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이 있다. 서구의 시각으로 동양을 바라본 것에 대한 비판이 들어 있다. 동양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동양의 시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 이 책은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만약 동양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서구 놈들 자만심이 이렇다니까. 자기들이 세상의 주인공인줄 알아. 쯧쯧.’ 하며 혀를 찰지 모르겠다. 그러나 ‘외부인으로서의 시각’의 오류를 간과하는 것은 서구인만이 아니다. 아니, 어디서든지 찾아보기 쉽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대학평가’도 그렇다. ‘대학생이 말하는 대학평가는 없다.’ 하여 우리 입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에서…대학평가란?

1. 대학평가, 일단 알고 까자.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일보가 가장 먼저 대학평가를 시작했다. 1994년에 시작했다고 하니 올해 20주년이 됐다. 요새는 다른 곳에서도 한다. 동아일보 대학정보화평가, 경향신문 대학지속가능지수,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 등이 있다. 그러나 동아는 현재 평가가 중단됐고 경향은 이제 5년차이며, 조선의 경우 QS(Quacquarelli Symonds)사의 아시아평가 중 한국의 결과만 받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거 말이다.

그래서 중앙일보가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전통 있는 대학평가를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가결과를 매번 공개하니 파급력까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이 대학평가를 고까워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광고 명목으로 대학들의 돈을 챙긴다는 비판도 들려왔고, 올해에는 대학 총학들까지 ‘대학평가 거부운동’을 일으켰다.

대학평가 20년 만에 마침내 마음의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이거 왜 하는 거지?” 하는, 그 소리 말이다.

2. 그래, 그럼 이거 왜 하는 건지 알아보자.

대학평가는 왜 하는 걸까?

알아보기 위해 <중앙일보 대학평가 평가지표와 대학순위의 관련성 분석>이라는 논문을 참고했다. 여기서 제시한 대학순위평가의 필요성을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대학들이 많아지는데, 정보가 제한적이라 선택이 힘들다. 대학교육은 개인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하니, 선택에 필요한 ‘정보’가 요구된다. 이를 충족하기 위해 교육서비스를 측정하고 점수화해 대학 간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대학순위평가가 생겼다.”

즉, 대학선택을 돕기 위해 대학평가를 한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그런데 정말 그럴까? 길 가는 고등학생 붙잡고 물어보자. “우리나라에서 어떤 대학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백이면 백 ‘서울대요’ 할 거다. 그럼 한 번 더 물어보자. 그럼 좋은 대학 순으로 순위를 매기면 어떻게 될 거 같아요? 숨 한 번 고르고 이렇게 외칠 거다. ‘설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이번 대학평가에서 성균관대학교가 서울대를 제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수긍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관적으로 보자면 그렇고, 좀 그럴 듯한 이유를 대보라면 이런 지표를 이용해볼 수 있다.

이 그래프가 보여주는 건, 상위 대학일수록 순위변동에 차이가 없고 하위대학일수록 정말 순위가 매해 요동친다는 거다. 왜냐하면 상위 대학들 간의 차이는 명확해서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고, 하위 대학들은 소위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기 때문에 평가지표가 바뀌면 받는 점수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럼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대학평가의 효용을 평가해볼 수 있다.

  • 첫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학생의 경우: 대학평가가 별 소용이 없다. 이미 아는 그대로 대학을 판단하고 지원하면 되니까.
  • 둘째, 하위권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학생의 경우: 대학평가가 별 소용이 없다. 이번에 순위가 좋은 대학이 다음번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naver 없으니. 그렇다는 걸 남들도 다 아니 대학순위가 취업 등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않을 거다.

3. 그럼 대학평가는 필요가 없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평가가 필요 없는 곳이란 없다. 절대적인 권력이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것처럼, 평가 없는 곳은 두려울 게 없다. 학생들에게 시험이 없다면 열공하는 학생이나 땡땡이치는 학생이나 (겉으로 보기에는) 다를 바가 없지 않나. 그런 환경에서라면 공부하는 게 바보다. 마찬가지로 대학도 평가받지 않는다면 연구 개판치고 강의 엿바꿔 먹고 하지 않으리란 법 없다.

그래서 찾아봤다. 쫌 다른 평가는 없는지.

