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충이가 또 베충베충해

베충이가 또 방송을 탔다. 이번엔 KBS다. KBS2 ‘개그콘서트’의 9일 방송분 ‘렛잇비’ 코너에 쓰인 사진이 문제였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개그맨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었는데, 이 사진에 엘사의 어깨에 떡하니 올라탄 그 캐릭터가, 바로 베충이었던 것이다. 베충이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의 캐릭터다.

문제의 사진

이런 종류의 방송사고를 두고 사람들은 ‘ㅂㄷㅂㄷ(부들부들)’하기도 하고 ‘ㅋㅋㅋㅋㅋㅋ(낄낄)’거리기도 했다. 요렇게 우리는 또 한 번 일베의 이름을 듣고, 한 번 더 이상하게 그들을 쳐다봤다. 일베는 이런 우리의 조롱과 냉소를 먹고 컸다. 2012년 대선 이후 ‘일베’라는 이름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패륜글로 인터넷 기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일베의 이름을 TV에서 보기까지 딱 2년이었다. 축제 시즌에 대학가에서 베충이 인형이 돌아다니고, 광화문 광장에도 그들이 나타났다.

일베, 대체 뭐 하는 놈들인가. 사람들의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언론도 한 소리, 학자도 한 소리, 저마다 한 소리씩을 보탰다. 그렇게 수많은 말과 분석이 쌓였다. 그런데 아직도 대나무숲 페이지 (익명 제보 커뮤니티)엔 이런 글이 올라오더라.

“제 룸메가 일베인 것 같아요. 어떡하죠?”

어떡하죠…어떡하죠……어떡하죠…………

일베 = JUST 일베충?

일베는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다. 뉴스를 통해, 충격적인 펌글을 통해서만 일베를 접해왔다. 우리가 아는 일베는 그게 전부다. 괴물이고, 일베‘충’인 가상공간의 어떤 존재들. 똥 커뮤니티일 뿐이라고 치부하면 쉬울 일이긴 하겠다만, 그런 낙인이 갖는 한계를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지 않나. 손에 쥔 모든 돌을 내려놓고 일베를 바라보자. 일베 안의 사람들, 일베 안에서 모이는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일베는 나쁜놈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대체 ‘욕’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인문비평공동체 IRIS가 주관한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말하다’ 포럼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인문비평공동체  IRIS의 구한결 씨가 사회를 맡았고 패널로는 강태영 씨(인문비평공동체 IRIS), 조윤호 씨(미디어 오늘 기자), 주현우 씨(안녕들하십니까)가 함께 했다.

발제 후 감상대로라면 패널 소개를 이렇게 바꿀 수도 있겠다. 일베 좀 해봤다 하는 청년 강태영 씨. 일베가 싫어할 것 같다 싶은 주현우 씨. 일베에 기사 좀 올려봤다 하는 기자 조윤호 씨. 먼저, 좌베충 대학생 강태영 씨의 일베 이야기를 들어보자.

‘좌베충’ 대학생의 일베 분석

강태영 씨가 일베를 알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시끌벅적 했던 대선이 지나고 한참 일베가 유행을 하던 때였다. 그는 ‘여긴 뭐하는 데인가’ 하고 여러 번 일베를 기웃거렸다. ‘일베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물었을 때 사회 각계각층에서 많은 답을 내놨다. 진보진영의 사생아, 극우화된 청년세대, 우리 모두 ‘일베스러운 면’이 있다는 고해성사까지. 그는 좀 더 직접적으로 일베 안에서 그들이 갖는 집단적 정체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두 가지 코드를 통해 일베를 말한다. 두 코드는 무임승차와 저항의식이다.

일베, 무임승차와 저항의식

강태영 = “일베의 정체성에 관해 무임승차는 이야기가 많이 되었다. 시사인 기사에서도 이야기했고 한겨레 박권일 칼럼에서도 상상된 착취, 피해 받고 있다는 가상의 의식을 언급했다. 일베 유저들은 호남,여성,야권 등을 ‘충분히 노력하지 않으면서 떼 쓰는 존재’라고 여긴다. 일베 자신들은 애국적 룰에 맞춰 살고 있으며, 무임승차의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 이건 많이 들어본 분석이다. (무임승차론은) 일베에만 해당하는 분석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서도 모든 걸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킨다. 다만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책임을 개개인에게 한정시키는데, 차이가 있다면 일베는 본인들이 굉장히 저항의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일베의 시선에서는 스스로를 저항적 투사로 느낀다.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 사회는 이미 종북 세력에게 점령당한지 오래된 거다. 대통령도 종북 대통령 두 명이나 나왔고, 문화영역에서 인디음악, 공연예술계가 침묵적 좌편향 인사로 채워져 있다. 우리 세계는 이미 좌파적 프레임에 경도되어 있다고 일베는 이야기한다. 이런 현실 인식 하에 일베 유저는 스스로를 부조리한 현실과 싸우는 저항자라고 여긴다.”

