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에나 존재하는 고전이 있다.

사회학과라면 베버나 맑스, 뒤르켐. 문화인류학이라면 레비스트로스나 부르디외, 경영학과라면 슘페터나 하이에크, 사학과라면 토크빌, 홉스봄 등등. 보통 교수님들은 개론시간에 아직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학생들을 모아두고 책이름을 죽 부르며 지금부터 책 좀 읽으라는 유언/무언의 압박을 보내신다. 하지만 신입생 당시에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은 손에 꼽고 그 사이에 교수님들은 점점 논문을 추천하거나 세부 전공책으로 넘어가고, 그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책의 이름은 쉽게 잊혀진다. 오늘은 그런 책을 한권 소개해볼까 한다. 정당정치학의 고전 ‘절반의 인민주권’이다.

이 놈 말입니다.

처음에 리뷰할 책을 정할 때 가장 고민했던 책 중 한 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책 내용에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의 현실을 온전히 설명해줄 수 있는 최신 정치분석서도 아니다. 만약 이 책을 읽고 한국 정치에 대입해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좌절부터 느낄 것이다. 2014년 한국의 정치모델은 대통령 중심의 제왕학에 더 가까운 것이고 마키아벨리 이후의 정치학 이론으로 한국 모델을 이해하려면 답이 안 나온다. 보다보면 정당정치고 뭐고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마을이나 풀뿌리 민주주의에 집중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선택하는데 기준이 되기 좋은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 중 몇 가지 ‘강력한 분기점’이 있는데,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서 이상주의자인지 현실주의자인지 정당주의자인지 풀뿌리민주주의인지를 가를 수 있다(물론 모두가 칼처럼 나눠지는 입장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입장을 모르고서 정치라는 것을 바라보면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서 자기 모순에 빠지기 십상이다.  즉, 읽으면서 자신이 어느 부분을 동의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없는지를 생각해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따라가는 책이 아니라 싸우면서 보는 책이다.

자, 싸우자(?)

그리고 전부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8장 ‘절반의 인민주권’ 챕터는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만큼, 아니 교과서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정당정치학의 정수다. 직접 독재정권과 싸워서 이뤄낸 한국의 민주화 특성 때문인지, 한국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연결시키는데 소홀한 편이다. 그래서 다른 챕터보다 더 중요하게 보아줬으면 좋겠다. 이 챕터에 대한 자신의 입장만 드러낼 수 있어도 책 한 권 값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emisoverign People : A Realist’s View of Democracy in America’다.

직역하면 ‘절반의 주권을 가진 사람들’이 맞겠지만 초월번역의 센스가 발휘된 결과  ‘절반의 인민주권’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왜 책의 제목이 ‘절반의 인민주권’인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문답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자.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누구나 알 수 있는 답이 있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시민이 주인이 되어 시민을 위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제도다. 무리없이 동의할 것이다.

For the people 은 너무 옳은 말이니까 우선 던져두고;; Of the people과 By the people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시민의 정부, 시민에 의한 정부. 아마 정부가 어떻게 해야할지를 시민이 결정하는 것, 이라고 말하면 대충 맞을 것이다. 예산을 집행하거나, 건물을 짓거나, 보도블럭을 뒤엎거나 할 때도 시민의 뜻에 따라야 시민에 의한 정부다. 그 시민의 뜻을 그럼 어떻게 파악하냐? 당연히 물어봐야지. 그래서 투표라는 것이 있다.

그럼 보도블럭 하나하나 깔 때마다 투표를 해야하나? 당연히 그런 식으로는 못한다. 열 명짜리 조모임도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고 정보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것을 아는 우리들은 국민국가 레벨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를 하고 국회의원을 뽑고 지방자치단체 의원을 뽑는다. 그들이 우리 대신에 일해줄 거라고 기대하면서.

그게 참 뜻대로 안 될 때가 많지만.

그런데 여기서 모순적 태도가 드러난다.

