할때마다붕괴는진화와퇴화의적절한경계에서이루어진다고믿었는데가라앉는엄마가나를보며자꾸손짓한다플라스틱단추가툭하고떨어져오래된겨울옷을꺼내먼지를터는기분이랄까단추는전혀새롭지않지만툭하고떨어졌다는사실이나를괴롭게하지작은구멍사이로무자비하게바늘을찔러넣으면엄만수도꼭지처럼검은물을흘려암흑같은밤단추구멍사이로별이빛나면엄만지구의시간을잊은채날아가는꿈을꾼단다엄마의우주가이렇게퇴화중에있는데넌지나치게발이커버렸구나아뇨전발이큰게아니라별이큰거에요엄마그사이꼬리가많이길었군요자를때가된것같아요엄마는알수없는울음소리를내면서새처럼상자를닫고누웠다어느날엄마의시선이외로움으로다가왔을때도망치는꼬리를붙잡았지만엄만이미웜홀을향해달려가는중이었다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가정의 모습이다

 

사과 한 알

을 가로지르는 벌레

사과 껍질

위를 기어가는 손톱

 

Bleibt der Erde treu *

이 땅이 폭발할 때 어떤 기분일까?

망원경 렌즈에서 불빛이 깜박일 때마다 너는 눈꺼풀을 얇게 떨며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기억이 있는가 유독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에만 우리 밖의 다른 세계가 멸망한다 그 안에 있던, 눈꺼풀이 아름답던 소녀도 사라질 때만큼은 눈을 감았고 마지막 종이비행기가 날아갈 때 가장 처절한 목소리로 울었다 황급히 수화기 너머로 소녀의 숨을 확인했지만 틈 사이로 화산이 무너지는 소리와 잿더미만 실려 올 뿐이었다 그리고 이 통화내역은 수천 년이 지난 뒤 지구인들이 기억하는 가장 익숙한 음악이 되었다

 

E G F# F

 

외계를 기록하기에 좋은 행성

지금은 없는 내 사촌이 있다

지금은 없는 내 사촌은 지금은 없는 내 외숙모에게 안겨 자랐고 지금은 한참 별자리를 외우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없는 내 사촌이 지금은 없는 내 외가를 떠나 공부를 하겠다고 집을 나와 몇 년 뒤 가지고 돌아온 것은 외계의 습기, 그 푸른 기운을 지금은 없는 내 사촌의 방에 들여왔을 때 나는 한 슬픔을 직감했다 지금은 없는 그 외계의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은 없는 외계의 가장이 검은 양복을 벗고 지금은 없는 외계 가족의 아내가 밤중에 몰래 문을 닫고 사라진다 그리고 지금은 없는 한 외계 아기가 글을 깨달은 뒤 비로소 모든 사건이 되풀이되었다 지금은 없는 내 사촌이 외계의 푸른 시나리오를 간직하던 밤 지금은 없는 내 외가의 가장이 외계가 되던 날이 있었다

 

자신이 태어난 성운을 찾아 떠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는 비가 오던 날 살 없는 우산을 쓰고 강을 건넜다 그는 사라진 뒤 일주일이 지나서야 학교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지구의 언어를 쓰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 외계와 내부 세계의 간극

오래전목성의뒤편에서돌아오는우주선을기다린다12월교실에엎드려창밖을보면바람에실려날아다니는우주인들이보였다그들이외계의손가락을품에안고돌아오길다린다고쓴다올해가가기전우주선이돌아올지책상에걸터앉아생각하는동안손톱자국이깊어진다나는12월에태어났으므로추위를잘견디고외로움도잘견뎌낸다고쓴다교실바닥알수없는곳에목성의지층에서발견된미생물이산다고믿는다스스로무너지는날에도별이떨어진다고쓴다매일밤하늘에서비가내리다눈으로바뀐다고쓴다나는겨울에태어났으므로내가죽을때목성의창문도함께닫힐것이다그리고목성의발견되지못한도시도함께어두워질거라고믿는다고대의화산재가공중에서흩어질것이라고쓴다눈꺼풀이아름답던소녀가음악의모습으로다시깨어나화산재를삼킬때내외계도같이춤출것이다우주의누군가가자살할때나는그낌새를알아챌거라여긴다그리고회전할것이다나는시공의벽에서벌레처럼파고들지않을것이다

 

라고 일기장에 적은 시절이 있었다

 

A

는 음역을 벗어나지 않고 사는 법을 안다

B

그것은 참 슬프다

C

는 마치 라디오의 마지막 방송 현장 같다

새를 상자에 넣고 닫는 상황처럼

전파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목소리를 안다

 

우주 밖으로 추방당하기 전 스스로 걷겠다고 울먹이는 음성을 기억해 제발 등, 좀 밀지 마세요, 라고 울먹이던 목소리 그건 엄마가 날 옥상계단으로 내쫓은 상황이나 수학선생에게 붙잡혀 교단에서 끌려 내려오던 장면 내가 새 머리를 움켜잡고 도로에 던져버렸던 기억과 닮았다 프로테스탄트 윤리 소행성 134340 막시즘 니힐리즘과 닮았다 이를테면 생은 자기 우주에서 추방당하는 과정인가 내가 우주를 지우는 과정인가 어떤 꿈에서는 사람들이 지구 언어로 소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주를 떠도는 소리들로 대화한다 그것이 가장 최근의 통화 기록이다 암흑 속에서 초식동물의 피부를 닮아간다 몸 어딘가 운석에 부딪친 자국처럼, 갈증에 시달리다 깨면 가장 먼저 그곳에 고인 물을 찾았다 초원 가운데서 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다가 엄마의 음성을 잊었다고 쓴다 어릴 적 침대 맡에 야광별을 붙이며 문득 몽롱해졌고 방에 혼자 남을 때마다 나는 암전, 천천히, 야광별이 이불 위로 떠오를 때 눈에서 눈물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라디오를 틀면

노브를 타고 도는 전파의

떨림

미세한,

떨림은,

 

*프리드리히 니체, “이 세계에 충실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