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드라마가 둘 있다. tvN의 <미생>과 OCN의 <나쁜 녀석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케이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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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인터넷 언론사 OSEN에서는 이 두 드라마에 대해 ‘케이블이라 천만다행론’을 펼쳤다. ‘지상파라면 쉬이 다루지 못했을 법한 내용을 강단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단다. <미생>은 지나치게 사실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라, <나쁜 녀석들>은 반대로 19금을 달지 않고선 내보낼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라 지상파에선 다룰 수 없다는 거다. ☞ ‘미생’ ‘나쁜 녀석들’, 케이블이라 천만다행이다 기사 보러 가기

실제로 <미생>의 원작 웹툰 작가 윤태호씨는 드라마 방영 제작발표회 ‘미생의 밤’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했다.

실제로 지상파에서 찾아오셨던 분들은 앉자마자 하는 이야기가 ‘러브라인 안 나오면 안 됩니다’고 말씀했다. 왜냐하면 그만큼 압박이 있는 것이다.

나는 러브라인이 나오냐 안 나오느냐가 아니라 러브라인이 나오면 그만큼 이야기가 변질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러브라인 보다는 뉘앙스 정도만 있는 드라마로 갔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지상파 측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 포기를 못 하더라.

[분석IS] ‘미생’이 지상파 아닌 케이블 편성된 속사정’ 기사에서 발췌)

네티즌들은 ‘<미생>이 지상파였다면…’하며 지상파 비꼬기에 여념이 없다. 장그래(임시완)한테는 우선 출생의 비밀이 있었겠지. 안영이(강소라)는 장그래가 신경쓰이다가 금방 사랑에 빠졌을 걸. 그걸 지켜보던 장백기(강하늘)는 묘한 질투심을 느끼고… 삼각관계! 뙇! 장그래 아빠는 알고 보니 회장님! 뙇! 하는 류의 글과 댓글이 판을 친다.

저 그럼.. 고속승진 가능합니까? (두근두근)

저 그럼.. 고속승진 가능한 겁니까? (두근두근)

시청자는 지상파를 ‘봐주지’ 않는다.

바야흐로 지상파 불신의 시대다. 적어도 인터넷을 즐겨하는 이삼십대 젊은 대중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이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하여 드라마 제작자들을 떨게 만드는 시청률. 그 시청률은 부상하는 케이블 드라마와 추락하는 지상파 드라마의 간극을 보여준다. 각자 4화까지의 이야기를 마친 지금, <미생>은 3.6%, <나쁜 녀석들>은 3.7%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했다. (닐슨 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 소소해 보이는 숫자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케이블 채널에선 1% 시청률을 ‘꿈’으로 달리는 프로그램들이 아직도 많다. <나쁜 녀석들>의 경우엔 OCN 오리지널 드라마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이란다.

울상을 짓는 건 오히려 요즘 방영중인 지상파 미니시리즈다. 월화, 수목 미니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는 게 MBC의 <내 생애 봄날>인데, 최근 방송 시청률이 9.6%를 찍었다. 꾸준히 시청률이 상승해 이거란다. 한석규-이제훈의 조합으로 반짝 주목을 받았던 SBS <비밀의 문>이 6%대, 일본의 인기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와 같은 원작 만화를 리메이크한 <내일도 칸타빌레> 또한 6%대, 이동욱-신세경의 ‘판타지 힐링 로맨스’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아이언맨>이 4%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지상파 자존심은 다 구겨졌다.

아~ 지상파의 좋았던 그 시절이여...

아~ 지상파의 좋았던 그 시절이여…

<미생>과 <나쁜 녀석들>을 통해 전해지는 ‘케이블이라 다행이다’라는 이야기, 혹은 ‘지상파였으면 못했다’는 이야기.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니다. 케이블 드라마의 신드롬을 연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94>다. 2013년 10월에 방송을 시작해 12월에 한 해의 마무리와 함께 종영을 한 <응답하라 1994>의 최종회 평균 시청률은 11.9%였다. 최고시청률은 무려 14.3%나 된다. (닐슨 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