무임승차자를 비난하는 바른 시민. 종북 세력에게 점령당한 현실을 배척하는 저항자. 일베는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일간베스트 글들을 보면 이런 공통된 흐름을 알 수 있다. 일베에는 ‘일베식 의견’이 있는 것이다. ‘네이버식’,‘다음식’ 의견이 있느냐 물었을 때는 대답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일베식’은 존재한다. 일베 사이트의 작동 방식 때문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일베?

강태영= 일간 베스트 게시판에 올라가려면 규칙이 있는데 민주화(비추천) 개수 곱하기 세 배 이상 수의 일간베스트 추천을 받아야 한다. 그게 첫 번째 기준이다. 두 번째 기준은 중요한 사안이다 할 때 관리자가 올리는 것이다. 일단 첫 번째 방식은 추천,비추천으로 결정되는 건데 이걸 필터링하고 뭐를 일베에 올릴 거냐 하고 말할 때는 분명히 ‘어떤 게 우리 일베 유저들의 관심사에 적합하냐’ 생각한다. 결국 평균적 수준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걸 추천하고 비추천 할 건지 모든 유저가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평가한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일베’라니.(크헝..?) 일베의 작동원리는 그렇다. 유저 1인당 1표. 일베는 특정 일베 유저가 게시판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것 또한 경계한다. 특정 유저가 게시판에서 그 이름 자체로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을 ‘네임드화’라고 하는데 일베에서는 이런 ‘네임드화’를 경계한다. 영향력이 큰 유저가 나타나면 이른바 ‘네임드화 진압’이 일어난다. 위계 질서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베의 기본 룰이다.

조윤호= 일베에 처음 들어가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깨끗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 뭐하는 덴가요? 이런 식으로. 그러면 이런 댓글이 달린다. 어디서 버릇없게 존댓말이야. 그게 일베 내부의 분위기를 표현해주는 가장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선 존댓말이 버릇없는 짓이다. 일베에선 ‘내가 너보다 뛰어나다’, (멍청한 걸로 말고) ‘내가 진짜 너보다 우월하다’라는 이야기를 하면 진짜 버릇없는 모습으로 여겨지는 그런 문화가 있다.

뭣 모르고 일베에 들어가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영향력 있는 유저와 그렇지 않은 유저의 차이를 없애려하고, 존댓말 하는 뉴비(새로운 이용자)에게 ‘어디서 버릇 없게 존댓말이냐’ 욕부터 한다. 말마다 시비조고 욕설이다. 이런 문화는 일베 안의 하향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라고 조윤호 씨는 말한다. 우리 모두 개새끼식의 평등이다. 

조윤호 = 일베라고 하는 집단이 사실은 거기 속한 사람들 안에서도 계급적,문화적 차이가 다 있다. 일베엔 여성 유저들도 있다. 여성 유저들이 있긴 있는데 그걸 못 드러내게 한다. 디씨에서도 반복된 건데 여성인 게 드러난 순간 남성들이 여성에게 잘 해주려고 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그 집단 내에서 위계가 생기고 그런 걸 차단하기 위해 여성들을 아예 못 들어오게 한다. 동물의 왕국으로 만드는 거다.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강제로 나가게끔 만드는 구조. 그런 것들을 사실 자기네들끼리의 하향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가 아닌가 싶다. 저는 그런 점에서 일베 자체는 계급적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일베 안에서의 문화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걸 지향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베는 언론의 호된 매질에 무럭무럭 자란다

CC BY Flickr, [BarZaN] Qtr

CC BY Flickr, [BarZaN] Qtr

‘우리 모두 개새끼’식의 평등을 지향하는 일베. 흥미롭다. 마치 문화인류학 연구보고를 듣듯이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그렇다면 일개 온라인 커뮤니티일뿐인 일베가 이렇게 무럭무럭 자란 이유는 뭘까. 동시접속자수가 2만이 넘는데다 소식 빠른 할머니들도 일베라는 이름을 아신다. 대체 왜!?