A. 가장 권위 있다는 QS의 평가지표를 살펴봤다.

  1. 학계 평가 40%
  2. 교수 1인당 논문 피인용 수 20%
  3. 교수 1인당 학생 수 20%
  4. 졸업생 평판도 10%
  5. 외국인학생비율 5%
  6. 외국인교수비율 5%

QS에서는 로스쿨은 로스쿨 별로 비즈니스 스쿨은 비즈니스 스쿨 별로 평가지표를 만든다.

예를 들어 로스쿨은 이런 항목들을 따진다.

  1. 수업료
  2. 학생들의 등록 정도
  3. LSAT 점수
  4. GPA
  5. 입시경쟁률
  6. 변호사/판사 평가점수 (5점 만점)
  7. 취업률

(참고: universityreport.net)

아아… 뭔지 모르겠고 그냥 우리랑 비슷해 보인다.

하긴 제일 유명한 데를 우리나라에서 따라했을 테니 안 비슷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대학평가 지표도 문제다. 글을 시작하면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것을 파악할 때는 외부의 시각 못지않게 내부의 평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위 지표들에 내부, 그러니까 학생들이나 교수의 목소리는 없다.

그래서 내부의 목소리를 들은 평가들을 찾아봤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거였다.

B. <행복한 대학>

매체 the daily beast에서 조사한 건데,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지표를 사용한다.

  1. 기숙사: 학생들이 자기 대학 기숙사를 평가한다.
  2. 밤 문화(Nightlife): 학생들이 캠퍼스나 그 주변 파티 환경을 평가한다.
  3. 대학시절동안 평균적으로 지는 빚: 졸업 후에 얼마를 빚지고 시작하는지.
  4. 신입생 잔존율: 신입생들이 1년 후에도 다른 학교로 빠지거나 자퇴하지 않고 얼마나 남아 있는지.
  5. 학식: 학교에서 파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평가한다.
  6. 동아리나 학회 등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단체 수: 전체 학생 수에 비례해서.
  7. 햇살이 좋은 시간

이런 대학평가라면 개인적으로 환영할 만하다고 본다. 일단 평가하는 사람이 ‘학생’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대학과 학생의 관계는 갑과 을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학생들이 돈을 내고 다니는데도 그렇다. 그런데 학생이 평가자가 되면 좀 달라질 거라고 기대한다. 지금까지 대학평가를 하는 주체가 언론사였고, 그 언론사에 대한 대학의 적극적인 구애(광고 투척)가 의심되는 정황으로 유추하면 더 그렇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이 지표를 보고 학생들이 대학을 고를지는 의문이다. 누가 뭐래도 ‘서울대 연고대’ 가려고 할 테니까 말이다. 우리 학생들과 조금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외국인들이 있다면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결정할 때는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아나, 행복 시대 원하시는 우리 대통령님이 눈여겨보실지.

그렇지만 대학재학중인 대학생들이라면 이 평가로 더 좋은 대학생활을 도모할 수 있을지 모른다. 평가지표가 낮다면 총학을 압박할 수 있고 총학 역시 대학에 요구할 근거가 생기니까 말이다.

C. 상반된 대학평가도 있다. <스트레스 받는 대학> 순위다.

지표는 다음과 같다.

  1. 돈 얼마나 들어가나
  2. 경쟁 정도
  3. 대학경쟁률
  4. 대학주변 범죄율

등등.

이건 좀 대학을 선택하는 데 유의미한 지표가 될 것 같다. ‘돈’은 언제나 선택에 있어 중요한 요소고 ‘신변안전’에 대한 것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또 이 지표를 공개하면서 디테일한 지수라든가 구체적인 사례 등이 제시된다면, 대학에서도 주변 범죄율 등에 신경을 더 쓸지 모른다.

D. 그밖에도 정말 많은 대학평가들이 있다.

도서관이 제일 훌륭한 대학, 진보적 성향이 가장 강한 대학, 제일 보수적 성향이 가장 강한 대학, 성소수자들이 들어가서 공부하기 좋은 대학 등.

지금까지 살펴본 지표들의 공통점은 평가의 목적이 ‘학생들의 삶의 질’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의 연구가 중요하고 대학 이후의 취업률도 중요하지만, 대학에 다니는 시점의 학생들의 삶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학생들이 스스로 평가의 주체가 됐다는 데서, 우리도 해볼 만한 평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