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건 공공연한 비밀인데, 저는 냄새에 무지 민감합니다. 남의 체취, 나의 체취, 비온 뒤 우리집 앞뜰이 나는 냄새도 늘 구분할 정도로 예민해서 담배 연기 냄새를 10미터 반경 안에서 감지하는 것쯤은 기본 옵션인 그런 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집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언니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맡는다.냄새.킁킁.

맡는다.냄새.킁킁.

네, 저 아파트 살아요

이번 학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저는 학교 주변에 몇 개 안되는 아파트 중 하나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됐습니다. 물론, 혼자서 아파트를 전세내고 사는 부르주아와는 거리가 멀고 방 세 개와 거실, 화장실이 하나 있는 집을 세 명이서 월세로 빌려서 살게 됐죠.

아파트는 그리 크지 않고요, 지은지 꽤 됐습니다. 그래서 방음이 좀 안 되고 바로 옆의 기찻길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집에서 기찻소리가 들리는 그런 소소한 단점들이 있기는 하지만, 깨끗하고 아담합니다. 들어오면서 집주인분이랑 잘 이야기해서 도배랑 장판도 새로 했구요. (사실 도배를 해서 엄청 다행입니다. 전에 여기 살던 분이 온 집안의 벽지를 부담 백배 핑크핑크 꽃무늬 무늬로 해놔서 집 보러 오던 날 얼마나 난감했는지 몰라요 끆….)

그리고 들어온 지 두 달 밖에 안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깨끗합니다. 클클클.

우리 아파트의 평면도를 찾아버렸습니다! 큽! 저는 저 중에 거실 옆에 붙은 넓은 안방을 쓰고 있습니다(물론 월세를 더 냅니다 끆끆)

이 아파트는 사실 정말 우발적인 계기로 찾게 됐습니다. 지난 학기 교환학생을 마치고 들어온 저, 그리고 다들 여기저기서 휴학을 하다가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된 같은 과의 다른 두 언니들, 이렇게 세 명은 방학 때 한, 두번 만나서 근황을 주고 받으면서 ‘외국 애들이 플랫 쉐어링하는 것마냥 같이 나와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슬쩍슬쩍 흘렸습니다. 그러다가, 8월이 임박해서 집을 찾아야 했던 저와 다른 친구가 ‘오오.. 우리 정말로 방이 여러 개 딸린 곳을 찾아볼까?’라고 결심하고 부동산을 돌면서 기적처럼 이 집을 찾아낸 것입니다.

절-대-로 다른사람하고 계약하시면 앙대여!!! 내일온다구여!!!!!!!

동일 조건의 아파트 월세보다 훨-씬 싼 보증금에, 셋이 내면 낼 만한 월세 가격에 그 당시 집을 보러 갔던 두 사람은 거의 부동산 아저씨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내일 돈을 싸들고 올테니 이거 다른 사람하고 계약하지 마세여!!! 얼ㅇ얾얾렁ㅁ러엉어어!!’라고 부탁(을 빙자한 구걸)을 할 정도였습니다. 덤으로, 예전에 살던 분께서 식탁과 에어컨 등을 남겨 두고 가신다니 그보다 더 혹하는 조건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다음날, 부모님 SOS를 사용해 계약을 따낸 세 명은 얼레리요? 하면서 정말로 아파트에 살 준비를 하게 됩니다.

A House is not a Home

그렇지만 집을 얻는다고 해서 모든 게 마법처럼 사라락 해결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같이 살기로 한 세 명의 사람 모두 자취, 하숙, 혹은 교환학생을 가서 플랫메이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략 ‘이 생활이 어떨 것이다’에 대한 감은 있었지만, 아무런 가구도 없는 빈 집을 마주했을 때의 황망함은 사실 감출 수 없었습니다.