<응답하라 1994>뿐만이 아니다. <응답하라 1994> 전에도, 이후에도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케이블 드라마들은 많았다. 장르물이 특화된 OCN에는 <신의 퀴즈>, <뱀파이어 검사> 등의 히트작이 있었다. 특유의 감성 표현과 신선한 소재를 찾는 눈이 남다른 tvN에서는 <응답하라 1994>의 전작인 <응답하라 1997> 외에도 <나인>, <로맨스가 필요해>, <식샤를 합시다> 등이 호평을 받았다. 더 많지만 굳이 적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제 콘텐츠를 보는 시청자의 눈은 채널을 불문한다. 지상파라고 해서 재미없는 드라마를 봐주지 않는다. 케이블 시장을 통해 공급되는 콘텐츠가 많아지니, 작품을 보는 눈도 높아졌다. 그에 반해 채널 충성도는 해가 갈수록 낮아진다. 시청자는 ‘특정 채널이라’ 보는 게 아니라 ‘특정 콘텐츠라’ 소비하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그렇다면 지상파도 좋은 콘텐츠, 드라마를 만들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화제성도 얻기 좋고 시청률 점유에도 유리한 지상파 드라마는 멈춰있다. 아니, 말하자면 퇴보하는 중이다. 문제는 지상파 드라마가 ‘도전’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실패가 두려운 지상파 드라마는 더욱 몸을 웅크린다. 스스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거다.

굴에 들어가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라도 되려는 건가

굴에 들어가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라도 되려는 건가

요즘 시청률로 죽을 쑤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들은 도전은커녕, 이미 흥행한 코드를 재생산하고 있기밖에 더한 것이 없다. KBS <아이언맨>은 SBS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나 <별에서 온 그대>로 성공한 ‘초능력남’ 코드를 가져왔다가 망했다. 화가 나면 몸에서 칼날이 돋는 괴물(?)로 변신해 대단한 힘을 쓴다는 건데, 그냥 보는 시청자 몸에 닭살을 돋게 했을 뿐이다. 전혀 설득력 없는 이야기와 캐릭터로 말이다. SBS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의 ‘짬뽕스러움’에 대해서는 이전에 글로도 하나 쓴 적이 있으니 말을 아낀다. ☞ ‘내겐 너무 짬뽕 같은 그녀’ 보러 가기

KBS <내일도 칸타빌레>는 이미 만화와 드라마로 성공한 전적이 있는 콘텐츠를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오글거려 죽겠다- 보고 있기 힘들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제작진이 새롭게 부여한 한국 버전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없어 그렇다. 리메이크가 그냥 다시 찍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더 이전으로 흘러 내려가면 ‘남장여자’코드가, 또 ‘타임슬립’코드가 유행했었다. 이거든 저거든 주인공들이 사랑하고 끝나는 이야기로 수렴하지만 말이다.

그래라.

그래라.

치사한 핑계는 대지 말자.

여기엔 물론 드라마 외적인 압력들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 사안이라거나, 광고주와의 문제 등이 그렇다. 근데 솔직히 이거 다 핑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만들고자 한다면 할 수 있다. 그냥 미리 한계를 설정하고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니, 지상파 드라마는 시청자를 자극하는 가장 치졸한 방법으로 시청률을 얻는 ‘막장 드라마’로 주목받는 수밖에 없다. ‘막장도 장르다’라는 우스운 이야기나 하면서 말이다.

사실 지상파의 이런 ‘몸 사리기’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예능이다. <무한도전>이 흥하니 <1박 2일>이 생기고, 둘이 주말예능의 양대산맥이 되니 <패밀리가 떴다>가 생기고- <아빠! 어디가?>가 흥하니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오! 마이 베이비>가 생기고. 이젠 종편에서 외국인 토크쇼가 흥하니 <헬로 이방인> 같은 고민이 부족한 외국인 관찰 예능이나 생기는 거다. 한심해서 나오는 한숨이 땅을 뚫고 들어갈 수준이다.

언제까지 예능 돌려막기 할 겁니까.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그려.

언제까지 예능 돌려막기 할 겁니까. 눈 가리고 아웅입니다 그려.

KBS가 작년 시청료 인상을 추진하며 제시한 국민과의 10대 약속 중엔 이런 항목이 있다. 세계수준의 콘텐츠 제작으로 문화강국을 이루겠다. 몇 년 더 거슬러가 2007년 발표한 국민과의 약속엔 이런 항목도 있다. 방송시장 개방에 맞서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 외국의 상업주의 프로그램에 대응, 고품질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현재 전체 예산대비 30%의 제작비를 2012년까지 40%로 올리겠다.

결국 좋은 콘텐츠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당연한 말을 이렇게 선언까지 해놨는데, 왜 이리 공허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그 당연한 말을 KBS, MBC, SBS 지상파 3사 어디에 가져다대도 공허함만 더해진다.

이제 지상파가 그만 멈춰있었음 좋겠다. 몸 사리지 않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상파 드라마, 이젠 좀 다시 나아가길. 더 이상 퇴보 말고 진보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