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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억새억새!!!! 뙇!!

그날은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예보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거짓말처럼, 하늘은 화창했고 날씨는 이상하리만치 따뜻했습니다. 기타와 장비를 이고 지고 하늘공원으로 향합니다. 그 날은, 보이스크래프트의 첫 아티스트 조윤아씨의 라이브 영상 촬영일이었습니다.

버스 710번을 학교 앞에서 탔습니다. 구글맵은 30분 정도가 걸린다고 했지만,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꾸역꾸역 하늘공원의 계단 291개를 걸어 올라가보니 거의 1시간이 걸렸습니다. 아티스트 및 미스핏츠 팀은 돈을 아낀답시고 그 계단을 정말로 걸어 올라갔지만, 사실 잔치연세 팀은 미스핏츠를 위한 투어 버스 티켓까지 전부 끊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냥 그저 그런 슬픈 얘기. (그리고 우리 팀이 등반을 완료한 후 연락하자 티켓을 환불했다는 더 슬픈 얘기)

이거 다 올라감 ㅇㅇ기타 이고지고

그리고 하늘공원은 억새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북적였고 생각보다 시끌시끌했지만 억새밭의 광경을 본 순간 불만은 쏘옥 들어가고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남습니다. 이 날 영상은 두 곳에서 촬영될 예정이었는데, 하늘공원에서는 <풍경화>라는 곡을 촬영하게 됐습니다. 원래 기타와 퍼커션 등의 세션을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곡이지만 절대 세션 섭외 문제 때문은 아니고 그냥 기타 솔로로 촬영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하늘공원이 넓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사람이 평일 오후치고 정말 많았지만, 그 중에 조금 인적이 드물고 좁은 골목 하나에 자리를 잡고 촬영 시-작! 잔치연세의 소중한 대포알 카메라를 들고 오신 영상 능력자님, 그리고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후보정하기 위해 녹음을 따고 계셨던 잔치연세의 잔치왕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필진 중 어깨를 담당하는 ‘비가오려나’씨와, 잔치연세의 디자이너님께서 골목의 양쪽을 출입통제했습니다. 전 뭐했냐고요? 촬영기 쓴다고 사진찍고 있었습니다(다시 말해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

저빼고 다 일중 1. 저 앞에는 촬영하는 분들이 2. 제 앞과 뒤에는 출입통제하는 분들이 계셨...

저빼고 다 일중
1. 저 앞에는 촬영하는 분들이
2. 제 앞과 뒤에는 출입통제하는 분들이 계셨…

사실 저는 영상에 문외한인 레벨이라, 원테이크 영상 하나 찍는다는데 뭐어 금세 되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이 자리를 빌어 저의 무지함을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저 카메라, 그냥 5초만 들어도 무겁더라고요. 그리고 마이크랑 레코더 배터리는 정말 빨리 닳고, 촬영할 때는 발소리 하나 내지 말아야 했습니다. 의외로, 사람들은 저희의 출입통제(…)에 잘 따라 주셔서, 지나가는 행인 한 명 없이 네 번의 촬영을 했습니다.

조용하지만 매력있는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둥가둥가하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제법 멋집니다.

[expand title=”풍경화 가사 보기”]*너의 그림 속엔 내가 알지 못하는 게 있어/ 한 걸음 물러서도 여전히 나는 전혀 모르겠어/ 단순한 그 모양 도대체 지금 그리는 게 뭐야/ 제발 답해주겠니// 손 끝에 구름이 걸리면/ 새들이 날아 다시/ 붓 끝에 바람이 걸리면/ 낙엽이 날아 다시// 너의 눈길이 스쳐 지나간 그 하늘엔/ 새로운 꽃이 피었네//**나는 그림도 사랑도 노래도 표정도 읽지도 못하는 사람들/ 풍경들 시선들 기억들 만나지 못했던/ 만날 수 없었던 만나지 않았던//***손 흔들며 떠나가는 저 기차를 보라 / 돌아오지 않을까 이 곳으로/ */(간주)/**/***/*/*[/expand]

<풍경화> 촬영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다음 촬영 장소인 궁동근린공원으로 이동하고 나면 왠지 해가 질 것만 같더랍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동할 때 왠지 그럴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택시가 정말로 안 잡혀서요(…) 기다리다가 버스 타고, 또 마을버스 한 번 더 갈아타고 간신히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해졌어여....