오r… 빈방좋ㄷr…

자취, 하숙, 혹은 이미 세팅이 된 아파트에서 플랫메이트로 기생하는 생활과는 다르게 2년짜리 계약을 질러버린 이 집에는 식탁과 에어컨(네, 남겨두고 간다고 했던 그 두 가전들)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세탁기도, 냉장고도 없고 의자도 없고 그냥 방이란 방들은 다 텅텅 비어 있고… 아, 전 주인분이 떼가기 귀찮다고 남긴 뜨뜻한 비데에 앉아서 이 당혹스러움을 삭여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그래서 계약하고 다음날부터는 중고 물품 구입 및 본격 지인 대상 구걸질이 시작됐습니다. 식탁 의자 비슷하게 생긴 아무 의자나 집에 남는 분? 이것 저것 다 남는 분? 아무거나 저희는 넙죽 받을 몸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요. 하지만 그냥 구걸로는 역시 다들 ‘음…뭐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 세 명은 결국 생활의 필수 오브 필수 가전인 냉장고와 세탁기를 구입하게 됩니다.

요겁니다. 무려 직샷.

요겁니다. 무려 직샷.

냉장고는 중고로 잘 구했어요. 이거, 되게 쓸만한 중고였습니다. 그 당시 냉장고 구매 진행을 분담받았던 저는 5분에 한번씩 중고나라의 가전 게시판을 새로고침하면서 매물을 낚아채려고 대기하고 있었습죠. 그러던 와중에, 중고매매업체같지 않고 개인 같이 생긴 요 674리터짜리 양문형 냉장고 느님이 떠억-하고 나오더란 말입니다. 14만원이라는 어마무시한 가격에 말입니다. 문자 치는 순간에 흥분해서 손이 와들와들 떨렸어요. ‘냉장고 아직 구입 가가가가가가능한가요?’ 전화해서 말했다면, 아마 저렇게 말했겠죠. 그리고 거기에 용달비 5만원을 얹어서 19만원에 뙇! 거래는 순식간에 뙇!뽷! 성립됐습니다.

너무 빠르고 간편하게 쿨거래가 돼서인지 판매자분이나 저나 약간 얼떨떨한 상태에서, ‘그럼 이삿날에 뵈요우오요우’라고 인사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냉장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조롭게(물론 냉장고를 배달 오던 날 저는 술을 떡이 되도록 먹느라 밖에 있어서, 냉장고를 직접 받지 못하고 용달 오신 분이 알아서 척척 설치하시고 전기코드까지 꼽고 가셨습니다만) 우리 집에 들어왔습니다.

나는!산다!

그렇게 첫 가전을 들이고 나니 나머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뭐, 원체 돈이란게 벌기 힘든 거지 쓰기 힘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세탁기는 중고로 사면 잔 부품 고장이 많이 난다는 주변 독립러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그냥 가장 싼 10kg 통들이 신품을 샀습니다. 지금 무지하게 잘 돌아갑니다. (물론 산지 두 달밖에 안됐지만… 지금 고장나면 눈물나겠지…)

가전을 구하는 것만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같이 산다’는 중압감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문제 해결이나 규칙 설정 같은 문제도 (산더미처럼) 남아있었습니다. 일단, 방의 크기가 모두 미묘하게 다른 세 개의 방에 누가 살 것인지에 대한 문제부터 시작해서 (여기서 제가 안방에 살고자 한 번 으왕크왕 성질 부린건 안자랑입니다. 물론 지금 저는 안방에 살고 있습니다) 집세 문제, 공동 관리비 문제, (혹시나 모를) 남자친구의 문제, 청소구역의 문제까지 이것저것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는 많았습니다. 각각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처음에 셋은 뭔가 어색어색한 기류를 느껴야 했습니다. 하지만 뭐, 돈 이야기랑 이런저런 사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거는 시간이 흐르니까 좀 나아지더라고요. ‘어차피 해치워야 할 문제닷!’이란 걸 인식하고 나니 서로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비교적 꺼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렇게 멱살을 잡고 싸운 거는 아니지만요….

