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세 때까지 여전히 가난하다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건 당신 자신의 탓이다.”

중국의 전자 상거래 회사 ‘알리바바’의 창업주인 마윈 회장의 말이 화제가 됐다. 머니투데이 권성희 부장은 마윈 회장이 Clinton Global Initiative에서 있었던 강연을 저 한 마디로 요약해버렸다. 지금 저 기사는 중국어 > 영어 > 한국어로 번역하는 사이에 오류가 낀 것으로 확인되었다. (참고기사)

http://www.letssarm.com/jackma 에서 소개된 인터뷰 중 ’35’이 들어간 문장은 아래와 같다.

“When you have not accomplished anything by the time you are 35, no one will pity you”.

순수하게 직역하면 “35살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면, 아무도 널 동정하지 않을 거다.”가 될 문장이 “35세 때까지 여전히 가난하다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건 당신 자신의 탓이다.”로 바뀐 거다. 강남 미인도도 아니고, 애 바뀌듯 문장의 A부터 Z까지 싹 다 갈아엎어졌다.

When you have not accomplished anything by the time you are 35, no one will pity you를“35세 때까지 여전히 가난하다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건 당신 자신의 탓이다.”로 해석함에 있어서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자의 과한 해석이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리 조회수와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라지만 번역자가 한국 사회의 외톨이도 아니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저런 과한 주관을 넣었을 리는 없다. 어찌되었거나 같은 한국 사회의 누군가가 번역을 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저 기사가 수많은 어그로를 끌었다는 사실은 분명 저것이 우리 사회의 어떤 문제점을 꼬집는 혹은 우리의 기저 의식에 있는 무언가와 공명했다는 것의 방증일까싶다.

그렇다면 그 공명은 뭘까?

그래. 그 공명은 무엇보다도 ‘분노’다. 이 지독한 사회 구조 속에서 여전히 ‘너 자신을 알라’ 식의, 모든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저 기사에 치밀어 오른 것은 분노다. “35살까지 성공 못하면 니 탓”에 분노하는 우리들의 마음에는 “성공은 하고 싶다” 혹은 “성공해야만 한다” 와 “근데 사회가 존나 쓰레기다” 라는 욕망과 자조가 뒤엉켜있다.

전자야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지점이겠지만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격언이 아직까지 회자되는 한국 사회를 감안하면 아마 우리 속에는 “개천은 살기 힘드니깐 성공해서 이동해야 한다”라는 의식이 기저에 깔려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늘려도 모자랄 판에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예산은 싹둑싹둑 잘리고, 온갖 ‘창렬’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들의 지갑은 강제 다이어트를 겪는다. 개천, 참 살기 힘들다.

이런 사회입니다 허허

후자는 한국의 현실을 ‘시궁창’으로 대중들이 인식함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생각보다 현실은 더 쓰레기다. 총 가구 수의 약 50%가 거주하는 수도권의 평균 집값은 3억 2천 만원이 넘는다. 20대 평균연봉이 25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과소비 없이 13년을 주구장창 일만 해야 집 한 채 살 수 있다.

혹자는 집이 없어도 되지 않느냐고 요구를 하지만,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우리 나라에서 ‘집’이 갖고 있는 함의를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하우스푸어는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잘못된 투자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낳은 사생아이기도 하다.

집만이 문제가 아니다. 20~30대에 뼈빠지게 집값과 겨루고 나면, 우린 교육비라는 놈과 마주한다. 자식을 낳으면 우리는 교육에 투자한다. 계층 순환의 기회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자식이 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부모 마음에 쏙드는 물건은 바로 ‘교육’이다.

집값과의 사투에서 진을 빼고, 교육비와의 사투에서 피를 토하는 가구는 실제로 많다. ‘에듀푸어(교육빈곤층)’라 불리는 이 계층은 수입 중에서 교육비 지출의 비중이 과다하게 커서 무려 소득의 30%에 달한다. 더 아픈 지점은, 이 에듀푸어의 대부분이 한국의 ‘중산층’이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교육은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염원이기도 하지만 추락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애절함이기도 하다.

에듀푸어를 극복한 부모는 필연적으로 ‘실버푸어’가 될 수밖에 없다. 노후를 대비한 자금이 집에 빨리고, 자식교육에 빨리니, 정작 본인은 챙길 수 없다. 그렇다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부모의 노후를 빨아먹은 자식도 행복하진 않다.

취업준비비용, 학자금 등의 지출이 늘어나 빈곤의 늪에 빠져버린다. 20대 316만여명 중 약 10%인 34만여명이 스튜던트 푸어에 속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추락하지 않고자 발악했던 그들은 그렇게 부모 세대보다 더한 빈곤의 굴레에 빠져든다.

왜 난 햄보칼 수가 없어

그렇다. 저런 노력 다~ 부질없다. 한국 사회는 개인의 노력 따위로 계층이 극복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심지어 안타깝게도 ‘교육’ 등으로 계층 이동을 하려는 대다수 부모들의 노력도 공염불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여기 우릴 ‘ㅂㄷㅂㄷ’하게 만드는 지표가 하나 있다.

ㅂㄷㅂㄷ

“Actual and Perceived Upward Mobility”라는 이름의 지표는 우리의 실제 사회이동성과 인지 사회이동성의 차이를 보여준다. 오른쪽에서 7번째 한국을 보자. 우리나라는 실제 사회이동성과 인지 사회이동성의 갭이 가장 큰 나라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스스로 상향이동할 거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세계 최고인데 현실은 꼴찌 수준이란 말이다.

원 논문에는 사회지출지표도 나오는데 한국은 상당히 낮은 수치를 보여준다. 두개를 합쳐서 얘기하자면 ‘사회지출은 낮은데, 인지 상향이동은 높다’라는 말이 되고, 이 말인 즉슨 ‘사회에서 해주는 건 존나 없는데 너 혼자 겁나 기대하고 있다’라는 말이 된다. 우린 아직도 사회 이동에 대한 ‘과한 희망’을 갖고 있는 거다.

이 사태에서 우린 어떻게 극~뽀옥 해야만 할까.

극~뽀옥!

사실 그런 거 제시할 수 있으면 내가 미스핏츠에서 글 쓰지 않고, 피케티처럼 책 팔아서 세계일주하고 있겠다. 다만, 내가 말할 수 있는 점은 우리가 더이상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개천’을 가꿔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서 하늘로 올라가야만 살기 좋은 게 아니라, 개천에서도 편하게 살 수 있게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용이 될 필요는 없다. 모두가 용이 되려는 사회는 그게 지옥도지 뭐냐.

용이 아닌 이무기들은 모두 버러지로 퇴화하거나 천상계를 제외한 개천인 모두 4급수 똥물이 되려는 지금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런 엿같은 구조와 억압을 깨뜨리는 것 중 가장 확실하고 필요한 것이 개천 물고기 속으로 정치를 가져오고, 정치 속으로 물고기들이 들어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닐까 싶다. 정치는 정치를 바꾸는 게 아니라 삶을 바꾸는 것이다.

위기란 어려움에 봉착하는 게 아니라 되돌아 가지 못 하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길을 잃어서 미아가 된 게 아니라 길을 찾지 못해서 미아가 된 거다. 우리 사회 구조가 문제적인 건, 그 문제를 고치지 않기에 더욱 문제적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고쳐는 게 진짜 국가 개조다. 우리 나라의 개천과 계층 순환은 분명 고장났는데, 저것들은 놔둔 채 비정상의 정상화니, 창조니 뭐니, 네 탓이니 내 탓이니 하니 답답한 일이다.