해졌어여….

두 번째 노래인 <잘가>는 <풍경화>에 비해 뭔가 조용조용하고, 슬픈 이야기인데요. 처음에 제목과 가사만을 듣고 애인과의 이별 노래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답니다. <잘가>는 조윤아씨가 키우던 강아지 도리를 떠나보내고 나서 썼던 노래입니다. 궁동 근린공원에서요. 연희동 주변을 몇 년을 살면서도 궁동 근린공원의 존재조차 몰랐던 저는 생각보다 탁 트인 고즈넉한 정경에 감탄 또 감탄했습니다.

야경도 참 예쁘긴 했는데, 해가 떨어지니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날씨가 추워지니 아티스트의 손이 자꾸 얼고, 그래서 실수가 도록 도록 나오고, 촬영팀은 슬슬 지쳐갔습니다. 게다가, 예상 못한 또 하나의 강적이 있었으니 그것은 저희를 공원까지 데려다 줬던 버스님.

버스님 자비좀여

버스님 자비좀여

으아니! 촬영이 잘 된다! 아티스트도 잘 하고 있어!싶을 때, 버스님이 옥체를 이끌고 부릉부릉 부앙-지나가면 음향은 엉망이 되고 그 즉시 촬영이 중단되고는 했으니, 저희는 계속 버스의 눈치를 보며 밀당을 하려 했지만 버스가 오는 타이밍은 대략 랜덤. 그래서 찍다가 버린 테이크가 꽤 있습니다. 심지어 버스님이 안 오실 때는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아저씨도 만나뵙고(…) 사람 많은 하늘공원보다 고즈넉한 궁동 근린공원의 촬영 난이도가 더 높았을 줄은, 정말 기필코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게다가 해가 져 버린 탓에, 영상이 너무 어둡게 나오는 것도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조명을 대여했을 리가 없던 가난한 촬영팀은 아이폰 조명을 켜서 촬영 내내 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찍은 게 어디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면서요.

[expand title=”잘 가 가사 보기”]너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나/ 추운 겨울에 넌 내게로 왔어/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남은 건 널 보내는 것 뿐이야//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헤어짐은 너무 빨리 오더라/ 이젠 내 곁에 너의 자리가 없음이/ 아직 꿈만 같은데//*이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너와의 이별이 사실로 다가오네/모든 것을 잊고 잠들어도/ 눈을 뜨면 전부 그대로겠지// 잘 가라는 말 한 마디 못해줬는데/ 너는 이 겨울에 날 떠나네/ 많은 것을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남은 건 널 보내는 것 뿐이야//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헤어짐은 너무 빨리 오더라/ 이제는 너를 놓아야 함을 알아/많이 힘들겠지만// 이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너와의 이별이 사실로 다가오네/ 모든 것을 잊고 잠들어도/ 눈을 뜨면 전부 그대로/ * [/expand]

그렇지만 나온 영상을 보니 뭔가 그 반짝이던 도시의 뒷모습, 담담하게 슬픈 가사와 목소리가 묘하게 잘 버무려진 느낌이라서 뿌듯합니다(딱히 제가 뭐랄까 도움을 줬던 건 아니지만). 두 영상을 찍고 나서 연희동에 내려 오니, 8시 반이었습니다. 하루는 갔고, 해는 졌고 배도 고팠지만 머릿속에는 영상을 촬영했던 두 곡의 멜로디가 회충처럼 맴돌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넣어야 할 지 모르겠던 비하인드 컷 네 장 감상하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