일베가 핫한 이유 중 하나는 핫한 게시물이다. ‘하향평등’을 지향하는 문화 위에서 벌어지는 ‘미친놈 콘테스트’. ‘이 구역에서 제일 미친 놈은 나야!’ 라고 외치기 위한 레이스. 일베는 자극적이고, 과격한 표현으로 저항의식을 드러낸다. 그런 게시물이 일간베스트게시물이 되고 그 재미가 일베가 응애응애- 생동하게 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일베를 안 하는 사람들도 일베에 어떤 게시글이 올라오는지 다 안다. 언론이 일베를 ‘대신 읽어주기’ 때문이다. 결국 일베를 무럭무럭 키운 건 언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언론의 ‘때찌때찌’, 의미 없는 매질이 일베를 키웠다.

조윤호 = 일베가 패륜적인 게시물 올릴 때마다 언론이 늘 보도한다. 일베 사용 안하는 사람들은 어르신들은 사실 잘 모르는데 어떤 게시물 올라오는지 알 수 없는데 일베 안 쓰는 사람들도 일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안다. 저희 어머니가 일베가 뭐냐고 물어보셔서 충격 받았다. 인터넷 전혀 안 하시는데도 들으셨더라., 미디어에서 일베 이야기 시시콜콜 다 전달한다. 자기 할아버지가 자살한 장면 찍어서 일베 어떤 사람이 올렸는데 그거나 노무현 비하한 거 어디에 올렸더라 누구 신상을 털더라 이런 게 미디어를 통해서 다 확산이 되고 어떤 사람들은 낄낄대고 어떤 사람들은 분노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언론이 수많은 ‘일베’ 기사를 생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의 관심.

조윤호 =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일베가 유명해졌는데 그 때 저는 일베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왜냐면 들어보지 않았어서. 페이스북 친구가 올려놓으면 들어갔다가 깜짝 놀라 나오고 그랬다. 되게 역설적인 게 제가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일베를 하루에 두 번 이상 정기적으로 들어가서 두시간씩 서핑했다. 글도 되게 자주 올렸던 걸로 기억한다. 제가 썼던 기사도 올려놓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도 보고. 반응 보고 지워버렸지만…

(일베에 들어가서 기사를 올려본 것은) 기사에 대한 반응이 궁금한 게 첫 번째였고 또 하나는 일베에 기사로 올라가냐 아니냐에 따라서 조회 수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차이가 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베 관련 기사 종종 썼다. 일베가 못된 짓을 하고 다니면 (일베를 비난하는 류의) 기사를 썼는데, 인상 깊었던 사건이 작년 4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대화를 제의 했던 건이다. 그 내용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일베 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더라. 그래서 들어가 봤더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인 쌍욕에 가까운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박근혜 김치년 종특이다’ 이런 입에 담기도 민망한 악플들이. 그걸 보고 간단한 기사를 썼다. 많이들 안 본 기사였는데 일베에 이게 올라가니까 조회 수가 폭발했다. 그리고 악플도 폭발하고. 그 때 처음으로 ‘내가 기사 쓰면 일베에 올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저의 사례는 소소한 사례인데 이게 언론이나 미디어가 공생했던 사례인 것 같다.

조윤호 씨는 일베와 언론이 공생관계라고 말한다. 일베라는 커뮤니티에서 집단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은 충분히 분석할 만한 현상이고 이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언론의 역할이다. 그렇지만 ‘지나치다’는 것이다. 일거수 일투족을 전한다. 언론은 대중의 관심과 기사 조회 수를 얻고, 일베는 유명세를 즐긴다.

조윤호 = (이런 언론 보도는) 일베 유저들에겐 나쁠 게 없다. 자기가 거기서 더 많이 일베를 받고 그런 식으로 게시물이 뜨고 핫해지고 보도되고 그런 욕망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라는 일베의 명제를 통해서 받고 싶은 인정욕구를, 미디어가 충족시켜주는 거다. 패륜적인 행동이 언론에 주목을 받고 일베 안에서 ‘야 너 언론 떴더라’하며 다시 주목받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언론과 일베는 이런 방식으로 윈윈한다. 결과적으로 일베가 나쁜 놈이라고 고발하고 보도하는 기사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결국 공생하는 쪽으로 간다.