그래서 산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 세 사람은 청소구역을 부엌 및 음식물쓰레기/ 화장실 및 분리수거/ 거실 및 마루로 나누어 부엌요정님~과 화장실요정님~과 마루요정님~을 두고 있으며 각각의 요정님이 가끔씩 일을 게을리 하기도 하지만(저라던가 저라던가 저라던가… 오늘 아침에 싱크대 하수구가 위험해 보이던 건 그냥 착각이었을 거야) 그래도 집은 나름 깨끗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편입니다.

이건 여담인데, 그 때 세 명은 ‘각자의 남자친구가 있으면 남자친구의 우리 집 방문은 일주일에 2회 이하로 제한한다’는 나름 통큰 이해 조항을 신설하였으나, 지금까지 아무도 이 조항을 이용할 남자친구가 없다는 소식입니다. 제길… 제 룸메들 (그리고 저)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저, 저 조항 가지고 제발 룸메들이랑 한번 싸워보고 싶습니다. 룸메(들과 저)에게 애인 좀 만들어주세요(…)

그렇게 최소한의 규칙과, 냉장고와, 세탁기와, 비데와, 식탁의자(…)만을 간신히 구비한 채 세 명의 서바이벌은 시작됐습니다.

괜찮아, 집들이야

프라이버시 부분은 살짝쿵 모자이크했습니다. 이 포스터의 저작권은 저의 위대한 룸메이신 디자이너 천재 한모양에게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헛헛. 아무리 핫해보여도 허락 맡고 쓰세요 촤핫

프라이버시 부분은 살짝쿵 모자이크했습니다. 이 포스터의 저작권은 저의 위대한 룸메이신 디자이너 천재 한모양에게 있다는 것을 미리 밝힙니다 헛헛. 아무리 핫해보여도 허락 맡고 쓰세요 촤핫

그런데 전에 자취하던 버릇대로 이마트에서 냉동식품을 잔뜩 시켜서 양문형 냉장고에 그득그득 먹이고 있던 저는 문득 뒤통수에 부는 찬바람같은 서늘함을 맛봅니다. 냉동식품을 샀지만 이것을 데워주실 전자파 느님이 집에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어… 전자레인지!!!느님!!! 말입니다. 제길. 이사오고 일주일 내내 가져온 후라이팬 하나에 인내심 테스트를 방불케 하는 해동 과정을 거치면서 저(와 다른 사람들 모두)는 ‘조만간…기필코… 전자레인지…으드득’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 뿐만 아니라 그냥 집 안에 모든 집기 및 가전이 부족했던 세 사람은 우리의 학과적 특성을 살린(은 개뿔 그냥 먹고싶었던 음식 취향대로 할 수 있는) 집들이를 열어서 사람들에게 참가비로 이런저런 집기들을 받아 보자는 아이디어를 내게 됩니다. 약간 외쿡식 소셜파티 따라하다 만 집들이 같은 느낌입니다.

왜이렇게 우주적으로 나왔져? 저희 중고 전자레인지입니다

왜이렇게 우주적으로 나왔져? 저희 중고 전자레인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집들이는 생각보다 흥했습니다. 저희는 집들이를 통해서 전자레인지, 조금 낡은 프린터(잉크젯인데, 아직 구동을 안시켜봐서… 하핫), 재활용 분리수거함, 후라이팬 및 각종 주방 집기들과 휴지, 세제, 술 등을 얻었습니다. 물론 집들이에 오신 분들을 대접하고, 특히 그 대접을 나름 컨셉 있게 해보겠답시고 하루는 태국식, 하루는 멕시코식(무려 이틀이었죠)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이국적인 재료를 사는 데 깨진 돈이 상당합니다. 얼마인지는 쪽팔리니까 밝히지 않겠습니다.

사실 이런 집들이 컨셉을 잡고, 사람들에게 집들이 방식을 알릴 때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내 친구들이라지만, 이런 방식을 이해 못해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다 무슨 집들이 주제에 참가비를 받고 애들끼리 물건 사오는 퀘스트를 시키는거야? 라고 느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은 순전히 저의 기우로 드러나더군요.

