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세계지리 8번과 관련해 해당 수험생과 학부모님들께 고통을 드리고, 사회적으로 혼란을 야기한 점에 대해 깊이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모두 정답 처리할 것이며, 이에 따라 등급, 표준점수, 백분위를 재산출해 학생과 대학에 통보하겠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성훈 평가원장)

“평가원의 성적 재산정 결과에 따라 성적이 상승하는 학생 모두에게 재산정 성적으로 추가 합격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겠다. 피해 학생들을 정원 외로 추가 합격시키기 위해서는 법령의 근거가 필요하다. 국회를 비롯한 관계 당국과 협력해 법령 제정을 추진하겠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결국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백기를 들었다.

다소 늦었지만, 바람직한 투항이다. 31일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김성훈 평가원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이 ‘출제 오류’라는 지난 16일 서울고법의 판결에 대해 상고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논란의 ‘세계지리 8번‘ 문항을 한번 쭉 살펴보도록 하자. 아래에 보이는 문제가 약 1년 동안 1만 9,000명의 수험생들을 극도의 고통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정답 없는 문제’이다.

지난 16일, 서울고법 행정7부(민중기 수석부장판사)는 A씨 등 수험생 4명이 “세계지리 과목 8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장관)를 상대로 낸 대학수학능력시험 정답결정 처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고 사실상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교육부 장관에 대한 청구가 “수험생들에게 내린 처분이 없다”며 각하 됐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전체적인 판결(원고 승소)에 큰 의미는 없다.

같은 문제를 두고 1심 판결과 2심 판결은 왜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2013년 12월 16일에 내려졌던 1심 판결을 살펴보도록 하자.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질문이 다소 애매하더라도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풀 수 없을 정도는 아니며 문제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렇게 판단한 논리적 이유를 짚어보도록 하자.

▶ 1심 판결 내용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 2013년 12월 16일]

1. 8번 문제에서 ㉠지문은 명백히 옳고 ㉡,㉣지문은 명백히 틀렸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정답을 고르면 2번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정답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없다.

2. 세계은행과 유엔 발표자료로는 2010년 이후는 NAFTA가 총생산액이 더 많았지만 그 이전에는 EU가 더 많았다. 이 사건 지문은 시기에 따라 옳거나 틀린 지문이 될 수 있을 뿐 어떤 경우에도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3. 해당 문제의 다른 지문도 연도와 무관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인 점 등을 고려하면 해당 문제에 2012년이라는 표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이를 기준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볼 수도 없다.

당시 1심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답을 도출하는 과정’이었다. ㉠이 명백히 옳고, ㉡,㉣이 명백히 틀렸기 때문에 ‘애매한’ ㉢을 ㉠과 함께 답으로 골라 2번을 선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문제의 오류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답을 고를 수 있으냐 없느냐에 초첨을 맞춘 것이다.

다소 의아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답을 도출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던 1심과는 달리 2심은 문제의 오류 여부에 대해 집중했다.

㉢이 명백히 틀리기 때문에 옳은 지문은 ㉠지문밖에 없으므로 정답이 없다는 결론이다. 또, 지도에 표시된 2012년이 문제를 푸는 데 기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제시문(지도에 표시된 2012년)은 질문과 함께 문제를 구성해 답항을 정답으로 선택하는 기준’이라고 명쾌한 답을 내렸다.

지금까지 1심 판결과 2심 판결을 차례대로 살펴봤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1 심의 판결은 사실상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주장을 고스란히 답습한 것에 불과했다. ‘이것이 틀리기 때문에 저것이 답이다’라는 식으로 문제를 출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에는 분명한 답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문제를 풀 때 반드시 ㉠부터 확인하라는 법도 없지 않겠는가? ㉢이 먼저 눈에 들어온 수험생은 당연히 ㉢에’X’표시를 하지 않았을까?