우리는 국가레벨의 직접민주주의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라고 생각하기에 현재의 간접 민주주의를 불신하는 경향이 생긴다. 그들은 나의 뜻을 정확히 대변하지 못해, 라고 말하며. 샤츠슈나이더가 보기엔 이 현상이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을 현실에 끼워맞추며 불만족스러워하는 꼴’ 인 것이다.

샤츠슈나이더는 처음부터 생각을 바꾼다. 현대사회의 민주주의란, 정당에 의한 민주주의일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우리는 완벽한 주권이 아닌 절반의 주권만을 가진 시민(Semisoverign People)이라고 말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고정관념 대신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모델을 민주주의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꽤나 현실주의적인 태도다.

책은 저 주요 논지에 살을 붙인 내용이다. 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와, 왜 정당 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개인이 아닌 정당이 어떻게 정치를 수행해야하는지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잠깐.

위의 내용을 보고 당연하다고 느끼거나 별 문제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분을 위해, 추가적으로 질문해보겠다. 만약에 샤츠슈나이더의 주장처럼 현대사회의 민주주의가 정당 민주주의라면,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할까? 아니 좀 다르게 말해서,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버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그것이 지금 우리 손 닿지 않은 곳에 있을 뿐, 실현가능한 수 있는 민주주의일수도 있다. 아니면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 개념을 반대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술적인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 본성 문제로 여길수도 있다.

그게 참 아쉽다만(…)

‘절반의 인민주권’은 여러면에서 주장이 강한 책이다. 그래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다. 위에서 한 대로 샤츠슈나이더의 주장을 찬성/반대해봐도 좋고, 틀에 맞춰서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하나하나 정리해 봐도 유익하다.

연결할 만한 문제는 거의 무한하다. 국민이 무식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정당이 입장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을 수도 있다. 갈등상황이 정치화 되지 않은 것, 풀뿌리 제도가 정당정치제도와 적절한 연계가 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된다. 단, 문제라고 생각할 때 타당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쓰다보니 답없는게 한두개가 아니라 우울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 얘기 하면 8~90퍼센트는 누구누구가 나빠서, 윗대가리가 멍청해서, 가진 자들이 문제라서라는 3대 이유로 끝난다. 그런 얘기는 할 수 있는 정치 이야기중에 가장 질 낮고 소득없는 결과에 속한다. 분풀이라면 이해하겠는데,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그 이유 정도는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마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PS – 아참, 안 두껍다. 200페이지 정도. 그리고 좀 오래된 책이라서, 몇가지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상해보이는 것들이 있다. 몇 가지 정리해 보았으니 혹시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다면 참고하시라.

  1. 정부의 역할을 꽤 크게 가정한다. 지금에야 작은 정부가 대세지만 이 책이 처음 나온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는 무언가를 실행해야 하는 존재였지 닥치고 있어야 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혹시 이 흐름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토니 주트의 ‘재평가’라는 책을 참조하는것을 추천한다. 그런데 이거 겁나 두꺼움
  2. 미국 정치학의 전통대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다. 그러니까 최소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집단에 투표하는 인간을 가정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인데 한국은…아니 사실 미국도 딱히 그런 선거가 되는것은 아닌지라…
  3. 사회적 갈등이 정당정치로 자연스럽게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현재 한국 정치의 붕괴는 정치로 이행되어야 할 상황이 하나도 정치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는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갈등을 다룬 파트 보다 보면 속만 터진다.
  4. 설명이 다 미국 양당제를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 상황에 끼워맞추기 어려운 파트가 많다. 물론 부제가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본 미국의 민주주의’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알아서 판단하자.
  5. 정당이 정치의 도구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정당 스스로가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경우에는 설명이 꽤나 취약하다. 하긴 그러면 이미 민주주의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긴 하다.

책은 낡고, 시대는 바뀐다.

책은 덮어놓고 믿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투닥거리며 싸우라고 읽는것이라는 의견에 더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다시 한번 부탁드리고 싶다. 싸우면서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