세 명의 공통적인 친구 5명은 합심!크로스!해서 중고 전자레인지를 구입한 후 그것을 직접 집까지 배달해 줬습니다. 솔직히 전자레인지가 우리 집 현관 문을 넘어섰을 때 전자레인지님에게 대고 절이나 만세삼창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은 아니고 여튼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소소한 거는 혼자, 조금 규모가 있는 건 둘이, 더 규모가 있는 건 여러 명이 달라 붙어서 십시일반 필요한 물건들을 사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동안의 집들이 동안, 저희는 반드시 ‘금전만능주의적 집들이 선물 자랑하기 대회’를 진행해서 (이름만 그렇지 저희가 절대 금권만능주의적 찬양을 보인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요) 각자가 가져온 선물의 의미와 용도를 이야기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마음씨와 드립 터지는 설명력에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기가 아끼는 애플 로고가 새겨진 머그를 가져왔다는 룸메의 친구부터, 너희들은 사람들과 많이 만나는 과에 다니고 있으니 사람들과 만날 때 부들부들해지라는 의미에서 울샴푸!를 가져왔다는 룸메의 친구, 말없이 가져온 전자레인지를 가리켜 보였던 다섯명의 무적의 여전사들(지금 생각해도 하트가 뿅뿅) 등등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렇게 집들이를 통해서 받은 선물은 세 사람이 중고로 무언가를 구입한 것보다 우리의 취향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성능이 좀 덜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쓸 때마다 여길 와서 우리 집들이를 축하해 줬던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니 꽤나 낭만낭만하고 감성감성한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다음 번에 당신이 집들이를 한다면, 이 방식, 단연코 추천합니다.

그리고 삶은 생각보다 평탄하다

그런데 그 집들이를 하면서, 또 아마도 각자의 집에서 엄마아빠에게 귀에 정말 딱지가 앉히도록 들은 말들이 있다면 그것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걱정’들이었습니다. 같이 살면 아무리 친해도 반드시 싸우게 된다더라, 늬들이 돈 계산 알아서 잘 할 수 있겠냐, 그러다 친구 사이 틀어진다 등등등등… 이것 저것 충돌들에 대한 걱정 말입니다. 뭐, 그러면 약간 비싼 돈을 부담하고서라도 각자 사는 게 나은 거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냥 웃으면서 하하호호 넘겼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듣고 불안감이 스멀스멀 생긴 적도 있지만서도… 사실 지금은 생각보다 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못하는 일 중에 하나는 청소입니다(…).

살면서 사소한 것부터 꽤 큰 것까지 트러블이 안 생겼다고는 말 못합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싱크대 하수구가 터지기 직전까지 제가 하수구를 방치하는 바람에(…) 룸메 언니가 이를 으드드득 갈면서 ‘으으응으ㅏㅇ아아! 하수구! 랫사야! 아침에 하수구 치울 거지?’라고 얘기했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거기다 대고 마치 중2병 꼬마가 엄마한테 툴툴거리는 것처럼 ‘아 한다고! 아침에 할거라니까! 할거야!’라고 되받아쳤습죠. (그리고 정말로 치웠습니다. 불러서 가보니 생각보다 심각해서 좀 무안해지더라고요…. 하핫)

또, 흔히 생각하는 거랑은 다르게 셋이 쉐어 하우스를 산다고 했을 때 금전적으로 아주 큰 이득이 오는 건 아니었습니다. 일단 저는 큰 방을 쓰고 있어서 한 달에 월세를 40만원을 내고 있는데, 공동 관리비로 한 달에 5만원~8만원 정도를 냅니다. 그리고 1~2주에 한번씩 일주일 치 장을 봐오는데, 한 번에 3만원 정도는 들더군요(그 먹거리들 중에 살사 소스 따위가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합니다. 여튼… 그렇다고요.)