이처럼 상식적으로 판단했을 때, 세계지리 8번의 문제는 오류가 분명(㉢이 명백히 틀리기 때문에 옳은 지문은 ㉠지문밖에 없으므로 정답이 없음)했기 때문에 교육당국이 상고를 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평가원이 이번 소송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법무법인 광장’에 변호를 의뢰하는 비용으로 총 8,250만 원을 지출했는데, 이 돈이 수험생이 낸 수능 응시료와 세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결국 교육당국이 이러한 국민적 여론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평가원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세계지리 8번’ 논란은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었다

교육당국은 ‘교과서대로 냈다’,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등의 경직된 입장으로 일관하다 어제 발표까지 밀어붙였다. 더욱이 어제 발표에선 정오표의 잣대를 내미는 대신 ‘최선의 답’이란 희한한 설명을 했다. 교육당국엔 ‘교과서 근본주의자’들만 우글거리는 것인가. 현행 교과서의 오류를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하기는커녕 대학 입시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고집만 부리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교육당국은 ‘열차는 떠났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싶어할지 모른다. 하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자충수를 둔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할 시점이다.

수능 오류 논란에 눈감은 교육당국, 뒤탈 없겠나 <세계일보>, 2013년 11월 26일

수능 시험이 끝나면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게 되어 있다. 당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세계지리 8번’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이의제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했다. 또, 외부의 이의제기 말고 이미 내부에서도 지적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당시 교차검토 위원으로 참석했던 A씨는 “수능을 한 달 앞두고 10월에 열린 교차검토 과정에서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한 지적이 나왔었다“고 밝혔다.

그나저나 이의신청에 대한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긴 하는 것일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아무 문제 없다’고 당당히 밝혔지만, 2013년 12월 5일(당시)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수능 이의신청 및 심사집행내역’을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세계지리와 한국지리 문항과 관련해 제기된 이의신청 14건을 심사위원 15명이 2시간 동안 심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항당 평균 심사시간을 환상하면 고작 8분 30초에 불과했다.

이제는 향후 대책이 문제다.

“1년간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이라도 합격한다면 당연히 기쁘죠.”

“명예는 회복됐지만 상처받은 내 아이의 인생은 누가 책임지나요.”

교육당국의 상고 포기 소식이 전해지면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일단 기쁘지만, 향후 대책과 관련해 걱정을 토로한다. 교육당국이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모두 정답 처리하고, 이를 성적에 반영해 대학에 통보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제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은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당장 등급 재산정으로 인해 추가 합격자가 몇 명이나 될 것인지도 미지수다. 교육부와 평가원은 주요 대학을 상대로 일부 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면서 “문항 오답자 1만8,884명 가운데 약 4,800명의 등급 상승이 추정되나 대학과 학과별로 수능 점수의 반영 기준과 비율 등이 모두 달라 합격자 수를 속단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명 입시교육 업체들은 “이번 구제안으로 혜택을 받게 되는 학생 수가 최대 수백 명에 그칠 수 있다“며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적인 영향이 적은 수시 전형의 경우에 탐구 영역에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두는 대학은 서울 소재 주요 대학 정도에 불과하며, 정시의 경우에는 ‘불합격자’만 구제 대상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시에서 하향 지원해서 다른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아예 원서 접수를 하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에는 구제를 받기가 어렵다.

설령 이러한 케이스까지 받아들여 구제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대학에서 1학년을 다닌 학생들을 신입생으로 입학시킬지 편입을 통해 2학년으로 받아들일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들의 입장에서 굳이 이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가 밝힌 것처럼 “사실 대학에 탈락자의 추가 합격 등을 강요할 수는 없는 상황“이며, 가능한 것은 최대한 협조를 구하는 것뿐이다.

통탄한다!! 내가 소주 맛만 일찍 알았더라며어언!!!!

통탄한다!! 좀만 일찍 인정했더라면!!!!

황우여 장관이 국회 입법을 통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국회에서도 이 사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다. 구제를 받은 학생들이 2015년 3월까지는 입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늦어도 2015년 2월까지는 특별법 제정이 완료되어야만 한다. 신속한 법안 제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공이 국회로 넘어갔다고 해서 교육당국이 손가락만 빨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더 이상 출제 오류로 인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수능 한 문제’로 인생이 바뀌어버리는 왜곡된 대입제도를 바꿔나가야 한다. 또, 교육당국이 당장해야 할 일은 출제오류 제기가 있을 때마다 열리는 형식적인 이의심사실무위원회를 외부에 개방함으로써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구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만 명백한 출제 오류에 대해서도 묵묵부담으로 일관하며, 1년 가까이나 되는 긴 기간동안 수많은 학생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