언론이 “이 루저야!”한다고

일베가 “일베 하지 말아야지…”할까?

조윤호 = 언론의 또 다른 보도(유형)는 분석하는 보도. 시사인 보도라든가. 분석하는 기사 꽤 있었다. 왜냐면 이해가 안가니까. 루저나 관심종자로 (보도하거나), 우리 사회가 교육이 안돼서 그렇다, 이렇게 비판하는 기사도 많이 나왔었는데 이건 당연히 패륜 고발보다는 더 좋은 관점의 기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기사의 수요자가 누굴까 생각해보면 이 기사 수요자는 일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일베 안 하는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고 (일베를) 조금 이해해보는 그런 식이겠다.

이런 분석 기사를 보면 일베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가 루저구나. 하지 말아야지. 관심종자구나. 앞으로 하지 말아야지.’ 이럴까. 진지한 기사를 읽어도 ‘분석 잘했네.’ 이러고 다음날 일베 들어가서 또 이상한 사진 올리고 재밌게 놀게 된다. 일베를 하지 않는 우리들을 변화시킬 수는 있어도 (이런 포럼도 다 마찬가지지만) 일베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얘기다. 본인들이 하고 싶어서 커뮤니티에 접속하고, ‘본인들이 좋아서 이상한 사진을 올리고 낄끼덕 댄다는데 뭘 어떻게 해야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일베의 놀이는 너무나도 나쁘다. 그들의 놀이엔 온갖 차별과 야만이 작동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본인 ‘신뢰’를 무너뜨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 최소한이라도 지켜져야할 윤리의식을 잔디 밟듯 밟고 뛰논다. 초코바를 뿌리며 광장에 나온 사람의 아픔을 모욕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웃음거리로 만들며, 누군가를 루저로, 누군가를 김치년으로 낙인찍어 모욕한다. 일베는 나쁘다.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논의는 골치 아픈 문제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생기면 색깔을 칠하고 ‘적출’해버리려고 하는지, 아니면 그 문제가 어디서 왔는지 살피며 함께 풀 방법을 논의하는지. 우리는 보통 “그냥 미친 놈들이야. 말할 것도 없어.”라고 문제를 덮는다. 어려운 문제를 두고 답이 너무 쉽게 나왔다면 그건 틀린 답이다. 풀이과정의 설계가 필요하다.

일베,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주현우 씨는 같은 링 위에 서자고 제안한다. 정당성과 팩트의 대결로 상대방을 설득 시키는 것. 그것이 그가 설계한 풀이과정이다.

주현우 = 타자를 객관화, 나를 객관화 시킬 때 진짜 분석이 나온다. 정작 일베를 바라보는 나, 일베에 대한 객관화는 얼마나 이뤄졌는지 그게 모자라기 때문에 구체적 해결책이 안나온다고 생각하고, 일베를 정의하기 이전에 일베를 바라보는 우리는 어떠한 상태인지 바라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리적,도덕적,계몽적 입장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어떤 정당성,어떤 팩트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게 일베를 바꾸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현우 씨는 만약 일베의 이야기가 잘못되었다면 사실 대 사실로, 정당성 대 정당성으로 설득시키는 게 맞다고 본다. ‘교화’나 ‘조치’가 아니라 함꼐 정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주현우 = 기본적인 부분으로 돌아가자. 저는 오유도 (일베랑 비교할 때) 사실 뭐가 더 좋냐 이런 얘기도 못하겠다. 어떤 거든 간에 온라인 커뮤니티는 사람을 기반으로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올라오는 곳들이다. 바꿔 얘기하면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사회 내 이야기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서 올라오는 공간들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일베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할 때 일베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교화’라는 표현으로 또는 ‘어떤 조치를 하겠다’고 하든 그 조치를 하는 사람은 일베 유저 본인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서버를 폐지시키면 다른 데 가서 할 거다. 저 같아도 그런다. 이유 있을지 몰라도 다짜고짜 차단 없앤다고 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저항할 것 같다.