그리고 따로 나오는 가스비도 나눠서 내면 한 달에 5천원쯤? 그러니까 한달 생활비가 50만원이 조금 넘어가니, 막 엄청나게 경제적인 생활은 아니죠. 물론 최근에 신촌 일대의 원룸 시세가 확 뛰어서 보증금 1000에 월세 50이 평범한 주거비라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말입니다. (참고로, 다른 룸메들은 30만원을 각각 부담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으아니 으아니 이 사람이 내 물건을 스르륵 쓰고 있나?’에 대한 의심병이 며칠간 걸려 돌아다녔던 적도 있고(하지만 아무도 그렇지 않았던 걸로. 그냥 제가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조금 다른 생활 사이클과 생활 가치관을 이해해 가는 데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죠 핳ㅎ핳하

예를 들면, 저는 극단적인 올빼미형입니다. 보통 자는 시간은 새벽 2,3시, 그리고 아침 10시쯤에 느즈막이 일어나서 씻고 11시쯤 아점 먹는 라이프를 즐깁니다. 하지만 다른 룸메 언니 두 명은 자의든, 타의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생활 사이클을 이번 학기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은 낡아서 방음이 훌륭한 편은 아닙니다. 결론은, 저는 아침 8시쯤 함께 깨워지게 됩니다. 그렇게 ‘깨워진’ 처음 1주일, 저는 대략 짜증이 나 있던 상태였습니다. 아놔 제길, 잠도 맘대로 못자, 제길제길! 그런데 2주, 3주가 흐르니까 뭐랄까, 그 시간에 눈을 뜨는 게 익숙해지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에 못다한 잔업을 처리하는 사이클로 제 생활 패턴이 바뀌더라 이겁니다.

그리고 이제 한달 차에 접어들자, 저는 8시에 반짝 눈을 떴다가 약간의 생활소음이 가라앉으면 다시 태평하게 잠이 들어서 10시에 다시 눈을 뜨는 신기술을 익히기까지 했습니다. (역시 아침 특수는 반짝 특수였지) 그렇게, 저렇게 맞추어 가고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제가 새벽까지 자지 않고 부스럭부스럭거리면서 게임을 하고 야식을 돌려먹는 등의 소리는 언니들이 저에게 맞추어 주느라 어느 정도 참는 것이겠죠.

타자에게 맞추어 가는 법

그리고 저는 요즘 생각합니다. 어… 같이 살아서 참 다행이라고. 그게 비단 냉장고를 열어 보면 누군가가 해 둔 밥이 있고, 물값이나 기본적인 생필품의 값을 3분의 1로 나누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물론 그것도 어마무시!!!하게!!! 좋습니다!!! 클클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것을 ‘주고 받는’ 법을 배워서 다행이라고.

같이 살면서, 닮아갑니다요

같이 살면서, 닮아갑니다요

저는 자취도 꽤 길게 했었고, 외국에 나가서 플랫메이트 생활도 했었는데, 특히 자취할 때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경향이 (생각없이 편의점 음식을 사재낀다!) 심했습니다. 또, 나만 있는 공간이니 어때, 하고 나날이 방의 쓰레기도는 심화되고… 뭐 그런 문제들이요. 하핳핳. 조금 부끄럽다. 그런데 같이 살다 보니 뭔가 나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고, 제 일상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제 방을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살게 됐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균의 깔끔함에 도달하지 못한 점은 대체 어찌할텐가…). 무언가를 요리하고 먹을 때도 같이 먹을 생각을 하거나 물어보는 경우가 다반사이니 뭔가 식성도 조금 맞추려고 하게는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사실 쓰는 저도 약간 오그라들지만, 그 ‘감성’이란 걸 공유할 수 있는 장소로써 집이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장 뿌듯합니다. 룸메 중 누군가 그 날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으면 늦저녁 즈음에 다 같이 식탁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혹은, 내가 힘들면 남을 붙잡고 툴툴거리며 푸념할 수도 있구요. 그렇게 집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서로 있었던 기쁜 일이나 힘든 일, 슬픈 일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자취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컴퓨터를 붙잡고 사는 일이 많고 (일이든 취미든), 원체 낯도 가리고 츤츤한 성격이 있는 사람이라 아직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망설여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룸메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는 있으니 꿈지럭꿈지럭 노력은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주거하는 공간과 ‘사는 공간’의 의미는 확실히 다릅니다. 다르더라고요. ‘살아’ 보니, 그제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