일베라는 곳에서 생성되는 담론들이 잘못되고 불합리,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그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정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다. 사람들이 일베에서 나오는 담론에 대해서 ‘아니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그건 그렇다고 볼 수 없어.’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게 정공법이라고 생각한다. 일베를 루저화 시킨다든가 일베 하는 사람을 특수한 사람으로 취급해서 난타하는 방식으로 (일베를) 없앨 수 있다? 그건 오히려 큰 방식으로 (일베를) 키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장기적으로 더 좋지 않다.

그는 일베가 ‘커뮤니티’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주현우 = 일베가 어떤 사이트이든 간에 그런 (개인들을 묶어내는 커뮤니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하면 어떻게 바른 방향으로 가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게 맞다. 단순히 절대적 판단에서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조윤호 씨는 일베를 사회문제로 바라보거나 일베를 사회에서 따로 떼놓고 분석하는 것, 그 둘 다에 반대한다. 한 발 더 나아가자는 입장이다. 일베 안에 있는 분노를 어떤 방향으로 틀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조윤호 = 일베를 생각하는 세 번째 방식을 생각해봤다. 저도 감히 시도 못해봤고 언론이 시도 안 해본 건데, 우리 일상생활을 분석하는 하나의 틀로 일베를 집어넣는 거다.

일베를 들어가서 보면 세대 문제에 대한 인식이 엄청나게 세다. 자기 아버지 세대 386세대, 전교조 교사들에게 ‘좌빨’ 소리하면서 (그들은) 다 (잘) 먹고 살았다는 패배감이 엄청 심하다. “우리 세대는 왜 패배했는가.” 청년들의 세대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뒤틀린 방식으로 많이 나온다. 제가 정당 대변인이면 이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베 안에서도 청년실업과 같은 세대와 관련한 사회문제 이야기도 많이 한다. 저라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베에서도 이러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더라.’ 이렇게 접근하겠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은 ‘너희 정상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너희도 어떤 사회현상 속에서 나온 하나의 산물이고 너희 별거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이렇게 말하면 저보고 빨갱이라고 까보전(까고 보니 전라도: 일베에서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며 쓰는 말) 이라고 하겠다. (허허)

근데 사실 이런 시도들이 없었다. 일베는 열패감과 분노에 차있고, (그들의) 기본적 방식은 놀이지만, 그 분노의 방향을 어디로 틀어줄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접근해봤으면 좋겠다. 일베를 대변해주겠다 이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너희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해주겠다. 메시지를 전해주겠다.’ 하는 시도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안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시도로 일베 안에서 분명히 어떤 파장이 생길 것이다. 폭식투쟁이라는 일이 벌어지면서 일베 안에서의 투쟁이 생겨났듯 (무언가) 변형화 돼 생겨날 수도 있다. (일베 안에서) 하위문화를 형성했던 사람들에게 하나의 방향을 줄 수도 있다. 모르겠다. 이 방향을 따라가지 않을지라도 논쟁을 펼치는 자체가 일베가 정화되는 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

포럼이 끝나고 난 뒤

포럼을 가는 길에 생각했었다.

“내가 왜 일베 이야기를 해야 하고, 들어야 하는 거지?”

얼마 전 건너건너 친구의 담벼락에서 일게이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댓글배틀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가 뱉는 글 한 줄 한 줄이 욕과 편견과 차별로 얼룩져있었다. 그 말과 개그코드가 너무 무시무시해서 나는 ‘더럽다’고 느꼈다. 더럽다. 일베를 차별하는 건 정당한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포럼이 끝나고 나오는 길엔 이런 생각을 했다.

‘차별과 반대는 다르다.’

일베를 ‘일베’로 낙인 찍고 무시하는 것은 차별이다. 일베와 같이 서서 힘차게 욕하고, 고소하고, 그들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는 건 차별과 다른 것이다. 일베 현상을 이유로 증오범죄,집단 모욕 처벌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논의가 더 진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거 없는 모욕과 폭력이 의사표출의 수단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에 공동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베를 없애고, 일베충을 낙인 찍는다고 뭔가 달라질까? 일베는 우리 사회 안의 커뮤니티다. 그 안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그것이 어떤 잘못된 놀이로 비틀려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 사회 안의 이야기다. 게시글을 삭제할 순 있어도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 그 문화와 놀이를 삭제할 순 없다. 반대를 위한 반대 말고,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반대가 필요하다. 뭐가 됐든 시작은 ‘이야기’라고 믿는다. 침 뱉듯 뱉어내는 한 줄의 글이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